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 전 일입니다. 얼마나 오래 됐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팔렘방에 상 닐라 우타마라는 왕자가 살았습니다.
“사는 게 재미가 없군. 왕자면 뭐 하나? 심심해서 죽을 지경인데….”
왕자는 궁에서 안락하게 사는 것이 지겨워졌습니다. 그래서 부하들을 데리고 멀리 사냥을 가기로 했습니다. 처음에는 팔렘방의 영토 안에 있는 숲에서 사냥을 시작했습니다.
왕자는 아주 큰 사슴을 발견했습니다. 서둘러 화살을 쏘았지만 사슴이 재빠르게 피하는 바람에 명중시키지 못했습니다. 평소 활쏘기에 자신이 있었던 왕자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습니다.
“저 놈을 절대 놓치지 않겠다. 다들 사슴을 잡을 때까지 돌아갈 생각을 하지 마라.”
왕자와 부하들은 사슴의 뒤를 쫓았습니다. 사슴은 멀리 달아나 사라져버렸습니다. 왕자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근처 언덕에 올라가 주변을 살폈습니다. 멀리 사슴이 달아나는 게 보였습니다. 왕자는 사슴을 앞질러 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곳으로 말을 달렸습니다.
사슴을 잡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눈앞에 나타나더니 금세 사라져버리고, 다시 나타나더니 또 사라지기를 반복했습니다. 마치 일부러 도망가지 않고 왕자 일행을 약 올리려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왕자가 조금만 더 현명했더라면 사슴이 왕자를 어디론가 데리고 가려는 것임을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왕자가 사슴을 얼마나 쫓았는지 모릅니다. 그는 이미 팔렘방 영토를 벗어나 버렸습니다. 짙은 밀림이 이어졌습니다. 이곳이 누구의 영토인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처음 와 본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왕자 일행은 육지 끝까지 내달렸습니다. 말이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며 제자리에 멈췄습니다. 바로 앞은 절벽이고 그 아래는 바다였기 때문입니다. 이곳도 왕자가 처음 오는 곳이었습니다. 바다 건너에 희미하게 섬이 보였습니다. 섬도 왕자가 처음 보는 곳이었습니다.
“저 섬은 무엇이지?”
왕자는 곁에 서 있던 시종에게 물었습니다. 시종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육지 끝에 있는 바다 너머에 테마섹이라는 섬이 있다고 합니다. 이 섬이 바로 테마섹인 모양입니다.”
“테마섹이라고?”
왕자는 아주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는 낯선 섬에 건너 가보고 싶었습니다.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저 섬으로 건너가자. 서둘러 배를 만들도록 하라.”
왕자 일행은 급히 만든 배를 나눠 타고 바다를 건너갔습니다. 그때 심한 바람이 불고 파도가 높이 일었습니다. 부하들은 돌아가는 게 좋겠다고 말했지만, 왕자는 그냥 항해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풍랑은 더 거세졌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배가 뒤집어져 모두 죽을지도 모를 상황이었습니다.
“가지고 있는 짐을 모두 바다에 던져라. 낯선 사람들이 인사도 드리지 않고 들어섰다고 바다의 신께서 화가 나신 모양이다.”
왕자는 해신의 분노가 풍랑을 일으켰다고 생각했습니다. 부하들은 갖고 있던 모든 짐과 식량을 바다에 던졌습니다. 그래도 해신의 화는 풀리지 않았습니다. 이때 한 시종이 왕자에게 조언을 건넸습니다.
“왕자님, 머리에 쓰고 계신 왕관을 버리십시오. 그것이 이 배에 있는 어느 것보다 무겁고 귀중한 것입니다.”
왕자는 그 말을 들은 뒤 서둘러 왕관을 벗어 바다에 던졌습니다. 잠시 후 기적같이 풍랑이 잠잠해졌습니다. 바다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조용해졌습니다. 왕자 일행은 테마섹을 향해 다시 배를 몰았습니다.
왕자 일행은 힘들게 테마섹 해안에 닿았습니다. 그때 멀리 숲속에서 동물 한 마리가 왕자 일행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처음 보는 동물이었습니다. 머리는 검고 목은 희고 몸은 빨간 동물이었습니다. 낯선 동물은 왕자를 한참이나 노려보더니 숲으로 사라졌습니다.
“저것은 무슨 동물이냐?”
왕자는 부하들에게 물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한 시종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습니다.
“아주 웅장하면서 마치 왕관같이 생긴 동물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 동물을 사자라는 뜻의 싱가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왕자는 아주 웅장하고 멋진 동물이 사는 섬을 무척 좋아하게 됐습니다. 그는 싱가를 본 것을 아주 상스러운 징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 섬을 자신의 영토로 삼고는 궁전을 짓고 살기로 했습니다. 그는 부하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돌아가지 않겠다. 이곳에서 살 것이다. 이곳을 앞으로 싱가푸라라고 부를 것이다. 바로 사자의 도시다.”
우리는 살면서 상 닐라 우타마 왕자처럼 새로운 사슴을 만날 기회가 더러 있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사슴은 과연 무엇입니까? 사슴을 만나면 쫓아가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