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제와 관련해서 싸움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완전하게 설명하는 게 옳다. 갑작스러운 운명의 반전과 이후의 비극적인 이야기도 알리는 게 옳다. 나는 할 수 있는 한 모든 사건을 정확하게 설명할 작정이다.
합의의 효력을 발생시켜야 할 시간이 됐을 때 로마군은 조상의 신에게 기도를 드린 뒤 완전 무장한 채 진군했다. 호라티우스 삼형제는 그 뒤를 따랐다. 그들은 왕과 함께 진군했다. 로마를 가득 메운 군중은 그들에게 박수갈채를 보내고 그들의 머리에 꽃을 던졌다. 알바군도 비슷한 시간에 진군을 시작했다.
두 군대는 로마의 영토와 알바의 영토를 갈라놓은 국경을 사이에 두고 근처에 진지를 구축했다. 양측은 이전에 진지를 꾸렸던 곳을 차지한 뒤 희생제례를 올리고 신에게 맹세했다.
“사촌끼리의 싸움이 두 도시에 어떤 운명을 할당하더라도 받아들이겠이습니다. 합의를 어기지 않고 지키겠습니다. 우리는 물론 후손도 속임수를 쓰지 않겠습니다.”
종교 의식을 거행한 뒤 로마군과 알바군은 무기를 옆에 내려놓고 싸움을 지켜보기 위해 진지 밖으로 나갔다. 양측 사이에는 500~700m 정도 간격이 있었다. 푸페티우스는 쿠리아티우스 삼형제를 데리고, 툴루스는 호라티우스 삼형제를 데리고 나타났다. 두 삼형제는 훌륭한 갑옷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두 삼형제는 무기관리인에게 칼을 맡기고는 서로를 껴안고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이름을 부르며 통곡했다. 양측 병사 모두 감정에 복받쳐 눈물을 흘렸다.
“두 사령관은 물론 우리도 무자비한 사람들이야!다른 선수들끼리의 대결로 전쟁을 결말지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혈연관계를 가진 두 삼형제의 대결을 굳이 부추겨 친척 살해의 비극을 강요한 거야."
두 삼형제는 한참 껴안고 통곡한 뒤 다시 무기관리인으로부터 칼을 넘겨받았다. 구경꾼들이 뒤로 조금씩 물러나자 삼형제는 나이에 따라 자리를 잡고 싸움을 시작했다.
한동안 두 군대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그러다 양쪽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또 서로 돌아가며 선수들을 격려하는 고함도 이어졌다. 맹세, 한탄은 물론 전쟁터에서 늘 나오게 마련인 다양한 감정의 표현이 뒤를 이었다. 양측 병사들은 대결장에서 격돌이 일 때마다 소리를 질렀고, 일부는 결과를 걱정하면서 소리를 질렀다. 그들의 상상은 실제 일어난 일보다 훨씬 처참했다.
너무 거리가 멀어서 싸움터에서 벌어지는 일을 분명히 보는 건 불가능했다. 양측 병사들은 서로 자기 선수들을 편파적으로 편들었기 때문에 모든 상황을 그들의 기대에 맞춰 상상했다. 두 삼형제는 수시로 전진과 후퇴를 반복했다. 갑작스러운 충돌도 너무 잦아서 정확한 상황 판단을 내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러한 상황은 한참이나 이어졌다.
두 삼형제는 신체적 능력에서 비슷했고, 정신적 고귀함에서도 마찬가지로 대동소이했다. 그들은 가장 좋은 갑옷으로 온 몸을 감쌌기 때문에 설령 부상당하더라도 갑작스럽게 쓰러져 죽을 여지를 남기지 않았다.
로마 병사들과 알바 병사들 모두 때로는 간절한 경쟁의식에서, 때로는 자기 선수를 응원하는 편파적 생각에서 마치 직접 전투에 나서 싸우는 것처럼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구경꾼이라기보다는 실제로 진행되고 있는 드라마에 출연한 배우처럼 생각했다.
마침내 쿠리아티우스 삼형제 중 장남이 상대와 접전을 벌이며 칼날을 주고받다 호라티우스 삼형제 중 하나의 사타구니에 칼을 깊숙이 찔러넣었다. 호라티우스 삼형제 중 한 명은 다른 상처 때문에 이미 얼이 빠진 상태인데다가 마지막 일격을 받고는 쓰러져 죽고 말았다. 그의 다리는 더 이상 주인을 지탱하지 못했다.
싸움의 구경꾼들은 이 모습을 보고는 너나할 것 없이 소리를 질렀다. 알바 병사들은 승리의 함성, 로마 병사들은 탄식의 함성이었다. 로마 병사들은 나머지 두 선수가 알바의 세 선수에게 쉽게 굴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쓰러진 형제 옆에서 싸우던 다른 호라티우스 형제가 승리에 기뻐하는 쿠리아티우스에게 달려들었다. 두 사람은 다시 많은 상처를 주고받았다. 호라티우스 형제는 쿠리아티우스 형제의 목에 칼을 찔러 죽였다.
운명은 전투에 참가한 선수들의 상태는 물론 구경꾼들의 감정에도 큰 변화를 일으켰다. 로마 병사들은 조금 전의 절망에서 회복했고, 알바 병사들은 기쁨이 날아가는 슬픔을 느꼈다. 하지만 로마의 성공을 방해하는 또 다른 운명의 반전이 로마 병사들의 희망을 가라앉히고, 알바 병사들의 신념을 높여 주었다.
쿠리아티우스 형제 한 명이 쓰러졌을 때 옆에 있던 다른 쿠리아티우스가 호라티우스 형제를 때려 넘어뜨리고 치명적인 상처를 안겼다. 그는 칼을 호라티우스의 등에 깊숙이 쑤셔 넣었다. 호라티우스는 쿠리아티우스의 방패 위로 몸을 던져 허벅지를 베었다.
치명적 상처를 입은 호라티우스는 곧바로 눈을 감았다. 허벅지에 상처를 입은 쿠리아티우스는 서 있기도 힘들 정도였다. 그는 절뚝거렸고 방패에 기대 겨우 일어섰다. 그는 여전히 싸울 의지를 보이며 다른 형제와 함께 하나 남은 호라티우스를 향해 다가갔다. 두 쿠리아티우스는 마지막 호라티우스를 포위했다. 하나는 앞에서, 다른 하나는 뒤에서 칼을 들고 있었다.
부상을 전혀 당하지 않은 마지막 호라티우스는 양측에서 달려드는 적과 싸우면 금세 굴복당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두 쿠리아티우스를 떼어놓고 하나씩 싸워야겠다고 판단했다. 도망가는 척 하면 둘을 쉽게 갈라놓을 수 있을 거라고 봤다. 두 쿠리아티우스 모두 그를 따라올 수는 없고 둘 중 하나만 겨우 추적할 수 있을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둘 중 하나는 크게 다쳐 다리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있었다.
호라티우스는 최대한 빨리 달아났다. 다행히 일은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진행됐다. 치명적 부상을 당하지 않은 쿠리아티우스는 뒤에 바짝 따라왔지만, 다른 하나는 추격할 힘이 없어 뒤에 멀찌감치 처지고 말았다.
이 모습을 본 알바 병사들은 마치 싸움이 끝난 것처럼 승리의 노래를 부르고 서로에게 월계관을 씌워주었다. 그리고 크게 웃으며 쿠라티우스 형제를 격려했다.
“쿠리아티우스 형제! 힘을 내시오!”
로마 병사들은 달아나는 호라티우스를 비난했다. 행운의 여신 포르투나가 그들을 버린 것처럼 한탄했다.
“이 겁쟁이야! 달아나지 말고 싸워! 싸우라고!”
호라티우스는 아주 신중하게 기회를 기다리다가 갑자기 몸을 돌렸다 그는 쿠리아티우스 형제 중 하나가 미처 싸울 자세를 잡기도 전에 칼을 휘둘러 그의 팔을 베고, 팔꿈치를 둘로 갈라버렸다. 쿠리아티우스의 팔이 칼과 함께 땅에 떨어지자 호라티우스는 한 번 더 칼을 휘둘러 그를 저 세상으로 보내버렸다.
호라티우스는 반쯤 죽은 상태로 숨만 헐떡이는 마지막 쿠르티우스 형제에게 달려가 손쉽게 베어버렸다. 그는 사촌들에게서 무기를 전리품으로 챙긴 뒤 바로 로마로 달려갔다. 아버지에게 승리했다는 소식을 가장 먼저 알리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호라티우스도 죽어야 하는 인간인지라 모든 면에서 행운이 따르지는 않았다. 질투를 퍼붓는 신의 비난을 감당해야 했던 것이다. 그것이 운명이었다. 신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청년을 짧은 시간에 영웅으로 만들어 기대하지 않은 저명한 자리에 올리더니, 바로 그날 누이를 죽이는 불행한 상황에 빠뜨려버렸다.
호라티우스가 로마 성문 근처에 갔을 때 여러 신분의 많은 사람이 도시에서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았다. 그 중에는 그를 환영하러 나온 누이도 있었다. 그는 누이를 보자마자 처음에는 화가 났다.
‘결혼할 만큼 성숙한 처녀가 집안일을 어머니에게 완전히 내맡기고 낯선 사람들 틈에 끼어 몰려다녀서는 안 되는 일인데.’
호라티우스는 여러 생각에 빠져있다 마침내 명예롭고 자비로운 생각으로 기울게 됐다.
‘살아온 오라비를 껴안는 첫 가족이 되고 싶은 열망에, 죽은 다른 오라비들의 용감한 행동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은 욕심에 누이가 예의를 무시하고 달려온 거로구나.’
그러나 누이가 아주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앞으로 달려 나온 것은 오라비를 보려는 열망 때문은 아니었다. 아버지가 결혼을 허락했던 사촌 중 한 명에 대한 사랑에 눈이 멀었기 때문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비밀로 간직하고 있던 감정이었다.
호라티우스의 누이는 진지에서 돌아온 사람으로부터 전투의 상세한 내용을 듣고는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집에서 나와 돌아오라고 부르는 유모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미친 듯이 성문으로 달려갔던 것이다.
호라티우스의 누이가 성 밖에 나갔을 때 오라비는 기뻐하면서 승리의 월계관을 쓰고 있었다. 왕이 그에게 선사한 것이었다. 친구들은 죽은 적의 전리품을 나르고 있었다.
그 중에 호라티우스의 누이가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직접 짜서 약혼자에게 결혼 선물로 준 수놓은 옷이 있었다. 라틴인에게는 신랑이 신부를 데리러 갈 때 수놓은 옷을 입고 가는 게 관습이었다. 피로 얼룩진 옷을 본 그녀는 두 손으로 가슴을 쳤다. 그리고 땅에 쓰러져 울면서 사촌 이름을 불렀다. 이 때문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호라티우스의 누이는 약혼자의 죽음을 애도한 뒤 오라비를 노려보며 이렇게 저주를 퍼부었다.
“세상에서 가장 혐오스러운 악마 같으니라고! 사촌을 죽이고 가장 불행한 누이에게서 결혼식을 빼앗은 걸 즐거워하고 있군요. 끔찍한 사람! 왜 살해당한 친척에게 동정심마저 느끼지 못하는 것인가요? 한때 형제라고 부르던 사람이 아니던가요? 마치 고귀한 일을 수행한 것처럼 엄청난 비극을 기념하면서 즐거워 날뛰고 월계관까지 썼군요. 도대체 당신은 어떤 짐승의 심장을 가지고 있나요?”
화가 난 호스틸리우스는 이렇게 대답했다.
“조국을 사랑하고, 외국인이든 같은 나라 사람이든 조국에 해를 끼치려는 자를 처벌하는 게 시민의 심장이지. 그런 자들 중에는 너도 포함되지. 나는 조국의 승리와 네 오라비들의 죽음을 집에 가지고 왔다. 최고의 축복과 최고의 고통이 동시에 우리에게 일어난 걸 알면서도 너는 조국의 행복마저 즐거워하지 않는구나. 네 가족의 비극도 슬퍼하지 않는구나.
사악한 것 같으니라고. 네 오라비들의 비극은 안중에도 없고 네 약혼자의 운명만 슬퍼하는구나. 어둠을 틈타 혼자 어딘가로 떠난 후가 아니라 온 세상이 보는 앞에서 너는 나의 용기와 승리의 월계관을 비난하는구나. 네 오라비를 미워하고 네 조상에게 불명예를 안기는구나. 너를 저주하노라.
너는 오라비들이 아니라 사촌들을 애도하는구나. 너의 몸은 산 자와 함께 있지만 너의 영혼은 죽은 자와 함께 있구나. 그러므로 너를 부르는 자에게 가도록 하라. 아버지와 오라버니의 명예를 더럽히는 일을 여기서 멈추도록 하라.”
호라티우스는 깊숙한 곳에서 올라오는 증오감 때문에 온건한 마음을 유지할 수 없었다. 그를 뒤흔든 분노에 굴복하고 말았다. 그는 누이의 옆구리에 칼을 찔러 살해하고 말았다. 그는 즉시 아버지에게 달려갔다.
당시 로마인의 생각과 태도는 오늘날 사람들의 행동, 삶과 비교하면 정말 단호했고 저열함을 너무 싫어했다. 오늘날 사람들이 보기에는 너무 잔인하고 가혹하며 짐승의 야만성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호스틸리우스의 아버지는 끔찍한 비극을 알게 되자 한탄하기는커녕 이렇게 말했다.
“너는 영광스럽고 당연한 행동을 했을 뿐이다.”
호스틸리우스의 아버지는 딸의 시신을 집에 가져오려 하지 않았다. 조상의 무덤에 매장하려 하지도 않았다. 장례식을 치러주기는커녕 수의도 입히지 않았고, 관습에 따른 의식도 거행하지 않았다. 그녀는 살해된 장소에 내버려져 있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돌과 흙을 가져다 장례식을 받지 못한 다른 시체들처럼 묻어준 덕분에 겨우 무덤을 얻을 수 있었다.
호스틸리우스 아버지의 단호한 사례와 관련해서 다른 이야기를 할 게 더 남아 있다. 그는 영광스럽고 다행스러운 업적에 감사를 드리기 위해 바로 그 날 조상의 신에게 약속한 희생제물을 바쳤다. 그리고 친척을 모아 웅장한 잔치를 베풀었다. 마치 엄청난 축제 같았다. 그는 모인 친척들에게 개인적 비극은 말하지 않고 조국에 안긴 공적 이익만 크게 이야기했다.
호라티우스뿐만 아니라 그의 뒤에 나타나는 다른 탁월한 로마인도 이렇게 했다고 전해진다. 그들은 아들을 바침으로써 조국에 큰 행운을 가져다준 뒤에 희생제물을 바치고 관을 쓰고 승리를 축하했다는 것이다.
로마 병사들은 두 삼형제의 대결이 끝난 뒤 죽은 두 호라티우스를 그들이 쓰러진 장소에 아주 성대하게 묻었다. 그리고 승리를 안겨준 데 감사하는 전통적인 희생제례를 신에게 바쳤다. 그리고 기뻐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반면 알바 병사들은 패배에 슬퍼하면서 푸페티우스를 비난했다. 대다수는 음식도 먹지 않고 몸도 돌보지 않으면서 밤을 지샜다. 다음날 로마 왕은 알바 병사들을 모이라고 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절대로 불명예스럽거나 슬프거나 친척에게 어울리지 않는 명령은 내리지 않을 것입니다. 가장 훌륭하고 두 도시에 가장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편견 없이 행동하겠습니다. 푸페티우스는 똑같은 관직에 계속 머물러 있을 것이며 정부 형태도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툴루스는 연설을 마친 뒤 로마로 돌아갔다. 원로원의 허가를 얻어 개선식을 거행한 뒤 민간과 관련된 행정 업무를 처리했다. 일부 중요한 시민들이 이렇게 주장했다.
“호라티우스를 재판에 회부하십시오. 그는 누이를 죽였습니다. 친척이 피를 흘린 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재판이 열리자 호스틸리우스를 기소한 사람들은 이렇게 목소리를 높였다.
“로마에는 재판 없이 누구도 죽일 수 없게 하는 법이 있습니다. 오염된 사람을 처벌하지 않는 바람에 신의 분노를 사 도시를 망친 사례는 한두 번이 아닙니다.”
호라티우스의 아버지는 아들을 옹호했고 딸을 비난했다.
“아들의 행동은 처벌이었으며 살인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아버지로서 가족의 불행을 정당하게 판결했습니다.”
양측이 이런 주장을 늘어놓자 왕은 어떤 결정을 내려야할지 곤혹스러워졌다. 재판 이전에 누이를 죽였다고 자백한 사람을 무죄방면하는 것은 올바른 일 같지 않았다. 이렇게 하면 범죄자의 저주와 오염이 그의 집으로 넘어올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목숨을 걸고 싸워 조국에 엄청난 힘을 가져다준 사람을 살인자로 처벌하는 것도 올바른 일 같지 않았다. 게다가 아버지가 그의 잘못을 용서한 상황이었다. 자연과 법은 다른 누구보다 아버지에게 딸과 관련해 복수를 할 권리를 부여하고 있었다.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랐던 툴루스는 마침내 민회에 결정권을 넘기기로 했다. 로마인은 사형 선고와 관련한 일에 처음 재판관이 됐다. 이들은 아버지의 편을 들었고 호라티우스에게서 살인 혐의를 벗겨주었다.
툴루스는 호라티우스에게 내려진 판결이 신에게 적당한 경배를 바치기를 원하는 사람을 만족시키기에는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폰티피케스에게 이렇게 명령했다.
“신과 다른 정령들을 달래는 의식을 거행하고, 비자발적인 가족 살해를 속죄하기 위해 정화의식을 치르시오.”
폰티피케스는 제단 두 개를 세웠다. 하나는 누이를 돌보는 유노 신에게 바쳤고, 다른 하나는 라틴어로 야누스라고 부르는 로마의 하급신에게 봉헌했다. 야누스에게는 쿠리아티우스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호라티우스가 살해한 알바 삼형제의 성이었다.
폰티피케스는 제단에서 희생제례를 거행한 뒤 호라티우스를 멍에 아래로 지나가게 했다. 적이 무기를 내려놓고 항복할 때 로마인은 나무 작대기 두 개를 땅에 나란히 세우고, 다른 하나를 위에 가로질러 세운 뒤 포로들이 그 아래를 지나가게 하는 관습이 있었다. 포로들이 이곳을 지나가면 자유를 허용해 고향으로 돌아가게 했다.
로마인은 이것을 이우굼이라고 불렀다. 이우굼은 호라티우스를 정화한 사람이 사용한 전통적 속죄 의식의 마지막 단계였다. 로마인은 지금도 속죄의식을 거행한 장소를 신성하다고 생각한다. 이곳은 카리나이 거리에서 내려와 쿠프리우스 거리로 가는 쪽에 있다.
그때 세워진 두 제단은 아직도 남아 있다. 두 제단 사이에는 기둥이 하나 걸려 있다. 서로 마주보는 두 벽에 고정돼 있다. 이 거리에서 나가는 사람들은 이 기둥 아래를 지나간다. 로마인은 이 기둥을 소로리움 티길룸(누이의 기둥)이라고 부른다. 이 장소는 호라티우스의 불행을 상징하는 기념물로 여전히 보존돼 있다. 로마인은 해마다 이곳에서 희생제례를 거행한다.
호라티우스가 전투에서 보여준 용감한 행동의 다른 기념물은 포로 로마노에 있는 두 회랑인 바실리카 율리아, 바실리카 아이밀리아 중 한곳의 출입구에 서 있는 작은 기둥이다. 원래 기둥 위에는 알바 삼형제의 전리품인 무기가 달려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무기는 사라졌다. 하지만 기둥은 여전히 필라 호라티아(호라티우스의 기둥)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로마인에는 이 일의 결과로 만들어져 지금까지 지켜지고 있는 법이 있다. 삼형제에게 불멸의 명예와 영광을 부여하는 법이다. 삼형제를 낳은 부모는 삼형제가 자랄 때까지 나라에서 양육비를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놀랍고도 예기치 않은 운명의 반전을 보여준 호라티우스 가문과 관련된 이야기는 여기서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