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의 비겁한 배신
툴루스는 1년 동안 전쟁 준비를 충분히 한 뒤 군대를 이끌고 피데나이로 쳐들어갔다. 그가 내세운 전쟁의 명분은 이러했다.
“피데나이 사람들이 로마와 알바에 대해 저질렀던 음모를 해명하라고 요구받았음에도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무장한 뒤 성문을 굳게 닫고 베이이 동맹군을 불러들이고는 공개적으로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로마 사절단이 반란의 이유를 물으려고 피데나이에 갔을 때 그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가 우정을 맹세한 로마의 왕인 로물루스가 죽었기 때문에 로마인과는 더 이상 같이 할 일이 없소.”
툴루스는 로마군을 무장시켰을 뿐만 아니라 동맹군도 불러들었다. 그 중에서 병력이 가장 많고 여러 모로 가장 뛰어난 군대는 메티우스 푸페티우스가 알바에서 데려온 군대였다. 그들은 다른 동맹군을 압도할 만큼 훌륭한 장비를 갖추고 있었다.
툴루스는 푸페티우스에 대해 전쟁에 참가하고 싶은 열정과 최고의 동기 때문에 행동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모든 계획을 그와 의논했다.
하지만 푸페티우스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따. 그는 알바인에게서 전쟁을 망쳤다고 질책을 받았다. 게다가 툴루스의 지시에 따라 3년 연속 알바의 최고 통치권을 계속 행사하게 됐는데, 이 때문에 반역 혐의로 고소당한 상태였다. 그는 툴루스의 지시에 굴복해야 하는 지휘권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겠다며 다른 계획을 꾸미기로 했다.
푸페티우스는 반란의 의지가 흔들리고 있는 로마의 여러 적에게 사절을 보내 이렇게 말했다.
“이번 전투에서 로마군을 공격하는 일에 내가 가장 먼저 앞설 것이니 주저하지 마시오.”
푸페티우스는 이러한 계획을 다른 알바인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툴루스는 로마군과 동맹군을 완벽하게 정비한 뒤 적을 향해 진군했다. 그는 아니오 강을 건너 피데나이 근처에 진지를 차렸다. 피데나이에도 다른 동맹 도시에서 상당한 군대가 모인 것을 파악한 툴루스는 그날 밤을 조용히 보냈다.
툴루스는 다음날 푸페티우스와 측근 장수들을 모은 뒤 전쟁을 수행할 방법을 논의했다. 모든 참석자가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즉각 전투를 벌이자는 안을 선택했다. 툴루스는 그들에게 여러 지점을 할당하고 군 통제권을 나눠준 뒤 다음날 전투를 벌이기로 결정했다.
푸페티우스는 반역 사실을 여전히 측근에게조차 비밀로 숨기고 있었다. 그는 알바 병사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백인대장과 대대장을 불러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대장, 그리고 백인대장 여러분. 나는 지금까지 숨겨온 중요하고 예기치 않은 일을 밝히려 합니다. 만약 나를 망칠 생각이 아니라면 비밀로 지켜주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일을 실천하는 게 득이 된다고 생각한다면 일을 진행할 때 나를 도와주기를 부탁드립니다. 현재 상황은 많은 말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장 필요한 말만 하도록 하겠습니다.
로마에 굴복한 이후 지금까지 나는 부끄러움 속에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나는 툴루스가 부여한 최고 통치권을 3년 연속 보유하고 있습니다. 아마 평생 보유할지도 모릅니다.
모두가 불행한 시대에 혼자만 행복한 사람이 된다는 건 최고의 악입니다. 나는 어떻게 하면 위험을 겪지 않고 통치권을 회복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 왔습니다.
많은 계획을 검토했지요. 지금 성공을 보장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그리고 동시에 가장 쉽고 가장 덜 위험한 방법이 내 손에 있습니다. 이웃나라들이 로마에 맞서 전쟁을 시작하기만 한다면 말입니다.
전쟁을 시작하면 그들은 지원군을 필요로 할 것입니다. 우리 같은 군대이지요. 여러분에게 ‘로마인의 통치권을 위해서보다는 우리의 자유를 회복하기 위해서 싸우는 것이 더 영광스럽고 더 적합한 일이다’라는 확신을 심어주는 데에는 많은 논쟁이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비밀리에 로마의 식민지 도시들에게 로마에 맞서 전쟁을 벌이라고 부추겼습니다. 베이이와 피데나이에게 ‘전쟁이 일어나면 도와줄 테니 무기를 들라’고 격려했습니다. 이런 계획을 꾸미면서 지금까지 로마군의 눈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 덕분에 공격에 적절한 순간을 고를 수 있었습니다.
나는 위험을 배가시킬 수 있는 반란을 드러내놓고 추진하지 않았습니다. 서두르거나 준비가 덜 됐거나, 우리의 힘만 믿는다면 모든 일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미리 준비하면서 지원군을 모은다면 미리 알고 대처하는 로마에게 사전에 차단당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여러 어려움 중 어느 것에도 부닥치지 않을 것입니다. 대신 모든 일의 장점만을 즐기게 될 것입니다. 거대하고 압도적인 적을 무력으로 부수려고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대신 힘으로 누르기 쉽지 않은 적을 정복할 때 사용하는 속임수와 기만술을 사용할 것입니다.
알바의 힘은 로마와 동맹국의 군사력에 맞설 만큼 충분히 강력하지 않습니다. 나는 대신 피데나이와 베이이의 군사력을 합쳐놓았습니다. 그 엄청난 병력을 당신들은 이미 보았을 것입니다. 나는 다음과 같은 예방책도 마련했습니다.
피데나이가 싸우는 곳은 우리의 영토가 아닙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땅을 지키면서 동시에 우리 땅을 보호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장 축복받은 것으로 여겨지고, 과거에 극소수에게만 내려졌던 이득을 얻게 될 것입니다. 동맹으로부터 이익을 챙기면서 거꾸로 우리가 그들에게 이익을 주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입니다.
만약 이 모험이 우리 희망대로 진행된다면, 물론 충분히 그렇게 되리라고 예상하지만, 피데나이와 베이이는 우리를 비참한 속국 상태에서 구해주면서 오히려 우리에게 감사하게 될 겁니다. 마치 우리로부터 큰 호의를 받은 것처럼 말입니다.
일을 준비하면서 오랫동안 많은 생각을 한 끝에 여러분에게 용기와 반란의 열망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일을 추진하기 위해 내가 계획하고 있는 방법을 들어보시오.
툴루스는 나에게 언덕 아래에 자리를 잡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우익의 지휘권을 넘겨주었습니다. 우리가 적군과 맞설 때 나는 대오를 깨뜨리고 전 병력을 언덕으로 데리고 올라갈 겁니다. 여러분은 병사들을 질서정연하게 이끌고 나를 따라오면 됩니다. 내가 언덕 정상을 차지하고 안전한 곳에 자리를 잡으면 내가 어떤 방식으로 상황을 통제할 것인지를 알려주겠습니다.
내 계획이 당초 생각대로 진행된다면, 피데나이가 우리의 지원을 믿고 굳은 신념으로 용기를 낸다면, 그리고 로마 병사들이 우리에게 배신당했다는 생각에 절망해서 공포를 느낀다면 그들은 싸우기보다는 달아날 것입니다.
그때 나는 용기로 가득 차고 질서정연한 병사들을 데리고 언덕에서 내려가 두려움에 가득 차 달아나는 자들을 공격할 것입니다. 들판을 그들의 시체로 가득 메울 것입니다. 전쟁에서 끔찍한 상황은 갑작스러운 느낌이지요. 동맹으로부터 배신당했다거나 새로 나타난 적에게 공격당한다는 느낌이입니다.
우리는 과거에 많은 군대가 아무런 근거 없는 감정에 불과한 공포 때문에 엄청나게 대패한 사례를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경우 이것은 엉터리 보고도, 보이지 않는 공포도 아닙니다. 지금까지 봤고 경험했던 어떤 것보다 더 무서운 실제의 일이 될 것입니다.
만약 내 계산과 다른 일이 벌어진다면, 나는 방금 제안했던 것과 반대되는 행동을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몰려든 적을 포위할 의도로 고지를 점령한 것처럼 꾸며 로마군과 협력해 싸워 승리를 나눌 것입니다. 내 주장은 그럴 듯하게 보일 것입니다. 행동과 설명이 일치하기 때문이지요. 어떤 위험도 부담할 필요 없이 우리는 행운만 거둘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알바인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라틴인에게도 가장 이로운 것이기 때문에 나는 이 방법을 택하기로 결심했고, 신의 도움을 받아 실천할 것이입니다. 비밀을 지키고, 훌륭한 질서를 유지하고, 내가 지시를 내릴 때 즉각 복종하고, 열정적으로 싸우고, 병사들에게 똑같은 열정을 불어넣어주는 게 여러분이 할 일입니다.
우리는 복종하는 데 익숙해 있고 조상으로부터 정부 형태를 물려받은 다른 민족과 똑같은 조건으로 자유를 다투는 게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십시오. 우리는 자유인으로부터 대를 이어 내려온 자유인입니다. 조상은 이웃 도시를 지배하는 전통을 500년 동안 지켜온 삶의 방식으로 우리에게 물려주었습니다. 우리 후손에게서 이 전통을 빼앗지 맙시다.
조약을 깨뜨리고 맹세를 어긴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맙시다. 거꾸로 로마가 어긴 조약을 원래 형태로 되돌린다고 생각합시다. 이 조약은 매우 중요한 것이며, 인간의 본성이 만들었고, 그리스는 물론 야만인의 보편적 법이 인정한 것이지요. 아버지는 아들을 다스리며 지시를 내리고, 어머니 도시는 식민지를 다스리고 지시를 내린다는 것입니다.
이 조약은 인간의 본성과 분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처음 만든 조약이 언제나 효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조약을 어기는 게 아닙니다. 우리 후손이 노예가 되게 만든 걸 지금에라도 뉘우친다면 신이나 정령 중 어느 누구도 우리를 보고 불경한 행동을 했다며 분노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늘의 뜻을 넘어 인간의 법을 세운다며 불경한 행동을 저지른 자가 조약을 위반한 것입니다. 신의 분노는 우리가 아니라 그들을 향하고 있으며, 인간의 분노가 우리보다는 그들에게 떨어질 거라고 기대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 계획을 가장 이익이 되는 것이라고 믿는다면 신과 정령에게 도와달라고 기도한 뒤 바로 실천합시다. 여러분 중 누구라도 반대하거나 우리 도시가 옛 위엄을 되찾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면, 아니면 좀 더 좋은 기회를 기다려야 한다거나 운이 지금 거사를 막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주저하지 말고 생각을 말씀해 주십시오. 어떤 계획을 채택하더라도 만장일치로 추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회의에 참가한 사람들은 그의 제안을 승인했고 지시를 따르겠다고 약속했다. 푸페티우스는 참가자 모두에게 맹세를 시킨 뒤 회의를 마쳤다. 다음날 피데나이와 동맹군 병사들은 해가 뜰 무렵 진지에서 나와 진군했고, 질서 있게 전투를 기다렸다. 반대편에서는 로마군이 나와 위치를 잡았다.
툴루스와 로마군은 왼쪽에서 대열을 형성했다. 베이이군의 반대쪽이었다. 푸페티우스와 알바군은 로마군 오른쪽에 자리를 잡았다. 언덕 측면이었고 피데나이군 건너편이었다. 양측 군대가 서로 접근해서 투창 거리에 접어들기 직전에 알바군은 위치에서 이탈해 질서정연하게 언덕으로 올라갔다.
알바군이 로마군을 배신할 것이라는 약속이 실현되는 것을 눈앞에서 목격한 피데나이는 엄청난 자신감을 갖고 로마군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로마군의 우익은 동맹군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붕괴됐고, 심각하게 부담을 받고 있었다. 툴루스가 기병대 정예병을 몰고 싸우는 좌익에서는 전투가 용감하게 진행됐다. 한 기병이 툴루스의 지휘를 받아 싸우던 병사들 쪽으로 달려와 이렇게 말했다.
“우익이 밀리고 있습니다. 알바군은 위치에서 이탈했습니다. 서둘러 언덕으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그들 맞은편에 자리 잡고 있던 피데나이군은 비어 있는 측면으로 진군해서 우리를 포위할 작정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로마군은 알바군이 올라가는 언덕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적군에게 포위당할지도 모르며, 달아나야 할지 제 자리를 지켜야할지 모르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툴루스는 이렇게 엄청나고 예기치 않았던 불운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파멸의 위기에 몰린 로마군을 살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적의 모든 계획을 무산시키고 허사로 돌릴 계획을 생각해냈다. 그는 기병이 전해준 이야기를 듣자마자 적군조차 들을 수 있을 정도의 큰소리로 외쳤다.
“로마 병사들이여! 우리는 이미 적에게 승리를 거두고 있다. 알바군은 내 지시에 따라 언덕을 점령했다. 적의 뒤로 돌아가서 배후를 치기 위해서다. 우리는 원하는 장소에 최고의 우군을 배치했다. 일부는 앞에서, 나머지는 뒤에서 공격할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라. 적은 전진할 수도, 후퇴할 수도 없어 갇히게 될 것이다. 양쪽에는 강과 언덕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우리에게 엄청난 속죄를 하게 될 것이다. 전진하라. 너희들이 저들을 얼마나 경멸하는지를 보여주도록 하라.”
툴루스는 말을 타고 곳곳을 다니며 이 말을 되풀이했다. 피데나이 병사들은 알바의 배신을 두려워하게 됐다. 알바군이 책략으로 그들을 속였다고 의심하게 된 것이다. 푸페티우스가 약속대로 전투대형을 바꿔 다른 쪽으로 가서 로마군을 곧바로 공격하기로 한 걸 몰랐기 때문이었다. 로마군은 툴루스의 말에 용기를 얻어 자신감을 되찾았다. 이들은 함성을 지르면서 한 덩어리로 적에게 달려들었다. 피데나이군은 무질서하게 도시로 달아났다.
툴루스는 겁에 질려 혼란에 빠진 피데나이군에게 기병을 보내 일정한 거리를 두고 밀어붙였다. 피데나이 병사들이 분산되고 서로 흩어져 다시 뭉칠 생각도 못하게 된 걸 파악한 툴루스는 그제야 추격을 중단했다.
툴루스는 대오를 유지하면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다른 적을 향해 달려갔다. 그곳에서는 보병끼리 눈부신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이어 기병끼리 더 훌륭한 전투가 이어졌다. 이 지점에서 버티고 있던 베이이군은 로마 기병의 공격에도 놀라 달아나지 않고 상당한 시간 동안 전투를 이어갔다.
하지만 베이이군은 우익이 패배했고, 피데나이군과 다른 동맹군이 서둘러 달아난 것을 알게 됐다. 그들은 추격전에서 돌아온 로마군에게 포위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대오를 이탈해 달아나기 시작했다. 일부는 목숨을 건지기 위해 강을 건너기도 했다.
달아나던 베이이 병사 중에서 가장 힘이 센 자들,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다치지 않은 자들, 헤엄칠 능력을 가진 자들은 무기를 버리고 강을 건너 달아났다. 이런 처지가 아니었던 다른 병사들은 모두 강물에 떠내려갔다. 피데나이 근처의 테베레 강 물살은 매우 빨랐고 굽은 곳이 많았다.
툴루스는 강으로 달려가는 적을 베기 위해 기병에게 출동하라고 지시했다. 그는 나머지 병사들을 이끌고 베이이 진지로 쳐들어가 순식간에 진지를 점령했다. 이렇게 해서 로마군은 파멸의 위기에서 살아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