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라기란? 며느리+期(기간)을 뜻하는 말로 요즘 여성이 결혼 후 시월드에서 며느리로 인정받고자
노력하는 기간입니다.
결혼을 하고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연애 시절 동안 느끼지 못했던 압박이 느껴지기 시작하던 신혼 초 가끔씩 어머니의 전화로 마음이 속상해지는 일들이 많아졌다. 물론 그렇다고 엄청난 시집살이를 겪었다고는 할 수 없다. 시어머니로써 바라는 것들이 나에게는 버거웠을 뿐이다.
모든 시어머니가 그렇듯 처음에는 딸 같은 며느리를 원한다. 전화도 자주 하고 살가운 딸 말이다.
지나고 보면 '이런 말을 내가 왜 들었어야 해?'라는 말들을 듣기도 했다.
관계에서 가장 문제는 어색함을 풀고자 말이 많아지다 보면 실수가 많아진다는 것이다.
서로 시행착오를 겪으며 지금은 나름대로 편안한 사이가 되었지만, 초창기만 해도 어머니의 '넌 참 좋은 남편을 만났어. 내 아들이지만 괜찮은 신랑감이야.'라는 말에 치여살았다.
물론 좋은 사람이라는 것은 알지만, 나에게 과분할 만큼 나는 모자란 사람 인가 싶어 속상하기도 했다.
상견례 자리에서 딸 가진 부모와 아들 가진 부모의 차이를 확실하게 알았다.
연신 우리 아빠는 "제 딸이 많이 부족하지만 심성은 참 착한 애예요"라며 부탁하는 어조였다.
물론 시댁에서 특별히 아들자랑을 하거나 허세를 부리시지도 않았지만 왜 우리 아빠는 나를 부족한 사람으로 표현했을까.. 표현만 그렇다는 것을 알았지만 왠지 모르게 씁쓸함이 밀려왔다.
혼수를 준비할 때도 시댁에 책잡히지 않는 괜찮은 것들로 준비를 해야 했고, 결혼식 당일 폐백을
할 때는 친정 쪽은 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으시는 바람에 우리 부모님은 서운해하셨다.
아주 사소한 것들이 나를 점차 불편하고 억울하게 만들었다.
며느라기 시절이었던 때 유일하게 어머니에게 반박을 한 적이 있다.
안부전화를 자주 하라는 압박을 하실 때 "오빠도 저희 집에 전화 안 해요."라며 초강수를 뒀다.
항상 '네'만 외치던 내가 '그건 아닌데요.'라고 말한 날 어머니의 놀란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후 어머니는 오빠한테 장인 장모에게 전화를 자주 하라고 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나는 전화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안부전화의 다음은 임신 문제였다. 어머니는 결혼식을 올리기 전부터 함께 신혼집에서 살고 있는 나에게 '너희는 피임하니? 왜 빨리 애를 안 갖니?'라는 말씀을 하셨다. '네? 아직 결혼식도 안 올렸는데요..'라는 말이 입에 맴돌았으나 '피임 안 해요. 빨리 가져야죠'라고 대답했다.
결혼을 하면 당연히 임신이 우선이라 생각하고 있었지만 결혼식도 안 올린 27살 신부는 시어머니의 당혹스러운 단어 선택에 놀랐다. 처음에는 시골사람인 우리 부모님과는 다르게 도시분이라 그런가 했다.
그 후 신혼여행을 다녀오고 혼자 집을 지키던 백수는 빨리 임신을 해야겠다고 생각해 산전검사도 받았다.
비슷하게 결혼을 한 지인의 임신 소식을 들으며, 아직은 여유가 있다고 생각하며 임신준비를 해나갔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나에게 좋은 소식이 들리지 않고 2년이 훌쩍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