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내향인
화려하게 외모를 치장한 사람은 내면의 초라함을 감추기 위함이고, 까칠한 말투와 행동은 내면의 약함을 감추기 위함이다. 우리는 모두 약한 부분을 감추기 위해 조금씩 자신을 다르게 치장을 하고 있다.
어릴 적 덧니가 심한 나를 보며 엄마는 "덧니가 보기 싫으니까 손을 가리고 웃어"라며 나를 꾸짖었기 때문에 항상 입을 가리는 게 습관이 되고 웃더라도 크게 웃음을 지어본 적이 많이 없다. 그러다 보니 웃는 게 자연스러울 리 없었다. 늘 입을 오므리고 작게 웃는 게 버릇이 되다 보니 "쟤는 왜 잘 안 웃어?"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예민한데 소심한 나는 적은 말수와 웃음기 없는 표정으로 늘 싸가지없다는 오해를 사고는 했다. 게다가 작고 약해 보이는 외형을 가진 나는 친구들 사이에 주눅이 드는 것이 싫어 말투까지 차가웠으니 당연히 싹수없게 보였을 것이다.
예민한데 소심하기까지 한 나는 친구가 많은 외향적인 사람들을 동경해 왔다. 그래서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나로 살겠다며, 꽤 활발하게 지내왔다. 하지만 본성은 못 숨긴다고 했던가. 잠시 잠깐은 변한 척할 수 있지만, 졸업을 앞두고는 그 많던 친구들과도 소원해지며 결국에는 소수의 진짜 친구들만 남게 되었다. 이처럼 사람의 본성은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다.
'혼자 있고 싶은데 외로운 건 싫어'라는 책이름처럼 사람은 늘 이중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다. 현재의 나보다는 좀 더 나은 나를 기대하지만, 결국엔 본성에 가로막힌다.
예전에 오은영 금쪽상담소에 배우 김혜성 님이 나온 편을 보다 "저거 완전 내 얘기네"라고 한 적이 있다. 극내향인에 대한 이야기로 나처럼 싹수없다는 오해를 많이 듣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였다. 우리 사회는 늘 싹싹한 사람, 친화적인 사람을 원한다. 그런 사회에서 극내향인이 설자리는 없다. 표면적으로 아닌척하며 살아가는 수밖에 없는데 결국 그것도 나중에는 탄로 나게 되어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성숙해지는 일이다. 나 또한 나이를 먹고 여러 가지 일들을 겪으며, 예전보다는 유해지고, 마음도 단단해졌으나 예민한데 소심하기까지 한 나는 늘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못해 속을 앓는 일이 많다. 나이가 들면서 꽤 내성이 생겨 나름 받아쳐보려 하지만, 상대는 더 연륜 있는 사람으로 나의 반박에도 굴함이 없다. 이런 관계가 지속되다 보면 그 사람을 만나야 하는 일이 있으면 며칠 전부터 가슴이 떨리며 수백 번 머릿속으로 다음번에는 이렇게 받아쳐야지라며 시뮬레이션을 돌려본다. 하지만 정작 마주했을 때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또 분하게 돌아오는 일이 많다.
이런 나를 보며 "네가 너무 예민한 거 아냐" "뭐 그런 일로 마음상해하냐"라는 말을 들을 때면, "당신이 너무 한 거거든요!"라고 소리치고 싶다.
사람이 생각하는 좋은 사람의 기준은 다를 수 있다. 나는 좋은 사람이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남에게 피해 주지 않는 사람이고 싶다. 그래서 최대한 배려하고 선을 잘 지키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세상은 더 많은 것을 원한다. 예를 들어 아파트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면 인사를 하는 것이 나에게는 곤욕스러운 일이다. 극내향인에게는 먼저 인사를 건네는 일이 정말 힘들다. 더군다나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라면 굳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사람은 이런 날 보고 "싸가지없네"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모르는 사람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는 친절함은 가지고 있지 않을지언정 싸가지가 없는 행동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파트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는 요즘 땀에 푹 절어있는 나에게 인사를 건네주시면 민망하면서도 꽤 반갑게 안녕하세요라고 답변을 한다. 하지만 나올 때 큰소리로 사람들에게 수고하세요라고 할 용기가 없어 몇 번을 고민하다 결국 그냥 조용히 도망치듯 나오는 게 된다. 누군가는 날 보며 살갑지 않다고 욕을 할지 모른다. 하지만 운동을 하러 간 곳에서 모르는 사람과의 인사가 익숙지 않을뿐더러 친목도모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삼삼오오 모여서 아줌마끼리 운동은 안 하고 20분 넘도록 며느리 욕을 하며 떠드는 소리를 듣는 것도 힘들고, 운동을 하러 온 건지 물값을 아끼려 씻으러 오는 건지 알 수 없는 아줌마들 때문에 결국 나는 사람들이 정말 적은 시간을 고르고 골라 헬스장을 찾는다.
대부분은 좋은 게 좋은 거지, 서로 사이좋게 인사하며 지내면 좋은 거 아냐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극내향인에게는 이 모든 게 불편하게 다가온다. 낯선 사람, 익숙하지 않은 인사, 마음에 없는 겉치레 인사 등 당황스러운 상황이 힘들어 결국 집으로 숨어버리게 된다. 그래서 예민한 사람은 익숙한 장소, 익숙한 사람을 좋아할지도 모른다.
MBTI가 나오면서 조금은 I에 대한 성격을 가진 사람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 같다. 하지만 I보다는 E, T보다는 F를 선호하는 세상에서 여전히 극내향인들이 살아가는 것은 힘들지 모른다. 성격에 좋고 그름은 없다. 다만 나와 맞냐 안 맞냐의 문제인거지 너는 왜 그래라는 질문은 부디 거둬주길 바란다.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고, 겉모습만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