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동상이몽(ESTP 남자와 INTJ 여자)

by Some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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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부터 결혼까지 15년 가까이를 만나 오면서 느끼는 점은 참 한결같은 사람이다.

시험관 준비를 하면서 살이 10kg 이상이 찐 나를 보면서도 처음 그때 아니 그때보다 더 애정을 쏟아주는 고마운 사람이다. 특별히 이쁘지도 늘씬하지도 않은 나를 왜 그렇게 좋아하는지 우리 친정가족들도 의문을 품고 있다. 가끔 핸드폰을 뒤져보면서 앞에서는 사랑스럽게 쳐다보고 딴짓하는 거 아니야라며 의심해해 봤지만,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좋아하는 것에 올인을 하는 집착남이고 관심 없는 것에는 1도 관심이 없는 무관심함도 겸비하고 있다.

MBTI가 유행을 하면서 서로 해봤지만 몇 번을 해도 INTJ가 나오는 나와 달리 매번 다른 유형이 나오는 남편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같이 해봤지만 자기는 결코 J형이라며 우겨대는데 내가 봤을 때는 너는 ESTP가 맞아라고 하니 특징을 보고 인정을 한다.

긴 설문은 피곤할 뿐이고 이런 건 왜 하지라는 너와 온갖 심리테스트가 재미있는 나는 나를 발견하길 좋아한다.


대화를 할 때도 우리는 전혀 다른 방식이다.

질문을 하면 3초 안에 yes or no가 나오는 나와 달리 몇 분이 지나도 생각을 하거나 '그럼 자기는?'이라고 반문하는 남편이다. 질문에 질문으로 답하지 말라고 하는데 선택장애인가 싶을 정도로 질문을 한다.

그렇다고 자기주장이 전혀 없는 사람이 아니다. 자전거를 하나 사거나 컴퓨터를 살 때면 자기가 원하는 등급 이하는 쳐다도 안보는 스타일이다. 없으면 없지 이왕 살 거면 좋은 걸 사야 한다는 그의 지론이다.

가성비를 따져가며 합리적인 상품을 사야 한다는 나와는 정반대의 성격이라 우리는 많은 문제에서 부딪힌다.


가족을 대하는 태도, 문제 해결하는 방법 등 하나부터 열 가지 맞지 않고 해결하는 방법, 위로의 방법도 너무 다르다. 옳고 그름을 꼭 따지고 드는 나의 성격은 그에게 몹시 피곤한 일이다.

싸우면서 남편이 가장 많이 얘기하는 말은 '이게 그렇게 화낼 일이야?'이고, 내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또 이러네. 몇 번을 말하게 하는 거야.'이다. 이런 원인은 성향 차이도 있겠지만, 환경차이, 근본적인 남녀의 차이도 포함이다.


남자와 여자의 가장 큰 차이 중 하나는 그들이 어떤 식으로 스트레스에 대응하느냐 하는 것이다. 남자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한 곳에만 주의를 집중하며 내면으로 깊이 움츠러드는 반면, 여자는 점점 더 감정적으로 그 스트레스에 압도되고 휩쓸리게 된다. 이러한 때에 그 기분을 풀어야겠다는 욕구는 서로 다르게 나타낸다. '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책 p.51 '


아이문제를 바라보는 시각도 이러했다.

ESTP의 남편은 '자연스레 생길 거야 스트레스받지 마'라고 말하고, INTJ의 나는 '어떻게 스트레스를 안 받아, 가만히 있으면 되는 일이냐'라며 반박했다. 조급한 마음이 강했던 나는 병원을 다니며 인공수정과 시험관을 연속으로 시도했지만 한 번도 피검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그 사이 회사를 그만두었고, 속상한 마음에 술로 푸는 날이 많았다. 속상해서 한잔 먹은 술김에 마음속에 있던 말들로 서로 다투는 일도 늘어갔다.

게다가 헛헛한 마음을 여행이나 먹는 걸로 풀다 보니 살이 10kg나 불어나 시어머니에게 매번 '너 또 살쪘지'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하지만 반대로 살이 찌면서 예민하던 처녀시절보다 성격이 좋아졌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속상하면 굶는 일이 많았고 예민해서 잘 체했기 때문에 늘 소화제를 달고 살았다. 그때는 말투부터 표정까지 표독스러웠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살과 함께 인덕도 쌓았는지 외모는 포기했지만 마음만은 따뜻해졌다.


삶을 바라보는 방향도 달랐던 우리는 노후준비를 할 겨를도 없이 임신준비만을 노력하며 '다음 해에는 다음 해에는'을 기약하며 10년이란 시간이 훌쩍 지났다.

몸도 힘들고 마음도 힘든 병원 가기를 그만두고자 한 것은 불과 몇 년 전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건강까지 안 좋아지면서 마지막 남은 힘을 내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선택의 기로에 섰었다. 이렇게도 생각해 보고 저렇게도 생각해 봤지만 나는 이미 지쳐있었다.

결국 나는 선택했다.



그냥 아무것도 안 하면 안 돼?
절에도 가보고 운동도 열심히 해보고 술도 끊어보고 좋다는 음식도 먹어보고 내가 그동안 안 해본 게 뭐가 있어. 씩씩한 척, 없어도 되는 척, 노력 안 하는 척했지만
나 그동안 나름대로 노력했어. 이제 그만할래.
아이가 꼭 필요하다면 이혼하고 다른 사람 만나.


남편은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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