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에서 배로 20일 정도 달리면 칼레단이라는 섬이 나옵니다. 이 섬은 여러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각 구역마다 부유한 도시들이 있습니다. 이 도시들을 다스리는 왕국도 있습니다. 먼 옛날에는 샤자만 왕이 이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그는 아주 선량한 왕이었습니다. 세상에서 평화를 가장 사랑하고 운이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왕에게도 걱정이 있었습니다. 여러 아내 중에서 누구도 왕국의 후계자를 낳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왕의 스트레스는 정말 컸습니다. 그는 현명한 자문 역할을 충실히 해온 총리대신에게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전하, 이 문제는 인간의 힘을 넘어서는 일입니다. 오직 알라께서 전하의 소원을 들어주실 수 있습니다. 신을 모시는 일에 인생을 바친 신성한 사람들에게 많은 공물을 보내십시오. 그리고 전하의 소원을 알라께 빌어달라고 부탁하십시오. 그들의 청원이 받아들여질지 누가 알겠습니까?”
왕은 총리대신의 조언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많은 공물을 각 모스크에 보냈습니다. 그 덕분에 1년 뒤 왕좌를 이어받을 아들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샤자만은 모든 모스크와 종교 시설에 감사의 공물을 다시 보냈습니다. 왕자의 탄생을 축하하는 목소리가 섬에 울려 퍼졌습니다. 왕자는 정말 아름다운 외모를 갖고 있어서 샤자만은 ‘세상의 달’이라는 뜻인 카마랄자만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카마랄자만은 빼어난 시종과 현명한 교사들로부터 최고의 보호와 교육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그가 자라 성인이 되자 궁 안팎의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에 왕자님보다 더 매력적이고 현명한 청년은 없을 거야.”
왕은 아들을 정말 사랑한 나머지 왕 자리를 일찌감치 물려줄 생각까지 했습니다. 그는 평소처럼 총리대신과 이 문제를 논의했습니다. 총리대신은 반대의 뜻을 나타냈습니다.
“전하, 왕자님은 나라를 다스리기에는 아직 젊습니다. 전하께서는 그가 게을러지거나 무관심해질 걸 두려워하시는군요. 전하의 생각이 옳습니다. 하지만 먼저 왕자님을 결혼시키는 건 어떻습니까? 그러면 왕자님을 집에 붙들어 맬 수 있고, 국정 일부를 맡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왕자님은 조금씩 나라를 다스리는 법을 배울 것이고, 전하께서는 언제라도 왕관을 포기하실 수 있게 될 겁니다.”
왕은 이번에도 총리대신의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왕자를 데려오라고 했습니다. 왕자는 지체하지 않고 아버지에게 달려가 눈을 아래로 깔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너를 부른 건 다른 이유가 아니다. 결혼하는 게 어떤지 물어보기 위해서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왕자는 아버지의 말에 너무 놀라 한동안 입을 열지 못했습니다.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말을 꺼낼 수 있었습니다.
“전하, 죄송한 말씀이지만 저는 아직 결혼할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직 어려서 결혼하라는 말씀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현재로서는 그렇게 하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늘 이러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전하께서 원하시는 대로 가려면 시간이 조금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왕은 매우 실망했습니다. 그렇다고 극단적 대책에 매달리지는 않았습니다.
“강요할 생각은 없다. 시간을 주도록 하마. 하지만 기억하도록 해라. 이런 과정은 꼭 필요한 것이다. 너는 왕자다. 언젠가는 나라를 다스려야만 한다.”
이때부터 카마랄자만 왕자는 국정위원회에 참여했습니다. 왕은 얼마나 그를 아끼는지 항상 보여주었습니다. 연말 무렵 왕은 다시 왕자를 불렀습니다.
“아들아, 마음을 바꾸었느냐? 아니면 아직도 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생각이냐?”
왕자는 이전보다는 덜 놀랐습니다. 하지만 이전보다 태도가 누그러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아버지에게 너무 재촉하지 말라고 부탁했습니다. 밀어붙인다고 되는 게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왕은 다시 실망했습니다. 그는 총리대신을 다시 불렀습니다.
“총리대신의 조언대로 했다오. 그런데 아들은 결혼하지 않겠다고 버티는군. 이전보다 더 완강해졌어.”
“전하, 인내보다 더 효과가 큰 방법은 없습니다. 게다가 전하는 폭력을 싫어하지 않으십니까? 1년만 더 기다리십시오. 그 이후 국정위원회에서 왕자에게 나라가 잘 되려면 결혼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십시오. 나라의 저명한 대신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거절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왕은 아들이 결혼하는 모습을 당장 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총리대신의 조언을 받아들여 더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그는 대신 왕자의 어머니인 왕후 파티마를 불렀습니다. 그는 왕자의 결혼 거절 때문에 얼마나 실망했는지를 이야기했습니다.
“왕자는 나보다는 당신을 더 믿고 있는 걸 알고 있소. 제발 그 아이에게 진지하게 이야기해주시오, 그리고 나를 실망시키지 말라고 전해주시오. 계속 고집을 피우면 내가 특단의 대책을 꺼낼 수밖에 없다는 걸 알려주시오.”
파티마 왕후는 아들을 불러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아버지의 결혼 제안을 거절했다는 이야기, 그 때문에 아버지가 매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왜 그렇게 결혼을 안 하려는 건지 묻기도 했다. 왕자는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어머니, 세상에는 선량하고 도덕적이고 아름답고 친절한 여인이 많답니다. 마찬가지로 정반대인 여인도 적지 않지요. 모든 여인이 어머니 같지는 않아요. 저를 괴롭히는 건 여인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결혼해야 한다는 거예요.
아버지는 이웃나라 왕의 딸과 결혼하라고 하시겠지요? 그렇게 해서 서로 동맹을 다지려고 하실 거예요. 공주가 아름답든 추악하든, 현명하든 멍청하든, 선량하든 사악하든 결혼해야겠지요? 저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까요. 그녀가 거만하지 않은지, 욕정에 사로잡히지 않았는지, 남을 경멸하지는 않는지, 지나치게 낭비하지는 않은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그녀의 성격이 저와 맞는지 아닌지를 어떻게 아나요?”
“아들아! 오랫동안 우아하게 나라를 다스려온 왕족의 마지막 왕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단다.”
“어머니! 아버지보다 오래 살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하지만 조상들의 업적에 어울린다는 말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나라를 다스리고 싶답니다.”
파티마의 설득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왕자의 생각에 아무런 변화도 없이 다시 한 해가 지나갔습니다. 마침내 왕은 국정위원회에 왕자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왕자의 결혼은 왕의 소원일 뿐만 아니라 왕국의 행복을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당장 대신들 앞에서 대답하라고 강요했습니다. 카마랄자만은 분명하게 거부 의사를 밝혔습니다. 왕은 대신들 앞에서 왕자로부터 퇴짜를 맞아 분노하게 됐습니다.
“당장 저 놈을 탑에 가두어라.”
탑에는 작은 책장과 책 여러 권과 시중을 들 노예 하나뿐이었습니다. 그래도 왕자는 자유롭게 책을 읽을 수 있어 기뻤습니다. 그는 탑에 갇힌 것에는 무관심했습니다.
밤이 됐습니다. 왕자는 몸을 씻고 알라 신에게 기도를 올렸습니다. 코란 여러 쪽을 읽기도 했습니다. 그는 침대에 누워 등을 끄지도 않고 잠들었습니다.
왕자가 갇힌 탑에는 깊은 우물이 있었습니다. 요정 마이모네가 사는 곳이었습니다. 자정 무렵 마이모네는 우물에서 위로 올라왔습니다. 평소 하던 대로 바깥세상을 둘러보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왕자 방에서 새어나온 불빛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마이모네는 문 밖에서 잠든 노예를 피해 몰래 방에 들어갔습니다. 그곳에 왕자가 잠들어 있었습니다. 왕자의 얼굴은 이불로 절반 정도 가려져 있었습니다. 마이모네는 이불을 살짝 들어 올려 왕자의 얼굴을 봤습니다. 지금까지 본 누구보다 아름다운 청년이었습니다.
‘이 청년이 눈을 뜨면 얼마나 더 아름다울까! 도대체 무슨 일을 했기에 여기 갇힌 걸까?’
마이모네는 왕자의 얼굴에서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부드럽게 왕자의 이마와 양 뺨에 입을 맞췄습니다. 그리고 하늘로 날아갔습니다. 이때 시끄러운 날개 소리가 들렸습니다. 잠시 후 사악한 정령 하나가 날아오고 있었습니다. 다나쉬라는 악령이었습니다. 그는 마이모네를 보고 두려워했습니다. 그녀의 선한 기운이 그의 악한 기운을 뒤덮어버릴 정도로 강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이모네를 피해 달아나려고 했지만 너무 가까워 그럴 수 없었습니다. 그는 아주 유화적인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이모네. 알라께 맹세코 당신을 해치지 않을 거예요. 당신도 나를 해치지 않는다고 약속해주시길 바라요.”
“사악한 정령아! 어떻게 네가 나를 해칠 수 있단 말이냐? 하지만 약속하지. 절대 너를 해치지 않겠다고. 대신 오늘밤 본 걸 내게 이야기해다오.”
“그럴게요. 세상에서 가장 크고 힘센 나라인 중국에서 들은 이야기를 해드릴게요. 중국 왕에게는 딸만 하나뿐이랍니다. 이름은 바두라예요. 완벽하게 사랑스러워서 당신이나 나나, 아니면 어떤 존재도 그녀의 완벽한 매력을 묘사할 말을 찾을 수가 없을 정도이지요.
왕은 저속한 시선으로부터 딸을 보호하기 위해 무척이나 신경을 썼답니다. 언젠가 남편감으로 골라줄 행복한 남자 말고는 어느 누구도 그녀를 볼 수 없게 많은 예방책을 세웠지요.
왕은 딸에게 다양한 즐거움을 주기 위해 이전에 누구도 본 적이 없는 궁전 일곱 개를 지었답니다. 첫 번째 궁전은 크리스탈로, 두 번째 궁전은 구리로, 세 번째 궁전은 강철로, 네 번째 궁전은 보석과 구리로, 다섯 번째 궁전은 시금석으로, 여섯 번째 궁전은 은으로, 일곱 번째 궁전은 순금으로 만들었어요.
모든 궁전은 화려한 가구로 장식했지요. 각 궁전의 정원은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게 꾸몄대요. 왕은 공주에게 어울리는 휴식처를 만드는 데 비용이나 노고를 아끼지 않았어요.
공주의 미모 이야기는 멀리 퍼져 나갔어요. 여러 나라 왕이 사신을 보내 공주와 결혼하게 해달라고 요청했지요. 왕은 사신들을 아주 우아하게 맞았지만 공주에게 강요하지는 않았어요. 공주는 늘 제안을 거부했기 때문에 모든 사신은 융숭한 대접만 받고 아무런 결과도 얻지 못한 채 돌아가야 했답니다. 공주는 왕에게 이렇게 말했지요.
‘전하, 저를 기쁘게 하려고 결혼하라고 말씀하시는 걸 잘 안답니다. 정말 감사해요. 하지만 현재 상태를 바꿀 생각은 아직 없어요. 정말 아름답고 즐거운 환경에서 이렇게 행복하게 살고 있으니까요. 어떤 남편을 만나도 여기 있는 것만큼 행복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전하. 강요하지 않으시면 좋겠습니다.’
어느 날 아주 강대한 나라의 왕이 보낸 사신이 도착했어요. 중국 왕은 딸에게 그 왕의 구애를 설명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왕은 딸에게 부탁했지요.
‘강한 나라와 동맹을 맺는 게 매우 중요하단다. 네가 결혼에 동의해주면 고맙겠구나.’
왕은 공주를 끈덕지게 졸랐지요. 그래서 공주는 화가 날 정도였답니다. 그래서 왕인 아버지에게 늘 공손한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사실마저 잊어버렸어요.
‘전하, 더 이상 결혼 이야기는 하지 마세요. 차라리 가슴에 단검을 찔러 버리겠어요. 그러면 그런 더러움에서 벗어날 수 있겠지요.’
중국 왕은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대요.
‘네가 이성을 잃었구나. 그렇다면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아야지.’
왕은 딸을 궁전의 방에 가뒀답니다. 그리고 궁녀 열 명이 공주를 모시게 했지요. 어릴 때부터 돌봐준 유모가 궁녀들을 이끌었어요. 왕은 공주와 결혼하겠다고 요청한 모든 왕에게 편지를 보냈어요.
‘공주가 미쳤으니 더 이상 결혼을 기대하지 마시오.’
그리고 곳곳에 전령관을 보내 이렇게 선언했지요.
‘공주를 치료해주는 사람은 누구든지 공주와 결혼하게 해주겠다.’
제가 이야기한 건 지금 상황이에요. 저는 단 하루도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러 가지 않은 적이 없어요. 저를 따라가서 그녀의 얼굴을 보면 이런 수고를 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걸 알 거랍니다.”
마이모네는 깔깔 웃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습니다. 그리고 한참 웃은 뒤에 입을 열었습니다.
“이런! 나를 놀리는 거로군. 알지도 못하는 소녀에 대해 열변을 토하기보다는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줄 걸로 기대했더니 실망이군. 내가 방금 본 왕자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이야기를 해주면 네가 뭐라고 말할까? 아마 정신을 잃어버릴 거야.”
“아름다운 마이모네! 당신이 어떤 왕자 이야기를 하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공주 이야기와 똑같아. 왕은 아들을 강제로 결혼시키려 했지. 왕자는 거부했고. 그래서 탑에 갇힌 거야. 내가 방금 보고 왔지.”
“숙녀의 말을 반박하려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어떤 인간이 내가 본 공주만큼 아름다울 수 있는지 제가 확인해보기 전까지는 못 믿겠군요.”
“말조심해. 그건 불가능해.”
“고집을 피우려는 건 아니지만, 내 말이 사실인지 알아보려면 당신이 직접 공주를 보는 길뿐이에요.”
“그럴 필요는 없어. 우리는 서로 다른 방법으로 만족하고 있으니까. 공주를 여기 데려와서 왕자 옆에 내려놓도록 해. 그러면 금세 둘을 비교해볼 수 있잖아. 그리고 누구 말이 옳은지 결정하는 거야.”
다나쉬는 흔쾌히 동의했습니다. 그는 왕자가 갇힌 탑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마이모네와 비교 결과에 대해 내기를 한 뒤 공주를 데리고 중국으로 날아갔습니다. 그는 순식간에 잠든 공주를 들고 돌아왔습니다. 마이모네는 그를 왕자 방으로 안내했습니다. 공주와 왕자는 나란히 눕혀졌습니다. 마이모네와 다나쉬 사이에 누가 더 아름다운지를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자 보세요. 공주가 왕자보다 훨씬 아름답지 않나요? 더 이상 의심할 게 없잖아요?”
“무슨 소리야? 왕자가 공주를 능가하는 걸 제대로 보지도 못하는 거야? 공주가 아름답다는 건 인정해. 하지만 보라고. 내 말이 맞잖아!”
“더 이상 볼 필요도 없어요. 저의 첫 인상은 똑같아요. 물론 당신이 계속 고집을 피우면 제가 양보할 수밖에 없지만.”
“너 같은 악령에게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아. 심판에게 물어봐야겠어. 너도 심판의 판정에 승복하리라 생각해.”
다나쉬는 이번에도 기꺼이 동의했습니다. 마이모네는 발로 마루를 굴렀습니다. 바로 마루가 열리더니 아주 흉물스럽고 등에 혹이 달렸고 다리를 절고 눈을 찡그린 정령이 나타났습니다. 머리에는 뿔이 여섯 개 달려 있었고 손은 새의 발톱 같았습니다. 그는 마이모네를 보자마자 그녀의 발 앞에 엎드렸습니다.
“일어나라! 카쉬카쉬. 심판이 되라고 너를 불렀어. 저 침대를 잘 보도록 해. 저 청년과 소녀 중에서 누가 더 아름다운지를 편파적이지 않게 판정해봐.”
카쉬카쉬는 공주와 왕자를 보았습니다. 그의 눈에 놀라움과 경탄의 표정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는 한참이나 두 사람을 쳐다보았습니다. 도무지 결론을 내릴 수 없었습니다.
“마이모네. 솔직히 이야기할게요. 누가 더 아름다운지 판단할 수 없어요.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한 가지 방법뿐이에요. 두 사람을 깨워서 서로 보게 하세요. 그래서 누가 상대방에게 더 감탄하는지를 보면 될 거예요.”
마이모네와 다나쉬는 카쉬카쉬의 조언을 받아들였습니다. 마이모네는 금세 각다귀로 변해 카마랄자만 왕자의 목을 깨물었습니다. 깜짝 놀란 왕자는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그는 옆에 누워있는 중국 공주를 발견했습니다. 공주를 보자마자 그의 가슴에서는 지금까지는 낯설었던 감정이 생겨났습니다. 그는 기쁨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아! 정말 사랑스러운 소녀로구나. 얼마나 매력적이냐!”
왕자는 공주의 이마에 입을 맞췄습니다. 그리고 눈과 입에도 차례로 입을 맞췄습니다. 만약 다나쉬가 공주를 계속 잠자게 하지 않았다면 벌써 깨어났을 정도였습니다. 왕자는 공주를 보고 말했습니다.
“아름다운 숙녀여! 나의 사랑을 표시했는데도 당신은 왜 일어나지 않는 거죠? 당신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내가 당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건 아니라오.”
왕자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아버지가 내게 데려다준 신붓감일 거야. 결혼을 싫어하는 내가 이 소녀의 매력도 견딜 수 있는지를 보려고 이 방에 보내신 거야. 어쨌든 나는 소녀를 기억하는 증표로 이 반지를 가져야겠어.’
왕자는 공주가 끼고 있는 반지를 뽑아 그의 손가락에 끼웠습니다. 그의 반지는 공주 손가락에 끼워 주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누워 잠들었습니다.
이번에는 다나쉬가 각다귀로 변해 공주를 물었습니다. 공주는 천천히 일어났습니다. 옆에 낯선 청년이 누워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잠시 후 그녀의 놀라움은 감탄으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청년이 정말 아름답고 매혹적인 걸 보고는 그녀의 얼굴에 기쁨이 퍼졌습니다.
“아버지가 내게 결혼하라고 한 게 이 사람이었던가? 왜 진작 알지 못했을까? 이 사람을 화나게 만들지 않았어야 할 텐데. 아! 일어나세요. 제발 일어나세요. 저의 마음이 항상 당신을 사랑한다는 걸 알고 있답니다.”
공주는 왕자를 심하게 흔들었습니다. 하지만 마이모네가 주문을 걸어놓았기 때문에 왕자는 눈을 뜨지 않았습니다.
“왜 당신은 이렇게 깊이 잠이 들었나요?”
공주는 왕자의 손가락에서 반지를 발견했습니다. 그녀의 반지였습니다. 반지가 왜 왕자의 손가락에 끼워져 있는지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녀의 손가락에는 처음 보는 반지가 끼워져 있었습니다. 공주는 왕자의 뺨에 입을 맞추고는 다시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마이모네는 다시 정령으로 변해 말했습니다.
“왕자가 공주보다 더 아름답다는 걸 알게 돼서 만족스럽지 않니? 다음에는 내가 뭘 주장하면 반드시 믿도록 해. 이제 공주를 집에 데려다 주도록 해.”
다나쉬는 그녀의 말대로 했습니다. 마이모네는 우물로 돌아갔습니다.
다음날 아침 왕자는 잠에서 깨자마자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지난밤에 봤던 아름다운 소녀를 찾으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는 노예를 불렀습니다.
“어떻게 된 일이냐? 아름다운 소녀는 어디로 갔느냐?”
노예는 무슨 이야기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왕자는 노예를 실컷 두들겨 패고는 밧줄로 묶어 우물에 거꾸로 매달았습니다. 그래도 노예가 말을 하지 않자 왕자는 그를 다시 끌어올렸습니다. 노예는 줄에서 풀려나자마자 달아나 왕과 총리대신에게 달려갔습니다.
“전하, 슬픈 소식을 가져왔습니다. 왕자님은 미쳐버린 게 분명합니다. 밤에 침대에서 어떤 소녀와 같이 잠을 잤다고 우깁니다.”
왕은 총리대신에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라고 부탁했습니다. 총리대신은 탑으로 갔습니다. 왕자는 책을 읽으며 조용히 앉아 있었습니다.
“노예가 전하께 가져온 소식을 들었습니다.”
“무슨 소식 말입니까?”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고 하더군요.”
“맞습니다.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하지만 총리대신이 여기 계시니 지난밤에 이 방에서 내 옆에 누워있던 소녀 이야기를 해야겠어요.”
“왕자님. 사람이, 그것도 소녀가 어떻게 문 밖을 지키고 있던 노예를 깨우지도 않고 밤에 이 방에 들어올 수가 있습니까? 아마 꿈을 꾸신 것 아닌가요?”
왕자는 짜증을 내면서 누구를 보았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설명했습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그는 총리대신의 수염을 잡고는 얼굴을 때렸습니다.
“왕자님, 잠깐만요. 멈추시고 내 말을 들어보십시오.”
“왕자님 말씀에도 일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왕자님도 아시다시피 저는 전하의 명령을 들어야 합니다. 그러니 가서 왕자님 말씀을 전한 뒤 전하의 명령을 듣고 오겠습니다.”
“그러시오. 가서 전하께 전하시오. 지난밤에 나에게 보낸 소녀와 결혼하겠다고 말이오. 얼른 답을 가지고 오시오.”
총리대신은 땅에 엎드려 절하고는 얼른 방에서 빠져나갔습니다. 그는 왕에게 달려갔습니다.
“왕자는 어떻던가?”
“노예 말이 사실입니다.”
총리대신은 왕자를 만났을 때 벌어진 일을 정확하게 설명했습니다. 소녀가 방에 들어가는 게 불가능하다고 했을 때 왕자가 엄청나게 화를 내면서 주먹을 휘두른 이야기를 했습니다. 왕은 직접 문제를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총리대신을 데리고 탑으로 갔습니다. 왕자는 아주 반갑게 아버지를 맞았습니다. 왕은 아들에게 여러 가지를 물었습니다. 그때마다 왕자는 아주 기분 좋게 대답했습니다.
“지난밤에 이 방에 함께 있었다는 소녀 이야기를 해다오.”
“예, 전하. 이전에는 결혼을 싫어했지만 이 사랑스러운 소녀를 보고는 모든 편견을 버렸습니다. 그녀를 주신다면 기꺼이 결혼하겠습니다.”
카마랄자만은 왕에게 상세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반지도 보여주었습니다. 아버지에게 소녀를 찾도록 도와달라고 간청했습니다.
“네 말을 듣고 나니 의심이 사라지는구나. 하지만 어떻게 어디서 그 소녀가 왔는지, 그리고 왜 그렇게 짧은 시간동안만 머물렀는지 이해할 수가 없구나. 그야말로 미스터리로구나. 아들아, 가자, 함께 기다려보도록 하자.”
왕은 아들의 손을 잡고 다시 궁으로 돌아갔습니다. 왕자는 그날부터 하루 종일 침대에만 드러누워 절망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왕도 그런 아들을 불쌍하게 여기면서 국정을 소홀히 했습니다. 총리대신은 왕을 만났습니다.
“전하! 궁전의 신하들은 물론이고 백성들도 전하가 사라지셔서 불안을 느끼고 있습니다. 나라도 엉망입니다. 왕자님을 아주 작고 아름다운 섬에 데리고 가셔서 휴양하게 하십시오. 그곳의 아름다운 풍경과 맑은 공기가 왕자님의 건강 회복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전하는 그곳에서 업무를 보시면 됩니다.”
왕은 총리대신의 제안을 허가했습니다. 그는 작은 섬의 성을 정리하자마자 왕자를 데리고 갔습니다. 그는 미리 약속한 접견 약속 때 말고는 절대 왕자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샤자만의 궁전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 때 악의 정령 다나쉬는 중국 공주를 원래 궁전에 데려다 놓았습니다. 다음날 아침 공주는 일어나자마자 주변을 살폈습니다.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녀는 유모를 불렀습니다.
“말해보세요. 제가 간절하게 사랑하는 청년은 어디에 있나요? 지난 밤 내 옆에 누워있던 그 청년 말이에요.”
“공주님, 어떻게 된 일인지 말씀해주시지 않으면 우리가 드릴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지난 밤 세상에서 가장 매혹적이고 아름다운 청년이 내 옆에 누워 있었어요. 나는 그를 깨우려고 했어요. 하지만 허사였지요.”
“공주님은 우리를 놀리려고 하시는군요. 그렇게 하시면 재미있으신 모양이지요?”
“저는 지금 진심으로 하는 이야기예요. 그가 어디 있는지 알고 싶어요.”
“하지만 공주님, 지난밤 저와 다른 궁녀들은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공주님 방에 들어가는 걸 보지 못했습니다.”
공주는 이 말에 인내를 잃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유모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겼습니다.
“거짓말하지 마. 말해. 이 늙은 마녀야. 아니면 죽여 버릴 거야.”
유모는 겨우 공주 손아귀에서 달아났습니다. 그녀는 왕비에게 달려가 눈물을 글썽이며 방금 일어난 이야기를 했습니다.
“마마, 공주님은 정신이 이상해진 게 틀림없습니다. 직접 가셔서 판단해보십시오.”
왕비는 공주의 숙소로 달려갔습니다. 그녀는 공주를 껴안고 쓰다듬어준 뒤 왜 유모를 괴롭혔는지 물었습니다.
“어머니,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면 놀릴 게 뻔해요.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제가 어젯밤 만난 청년이 아니라면 누구하고도 결혼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이에요. 그가 어디 있는지를 알아주세요. 제발 그를 찾아주세요.”
왕비는 공주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공주의 문제가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공주가 그 청년과 결혼하지 못한다면 자살할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더 놀랐습니다. 왕비는 공주를 달래려 했지만 아무런 효과도 거두지 못했습니다.
왕비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왕이 직접 공주를 찾아갔습니다. 공주는 똑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했습니다. 그리고 손가락에 끼었던 반지를 그가 가져갔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공주가 완전히 미쳤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공주를 더 깊숙한 공간에 가두기로 했습니다. 이번에는 유모만 남겨두었고 병사들로 하여금 궁전을 단단히 지키게 했습니다. 왕은 신하들을 불러 모아 공주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만약 누구라도 공주를 치료한다면 결혼을 허락하겠다. 나의 후계자가 되는 것이야.”
한 중년의 토호가 젊고 아름다운 공주를 차지하고 대국을 통치하겠다는 욕심에 불타 왕에게 달려갔습니다.
“전하, 제가 배운 마술로 공주를 치료하겠습니다.”
“그렇게 해보시오. 단 실패할 경우 나를 희롱한 죄로 목숨을 내놓아야 할 거요. 그래도 도전하겠소?”
“그러겠습니다.”
토호는 조건을 받아들였습니다. 왕은 그를 공주에게 데리고 갔습니다. 공주는 실망스러운 목소리로 왕에게 말했습니다.
“전하, 낮선 이를 제 방에 데리고 오시다니 놀랍군요.”
“놀랄 필요가 없다. 너와 결혼하고 싶어 하는 토호 중 한 명일뿐이야.”
“전하, 이 사람은 제 반지를 가진 이가 아니에요. 그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전해주세요.”
토호는 공주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정말 차분하고 합리적이라는 알고는 겁을 먹었습니다.
“전하, 공주의 병을 고칠 수가 없습니다.”
화가 난 왕은 그를 끌어내 목을 잘라버렸습니다. 그는 이후 공주를 치료하겠다고 왔다가 아까운 목숨을 잃어버린 여러 사람 중 첫 번째 사례에 불과했습니다.
중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 때 공주를 돌보던 유모의 아들인 마르자반이 여행에서 돌아왔습니다.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많은 것을 배운 청년이었습니다. 점성술도 그 중 하나였습니다. 그는 어머니로부터 공주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왕 몰래 공주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을까요?”
유모는 고민 끝에 아들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습니다. 그는 경비병을 매수했습니다.
“내 아들은 어릴 때부터 공주와 친남매처럼 지낸 사이라네. 외국에 장사를 하러 갔다고 오랜만에 돌아왔지. 공주에게 인사를 하고 싶다고 하니 잠시 눈감아주게.”
많은 돈을 챙긴 경비병은 모른 척 하기로 했습니다. 공주는 오랜만에 만난 어릴 적 친구를 보고 정말 반가웠습니다. 그녀는 마자렌에게 궁전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했습니다. 마자렌은 눈을 아래로 깔고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공주님, 만약 지금 하신 말이 정말 사실이라면 공주님에게 희망을 찾아드릴 수 있을 것 같군요. 조금만 더 인내를 갖고 기다리세요. 당장 외국으로 모험을 떠나겠습니다. 내가 다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으시면 그건 바로 공주님의 한숨이 끝나는 날이 될 겁니다.”
마자란은 다음 날 바로 외국으로 떠났습니다. 그는 여러 도시를 여행했습니다. 대도시와 시골마을은 물론 섬도 가보았습니다. 그는 가는 곳마다 사람들을 불러놓고 중국의 공주 바두라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중국을 떠나고 넉 달 뒤 마자란은 토프라는 항구도시에 갔습니다. 사람이 많이 사는 큰 도시였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카마랄자만 왕자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왕자의 이야기는 바두라 공주와 매우 유사했습니다. 마자란은 매우 기뻤습니다. 그는 당장 카마랄자만 왕자가 사는 섬의 궁전으로 달려갔습니다.
마자란이 탄 배는 무난히 바다를 항해해 샤자만 왕의 수도가 보이는 곳까지 갔습니다. 사지만 배는 부두에 정박하려는 순간 좌초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수영을 잘 했습니다. 겨우 배에서 빠져나와 헤엄을 쳐 궁전 근처까지 갔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환대를 받고 총리대신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총리대신은 중국에서 온 젊은이가 아주 고귀한 품성은 물론 탁월한 지식을 갖고 있는 걸 보고는 호감을 가졌습니다. 게다가 많은 여행에서 풍부한 경험도 얻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궁을 고통으로 몰아넣은 병을 치료할 수 있는 비밀을 자네가 알고 있으려나?”
“그 질병이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다면 치료법을 제시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총리대신은 마자란에게 카마랄자만 왕자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마자란은 속으로 무척 기뻤습니다. 바두라 공주에게서 들은 이야기의 주인공을 드디어 찾았다고 확신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왕자님을 한 번 뵙게 해 주시면 치료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자란은 총리대신의 안내를 받아 왕자의 방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왕자는 눈을 감은 채 죽은 것처럼 침대에 누워 있었습니다. 왕은 아무 말도 없이 마자란이 들어온 것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침대 곁에 앉아 있었습니다.
“오, 신이시여! 어쩌면 두 사람이 이렇게 놀랄 정도로 닮았습니까?”
실제로 카마랄자만 왕자의 외모와 중국 공주 바두라의 외모는 거의 흡사했습니다. 눈을 감고 있던 왕자는 이 말을 듣고 눈을 떴습니다. 갑자기 호기심이 생겼기 때문이었습니다. 마자란은 무릎을 꿇고 그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중국 공주 이야기를 했습니다. 왕자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전하, 이 사람은 저에게 좋은 정보를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둘이서 이야기를 잠시 나눌 수 있게 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침대에서 일어난 아들을 보고 놀란 왕은 기뻐하면서 침대에서 나갔습니다. 마자란은 일어나 의자에 앉아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왕자님이 만났던 공주님이 중국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왕자님은 물론 공주님의 병도 치유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하지만 먼 여행을 떠나시려면 먼저 왕자님이 건강을 회복해서 튼튼해져야 합니다.”
왕자는 마자란의 말을 듣고 온몸에서 힘이 솟아나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그는 너무 기뻐서 시종들을 불렀습니다.
“당장 일어나서 식사를 하고 운동을 해야겠다. 내 옷을 준비하거라!”
왕은 왕자의 모습을 보고 정말 기뻐했습니다. 왕자의 회복을 축하하기 위해 모든 백성에게 잔치를 베풀라고 지시했습니다. 머지않아 왕자는 원래의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그는 마자란을 다시 불렀습니다.
“이제 당신의 약속을 지킬 때요. 나는 다시 공주를 만날 생각에 도무지 더 참을 수가 없을 지경이오. 지금 당장 출발하지 못한다면 다시 침대에 드러누울지도 모르오. 유일한 문제는 아버지의 걱정이도. 당신도 이미 눈치 챘겠지만 그 분은 나를 보지 못하시면 견디시질 못한다오.”
“왕자님, 이미 그 문제에 대한 대책을 생각해뒀습니다. 왕자님은 제가 도착하기 전까지 문밖에도 나가보신 적이 없습니다. 전하에게 저와 함께 이삼 일 정도 사냥을 다녀오겠다고 말씀하십시오. 허락을 받으면 좋은 말 두 마리를 준비하라고 하십시오. 나머지는 저에게 맡기시면 됩니다.”
다음날 왕자는 왕을 만나 사냥을 다녀오겠다고 했습니다. 왕은 오랫동안 침대에 누워있어 건강에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하루만 다녀오라고 했습니다.
왕자와 마자란은 다음날 아침 궁전을 떠났습니다. 시종 두 명이 둘을 따라갔습니다. 그들은 가던 도중 사냥도 했습니다. 하지만 가능하면 도시에서 멀리 떨어지도록 쉬지 않고 말을 달렸습니다. 저녁 무렵 왕자 일행은 여관에 도착했습니다. 자정 무렵 마자란이 잠이 든 왕자를 깨웠습니다.
“왕자님, 일어나십시오. 이제 떠나야 합니다.”
마자란은 왕자에게 코트를 벗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미리 준비한 다른 코트를 건네주었습니다. 그들은 다른 말로 바꿔 타고 잠든 시종 둘을 버려두고 중국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새벽 무렵 왕자와 마자란은 숲 한가운데에서 길이 네 곳으로 갈라지는 교차로를 만났습니다.
“왕자님, 여기서 기다리십시오.”
마자란은 왕자를 혼자 버려두고 시종의 말을 끌고 숲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말의 목을 베어버렸습니다. 말 등에 얹혀 있던 왕자의 코트는 피로 범벅이 됐습니다. 마자란은 다시 돌아와 코트를 바닥에 던졌습니다.
“왜 이렇게 하는 것이지?”
“우리가 여행을 계속하려면 왕자님이 죽은 것처럼 꾸며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왕께서 병사들을 보내 저희를 잡으려고 할 겁니다.”
“아버지가 큰 슬픔에 빠지실 텐데.”
“공주를 데리고 돌아가면 더 기뻐하시게 될 겁니다.”
왕자와 마자란은 바다와 육지로 여행을 계속했습니다. 그들은 돈을 충분히 챙겨 갔기 때문에 필요 없이 시간을 지체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마침내 두 사람은 중국의 수도에 도착했습니다. 두 사람은 피로를 씻기 위해 적당한 숙소에서 사흘 동안 쉬었습니다.
마자란은 왕자를 위해 점성술사의 옷을 준비했습니다. 왕자는 목욕을 한 뒤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두 사람은 왕의 궁전이 보이는 곳으로 갔습니다.
“왕자님, 여기서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마자란은 공주의 유모인 어머니에게 갔습니다. 왕자는 그동안 마자란의 지시대로 궁전 근처까지 가서 이렇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나는 점성술사요. 바두라 공주의 병을 치료하러 여기에 왔소. 공주를 치료하는 데 성공하면 결혼하고 실패하면 내 목숨을 내놓을 것이오.”
잠시 후 누군가 그에게 충고했습니다.
“이것 보시오. 공주를 치료하려는 게 얼마나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인지 알기는 하는 거요?”
그 사이 많은 사람이 왕자 주변에 모였습니다. 이들은 아주 잘 생기고 출신 성분도 고귀해 보이는 왕자를 보고 연민을 느꼈습니다.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군요? 왜 죽음을 자초하는 거지요? 당신은 성벽에 걸린 머리들을 보고도 아무런 경고를 받지 못한다는 말이오? 더 늦기 전에 미친 짓을 그만 두시오.”
왕자는 고집을 꺾지 않았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그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사람들의 걱정도 커져갔습니다.
“저 사람은 죽을 각오를 했군. 신이여! 어리석은 청년을 어여삐 여기소서!”
카마랄자만 왕자는 다시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마침내 중국 왕의 대신이 궁 밖으로 나와 그를 데리고 들어갔습니다. 대신은 왕자를 왕 앞에 데리고 갔습니다. 왕은 새로운 도전자의 고귀한 자태를 보고 속으로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곧 닥칠 그의 불운을 걱정했습니다.
“젊은이, 마지막 기회를 주겠네. 지금이라도 당장 궁에서 나가도록 하게. 그러면 목숨을 건질 수 있을 걸세.”
왕자는 아주 정중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왕의 호의를 거절했습니다. 왕은 할 수 없이 환관들에게 왕자를 공주에게 데려가라고 지시했습니다. 환관들은 긴 통로로 걸어갔습니다. 왕자는 뒤를 따라갔습니다. 그는 공주 방 앞의 전실로 이어지는 큰 회당에 도착했습니다. 왕자는 환관들에게 말했습니다.
“자, 자네들이 고르게. 공주가 있는 곳에서 병을 치료할까, 아니면 공주를 보지 않고 치료할까?”
“당신이 정말 치료할 수 있다면 그건 중요하지 않소.”
“알겠소. 그러면 공주를 얼른 보고 싶어 참을 수 없지만 여기서 병을 치료하겠소. 그래야 당신들이 내 능력을 인정할 테니.”
왕자는 필기도루를 꺼내 이렇게 글을 썼습니다.
‘사랑스러운 공주여! 당신에게 매혹 당한 카마랄자만은 그 순간을 결코 잊을 수 없다오. 잠든 당신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면서 그는 사랑을 바쳤지요. 그는 당신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행복을 얻을 수 없었기에 사랑의 증표로 그의 반지를 드리려 했다오. 대신 당신의 반지를 사랑의 증표로 손가락에서 빼냈지요. 만약 당신이 이 편지에 답을 주신다면 카마랄자만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인간이 될 거요. 그는 당신의 전실에서 답을 기다리고 있다오.’
왕자는 편지와 반지를 봉투에 넣어 밀봉한 뒤 환관에게 주었습니다.
“이 편지를 공주에게 전하시오. 공주가 이 편지를 읽었는데도 병에서 즉시 낫지 않는다면 당신이 나를 뻔뻔한 거짓말쟁이라고 말해도 좋소.”
환관은 즉시 공주의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공주님, 새 점성술사가 도착했습니다. 공주님이 이 편지를 읽고 편지 안에 든 내용물을 확인하신다면 금세 병에서 나으신다고 큰소릴 치고 있습니다.”
공주는 편지를 받고는 무관심하게 뜯었습니다. 하지만 편지에서 반지를 발견하자마자 그녀는 깜짝 놀라면서 글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을 열고 밖으로 뛰어나갔습니다. 왕자와 공주는 서로를 알아보았습니다. 곧바로 둘은 손을 맞잡았습니다. 그리고 부드럽게 포옹했습니다. 아들을 만난 뒤 서둘러 궁에 들어온 유모가 두 사람을 내실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사이 환관들은 왕에게 달려갔습니다.
“전하, 이전의 모든 의사와 점성술사는 다 엉터리였습니다. 그런데 이번 청년은 공주를 보지도 않고 치료했습니다.”
왕은 정말 기뻐하면서 공주의 방으로 갔습니다. 그는 공주의 손을 꼭 잡고는 말했습니다.
“낯선 젊은이, 내 약속을 지키겠네. 내 딸을 아내로 삼게. 그런데 자네는 보통 사람이 아닌 것 같군. 내 추측이 틀리지 않다면.”
“전하, 저에게 환대를 베풀어주시고 약속을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전하의 생각대로 저는 점성술사가 아닙니다. 이렇게 꾸몄을 뿐입니다. 저는 페르시아 근처에 있는 칼레단의 왕 샤자만의 아들인 왕자 카마랄자만입니다.”
카마랄자만은 그의 이야기와 공주를 만나던 날 탑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설명했습니다. 그가 말을 마치자 왕은 감탄했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기막힌 이야기가 있나! 우리나라의 기록에 새겨서 후세에 영원히 알려지도록 해야겠어.”
결혼식은 다음날 화려하게 치러졌습니다. 왕자와 공주는 마자란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아주 훌륭한 자리를 마련해주었습니다. 앞으로 더 큰 축복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약속도 했습니다. 왕자와 공주는 매우 행복했습니다. 둘이 즐거워하는 사이 여러 달이 지나갔습니다.
어느 날 카마랄자만 왕자는 아버지가 죽음을 앞두고 있는 꿈을 꾸었습니다. 아버지는 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네가 나를 버렸구나. 나는 이렇게 죽어가고 있단다.”
왕자는 신음소리와 함께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이 소리에 공주는 깜짝 놀랐습니다.
“무슨 꿈을 꾸셨나요?”
“아! 지금 이 순간 아버지께서는 더 이상 세상에 계시지 않아요.”
왕자는 꿈 이야기를 했습니다. 공주는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다음날 왕에게 갔습니다.
“전하, 부탁드릴 게 있어 왔습니다. 우리 부부가 샤자만 왕을 방문하게 허락해 주십시오.”
왕은 딸과 헤어져야 한다는 게 슬펐지만 거절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단 한 가지 조건을 내걸어 허락했습니다.
“샤자만 왕의 궁전에서 1년만 보내고 돌아와야 한다. 나중에 너희 두 사람은 돌아가면서 부모를 방문하면 된단다.”
공주는 남편에게 아버지의 허락을 전했습니다. 왕자는 그녀의 사랑에 깊이 감사했습니다. 출발 준비는 머지않아 완료됐습니다. 왕은 여러 날 동안 부부를 따라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딸의 손을 놓았습니다.
“카마랄자만, 내 딸을 잘 보살펴주게. 그리고 꼭 다시 중국으로 돌아와야 하네.”
왕자 부부는 여행을 계속했습니다. 한 달 뒤 두 사람은 아주 넓은 초원에 도착했습니다. 곳곳에 작은 숲이 있어 쾌적한 그림자를 드리우는 곳이었습니다. 날씨는 너무 더웠습니다. 왕자는 시원한 곳에 천막을 치고 잠시 쉬어가기로 했습니다. 왕자가 다른 수행원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동안 공주는 천막에 들어갔습니다. 그녀는 모든 궁녀들에게 나가 있으라고 하고는 잠이 들었습니다.
모든 천막을 다 설치한 뒤에 왕자는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공주는 자고 있었습니다. 그는 옆에 앉아 말없이 공주를 바라보았습니다. 공주의 허리띠가 눈에 띄었습니다. 왕자는 허리띠에 박힌 보석을 살펴보다 작은 주머니가 달린 걸 발견했습니다. 손으로 만져보니 안에 단단한 물건이 들어있었습니다. 호기심이 생긴 왕자는 파우치를 열었습니다. 다양한 모습과 이상한 글자가 새겨진 홍옥수가 들어있었습니다.
‘이 홍옥수는 매우 귀해 보이는군. 아내는 너무 아끼느라 착용하지 않는 것일 거야.’
사실 홍옥수는 중국 왕비가 딸에게 준 부적이었습니다. 부적을 가지고 있는 한 행복을 지킬 수 있다고 했습니다. 돌을 저 잘 보려고 왕자는 천막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가 손바닥에 홍옥수를 놓고 보고 있을 때 갑자기 새 한 마리가 날아오더니 부리로 홍옥수를 낚아채더니 날아가 버렸습니다. 왕자는 깜짝 놀라며 당황했습니다. 아내가 아끼는 돌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새는 먹이를 꼭 물더니 멀리 날아갔습니다. 그리고 땅에 내려앉더니 부리로 부적을 다시 꼭 물었습니다. 왕자는 새에게 달려갔습니다. 새가 돌을 떨어뜨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근처에 다가오자 새는 다시 날아가 버렸습니다. 왕자는 계속 새를 추격했습니다. 새는 급기야 돌을 꿀꺽 삼켜버렸습니다. 그리고 이전보다 더 멀리 날아갔습니다. 왕자는 돌을 던져 새를 잡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더 열심히 추격할수록 새는 더 멀리 날아갔습니다.
하루 종일 새를 쫓던 왕자는 언덕 근처까지 갔습니다. 밤이 되자 지친 새는 매우 높은 나무 에 앉았습니다. 절망에 빠진 왕자는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돌아가는 길이 어디인 거야? 언덕에 올라가야 하나, 내려가야 하나? 체력이 다 떨어지면 길을 잃어버릴 거야.’
배고픔, 갈증, 피로, 졸음에 지친 왕자는 나무 아래서 그만 잠들어버렸습니다. 다음날 아침 왕자는 새가 둥지를 떠나기 전에 일어났습니다. 그가 다시 쫓자마자 새는 이전처럼 날아가 버렸습니다. 왕자는 새를 쫓아가면서 풀과 과일만을 조금 먹었을 뿐입니다. 이런 식으로 왕자는 열흘이나 새를 쫓아갔습니다. 새를 하루 종일 따라가나 나무 아래에서 밤을 보냈습니다. 새는 그 동안 나무 위에서 잠을 잤습니다.
열하루 째 되던 날 새와 왕자는 큰 마을에 갔습니다. 높은 성벽이 나타났습니다. 새는 하늘 높이 날아오르더니 시야에서 사라져버렸습니다. 카마랄자만 왕자는 공주의 부적을 되찾을 희망을 버려야 한다는 생각에 절망하게 됐습니다.
왕자는 마을에 들어갔습니다. 바닷가에 있는 훌륭한 항구마을이었습니다. 그는 한참동안 거리를 걸었습니다. 그곳이 어디인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마침내 그는 해변에서 작은 정원을 발견하고는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정원사는 노인이었습니다. 일하고 있던 그는 왕자가 들어오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노인은 왕자의 못을 보고는 무슬림이라는 걸 눈치 챘습니다.
“들어오시오.”
노인은 문을 닫았습니다. 왕자는 노인이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그리고 왜 문을 닫았는지 물었습니다.
“당신은 낯선 사람이오. 게다가 무슬림이군요. 이 마을 사람들은 모두 이교도요.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을 싫어해서 죽여 버린다오. 당신이 내 집에 들어온 것은 기적이오. 이곳에 피신처를 찾아서 다행이오.”
왕자는 노인에게 감사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노인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인사는 나중에 하도록 하시오. 당신은 지쳤고 배고파 보이는군요. 이리 와서 먹고 쉬도록 해요.”
노인은 왕자를 오두막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의 배고픔을 달래준 후에 왜 여기 왔는지를 물었습니다. 왕자는 숨김없이 다 털어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나라로 가는 가장 가까운 길을 물었습니다.
“내가 공주를 다시 만나려고 해도 열하루나 지났는데 어떻게 다시 찾을 수 있겠습니까?. 아마 더 이상 살아있지 못할지도 모르지요.”
왕자는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노인은 왕자에게 아버지의 나라까지는 1년 정도 걸린다고 말했습니다.
“바다에 있는 에보니 섬으로 가면 더 가까울 거요. 거기서 배를 타면 칼레단 섬까지는 쉽게 갈 수 있을 거라오. 에보니 섬에는 1년에 한 번 배가 가지요. 내 집에서 가깝답니다. 당신이 며칠만 일찍 왔더라면 배를 당장 탈 수 있었을 텐데. 당신은 여기서 내년까지 기다려야 해요. 나와 함께 지낼 생각이라면 내 집을 빌려드리지요.”
왕자는 노인의 도움을 받아 피난처를 찾게 돼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노인의 제안을 감사히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정원에서 일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밤에는 사랑하는 아내를 그리워하며 한숨만 내쉬었습니다.
공주는 잠에서 깼을 때 왕자가 보이지 않아 놀랐습니다. 궁녀들을 불러 물어봤지만 아무도 그가 어디에 있는지 몰랐습니다.
“천막에 들어가시는 건 봤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본 적이 없습니다. 천막에서 나가시는 걸 아무도 보지 못했습니다.”
공주의 눈에 허리띠가 보였습니다. 작은 주머니가 열려 있고 부적이 사라졌습니다.
‘남편이 부적을 들고 나갔군. 곧 돌아오겠지.’
공주는 저녁까지 인내심을 갖고 기다렸습니다. 왜 이렇게 돌아오지 않는지 걱정이 됐습니다. 밤이 됐을 때 공주는 절망에 빠졌습니다. 나중에는 부적을 저주하고 부적을 만든 사람을 저주했습니다. 고통과 걱정에 사로잡혔지만 공주는 마음의 평정심을 잃지는 않았습니다. 그녀는 용감한 발걸음을 옮기기로 결정했습니다.
공주와 궁녀들은 왕자가 사라진 걸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머지는 잠들어 있거나 천막에서 쉬고 있었습니다. 공주는 사실이 밝혀질 경우 반란이 일어날 걸 걱정했습니다. 그녀는 궁녀들에게 의심을 불러올 수 있는 어떤 말도 하지 말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리고 공주 옷을 벗고 왕자 옷으로 갈아입었습니다. 그녀는 남편과 너무나 닮았기 때문에 옷을 바꿔 입자 아무도 몰라봤습니다.
이렇게 변장하니 공주는 마치 왕자 같았습니다. 그녀는 다음날 아침 천막을 걷고 여행을 계속한다고 지시했습니다. 아무도 변화를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공주는 궁녀 중 한 명에게 그녀의 옷을 입혀 말 등에 태우고는 여행을 계속했습니다.
바다와 육지로 여행을 계속한 끝에 공주는 마침내 에보니 섬에 도착했습니다. 그 나라의 왕은 아르마노스였습니다. 왕은 왕자 일행이 탄 배가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르마노스는 샤자만 왕의 오랜 친구였습니다. 그는 친구의 아들을 환영하러 부두로 달려갔습니다. 거기서 왕자로 변장한 공주를 궁으로 초청했습니다. 그곳에서 공주 일행은 환대를 받았고 아주 편하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사흘 뒤 공주는 왕에게 여행을 계속해야겠다고 말했습니다. 왕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왕자여! 나는 이제 늙었다네. 불행히 나에게는 나라를 물려줄 아들이 없어. 자네에게 내 딸을 준다면 나는 정말 기쁠 것이야. 딸은 정말 아름답고 매력적이어서 나는 자네처럼 고귀하고 능력이 출중한 사람에게 시집보내려고 했지. 그러니 돌아가는 대신 내 딸과 결혼해서 여기 머물러 왕 자리를 물려받도록 하게. 훌륭한 후계자를 얻게 되면 나는 정말 기쁠 것이네. 그러면 힘든 국정을 내려놓고 편히 쉴 수 있을 거야.”
왕의 제안에 공주는 당혹스러웠습니다. 지금 와서 왕자처럼 변장했다고 밝힐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결혼을 거절하기도 어려웠습니다. 옹은 진심으로 왕자를 대하고 있었습니다. 거절한다면 왕의 친절은 증오로 금세 바뀔지도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공주는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그녀는 잠시 침묵하더니 아주 겸손하게 말했습니다.
“전하, 아무런 자격도 없는 저에게 과분한 제안을 해주셔서 엄청난 부담을 느낍니다. 그렇다고 감히 거절할 수는 없습니다. 전하께서 조언으로 저를 도와주신다고 약속하신다면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결혼이 성사됐습니다. 결혼식은 다음날 치르기로 했습니다. 공주는 중국에서 데리고 온 신하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알렸습니다. 그리고 바두라 공주도 결혼에 동의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궁녀들에게는 절대 함구하라고 다시 당부했습니다.
아르마노스 왕은 바두라 공주가 제안을 받아들여 매우 기뻤습니다. 그는 지체하지 않고 신하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이 왕자는 나의 사위가 돼서 후계자 자리에 오를 것이다. 모든 신하는 미래의 왕에게 인사를 하도록 하라. 그리고 충성을 다짐하라.”
밤이 됐습니다. 에보니 섬은 잔치 분위기로 들썩였습니다. 왕의 딸인 하이야텔네포우스 공주는 바두라 공주의 방에 인사를 드리러 갔습니다. 바두라는 왕의 딸을 보는 순간 고민에 휩싸였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바두라 공주는 무엇보다 하이야텔네포우스 공주의 믿음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시종, 시녀, 신하들이 모두 방에서 나가고 둘이 남게 됐을 때 그녀는 공주의 손을 잡고 솔직히 털어놓았습니다.
“공주님,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오직 공주님의 자비만 바랄 뿐이에요. 저는 카마랄자만 왕자가 아니에요. 당신처럼 공주이며 그의 아내랍니다. 제발 제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시길 바라요. 제가 겪은 고통을 생각해서 저의 무례한 행동을 용서해주시길 바랍니다.”
바두라 공주는 그간 겪었던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았습니다. 하이야텔네포우스 공주는 바두라 공주를 꼭 껴안았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도 같은 공주로서 당신의 고충을 충분히 이해한답니다.”
두 공주는 앞으로 어떻게 할지 계획을 꼼꼼하게 세웠습니다. 그리고 비밀을 꼭 지키겠다고 서로 맹세했습니다. 덕분에 바두라 공주는 카마랄자만 왕자의 소식을 들을 때까지 남자 행세를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에보니 섬에서 두 공주 사이에 비밀이 지켜지는 동안 카마랄자만은 우상 숭배자의 섬의 정원사 집에 여전히 머물러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정원사는 왕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 축제가 열린답니다. 마을 사람들은 오늘 일을 하지 않지요. 다른 사람들에게도 일을 못 하게 하고요. 나는 친구들을 만나러 다녀오겠소. 그동안 푹 쉬도록 하시오. 이전에 말했던 배가 떠날 시간이 되면 상세히 이야기해드리리다.”
정원사는 가장 좋은 옷을 차려입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왕자는 혼자서 정원을 거닐다 아내와 그들의 불행에 대해 깊은 생각에 빠졌습니다. 그때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큰 새 두 마리가 내는 소리였습니다.
카마랄자만은 가만히 서서 새들을 쳐다보았습니다. 새들은 부리로 서로 쪼며 매우 심하게 싸우고 있었습니다. 그 중 한 마리는 땅에 떨어져 죽고 말았습니다. 나머지 한 마리는 날개를 활짝 펴고는 의기양양하게 날아갔습니다.
멀리서 그들의 싸움을 지켜보던 다른 새 두 마리가 다시 정원으로 날아왔습니다. 그들은 죽은 새 곁에 앉았습니다. 한 마리는 머리 쪽에, 다른 한 마리는 다리 쪽에 앉았습니다. 그들은 슬퍼하는 것인지 한참동안이나 머리를 흔들며 울었습니다. 그러더니 곧 부리로 무덤을 파 죽은 새를 묻었습니다.
죽은 새를 다 묻은 새 두 마리는 다시 날아갔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친구를 죽인 다른 새를 붙잡아 정원으로 데려왔습니다. 한 마리는 그 새의 날개를, 다른 한 마리는 그 새의 다리를 물고 있었습니다. 붙잡혀 온 새는 공포에 떨며 울부짖었습니다.
새 두 마리는 그 새를 무덤에 끌고 가더니 부리로 쪼아 죽여 버렸습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시체를 산산조각내고는 다시 날아가 버렸습니다.
왕자는 아주 흥미롭게 새들의 다툼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는 죽은 새 곁으로 다가갔습니다. 그의 머리에 빨간 게 보였습니다. 방금 머리 안에서 튀어나온 것 같았습니다. 그는 그것을 주웠습니다.
“아니! 이것은.”
놀랍게도 새의 머리에서 나온 것은 바두라 공주가 갖고 있던 부적이었습니다. 그들을 불행하게 만든 원인이었습니다. 그는 정말 기뻤습니다. 그는 부적에 거듭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리고 떨어지지 않게 팔에 꼭 붙였습니다. 그는 공주와 헤어진 이후 처음 정말 편안하게 잘 수 있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난 왕자는 아주 밝은 표정으로 정원사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일은 잘 되고 있나요?”
“저는 잠시 나갔다 오겠소. 방금 죽은 늙은 과일나무를 잘라주시겠소.”
카마랄자만은 도끼를 들어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는 도끼로 나무뿌리를 내리쳤습니다. 뭔가 단단한 게 느껴졌습니다. 그는 흙을 파냈습니다. 큰 청동 문이 나타났습니다. 그 아래에 계단이 보였습니다. 그는 계단으로 내려갔습니다. 끝 부분에 마치 아늑한 방 같은 동굴이 보였습니다. 거기에는 큰 청동 항아리 50개가 놓여 있었습니다. 각 항아리에는 뚜껑이 덮여있었습니다.
왕자는 뚜껑을 하나씩 열어보았습니다. 각 항아리에는 황금이 가득 들어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행운에 즐거워진 왕자는 뚜껑을 닫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과일나무를 모두 자른 뒤 정원사가 돌아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정원사는 전날 밤에 왕자가 타고 갈 배가 곧 출항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정확한 날짜를 알지 못해 다시 밖으로 나가 사람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그는 제대로 된 정보를 파악한 덕분에 밝은 표정으로 집에 돌아왔습니다.
“왕자여! 기뻐하시오. 이제 사흘 뒤에 배가 출항한다는군요. 당신을 데려가기로 선장과 이야기를 했소이다.”
“그것보다 기쁜 소식은 없군요. 게다가 당신에게 선물로 드릴 게 생겼으니 더 기쁜 일입니다. 나를 따라오십시오. 당신에게 어떤 행운이 닥쳤는지 보여드리겠습니다.”
왕자는 정원사를 동굴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쌓여 있던 보물을 보여주었습니다.
“당신이 나를 정말 친절하게 도와준 덕분에 하늘이 당신에게 복을 내리신 것입니다. 여러 해 동안 나를 잘 보살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왕자의 말을 들은 정원사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대답했습니다.
“무슨 말이오? 나더러 이 보물을 가지란 말이오? 천만에요. 당신이 찾았으니 이 보물은 당신 것이오. 내게는 아무런 권리가 없소. 지난 8년간 나는 땅을 열심히 팠지만 아무것도 찾지 못했소. 당연히 이 보물은 당신 것이오. 이제 곧 눈을 감을 늙은 사람보다는 당신처럼 젊은 왕자에게 이 보물이 더 소중히 쓰일 수 있을 것이라오. 마침 적당한 시기에 보물을 찾았군요. 당신은 곧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니 이 보물을 아주 유용하게 사용하도록 하시오.”
왕자는 정원사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은 한참동안이나 티격태격하다가 결국 보물을 반반씩 나누기로 했습니다. 일을 마무리 지은 뒤 정원사는 왕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보물을 잃어버리지 않고 비밀리에 운반할 것인지 생각해야 하오. 에보니 섬에는 올리브 나무가 없소. 아주 비싼 가격에 수입하지요. 당신도 알다시피 나는 정원에 올리브 나무를 많이 가지고 있소. 항아리 50개를 모두 가져가시오. 아래 절반에는 금을 넣고 위에는 올리브를 채워 넣도록 하시오. 그리고 출항하기 직전에 항아리를 배에 싣는 거요.”
왕자는 정원사의 조언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하루 종일 항아리 50개에 금과 올리브를 담았습니다. 그리고 소중한 부적을 다시는 잃어버리지 않도록 항아리 중 하나에 집어넣었습니다. 어느 항아리에 부적을 넣었는지 알 수 있게 비밀스러운 표시도 했습니다. 저녁 무렵 항아리 50개에 금과 올리브를 채우는 일이 모두 끝났습니다. 왕자와 정원사는 자러 갔습니다.
나이 탓인지 아니면 흥분해서 지친 탓인지 정원사는 매우 힘든 밤을 보냈습니다. 다음날에는 건강이 갑자기 악화됐습니다. 사흘째 아침에는 매우 위독해졌습니다. 새벽 무렵 선장과 선원 여러 명이 정원사의 문을 두들겼습니다.
“서둘러 배에 타야 합니다.”
카마랄자만은 문을 열었습니다.
“내가 타고 갈 거요. 정원사는 몸이 불편하다오. 그래서 침대에 누워 있지요. 미안하지만 올리브 항아리 50개와 내 가방을 좀 옮겨주시오. 곧 따라가겠소.”
선원들은 그의 말대로 항아리를 옮겼습니다. 선장은 왕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출항시간에 늦지 마시오. 바람이 좋기 때문에 당장 떠나야 할 거요.”
선장과 선원과 헤어진 왕자는 집에 들어가 정원사에게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저를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정원사는 대답도 못하고 그만 눈을 감고 말았습니다. 카라말자만은 정원사를 묻어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그의 친절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정원에 무덤을 파서 노인을 묻었습니다. 그는 문을 잠그고는 정원 주인에게 열쇠를 건넨 뒤 서둘러 부두로 갔습니다.
“배는 벌써 세 시간 전에 떠났다오.”
왕자는 새로 만난 불행 때문에 다시 절망에 빠졌습니다.
‘다시 낯설고 고통스러운 이국에서 여러 해를 보내야 한단 말인가?’
게다가 왕자는 바두라 공주의 부적도 잃어버렸습니다. 다시는 부적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남은 거라고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다만 세상을 떠난 정원사의 뒤를 이어 정원을 돌보면서 오두막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그는 혼자서는 정원을 가꿀 수 없었기 때문에 일을 도와줄 시종 하나를 고용했습니다. 남은 보물을 잘 간수하기 위해 항아리 50개를 구입해 몰래 숨겨놓았습니다. 언제든 기회가 생기면 출항할 수 있게 올리브를 덮어두었습니다.
왕자가 다시 우상 숭배자의 마을에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왕자의 항아리를 실은 배는 에보니 섬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새로운 왕이 된 바두라 공주는 궁전에서 부두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저 배는 어디에서 온 것이냐?”
“우상 숭배자의 마을에서 온 배입니다. 해마다 값비싼 물건을 잔뜩 싣고 옵니다.”
바두라 공주는 신하 여러 명을 데리고 부두로 나갔습니다. 마침 배가 부두에 정박하고 있었습니다. 공주는 선장을 불러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항해했는지, 승객은 누가 있는지, 배에 무엇을 실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선장은 왕의 질문에 상세하고 성실하게 대답했습니다.
“배의 승객은 모두 상인입니다.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입니다. 모두 비싼 물건들을 싣고 있습니다. 품질이 뛰어난 면직물, 귀한 보석, 사향, 호박, 향신료, 약품, 올리브 등등입니다.”
공주는 올리브 이야기를 듣자마자 관심이 생겼습니다.
“배에 있는 물건을 모두 사겠다. 모두 내리도록 하라. 물건 값을 제시하거라. 그리고 다른 상인들에게도 모든 물건을 보이라고 말해라.”
“예, 배에는 올리브 항아리 50개가 있습니다. 상인이 배에 타기로 했는데, 출항할 시간이 한참 지나도 나타나지 않아 버리고 왔습니다.”
“신경 쓸 것 없다. 모두 다 내려라. 가격을 제대로 맞춰주겠다.”
선장은 올리브 항아리 50개를 작은 배에 나눠 싣고 부두에 내렸습니다.
“상인은 매우 가난한 사람입니다. 전하께서 은화 1천 개만 주신다면 바가지를 쓰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 사람이 정말 가난하다면 금화 1천 개를 주겠다. 반드시 그에게 가져다주도록 해라.”
공주는 신하들에게 돈을 지불하라고 지시한 뒤 궁전에 돌아갔습니다. 올리브 항아리는 수레에 실어 먼저 궁으로 보냈습니다. 저녁 무렵 공주는 궁전 내실에 있는 하이야텔네포우스 공주에게 갔습니다. 그곳에는 이미 올리브 항아리 50개가 도착해 있었습니다.
바두라 공주는 친구에게 항아리 하나를 열어 보여주었습니다. 올리브 몇 개를 꺼내 냄새를 맡으려던 공주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올리브 아래에 금이 잔뜩 깔려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도대체 이게 무엇이지?”
바두라 공주는 다른 항아리도 열었습니다. 역시 금이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항아리를 열었을 때 공주는 더 놀라고 말았습니다. 거기에는 왕자와 함께 사라진 부적이 담겨 있었습니다. 공주는 그만 기절하고 말았습니다.
하이야텔네포우스 공주는 바두라 공주를 침대에 눕혔습니다. 잠시 후 공주는 의식을 되찾았습니다. 그녀는 소중한 부적에 입을 맞췄습니다.
“이 부적이야. 내가 남편과 헤어진 게 바로 이 부적 때문이었어. 그런데 이게 다시 내게 돌아왔어. 내가 남편과 재회할 수 있다는 뜻이겠지.”
다음날 아침 바두라 공주는 선장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올리브 항아리 주인에 대해 상세히 물었습니다.
“저는 그 젊은 사람이 사는 곳만 알 뿐입니다. 거기 사는 노인이 그 사람을 저에게 소개해주었답니다.”
“당장 우상 숭배자의 마을로 돌아가거라. 그 젊은이는 나에게 큰 빚을 졌어. 그를 당장 데리고 오도록 해라. 너의 물건을 모두 압수하겠다. 그 젊은이를 데려오기 전까지는 너의 물건을 돌려주지 않을 것이다. 어서 떠나라. 나의 명령을 완수하도록 하라.”
선장에게는 왕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는 서둘러 배에 식료품과 물을 실은 뒤 우상 숭배자의 마을로 되돌아갔습니다. 얼마나 서둘렀던지 에보니 섬에 갈 때보다 시간이 절반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우상 숭배자의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부두에 들어가지 않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밤에 마을에서 먼 곳에 닻을 내린 뒤 선원 서너 명과 함께 작은 배에 타고 마을에 상륙했습니다.
왕자는 깨어 있었습니다. 그는 아내를 떼어놓은 슬픈 운명을 한탄하면서 정원을 거닐고 있었습니다. 그때 누군가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는 문을 열었습니다. 갑자기 선장과 선원이 그를 끌어내더니 말 한 마디 없이 배에 태웠습니다. 그리고 지체하지 않고 에보니 섬으로 데려갔습니다.
카라말자만은 그때까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있었습니다. 배가 출항하자 그는 선장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도대체 왜 나를 끌고 가는 거요?”
“에보니 섬의 왕이 자네에게 빚을 받을 게 있다고 하더군.”
“내가? 빚을 졌다고? 나는 그 사람을 알지도 못하는데? 그 나라에 가본 적도 없는데?”
“어찌됐든 왕을 곧 만나보면 알 거야. 그동안 인내를 가지고 기다려보게.”
에보니 섬으로 가는 뱃길도 매우 편안했습니다. 배는 한밤중에 부두에 닿았습니다. 선장은 서둘러 배를 댄 뒤 궁전으로 왕자를 데려갔습니다.
왕자는 누더기 같은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머리카락은 물론 수염도 길어 지저분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바두라 공주는 왕자를 한눈에 알아보았습니다. 공주는 왕자의 목에 매달려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 분을 모시고 가서 목욕을 시켜드려라. 그리고 궁전에서 가장 좋은 옷을 입혀 다시 내게 모시고 오너라.”
신하들이 왕자를 데리고 나가자 왕은 선장을 보고 환히 웃으며 말했습니다.
“자네에게 값비싼 다이아몬드를 선물로 주겠다. 그리고 금화 수천 개를 더 얹어주겠다. 저 젊은이와의 문제는 내가 직접 해결하겠다.”
공주는 궁전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하이야텔레포우스 공주에게 왕자가 돌아왔다고 이야기해주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아랍의 왕처럼 화려하게 단장한 왕자가 두 공주 앞에 나나탔습니다. 전날 저녁과 달리 아름다운 그의 외모는 궁전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공주는 다른 신하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나의 동료를 소개해 드리겠소. 내가 잘 아는 카마랄자만이라는 사람이오. 여러분의 존경을 받기에 충분한 자격을 갖춘 분이오.”
카라말자만은 이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왕이 그의 이름을 말하는 걸 듣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게다가 왕은 그를 마치 영웅처럼 칭찬하고 있었습니다. 왕자는 바닥에 납작 엎드려 말했습니다.
“전하, 저에게 베풀어주신 호의에 어떻게 감사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바두라 공주는 왕자를 호화스러운 방으로 안내했습니다. 그곳에 있는 모든 가구는 황금과 은으로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왕자는 왜 에보니 섬의 왕이 그에게 이렇게까지 호의를 베푸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며칠 뒤 바두라 공주는 카마랄자만 왕자를 대재상 자리에 앉혔습니다. 그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마침내 바두라 공주는 사실을 밝힐 때가 왔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녀는 하이야텔네포우스 공주와 미리 계획을 짠 뒤 카마랄자만에게 이렇게 일렀습니다.
“중요한 문제에 대해 자네의 도움을 받고자 하네. 그러니 오늘 저녁에 궁전으로 들어오도록 하게.”
왕자는 시간을 정확하게 지켰습니다. 그는 저녁에 궁전에 들어갔습니다. 공주는 신하들과 시종, 시녀들에게 방에서 나가라고 지시했습니다. 공주는 작은 상자에서 부적을 꺼내 카마랄자만에게 건네주었습니다.
“여러 해 전 한 점술사가 내게 이 부적을 주었지요. 이 부적이 무엇인지 당신도 잘 아시겠지요?”
카마랄자만은 부적을 빛에 비추어보았습니다. 그는 소스라치게 놀라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 부적을 어떻게 전하께서 가지고 계십니까? 이 부적은 늘 저에게 불행의 근원이었는데. 네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게 만든 원인이었지요. 너무 슬프고 이상한 이야기라서 제가 말씀드린다면 전하도 눈물을 감출 수 없을 것입니다.”
“언젠가 듣도록 하겠소. 그건 그렇고. 이 부적은 나에게도 낯설지 않군. 잠깐 기다리시오. 다시 돌아오리다.”
공주는 다른 방으로 들어가 여자 옷으로 갈아입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카마랄자만에게 갔습니다. 왕자는 공주를 한눈에 알아보았습니다. 그는 공주를 껴안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왕이 당신을 보호하고 있었군요. 왕에게 어떻게 감사 인사를 드린단 말이오?”
공주는 눈물을 닦으며 말했습니다.
“왕을 다시는 볼 수 없을 거예요. 저를 잘 보세요. 저의 얼굴에서 왕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거예요. 여기 앉으세요. 그동안 있었던 일을 다 말씀드리지요.”
바두라 공주는 카마랄자만 왕자에게 뜻하지 않은 이별 이후에 일어난 일을 상세하게 설명했습니다. 하이야텔네포우스 공주의 도움으로 두 사람이 다시 만나게 됐다는 이야기도 빼먹지 않았습니다. 왕자도 헤어진 이후 겪었던 모든 일을 빠짐없이 이야기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공주는 시종을 보내 아르마노스 왕에게 찾아뵙겠다고 전하라고 했습니다. 왕은 낯선 여인과 아주 우아한 사내가 함께 집에 들어오는 걸 보고는 의아하게 생각했습니다. 공주는 왕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전하, 어제까지만 해도 저는 왕이었습니다. 오늘은 중국의 공주입니다. 그리고 샤자만 왕의아들인 카마랄자만 왕자의 아내입니다. 전하께서 저의 이야기를 들으신다면 그동안 전하를 속인 것을 책망하시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바두라 공주와 카마랄자만 왕자는 그동안 있었던 일을 소상히 설명했습니다. 왕은 아무 말 없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기만 했습니다. 이야기를 끝낼 무렵 공주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하, 이슬람에서는 한 남자가 두 아내를 거느릴 수 있게 돼 있습니다. 전하의 따님이신 하이야텔네포우스 공주를 저의 남편인 카마랄자만 왕자와 결혼하게 해 주십시오. 전하께 진 빚을 갑기 위해 왕비라는 공식 칭호를 공주에게 양보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르마노스 왕은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그는 카라말자만을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왕자여! 자네의 부인인 바두라 공주는 자네의 손을 다른 여인에게 나눠도 된다고 했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자네도 결혼에 동의하는가? 그리고 바두라 공주가 갖고 있던 국왕 자리를 자네가 물려받는 데 동의하는가?”
“전하, 저는 아무 것도 거절할 수가 없습니다.”
카마랄자만은 이에 따라 에보니 섬의 새 왕이 됐습니다. 그리고 하이야텔네포우스 공주와 결혼했습니다. 그녀는 매우 아름다운데다 재주도 뛰어나고 성격도 좋아 왕자가 거부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습니다. 두 여왕은 마치 친자매처럼 조화를 이뤄 행복하게 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