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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남일 도슨트 Mar 10. 2020

노르망디의 무지개 같은 매력의 도시, 페캉Fécamp

이제는 새로운 곳

 노르망디는 다채로운 매력의 곳이다. 가장 유명한 몽생미셀Le mont saint michel부터, 모네의 마지막 마을 지베르니giverny. 혹시 목적지까지 차를 타고 가다가 시간이 남아서 혹은 길을 잘못 들어서 잘 모르는 도시에 들리게 되더라도 볼거리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렇게 하다가 도착한 곳, 바로 페캉Fécamp이다.


<페캉의 바닷가, 노르망디의 다채로운 구름이 가득한 하늘, 그리고 바다의 자갈>

  망슈manche 노르망디 바닷가에 예수님의 피가 담긴 무화과나무 통이 오면서 성지 순례자들이 성혈聖血이 찾아서 유명해진 도시다. 내려져 내려오는 전설에 따르면 아라마대의 요셉이 예수님의 시체를 장사 지내면서 일부를 담았는데 떠내려왔다는데, 그래서 페캉Fécamp의 도시 이름은 무화과나무가 머문 곳 Fici-campus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혹은, 또 다른 전설에는 9세기 Fiscannum이라고 지역이 표시되면서 게르만족의 언어인 Fisc 이후 영어의 fish생선이 되는 단어에서 유래되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알바르트 해안가의 절벽, 페캉>


  알바트르 해안가Côte d'Albâtre는 백색의 석회암 침식 절벽인데 디에프부터 르아브르까지 120KM나 이어지는 곳인데, 대표적인 곳이 코끼리 바위로 잘 알려진 에트르타 Étretat이다. 페캉 Fécamp은 16KM, 차로 약 20분 정도 떨어져 있다. 에트르타에는 한국인이 많았는데, 멀지 않은 이곳은 하늘의 별따기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활발하게 교수와 방송인 이다도시 Ida Daussy의 고향이기도 하다. 관광안내소에서는 명찰에 한국어로, 그리고 한국말을 조금 할 줄 아는 그녀의 친척이 있기도 했다.


클로드 모네Claude Monet는 1881년 이곳으로 찾아왔는데, 그가 찾아올 시절인 1880년부터 파리의 생활을 정리하고, 본인의 제2 인생을 설계하기 위해서 새로운 작업실을 구하던 중이었다. 세느 강변을 따라서 그림을 그리다가 노르망디 해안가를 집중적으로 그리기 시작하는 데. 나이 40살이 넘어가면서 정서적인 안정과 새롭게 아름다운 곳을 찾아 이곳저곳을 다니다가 온 페캉 Fécamp의 바다는 마치 모네에게 아름다운 자연의 색과 걱정을 벗어버리게 하는 시원한 바람과 파도를 선물해 준 것 같다.


<1881 페캉의 바다, 모네>


<파도가 심하게 몰아치는 날의 페캉>


  사람들은 공장이 있는 항구에도 가득한데, 한쪽 절벽을 돌려보면 특이한 풍경이 사로잡는다. 무언가 익숙해서 기억을 더듬어 보니 웨젠 부댕의 그림의 지역이다. 모네는 스승의 역할을 했던 부댕의 발자취를 따라서 그가 그림을 그렸던 장소들을 따라갔었는데, 이 시기의 모네는 이미 대서양을 건너서 명성이 잘 알려진 청출 어람의 존재가 되어 버렸다. 이제는 모네의 발자취를 외젠 부댕이 따라간다.


<외젠부댕 외항 1891, 모네가 다녀간지 10년뒤에 도착했다>


<보는 위치에 따라 다른 페캉의 절벽 외젠 부댕의 그림의 자리>


  거친 파도와 바람 덕에 햇변가를 걷기도 쉽지 않았지만, 전혀 그 바람이 싫지 않았다. 페캉에는 전체 풍경을 잘 볼 수 있는 언덕이 있다 바로, 파그네 곶Cap agnet이다. 알바트르 해안가 가운데 가장 높은 곳으로 지역을 잘 내려다볼 수 있다. 마을 관광안내소가 있는 항구에서 도보로 절벽 위를 보면서 30분여 오다 보면 간판들이 있고 자연스럽게 도착할 수 있다. 물론 차로도 올라갈 수 있다.


<언덕에서 내려다보이는 페캉시내>

  한 편의 화가들의 그림을 보는 듯한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의 풍경들에 반할 수밖에 없다, 페캉은 어항으로서 프랑스에서 19세기에는 대구 생선이 오는 가장 큰 곳이 되기도 했다. 청어Hareng에 대한 명성은 10세기부터 시작되어서 지금도 항구 옆에는 절인 청어 공장이 자리 잡고 있다.

<노르망디 망슈Manche 바닷의 에메랄드 빛깔>


  빛의 화가인 모네도 이 지역을 보고 반한게 틀림이 없는 것 같다. 파도가 움직임에 따라서 조금씩 보이는 흰색을 절대 놓치지 않았다. 강항 바닷가의 바람과 자주 오는 비로 청정 지역이다.


<파그네 곳위에서 본 알바르트 해안가, 디에프 방향>




1881 클로드 모네 페캉


 마을의 언덕과 반대편에는 성당이 있다. Notre dame de Salut 구원의 성당으로 노르망디의 공작. 로베르(Robert duc de normandie)가 풍량을 만나서 난파당했다가 살아남은 계기로 인해서 세워진 3개의 예배당 중 하나이다. 지금도 선원들이 무사기원(Bon vent, et bonne mer, 좋은 바람을 그리고 편안한 바다를)을 위해서 기도하고 떠나는 곳이다.


<Notre dame de Salut 구원의 성당>


투박하지만 바람을 이겨내기 위해서 뾰족하게 만들어진 성당 구조의 꼭대기의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의 상이 인상적이다.


<성당 내부>


성당 내부에는 이제는 어업을 떠나지 않는 사람들이 또 다른 간절한 마음을 담아서 초를 켜놓고, 간 흔적들이 가득하다. 2차 세계 대전의 격전지였던 이곳은 독일군의 주요 점령지 중 하나였기 때문에, 마을의 희생자들의 이름과 예수의 대신 희생을 상징하는 그림들(피에타, 마리아의 슬픔 / 예수의 처형)이 있다. 간절한 마음이 느껴지는 초들 이 반겨주는 곳이다.


이렇게 떠나기가 아쉬워서, 페캉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식전주로 유명한 곳이 있다고 해서 발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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