비아 코르소(1)

고대 로마 최초의 고속도로

by leo


로마여행을 가서 시내를 오가다보면 언제나 비아 델 코르소 즉 코르소 거리를 지나게 된다. 로마 시내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중심지이기 때문이다. 중심지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폭이 겨우 10m 정도에 불과할 정도로 좁지만 하루 종일 로마인은 물론 해외 관광객으로 넘쳐나는 길이다.


첼로를 들고 연주하는 노인, 바닥에 앉아 빵을 먹고 있는 젊은이, 남 눈 신경 안 쓰고 키스하는 데 여념이 없는 청춘남녀 등 다양한 사람들이 거리를 메우고 있다.


골목에는 맛있는 음식을 파는 식당과 카페가 넘쳐나고, 명품은 물론 싼 옷도 살 수 있는 가게가 즐비하다. 거리를 걷다가 굳이 길을 제대로 찾을 생각을 하지 않고 그냥 골목으로 불쑥 들어가 이곳저곳을 돌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코르소 거리는 카피톨리노 언덕 앞 베네치아 광장에서 시작해 포폴로 광장까지 이어지는 총길이 1.5㎞ 정도의 거리다. 이곳에 사람들이 넘쳐나는 것은 많은 로마 유적에 접근할 수 있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스페인 광장, 트레비 분수, 판테온, 나보나 광장 등 유명한 관광지가 이 길을 따라 몰려 있다.


관광객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당한 폼페이우스 대극장도 이 길 끝에 있다.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만든 평화의 제단인 아라 파키스, 황제와 가족들의 묘지인 아우구스투스 영묘, 역시 아우구스투스가 건설한 아라 프로비덴티아, 오현제의 마지막 황제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사망 전후에 만들어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원주, 군인황제 시대이던 274년 아우렐리아누스 황제가 오리엔트의 고대도시 팔미라를 지배하던 제노비아 여왕을 제압하고 빼앗은 전리품으로 건설한 태양의 신전도 인근에 있다.


코르소 거리는 고대 로마 시대에는 비아 플라미니아 즉 플라미니아 가도였다. BC 220년 감사관이었던 가이우스 플라미니우스가 이 도로를 처음 만들었다. BC 1세기~서기 1세기 그리스 지리학자 스트라보의 『지리』에 그런 내용이 나와 있다.


플라미니우스는 이탈리아 북부 포 강 인근 갈리아 키살피나에 살던 리구르 족을 정벌한 뒤 로마에서 티레니아와 옴브리카를 거쳐 아리미눔까지 이르는 길을 만들었다. 이것이 비아 플라미니아였다. 로마에서 아리미눔까지 거리는 1천350스타디온이었다. 요즘 도량형으로 환산하면 211~270㎞ 정도라고 한다.


비아 플라미니아는 나중에는 아퀼레이아까지 연장됐다. 로마가 갈리아와 게르마니아에서 군사활동을 펼치는 데 비아 플라미니아는 매우 중요한 도로였다. 그래서 BC 65년 무렵에는 이 도로만 관리하는 특별 관직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오늘날 카피톨리노 언덕 앞쪽의 베네치아 광장 인근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세르비우스 성벽의 포르타 폰티날리스 앞이 이 길의 출발점이었다. 당시 이곳은 로마 시내에서 외곽인 마르스 평원이었다. 로마군대가 외국으로 전쟁을 하러 갈 때 군인들이 집결하던 곳이었다. 당연히 이곳에 길을 내면 행군하기에 무척 편했다.


비아 플라미니아는 마르스 평원을 가로질러 현재의 포르타 델 포폴로(포폴로 문)를 지나 밀비우스 다리를 건너 북쪽으로 올라갔다. 고대 로마 시대에는 로마 시내에 무덤을 둘 수 없었기 때문에 도로 주변에는 많은 무덤이 세워져 있었다. 이곳에 묻히는 것은 당시 평민은 물론 귀족에게도 대단한 영광으로 받아들여졌다.


공화정 말기부터 제정 초기에 마르스 평원 주변에도 개발 바람이 불었다. 그 덕분에 도시로 변모했다. 또 여러 기념비적 건물이 비아 플라미니아를 따라 세워졌다. 지금은 중세 시대에 만들어진 건물들이 도로 주변에 빼곡하게 들어찼기 때문에 시야가 가려져 있지만, 제정 시대까지만 해도 도로에서 많은 신전, 바실리카 등을 두루 볼 수 있었다.


주거 지역도 조성됐다. 하드리아누스 황제 시대 이후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주거지역이 근·현대 발굴조사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집들이 아주 밀집해 있어 사람들이 적지 않게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비아 플라미니아에는 개선문 세 곳이 있었다. 각 개선문을 지날 때에는 도로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도로가 개선문의 아치 안으로 지나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비아 플라미니아에 세워진 개선문은 아르쿠스 노부스, 아르쿠스 클라우디아, 아르코 디 포르토갈로였다.


세 개선문 중 로마에 가장 가까웠던 개선문은 303~304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막시미아누스 황제와 함께 치른 개선식에 맞춰 제작한 아르쿠스 노부스였다. 다음에는 51~52년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브리타니아 원정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뒤 만든 아르쿠스 클라우디아가 서 있었다. 지금 아르쿠스 클라우디아는 사라지고 없지만 원래 이 개선문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었다.


‘로마 원로원과 시민들이 드루수스의 아들이며 폰티펙스 막시무스이며 다섯 차례 집정관을 지냈으며 22차례 개선장군이며 조국의 국부인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수 게르마니쿠스에게. 어떤 피해도 없이 브리타니아의 열두 왕을 굴복시켰고, 바다 너머 야만족을 사상 처음 로마의 지배하에 끌어들인 공로를 인정하며.’


로마에서 가장 먼 개선문은 아르코 디 포르토갈로였다. 원래는 하드리아누스 황제 시대에 만들어져 아르쿠스 하드리아니라고 불렸지만, 16세기 들어 포르투갈 대사관이 근처에 세워졌다고 해서 아르코 디 포르토갈로 즉 포르투갈 개선문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271~275년 아우렐리아누스 황제는 야만족의 침입에 대비해 로마 주변에 아우렐리아누스 성벽을 쌓았다. 이 때부터 비아 플라미니아의 출발지는 자연스럽게 성벽 안으로 들어가게 됐다. 비아 플라미니아가 아우렐리아누스 성벽 밖으로 나가는 곳에는 성문이 하나 만들어졌다. 비아 플라미니아가 지나가는 문이라고 해서 포르타 플라미니아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곳이 바로 오늘날의 피아자 델 포폴로다.


비아 플라미니아는 4세기 무렵부터는 ‘넓은 길’이라는 뜻인 비아 라타로 불렸다. 정확히 설명하면 아우렐리아누스 성벽 안쪽의 길 즉 오늘날의 코르소 거리 구간만 이렇게 불렀다. 코르소 거리의 평균 폭은 10m여서 현대적인 도로 기준에 비춰보면 좁은 골목길 수준에 불과하지만, 당시에는 다른 길에 비해 매우 넓은 도로였기 때문이었다.


고대 로마가 오도아케르에게 멸망당하고 100여 년이 지난 600년 무렵 비아 라타에는 빈민에게 무료급식을 제공하는 복지센터와 식량을 저장하는 창고가 세워졌다. 15세기부터는 새로 지은 교회나 리모델링한 교회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귀족들이 살기 위한 궁전도 연이어 만들어졌다. 이때 건물을 짓는 데 사용했던 건축자재는 인근 포로 로마노나 팔라티노 언덕 등에서 뜯어온 것이었다.


코르소라는 거리 이름은 이 무렵 만들어졌다. 15세기 무렵부터 비아 라타에서는 기수 없는 말 경주가 열렸다. 이 경주를 코르사 데이 바르베리라고 불렀는데, 코르소라는 명칭은 여기에서 나왔다.


코르소 거리를 채운 건물은 계획에 따라 규칙적, 계획적으로 건설된 게 아니었다. 그래서 17세기 무렵에는 여러 건축기법으로 만들어진 건물 때문에 코르소 거리는 매우 조화롭지 못하고 불규칙하고 지저분한 길로 전락해 버렸다.



교황 알렉산데르 7세는 로마 중심가인 코르소 거리를 재정비하기 위해 귀족들에게 절도 있는 개발을 촉구했다. 하지만 귀족들이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며 이에 따르지 않는 바람에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교황은 거리에 질서와 균형감을 준다는 이유로 지나치게 튀어나왔거나 높은 건물을 부수거나 잘라냈다. 거꾸로 너무 작거나 뒤로 물러난 건물에는 부속 시설을 덧붙이기도 했다. 또 길을 시원하게 뚫기 위해 아르코 디 포르토갈로 등 여러 건축물을 아예 뭉개버리기도 했다.


알렉산데르 7세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원주가 서 있는 피아자 콜로나를 개발하는 데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 치기 가문 출신인 그는 가문 사람들에게 미완성 상태였던 피아자 콜로나 인근의 팔라초 알도브란디니를 사들여 건물을 완공하라고 지시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건물에는 팔라초 치기 측 ‘치기 궁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치기 궁전은 지금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원주 앞에 우뚝 서 있다.


또 알렉산데르 7세는 피아자 콜로나에 아름다운 분수를 가진 궁전을 하나 짓기로 하고 화가 피에트로 다 코르토나에게 디자인을 설계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비용 등의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궁전은 완성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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