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스칸디나비아에 우유처럼 하얀 피부를 가진 여인이 있었습니다. 젊고 발랄했으며 꽤 예뻤습니다. 치아는 반짝였고 눈은 맑았습니다. 춤출 때 발걸음은 매우 가벼웠습니다. 마음은 더 가벼웠습니다. 이름은 앤 리스베스였습니다.
리스베스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보기 흉측할 정도로 못 생긴 아기였습니다. 그녀는 아들을 가난한 날품팔이 가정에 맡기고 백작의 성에 들어갔습니다.
리스베스는 비단과 융단으로 장식한 아름다운 방에서 살게 됐습니다. 그녀는 백작의 아기를 돌보는 보모였습니다. 아기는 왕자처럼 섬세하고 귀여웠으며 천사처럼 아름다웠습니다. 그녀는 아기를 매우 사랑했습니다.
날품팔이의 집에 맡겨진 아기는 누구의 보살핌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곳에서는 냄비보다 입이 더 자주 부글부글 끓었습니다. 아기는 늘 울었습니다. 지칠 때까지 울다가 잠이 들곤 했습니다. 그러면 배고픔을 잊을 수 있었습니다. 아기에게 최고의 선물은 잠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렀습니다. 잡초들이 쑥쑥 자라듯 리스베스의 아기도 자랐습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애가 제대로 크지 못하는군.”
아이는 어릴 때부터 함께 살았던 날품팔이 가족의 구성원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가족은 리스베스로부터 양육비를 받았습니다. 그녀는 아들을 영원히 지워버리려 한 것이었습니다.
리스베스는 이른바 도시 여인이 됐습니다. 안락한 집도 가지게 됐습니다. 문밖에 산책하러 나갈 때에는 우아한 모자를 썼습니다.
날품팔이 가족을 보러 가는 일은 없었습니다. 도시에서 너무 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갈 이유도 없었습니다. 그녀의 아이는 이제 그 날품팔이 가정의 아이였습니다. 리스베스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제 제 밥벌이는 스스로 알아서 해야지.’
아이는 귀족인 마츠 씨의 소를 관리하는 일을 하게 됐습니다. 마츠 씨 저택의 문 앞에는 큰 개가 따뜻한 햇볕을 쬐며 개집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다 사람이 지나가면 짖는 게 개의 일이었습니다. 비가 오면 개집에 들어가 온기를 느끼며 비를 피했습니다.
아이는 햇빛이 좋을 때에는 들판의 담장에 기대어 그냥 잡초만 뜯곤 했습니다. 봄에는 맛있는 딸기가 열리는 딸기나무 세 그루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딸기나무를 생각할 때면 늘 희망이 부풀어 올랐습니다.
험한 날씨에 비가 내려도 담장에 앉아 흠뻑 젖어야 했습니다. 찬바람이 옷을 말려줄 때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귀족의 농장에 들어가면 매를 맞고 쫓겨났습니다. 그 집에서 일하는 하인과 하녀들은 이렇게 야단을 쳤습니다.
“여기는 너처럼 추하게 생긴 녀석이 들어올 곳이 아니야!”
아이는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것에 익숙해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 아이가 처한 상황이었습니다. 그의 운명은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걸로 정해져 있었습니다.
아이는 결국에는 땅에서 바다로 쫓겨났습니다. 그는 아주 낡은 배를 타고 바다로 갔습니다. 늘 키 옆에 앉아 있었습니다. 선장은 술통 위에 앉았습니다. 아이는 늘 더럽고 추했습니다. 항상 반쯤 얼어있었고 반쯤 굶주려 있었습니다.
늦은 가을 무렵이었습니다. 날씨가 거칠었습니다. 바람도 많이 불었습니다. 바람은 아무리 두꺼운 옷이라도 파고들 정도로 차가웠습니다. 바다에서는 더 심했습니다. 두 사람은 낡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습니다. 하루 종일 새벽처럼 어두웠습니다. 밤이 되자 날씨는 더 추워졌습니다. 선장은 술을 마셨습니다. 그 덕분에 몸을 따뜻하게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술병은 아주 오래 된 것이었습니다. 잔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잔 윗부분은 말짱했지만 아랫부분은 부서졌습니다. 그래서 잔을 세울 때 조심해야했습니다. 선장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술 한 잔은 사람을 편하게 만들지. 두 잔은 기분을 더 좋게 만들고.”
아이는 평소처럼 키 옆에 앉아 있습니다. 그는 갈라지고 터진 두 손을 꼭 잡고 있었습니다. 얼굴은 추했고 머리카락은 헝클어져 엉망이었습니다. 그는 장애인 같았고 멍청이 같았습니다. 교회에는 앤 리스베스의 아들로 등록돼 있었지만 현실에서는 날품팔이의 아이였습니다.
바람이 밧줄 사이로 거칠게 불었습니다. 배는 이리저리 흔들렸습니다. 돛이 바람에 크게 부풀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거친 날씨는 더 거칠어졌습니다. 선장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 녀석아! 잘 잡아야 한다.”
‘잡으라고? 뭘 잡으라고? 저기 뭐가 내리 친 거지? 저기는 뭐가 터진 거야? 누가 배를 붙잡고 있어? 배가 한쪽으로 기울었구나. 용오름은 또 뭐야? 왜 갑자기 바다가 이렇게 험해진 거지?’
소년은 키를 잡고 큰소리로 울부짖었습니다.
“하느님! 도와주세요.”
배는 바다 깊은 곳에서 툭 튀어나온 큰 바위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물웅덩이에 빠진 낡은 신발처럼 가라앉았습니다. 속담처럼 ‘사람과 쥐가 함께’ 가라앉았습니다. 갈매기와 물고기 말고는 아무도 가라앉는 배를 보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두 사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물이 배에 들어오자 두 사람은 공포에 떨었습니다. 마침내 배는 조금씩 가라앉더니 수면에서 2m 정도 아래에서 멈췄습니다. 뒤집어진 배 바닥과 수면 사이에 공기가 조금 남아있는 게 그들의 유일한 희망이었습니다.
둘은 그곳에 묻혔고 아무도 모르는 채 잊혀졌습니다. 다만 유리잔만 가라앉지 않고 떠 있었습니다. 잔은 이리저리 떠다니다 부딪혀 깨졌습니다. 잔은 그래도 주인의 사랑이라도 받았습니다. 아이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이 세상에 누구도 이렇게 말할 수는 없을 겁니다.
“나는 한 번도 사랑 받은 적이 없어요.”
리스베스는 여러 해 동안 도시에서 살았습니다. 그녀는 마담이라고 불렸습니다. 마차를 타고 다니며 백작 부인, 공작 부인과 어울렸던 과거의 우아한 날들을 생각할 때마다 긍지를 느꼈습니다.
리스베스의 아름답고 우아한 아이는 진정한 천사였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친절한 아이였습니다. 아이는 그녀를 정말 사랑했고, 그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둘은 서로를 무척 아꼈습니다. 아이는 리스베스에게 인생의 즐거움이었고, 두 번째 인생이었습니다.
이제 아이는 다 자라 열네 살이 됐습니다. 아주 잘 생겼고 똑똑했습니다. 그녀는 아이를 마지막으로 데려다준 이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여러 해 전에 백작의 저택에서 나와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곳에 다시 한 번 가봐야겠어. 나는 사랑하는 아이에게 가야 해. 아이도 나를 무척 보고 싶어 할 거야. 아이는 천사 같은 팔로 내 목을 감싸고 ‘앤 리즈’라고 부르지. 그 목소리는 마치 음악 같아. 아이는 늘 나를 생각하고 사랑하지. 그래, 가서 아이를 만나야 해.”
리스베스는 비싼 돈을 주고 마차를 불러 백작의 성으로 달렸습니다. 인근에서 내려 한참을 걸은 끝에 겨우 성에 도착했습니다. 성은 언제나처럼 웅장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정원도 달라진 게 없었습니다. 그러나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낯설었습니다. 아무도 리스베스를 몰라봤습니다. 그녀가 왜 왔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백작부인께서 내가 누군지 이 사람들에게 알려줄 거야. 내가 키운 그 아이도 마찬가지일 거고. 그 아이를 어서 보고 싶구나!’
리스베스는 여행의 종착점에 와 있었습니다. 그녀는 오랫동안 기다렸습니다.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원래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법입니다. 저녁 식사를 마친 뒤에 아이를 보기로 했습니다. 마침내 그녀는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곳에 성인이 된 아이가 서 있었습니다.
‘정말 키가 크고 날씬하군. 눈은 여전히 아름답고. 천사처럼 달콤한 입은 또 어떤지!’
아이는 리스베스를 쳐다봤습니다. 하지만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그녀를 못 알아본 모양이었습니다. 그는 그냥 가려고 했습니다. 그녀는 깜짝 놀라 그의 손을 잡고는 입에 갖다 댔습니다.
“알았어요. 알았어!”
아이는 이 말만 남기고 방에서 나갔습니다. 그는 그녀의 머릿속을 늘 가득 채웠던 아이였습니다. 가장 사랑했던 아이였습니다. 긍지를 느끼게 해준 아이였습니다.
리스베스는 성에서 나와 큰길로 갔습니다. 슬펐습니다. 아이는 아주 냉담했고 낯설게 행동했습니다.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이전에 오랫동안 아이를 밤낮으로 돌봤습니다. 심지어 꿈속에서도 돌봤습니다.
그때 커다란 검은 까마귀 한 마리가 총을 맞고 그녀 앞에 떨어졌습니다. 까마귀는 죽어가며 울부짖었습니다.
‘이게 무슨 불길한 조짐이람?’
리스베스는 날품팔이의 오두막 옆을 지나갔습니다. 날품팔이의 아내가 문 앞에 서 있었습니다. 둘은 서로 인사를 나눴습니다.
“좋아 보이시네요. 살이 많이 찌셨네요.”
“그래요?”
“배가 가라앉았대요. 두 사람도 함께. 선장 한스는 물론이고 아이도 익사했답니다. 그것이 끝이에요. 그 아이가 항상 몇 달러는 도와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당신은 더 이상 돈을 보내지 않아도 되겠어요.”
“두 사람이 익사했다고요.”
리스베스는 계속해서 같은 말을 되풀이했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사랑했던 백작의 아이가 냉담한 반응을 보여 리스베스의 기분은 우울했습니다.
‘백작의 아이를 보려고 이렇게 먼 길을 달려왔는데. 돈이 얼마나 많이 들었는데.’
리스베스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 일에 대해 날품팔이 아내에게 이야기를 한다고 마음이 가벼워질 것 같지 않았습니다. 나무에 앉아 있던 까마귀가 소리를 지르더니 그녀 머리 위로 날아갔습니다.
“새까만 악마 같으니라고! 오늘 나를 놀라게 해서 죽이려고 하는구나.”
리스베스는 집에서 나올 때 커피와 치커리를 가지고 왔습니다. 가난한 날품팔이 여인에게 주어 끓이게 하면 자선을 베푸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녀도 한 잔 마실 생각이었습니다. 날품팔이의 아내는 커피를 준비했습니다.
그 사이 리스베스는 의자에 앉아 잠이 들었습니다. 한 번도 꾼 적이 없는 꿈을 꾸었습니다. 정말 이상한 꿈이었습니다. 그녀가 낳은 아이가 날품팔이의 오두막에서 굶주린 채 울고 있었습니다. 그는 더위와 추위에 번갈아가며 시달리더니 결국 바다 깊은 곳에 가라앉았습니다. 그곳이 어딘지는 하늘만 알았습니다.
리스베스는 오두막에 앉아 있는 꿈도 꾸었습니다. 꿈속에서 날품팔이 아내는 커피를 내리고 있었습니다. 볶은 커피 향이 정말 좋았습니다. 갑자기 문지방에 아름다운 젊은 유령이 나타났습니다. 백작 아이만큼 귀여운 아이였습니다. 이 유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이 사라지고 있어요. 저를 꼭 붙잡아 주세요. 어쨌든 당신은 제 어머니잖아요. 그리고 하늘의 천사를 잘 아시잖아요. 꼭 붙잡아 주세요.”
어린 유령은 리스베스를 향해 손을 뻗었습니다. 하지만 엄청난 충돌이 벌어졌습니다. 세상은 산산조각 났습니다. 유령은 그녀의 소매를 꼭 붙잡고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그녀는 땅에서 위로 끌려올라갔습니다. 그때 알 수 없는 게 발을 아래로 잡아당기고 있었습니다. 여인 수백 명이 발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당신이 구원을 받는다면 우리도 구원을 받아야 해. 꼭 붙잡아 줘. 꼭 붙잡아 줘.”
여인들은 그녀의 발을 꼭 붙잡았습니다. 수는 정말 너무 많았습니다.
찌직! 찌익!
결국 소매가 찢어졌습니다. 리스베스는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눈을 떴습니다. 그녀는 앉아 있던 의자에서 떨어지기 직전이었습니다. 너무 놀라 무슨 꿈을 꿨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끔찍한 꿈이었다는 건 분명했습니다.
날품팔이의 아내가 커피를 가져왔습니다. 두 사람은 한참이나 잡담을 나눴습니다. 리스베스는 마차를 모는 마부를 만나기로 했던 작은 마을로 갔습니다. 그런데 마부가 엉뚱한 소리를 했습니다.
“내일 저녁까지는 출발하기 어렵겠네요. 준비가 안 됐어요.”
리스베스는 기다릴 경우 들어갈 비용을 생각했습니다. 여러 가지로 고민해보니 바다를 따라 걸어가는 게 내륙으로 가는 것보다 거리가 3㎞ 정도 짧을 것 같았습니다. 날씨는 맑았습니다. 밤하늘에는 달이 떠 있었습니다. 그녀는 걸어가기로 결심하고 바로 출발했습니다.
‘내일이면 도착할 수 있을 거야.’
머지않아 해가 졌습니다. 마을 교회의 탑에서 저녁 종이 울렸습니다. 종소리는 멀리 퍼져 나갔습니다. 가만히 들어보니 종소리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습지의 개구리 울음소리도 들렸습니다. 잠시 후 종소리는 물론 개구리 울음소리도 사라졌습니다. 세상은 갑자기 조용해졌습니다. 새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다들 쉬러 간 모양이었습니다. 심지어 올빼미도 집에 들어간 것 같았습니다. 아주 깊은 침묵이 숲과 바닷가를 뒤덮었습니다.
리스베스는 백사장을 걸었습니다. 파도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깊은 물에서 나온 모든 것은 침묵 속으로 가라앉았습니다. 살아 있는 것이든 죽은 것이든 모두 조용했습니다. 그녀는 그야말로 무념에 빠져 걸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생각은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생각은 그녀에게서 먼 곳에서 흔들리는 게 아니었습니다. 생각은 단 한 번도 그녀에게서 떨어진 적이 없었습니다. 다만 잠들어 있을 뿐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소란을 피우지 않던 생각들이 갑자기 밖으로 튀어나왔습니다. 때로는 가슴에서, 때로는 머리에서 분탕질을 시작했습니다. 때로는 위에서 떨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선한 행동은 축복의 열매를 낳는다고 합니다. 죄악의 벌은 죽음이라고 합니다. 모든 미덕과 악덕은 우리의 가슴에 들어 있습니다. 나의 것일 수도 있고 당신의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마치 곡식 씨앗 같은 것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햇빛 한 줄기 덕분에 또는 악마의 손짓 한 번에 밖으로 튀어나옵니다. 골목길을 오른쪽, 또는 왼쪽으로 돌았을 때 그곳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리스베스는 감각을 반쯤 잃은 채 걸었습니다. 생각은 안에서 끓어오르고 있습니다. 시간은 참회의 화요일에서 다음날로 이어지는 무렵이었습니다. 많은 것이 잊혀 있었습니다. 하늘과 이웃과 양심에 대한 죄였습니다. 우리는 이런 것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리스베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리스베스는 인간의 법을 어기지는 않았습니다. 매우 존경받고 명예롭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바닷가를 따라 걷고 있을 때 그녀는 무엇을 보았을까요? 낡은 모자였습니다. 남자 모자였습니다.
‘어디서 쓸려왔을까?’
리스베스는 가까이 가서 모자를 살폈습니다.
‘저건 뭐지?’
마치 시체 같은 게 보였습니다. 그녀는 몸을 떨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수초 더미였습니다. 긴 바위에 걸려 있었습니다. 그녀는 몸을 돌려 다시 걸었습니다. 그때 날품팔이 아내가 한 말이 생각났습니다.
‘아이가 바다에 빠져 죽었어요.’
갑자기 바닷가의 유령 이야기, 물에 빠져죽은 귀신 이야기, 시체가 바다로 쓸려가 묻히지 못한 사람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죽은 아이의 시체는 아무에게도 해를 끼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영혼은 외로운 떠돌이에게 달라붙어 끝까지 따라다닐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로 데려가서 무덤에 안식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구할 수 있습니다.
“나를 꼭 붙잡아줘요. 나를 꼭 붙잡아줘요.”
귀신은 이렇게 외칠 수도 있습니다. 리스베스는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그녀가 꿈속에서 봤던 게 갑자기 떠올랐습니다. 세상이 무너지는 와중에 그녀의 발에 매달린 여인들, 찢어진 소매, 끔찍한 순간에 어머니를 잡고 싶었던 아이의 강력한 손아귀. 그녀가 한 번도 사랑한 적이 없었던 아이가 바다에 누워 있었습니다. 물에서 마치 유령처럼 일어나면서 울먹였습니다.
“제 손을 잡아주세요. 저를 묻어주세요.”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쳐지나가는 동안 공포가 리스베스의 발밑으로 몰려왔습니다. 그녀는 빨리 걸었습니다. 공포는 그녀 앞에 다가와 축축하고 차가운 손을 그녀 가슴에 대었습니다. 그녀는 기절할 지경이었습니다.
리스베스는 바다 너머를 보았습니다. 모든 게 어두웠습니다. 짙은 안개가 덮여 있었습니다. 잡목은 물론 큰 나무도 모두 덮고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세상은 정말 괴기한 형태로 변했습니다. 그녀는 몸을 돌려 하늘 높이 떠 있는 달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아주 창백하고 빛이 없어 보였습니다. 죽음 같은 무게가 그녀의 팔다리를 누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라스베스는 다시 달을 보았습니다. 하얀 달의 얼굴이 그녀 바로 앞에 내려온 것 같았습니다. 안개는 그녀의 어개를 창백한 옷처럼 덮었습니다. 귀에 속이 텅 빈 것 같은 이상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까마귀나 개구리 소리는 아니었습니다. 근처에 생명체라고는 없었습니다.
“나를 꼭 잡아줘요. 성스러운 땅에 데려가서 묻어주세요. 무덤을 파 주세요. 제 무덤을.”
리스베스 아이의 유령의 목소리였습니다. 바다에 누워 있는 아이의 목소리였습니다. 아이는 교회에 묻히기 전에는 안식처를 찾을 수 없는 유령이었습니다. 교회로 가서 땅을 파야 했습니다. 그녀는 교회를 향해 걸어갔습니다. 그러자 심장을 짓누르는 무게는 가벼워졌습니다. 다시 집 쪽으로 방향을 돌리자 유령의 목소리가 또 들렸습니다.
“나를 꼭 잡아줘요. 나의 무덤을 파 주세요.”
안개는 춥고 축축했습니다. 리스베스의 손과 얼굴은 공포 때문에 축축해지고 차가워졌습니다. 엄청난 무게가 다시 그녀를 누르고 붙잡았습니다. 이전에는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엄청나게 넓은 생각의 공간이 마음속에 생겼습니다.
리스베스는 온갖 생각을 다 했습니다. 생각에 사로잡혀버렸습니다. 생각의 바다에 빠져버렸습니다. 그녀는 땅을 기어갔습니다.
“무덤을! 나에게 무덤을 파주세요.”
리스베스의 귀에는 유령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렸습니다. 무덤이 그녀의 모든 행동을 잊게 해준다면 기꺼이 묻힐 생각이었습니다. 이것이 그녀에게는 첫 자각의 시간이었습니다. 고통과 고뇌로 가득 찬 시간이었습니다.
이번에는 미신이 리스베스를 떨게 했습니다. 그녀의 피는 열병처럼 타오르게 했습니다. 말하고 싶지 않았던 많은 일이 그녀의 마음에 떠올랐습니다.
밝은 달빛을 가진 구름의 그림자처럼 조용히 유령이 그녀를 스쳐 지나갔습니다. 깡충 뛰는 말 네 마리였습니다. 눈과 코에서는 화염이 튀어나왔습니다. 말들은 시뻘겋게 달아오른 전차를 끌었습니다.
전차에는 100년 전 이 땅을 차지했던 사악한 주인이 앉아 있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매일 밤 12시에 주인은 말들이 이끄는 전차를 타고 성으로 달립니다. 그는 죽은 사람처럼 창백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석탄처럼 새까맣게 보였습니다. 그는 리스베스를 보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꼭 잡으시오. 그러면 다시 귀족의 마차에 올라탈 수 있을 거요. 당신 아이는 잊어버리시오.”
리스베스는 다시 기운을 차려 교회의 정원으로 달려갔습니다. 검은 십자가와 검은 까마귀가 춤을 추었습니다. 그녀는 두 개를 구분할 수 없었습니다. 까마귀는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낮에 본 그대로였습니다. 지금은 새가 무슨 말을 하는지 그녀는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까마귀 엄마야! 나는 까마귀 엄마야!”
리스베스는 그제야 그녀에게 이름이 주어졌다는 걸 알았습니다. 무덤을 파지 않는다면 검은 새로 변해서 까마귀처럼 울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녀는 땅에 몸을 던졌습니다. 손으로 정원에 무덤을 팠습니다. 손가락에서 피가 터졌습니다.
“무덤을! 나에게 무덤을!”
유령은 여전히 울부짖었습니다. 일을 끝내기 전에 수탉이 울어서 첫 빨간 빛이 동쪽에서 나타나지 않을까, 그래서 그녀가 사라지지 않을까 두려워졌습니다. 마침내 수탉이 울었습니다. 동쪽에서 날이 밝아왔습니다. 무덤은 겨우 반쯤 판 상태였습니다. 그녀의 머리와 얼굴 위로 차가운 손이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가슴으로 내려왔습니다.
“이제 겨우 절반 밖에!”
유령의 목소리는 울부짖었습니다. 그리고 사라졌습니다. 바다 너머로 사라졌습니다. 지치고 힘이 부친 리스베스는 땅에 쓰러져 의식을 잃었습니다.
리스베스가 눈을 뜬 것은 한낮이었습니다. 두 남자가 그녀를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그곳은 교회 정원이 아니었습니다. 바닷가였습니다. 그녀는 모래사장을 팠던 것이었습니다. 깨어진 유리잔 때문에 손을 다쳐 피가 흘렀습니다. 깨져 날카로운 유리 모퉁이는 작은 나무토막 사이에 끼어있었습니다.
리스베스는 열에 시달렸습니다. 양심이 미신의 카드와 뒤섞였습니다. 그리고 여러 카드를 내놓았습니다.
‘내게는 영혼이 절반뿐이야. 아이가 절반을 바다로 가져갔어.’
리스베스는 영혼의 절반을 다시 찾을 때까지 하느님의 자비를 구할 수 없었습니다. 영혼의 절반은 바다 깊이 빠져 있었습니다. 그녀는 이전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예전의 리스베스가 아니었습니다. 그녀의 생각은 엉킨 실타래 같았습니다.
‘바다의 유령을 교회 정원으로 데려가서 무덤을 파야 해. 그래야 내 영혼을 되찾을 수 있어.’
리스베스는 매일 밤 집에서 나갔습니다. 그녀가 늘 발견된 것은 그 바닷가였습니다. 그녀는 유령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1년이 흘렀습니다. 어느 날 그녀는 다시 집에서 나갔습니다. 이번에는 아무도 그녀를 찾지 못했습니다.
저녁 무렵 교회의 서기가 저녁 종을 울리러 교회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제단 근처에서 리스베스를 발견했습니다. 그녀는 하루 종일 그곳에 있었습니다. 완전히 기진맥진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눈만은 아주 밝게 빛났습니다. 뺨은 홍조를 띠고 있었습니다.
서쪽으로 기우는 마지막 햇빛이 리스베스의 머리 위에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제단 위에 놓인 성경의 잠금장치에서 반짝 하고 빛이 나왔습니다. 갑자기 성경이 펼쳐졌습니다. 예언자 요엘서의 구절이었습니다.
“네 옷이 아니라 네 마음을 숙여라. 그리고 신을 바라보라!”
그야말로 우연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늘 이렇게 말합니다.
“많은 일이 우연히 일어나지요.”
햇빛이 비친 리스베스의 얼굴에 평화와 안식의 기운이 보였습니다. 그녀는 정말 행복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전날 밤 바닷가의 유령을 다시 만났습니다. 아이가 온 것이었습니다. 유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 무덤을 절반밖에 파지 못하셨어요. 1년하고도 하루가 지났습니다. 그동안 어머니는 가슴에 저를 묻었습니다. 그곳이야말로 어머니가 아기를 가장 잘 숨길 수 있는 곳이에요.”
유령은 리스베스에게 잃어버린 영혼 절반을 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를 교회에 데려놓았습니다.
“저는 지금 하느님의 집에 있답니다. 이 집에서 우리는 행복하지요.”
해가 졌습니다. 리스베스의 영혼은 더 이상 고통이 없는 곳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녀의 괴로움은 이제 끝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