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병원 가는 길

by SomeDay



인생은 계획대로 풀리지 않더라. 나름대로 꽤 운이 좋은 평탄한 인생을 살아왔던 나에게 인생 최대의 관문이었다. 결혼 후 당연하게 임신을 예상했던 것과 달리 나는 그사이 주변 지인들의 임신소식만을 전해 들어야 했다. 결혼 후 출산이라는 당연한 코스에 발도 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청천벽력처럼 다낭성이라는 통보를 받고 산부인과를 자주 다니며 배란일을 받으며 임신 계획을 했지만 좀처럼 임신테스트기 두 줄을 보는 일은 없었다. 그러다 퇴사한 직장에 다시 취업을 하게 되어 직장 생활을 하게 되었다. 공장이라 프레스 찍는 소리가 매일 반복되는 직장이었지만 집에서 보낸 답답한 2년보다는 좋았다.

남편과 함께 출퇴근을 하면서 오랜만에 콧바람을 쐬는 느낌으로 예전보다는 훨씬 가벼운 마음으로 직장생활을 했다. 그러다 자연임신이 되어 첫 번째 임신을 하게 되었다.


임신초기라 알리기 그래서 숨기면서 커피도 안 마시고 몸도 조심하면서 일주일을 보낸 듯하다.

당연히 임신 사실은 양가 부모님께 제일 먼저 알려드렸고 모두 기뻐하셨다.

일주일 뒤 검진을 받으러 병원을 간 날 초음파로 아기집에 아기가 보이지 않는다고 하셨다.

아무래도 계류유산인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믿기지 않아 바로 동네에 다른 산부인과를 찾았다.

그곳에서는 아기 심장소리가 들린다며 심장소리를 들려주셨고 산모수첩까지 주셨다.

그리고 다음 주에 다시 산부인과에 방문한 날 심장이 뛰지 않는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병원 밖으로 나와 남편에게 전화를 했는데 울음이 터져 전화를 끊고 톡을 보냈다.

'심장이 안 뛴데.. '

다음날 담담하게 소파수술을 진행했다. 혼자 먼저 도착해 수술대에 누웠는데 옆자리 산모는 출산을 앞두고 있어서 아이 심장소리가 계속 귀에 들려왔다. 누군가는 태어나고 누군가는 죽는 순간이었다.

차가운 수술대에 누워 마취를 하고 눈을 감고 뜨니 옆에 신랑이 있었다.

나도 모르게 울음이 터져 나왔다. 아이처럼 펑펑 소리 내어 울었다.

자존심이었는지 나는 유산이라는 소식에도 남편 앞에서 울지 않았는데, 마취에서 깨고 나니 정말 없구나가

실감 나면서 그냥 눈물이 터져버렸다. 간호사님이 괜찮다며 자리를 피해 주셨다.

짧은 울음 뒤에 집에서도 꽤 울었던 것 같다. 남편의 그만 울라는 말이 왜 그리도 서러웠는지..

그 후로 나는 울음도 보이지 않고 유산 이야기도 꺼내지 않았다.


며칠 후 엄마와 아빠가 유산을 위로해 주려 밥을 함께 먹었다.

과묵하던 아빠는 남편이 자리를 비우자 나에게 '인연이 아니었다 생각하자'라며 위로를 해줬고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딸이 부모님은 아마 더 가슴이 미어지셨을 거다.

그 당시 나는 누구의 위로도 위안이 되지 않았고, 휴가를 쓰고 혼자 집에 있으면서 밤낮없이 계속 울었다.

남편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서운함이 가득했다. 우리 부부가 솔직하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그 후 회사에 나가고 싶지 않아 한주를 더 쉬고서야 다시 출근을 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첫 유산 때 진심으로 떠나보냈더라면 나의 슬픔이 그렇게 오래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랫동안 나는 초음파 사진과 다이어리 등을 버리지 못했다. 마음에 묻어두고 혼자만 꺼내보는 비밀이었다.

남편과도 절대 입 밖으로 유산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내속에 겹겹이 쌓여가는 우울감, 상실감이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우리 사이의 작은 균열을 모른 척하며 우리는 가면을 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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