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은 파리에서, 사는 것은 루앙에서"
노르망디는 일반적으로 프랑스 사람들이 소개할 때 자연을 빼놓지 않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다들 시골 마을에만 모여 살 것처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은 도시가 있다면 바로 이곳입니다. 파리에서 약 140km 떨어진 도시로, 프랑스에서는 인구 10만이 넘는 상당한 규모를 가진 도시로 생각을 하고요, 이 지역은 노르망디 지역의 수도입니다.
도시의 입구로 들어서게 되면 벌써부터 공장들의 풍경이 방문자들에게 이질감을 더하는 도시이지만, 골목 속으로 들어가면, 유럽의 15세기 시절 오래된 저택의 풍경이 여행자들에게 반전 매력을 주는 곳입니다. 게다가, "인상파"라고 지칭하는 화가들이 자주 와서 그림을 그렸던 장소들이 많아서 예술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파리에서 2시간여 차를 타고 도착할 수 있는 곳이니 당일치기로도 오실만한 곳이지요.
루앙 Rouen은 "노르망디"라고 하는 지역의 역사와 같이 하는 곳입니다. 프랑스어의 노르망디 Normandie는 Normand에서 유래되어서 (Hommes du Nord ) 북의 사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8세기경 샤를마뉴 통치 이후 이후에도 북쪽에서 온 바이킹들이, 침략을 해왔고 그들은 앞선 선박 기술로 자유롭게 다양한 지역들을 갈 수 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쉽게 북해와 노르망디 바닷가 manche를 거쳐 센 강으로 육지까지 들어서, 파리까지 습격하게 됩니다.
그래서, 911년 서 프랑크 왕국 샤를 3세는, 바이킹 두목이었던 롤로 Rollo를 노르망디 공으로 세우고, 약탈을 중지하는 조건으로 생 클레르 쉬레프트 조약Traité de Saint-Clair-sur-Ept을 맺어 그들에게 일부 땅을 내어준 것이 노르망디 역사의 시작입니다.
롤로는 Rolf, Göngu, robert 등의 이름이 있는 데, Göngu라고 하는 뜻은 걸어 다니는 사람이라는 뜻이고, Robert는 세례명으로 야만인으로 묘사될 수 있는 바이킹에게, 종교와 안정적인 터전을 준 곳이, 바로 루앙입니다.
루앙 대성당 Notre-Dame-de-l'Assomption de Rouen은 지역의 역사와 함께 한 곳으로, 웅장한 크기에 많은 사람들이 압도당하는 지역의 상징적인 건물로, 루앙에 들어오면서 누구나 이 건물을 보게 됩니다.
그리스도교 초기 역사의 같은 연대인 4세기경 성당이 있던 자리에 바이킹의 롤로는 이곳에서 와서 성당을 부수게 됩니다. 하지만 915년 이곳에서 세례를 받고, 세례명을 Robert로 받아서 결국 새로 지은, 이곳에 묻히는 영광을 얻게 됩니다. 루앙 대성당에는 고딕 양식이지만 연대가 각자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구조는 중앙의 첨탑과 왼편의 생 로망 타워, 오른쪽의 버터 타워로 구조가 각기 다른 형태로 남는 것이 특징입니다.
버터 타워 la tour de Beurre 16세기에 건설된 곳인데, 사순절 기간(Lent, 예수님의 고난을 생각하면서 부활절 전, 일요일을 제외한 40일간의 금욕적인 생활을 하는 기간)에 버터 상인들에게 매겼던 세금으로 세워졌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복잡해 보이는 성당에 어이없는 이야기가 담겨 있는 게, 재미난 요소라고 보입니다.
루앙은 종교 전쟁, 프랑스 혁명, 허리케인, 세계 2차 전쟁을 경험하고도 지금과 같은 형태가 남아 있다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고 볼 수 있고, 어려움을 극복하고 현재 모습으로 남을 수 있도록 한 것도 이 사람들의 엄청난 노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모네가 1892년부터 약 2년간 이곳에서 30여 점의 그림을 그렸던 배경지이도 한데, 모네가 루앙 대성당을 그리고 나서 그제서야 "연작을 제대로 이해"했다고 합니다. 이후부터 그 유명한 수련 Les Nymphéas의 완성도가 높아지고, 생애 최고의 걸작 말년의 수련까지 이어집니다.
성당을 바라보다가 반대편을 돌려보면, 오래돼 보이는 화려한 장식의 건물이 보이는데, 이곳은 건물 전체가 루앙 관광안내소로 쓰이는 곳입니다. 루앙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인데, 한국에 대해서 호의적이신 분들이 계셨습니다. 19세기에, 지역의 유명 상인의 건물이었는데 모네는 루앙 대성당이 잘 보이는 자리를 찾아다니다가 한국식으로는 2층, 프랑스 식으로는 1층에 본인의 작업실을 두고, 이곳에서 30점 중 9점을 그려냅니다. 지금은 일반인들에게는 개방되어 있지 않는 곳입니다.
다른 건물과 다르게, 창문이 크기 때문에 쉽게 성당 외관을 볼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시간대별로 각 그림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몇 시에 그림을 그렸는지 알 수 있게 하는 표지판 있었고, 그것을 통해서 모네의 "시간과 대기를 관찰하는 감각"이 얼마나 예민한 지 알 수 있은 곳입니다.
관광안내소 옆 길로, 대 시게 길 rue gros horloge을 따라 쭉 걸어가다 보면, 고풍스럽고 금빛의 시계를 만나게 됩니다.
대시계탑 Gros-Horloge으로,기존에 중세 시대의 시간을 알려주는 종탑이 있었던 자리에 14세기에 시계가 생겨났습니다. 단조로운 형태의 시계에 르네상스 형태의 금빛 장식이 더해져서 완성도 높은 지금과 같은 형태가 만들어졌고, 분침 없이 시침으로만 시간을 알려주고 있고, 시기적으로 비슷한 평가를 받는 웰스 대성당의 시계보다 2배 정도 크다는 점이 높이 평가할 점입니다.
이 시계가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단순히 시간만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데요, “황소의 눈”이라고 불리는 둥근 원형은 달의 변화까지 나타낸 다고 합니다. 시침의 바늘 뒤에 이글거리는 태양을 움직임을 볼 수 있는데 24개로 24시를 나타내고요, 로마자로 6의 아래에는 각 요일에 해당하는 그리스 신화의 신들의 모양이 바뀌면서 요일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해요.
길을 따라 쭉 걸어가다 보면 루앙에서 가장 번화한 길로 여러 상점들을 볼 수 있고, 여행자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데, 길 끝에 특이한 건물을 만나게 됩니다.
이곳은 잔다르크 성당이 있는 비유 막쉐 vieux marche , 구 시장 광장입니다. 잔 다르크는 영국 프랑스의 100여 년 전쟁 가운 데, 승리를 이끌었던 원동력이었고 가장 큰 공헌을 했다고 볼 수 있는 데, 브르고뉴 군에게 사로잡혀서 영국군에게 팔립니다. 그리고 1431년 5월 30일, 신의 음성을 들었다고 하여 마녀로 판결 받아 화형 당했던 장소입니다.
나는 분명히 프랑스를 구하라는 신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신의 음성을 듣는 것은, 신의 대리자인 교황이나 대 주교 등의 성직자들만 가능한데, 이를 들었다고 하는 잔 다르크는 일반 사람들은 불가능한 일을 했기에 "마녀"가 되고, 완전히 죽이려면 불태워야 하기 때문에 화형을 당해서 시체나 무덤조차 없게 됩니다. 화형 당한 후, 재 가루를 센 강에 뿌렸습니다.
1979년 그녀를 기념하면서 교회를 세웠는데요, 지붕의 모양을 눈여겨보면 한 쪽으로는 노르망디 지역을 점령했던 바이킹족의 배를 뒤집어 놓은 모양과 잔다르크가 화형당한 불꽃 모양으로 보이는 것이 특징입니다. 성당 내부는 2차 세계 대전 때 없어진 16세기 생 방생 saint vincent 교회의 스타인 글라스를 가져와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습니다.
광장 주위를 둘러보면, 지역의 오래된 집들이 보이는데 노르망디에서 발달한 하트 팀버(Half Timber, Colombage프) 양식입니다. 목조와 진흙 벽돌들이 어우러진 모습으로 성당 주변과는 또 다른 전통적인 모습을 보여주는데요, 루앙에서 가장 오래된 지역입니다. 눈을 다양한 색의 집들 가운데 하나 가장 오래된 집이 보이는 데, 단체 관광객들이 그 앞에서 무언가를 설명해 주는 듯합니다.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식당으로 최초에는 1345년 처음 연 여인숙이 이제는 식당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식당은 프랑스 하면 떠오르는 미식 gastronomie이라는것을 전 세계에 알렸던 곳이기도 합니다.
라 쿠혼느 La couronne /31 Place du Vieux Marché, 76000 Rouen
https://www.lacouronne-rouen.fr/
라쿠혼느라는 식당인데 왕관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식당 종업원이 창밖으로 잔다르크가 고문당하는 것을 구경했다고 알려져 있을 정도로 루앙의 역사와 함께 한 식당입니다. 특별히 프랑스의 미식을 미국 사람들에 전파한 사람이 바로 줄리아 차일드 Julia child인데, 그분이 처음으로 프랑스 음식을 접한 곳이기도 합니다. 이곳의 식당을 맛보고 난 뒤에 미국으로 돌아가 식당을 세웠는 데, 2차 세계 대전 이후 부유한 미국 부호들에게 프랑스라는 곳에 대한 이미지가 확실하게 심어지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내부에는 수많은 유명 인사들이 오갔던 흔적이 보입니다. 영국의 빅토리아 왕비, 브리짓 바르도, 캐내디 대통령, 그레이스 켈리 등 전 세계 유명 인사들의 사진을 모아놓았는 데요, 특별히 매니저 분과 이야기를 해보니, 살바도르 달리가 이 식당을 그렇게 고집해서 찾아왔었다고 합니다. 지금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이곳에 와서 올랑드 대통령과 만찬을 했는데, 식당의 모든 요리를 시식하듯이 맛보고 갈 정도로 지역의, 아니 프랑스에서 유명한 식당입니다. 지금의 미식의 모든 식당들의 원조격이네요.
프랑스에는 어느 정도 규모가 되는 도시마다 시립 미술관이 있는 데, 노르망디의 수도인 루앙에도 당연히 있습니다. 이곳에는 어떠한 작품들이 있는지 발길을 시립 미술관Rouen musée beaux arts으로 옮겨봅니다. 비유 막쉐 광장에서 15분여 걷을 면 도착할 수 있습니다. 루앙도 역사지구로 되어 있는 도시이기 때문에 도보로 이동하는 것이 차량보다 빠릅니다.
나폴레옹 1세에 의해서 1801년 탄생되어서 15세기부터 20세기까지의 작품들 위주로, 총 8천여 점을 전시하고 있는 데 "파리 다음으로 제일 완벽한 미술관"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지금 건물은 1888년 완공되었고, 1909년부터 인상파 작품을 선구적으로 모으고 있는 박물관입니다.
최근(2020년 3월) 방문할 때까지만 해도, 무료입장이었는데도, 벨라스케스, 카라바지오, 얀톤 반 다이크 를 비롯해 제리코, 르느와로, 시슬레, 모네 등 미술사 역사에서 등장하는 유명인들의 작품이 있는 곳이어서 꼭 가볼 한 한 곳 입이다. 그중 모네의 작품은 많지는 않지만 "루앙 대성당 연작" 30여 점 가운데 가장 큰 그림이 이곳에 보관되어 있어서, 그림의 배경 장소인 대성당을 보고 이곳에 와서 실제로 확인한다면 여행을 더 풍성하게 해주는 장소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루앙을 떠나면서, 시내 전경을 볼 수 있는 곳으로 향합니다. 중심부인 성당에서 도보로 30분여 올라오면 갈 수 있는 곳인데요, 생 카트린느 언덕 colline saint catherine이라고 불리는 곳입니다.
<생카트린느 언덕에서 본 풍경, 모네의 그림>
올라오면 왼편에는 센 강이 보이는데 도시를 20KM나 감싸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제일 크게 보이는 성당이 루앙 대성당, 그리고 오른쪽에 말쿨루 성당도 보입니다.
제가 이곳에 온 이유는 모네가 1892년 이곳에 와서 대성당 그리면서 이곳에 올라와 전체 풍경을 그림으로 남겼다고 해서 입니다. 모네는 루앙 대성당과 그 옆의 말쿨루 성당만 그리고 나머지는 희미하게 본인이 강조하고 싶어 하는 부분만 확실한 형태로 그려냅니다. 이제는 그림을 보이는 대로 그리는 게 아니라 "화가의 의도"한대로 그리는 현대 사회의 예술로 넘어가는 중간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소입니다.
노르망디의 수도, 루앙 프랑스 발음으로 후앙Rouen에 들러보았는데, 이제는 노르망디를 대표하는 바닷가로 가 보려고 한다.
* 2020년 여름에 방영 예정인 폴라리스 TV 노르망디 낭만도시편에서 조금 더 자세히 만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