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나의 불행이 당신에게는 행운일지도..

by Some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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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엄마라고 얘기한다. 이제는 남편과 함께 산 날이 엄마와 함께 보낸 세월과 거의 비슷해져 가지만 여전히 남편이 엄마를 따라올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엄마와 엄청 애틋하고 살가운 사이는 아니다. 다만, 나를 가장 잘 이해하고 말로 하지 않아도 내 표정, 목소리만 들어도 나의 상태를 가장 빨리 알아채는 사람이 엄마이다.

유산 후 엄마에게 전화를 했을 때, 병이 걸렸을 때, 언니와 싸웠을 때 등 가장 먼저 생각나는 얼굴은 엄마였다.

처음 결혼을 하고는 독립을 하기 위해 친정과 거리를 뒀다. 그리고 힘든 일이 있어도 전화를 한 적이 거의 없다. 괜한 걱정을 시키는 것도 싫고 나의 걱정이 배가 되어 돌아오는 전화를 받는 것은 더욱 싫었기 때문이다.


임신문제로 힘들어하던 시기에 아버지가 아프기 시작하셨다. 처음에는 허리가 아프다가 나중에는 간에 문제가 생겼다고 했고, 그다음은 암이라고 했다. 병원생활과 퇴원을 반복하면서 쓰러지시는 일이 계속되고 결국 병원에 장기 입원을 하게 되었다. 엄마와 언니는 직장을 다니는 중이었고 결국 남은 건 나 하나.

당연하게 내가 간병인으로 당첨되었다. 그때 엄마는 '당연히 너밖에 더 있냐'라는 말을 했는데 나는 그게 정말 상처가 되었다. 임신문제로 엄마한테 한 번도 찡찡거리지 않았던 나였는데 '어떻게 엄마는 내 힘든 상황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 일만 중요하다고 하지?' 남편이 아파서 쓰러졌는데 돈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엄마라고 비난했다. 간병하기 싫어하는 핑계로만 들렸다.


아빠를 제외한 가족 셋이 전혀 마음이 맞지 않았다. 누구 하나 돌아가면서 돌볼 생각도 없었고 당연히 지금껏 그랬듯이 백수인 내가 해야 하는 일이 되었다. 그러다가 내가 볼멘소리라도 하면 생색내는 것이 되어버렸다.

잔병치레가 많았던 엄마는 년에 한 번씩 수술을 하셨고 그때마다 당연히 내가 곁을 지켰다.

그럼에도 고맙다는 소리는커녕 자식이 이 정도는 당연하게 아니냐는 식이였다.

하지만 나에게는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언니가 있다. 결혼을 하고 자녀가 있는 언니는 요리조리 잘도 피해 갔다. 결혼을 했지만 아이가 없고 집에서 논다는 이유로 모든 것은 내 몫이었다.


결국 나는 폭발을 했다. 암이 걸린 아빠의 담당의사를 만나는 것도 나, 아빠에게 암이라는 소식을 전하는 것도 나, 웃으면서 시한부 인생을 사는 아빠의 곁을 지키는 것도 나였다. 억울함과 서러움이 한 번에 폭발해 엄마와 언니에게 화를 냈다. 이기적인 엄마와 장녀노릇도 안 하는 언니를 비난했다.

그러고 난 후 나는 간병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매일 가던 병원을 며칠에 한 번씩 갔고, 담당의사와의 면담도 언니한테로 돌렸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나고 나는 암 전단계라는 통보를 받았다.


사람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그리고 말이 씨가 된다는 것처럼 간병을 하는 동안 '이러다 나 정말 암 걸려 죽을 것 같다'라는 말이 현실이 되어버렸다. 그 사이 아빠는 요양병원으로 옮기셨고 점점 몸 상태가 안 좋아지셨다. 요양병원을 가는 것도 반대했지만 돌볼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언니와 엄마가 합의하에 나에게 통보를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직 암은 아니지만 암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과 임신문제로 힘들어하는 나에게 자궁질환이라니 죽으라고 등을 떠미는 것만 같았다. 이렇게 운이 없어도 어떻게 없냐며 누군가를 탓하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누구를 탓할 수도 없고 나만 바라보는 남편 앞에서 목놓아 울 수도 없었다.

나보다 더 화나고 힘들었던 것도 남편이었으니까..

늘 친정문제에서 말 못 하는 나의 입장을 이해하면서 지켜봐 줬던 사람인데 내가 몸까지 아프니 그 원망 또한

친정으로 향하게 되었다. 딸이 임신문제로 힘들어할 때 병원 한번 안 데려가고 남들처럼 좋다는 것 이것저것 챙겨주지도 않던 엄마에 대해 불만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우리 엄마가 정말 걱정하지 않아서 나를 방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내 성격을 잘 아는 우리 엄마가 그리고 난임으로 고생했던 본인이 모를 리가 없다.

외동아들인 남편보다는 내 딸이 우선인 우리 엄마는 내 딸이 편안하길 바랐을 뿐 걱정을 안 했다는 것이 아니다. '돈이라도 주고 살 수 있는 거라면 몇 개라도 사줄 텐데..'라는 말씀을 하셨다.

본인을 닮아 나까지 난임이 된 것이라고 스스로를 자책하였을 당신이라는 것을..

그 마음은 아빠도 마찬가지였다.


아빠가 돌아가시기 이틀 전 아빠의 모습이 생생하다. 힘들어진 몸을 마약성 주사로 겨우겨우 버티시면서 밥도 못 드시고 계신 상태였다. 오랜만에 들린 나의 소식을 엄마한테 접해 들었는지 나를 한참이나 빤히 쳐다보셨다. 미안함과 안쓰러운 눈빛으로 누워서 쳐다보던 모습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아빠 또 올게'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선 다음다음날 새벽 4시 아빠는 돌아가셨다.

아주 평온한 모습으로 마지막 봤던 그 모습 그대로..

이상하게 전혀 눈물이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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