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일하는 엄마

엄마와 딸

by Some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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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로 이사를 오고 엄마는 병원청소 일을 시작했다. 나의 기억 속에도 살며시 있는 기억은 어린 나를 엎고 출근해 병원 안 작은 방에 재워놓고 일을 하는 엄마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엄마와 함께 일하던 아줌마들도 다 나를 기억할 수밖에 없다. '엎고 일하러 다니던 애가 벌써 이렇게 컸니'라며 나를 보면 늘 반가워하셨다. 시골출신인 나는 도시로 이사와 외할머니와 외삼촌네가 함께 사는 다가구주택에서 거주했다.

반지하로 연탄을 때는 집이었는데 담을 하나로 쓰면서 여러 집이 함께 사는 형식이었다.

외할머니가 등학생이 된 내 책가방을 들고 함께 등교하셨고 밥을 챙겨주셨다. 그때부터 엄마는 늘 일을 다녔기 때문에 맞벌이 부부의 삶은 바쁘셨다.


최근에 들은 이야기인데 엄마가 더 좋은 직장을 다닐 수 있었지만 외삼촌네가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면서 어쩔 수 없이 나를 봐주실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퇴근 후 돌아오니 내가 연탄가스를 먹고 죽다 살아났다고 했다. 그 후 차마 어린아이를 두고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교대근무를 하는 일보다는 일찍 출근하고 일찍 퇴근하는 청소일을 선택하셨다고 한다. 그 후로 엄마는 새벽 4시에 기상해 6시까지 출근하는 일을 70세까지 하셨다. 나는 지금껏 엄마가 기술이 없어서 청소일을 택하셨다고 생각했는데 그러고 보니 저녁때는 늘 일찍 돌아와 함께 저녁밥을 먹었고 단 하루도 무서운 저녁시간에 혼자 있던 적이 없었다.


바쁜 엄마가 학교가 오는 날은 운동회날과 입학식, 졸업식이었다. 외사촌들과 같은 초등학교를 다녔던 나는 운동회날만큼은 외할머니가 아닌 엄마가 직접 만든 김밥을 운동회날 먹을 수 있었다.

새벽 4시에 일어나던 엄마는 새벽 3시에 일어나 김밥을 쌌다. 별 기교 없는 김밥이었지만 그날만큼은 특식이었다. 하지만 엄마가 학교에 머무는 시간은 점심시간까지였고 다시 회사로 돌아가 다시 일을 하셨다.


일하는 엄마 때문에 나는 엄마한테 서운한 점이 많았다. 늘 바빴고 늘 나의 투정을 받아주지 않았다. 엄마의 시원하고 부드러운 살결이 좋아 붙어서 자고 싶어도 일이 힘들었던 엄마는 곁을 주지 않았다. 또 밖에 나가면 늘 '엄마라고 하지 마'라고 말해서 나를 서운하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초등학생일 때는 엄마가 50대로 어딜 가나 손녀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많았다. '어떻게 이렇게 어린 딸이 있어요?'라는 말이 돌아왔기 때문에 엄마는 늘 나한테 엄마라고 큰소리로 부르지 말라고 했다. 엄마는 덧니가 있는 나에게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으라고 해서 버릇이 되었는지 활짝 웃지 않는 나를 보고 차가 워보인 다는 소리를 주변에서 많이 들었어야 했다. 차가웠던 어린 날의 엄마의 모습은 여전히 나의 가슴속에 남아있다.


그래서인지 나는 결혼 후 전업주부를 꿈꿨다. 아이들이 집에 돌아오면 따뜻한 간식과 밥을 차려주는 엄마가 되고 싶었다. 전업주부의 꿈은 이뤘지만, 아이가 없는 웃픈 현실이다.

엄마가 퇴근하면 저녁준비는 늘 함께했다. 귀찮은 두부 심부름부터 마늘을 빻는 일이나 간을 보는 일은 내 몫이었다. 꼬막을 좋아하는 우리 아빠를 위해 껍질을 벗기고 꼬막 위에 간장을 올리는 일, 구운 김에 소금을 뿌리는 일 등 다양한 요리 곁에서 봐서인지 나는 제법 요리를 잘한다.


어린 나를 위해 열심히 일해온 엄마였지만 나는 늘 엄마의 손길이 아쉬웠다. 돌아온 집에는 깜깜한 어둠만이 기다리고 있었고 나이 많은 엄마, 아빠는 저녁만 먹으면 자는 사람이었기에 나는 늘 외로웠다.

그러던 중 엄마가 어느 날 발바리 강아지 한 마리를 집으로 데려왔다. 혼자 있는 내가 신경이 쓰이셨는지 우리 집 강아지 초롱이는 서러운 내 마음을 잘 이해해 주는 나에게 친구였고 언니였다.

몇 년을 키웠는지 어느 날 갑자기 출산을 한 초롱이의 새끼 한 마리까지 식구가 늘은 어느 날 저녁 갑자기 아빠가 초롱이와 새끼를 데리고 사라졌다. 그날 나는 세상이 떠나가라 울었다고 했다.

자초지종을 나중에 커서 들었는데 2층에 살던 젊은 집주인 여자가 강아지가 시끄럽다고 했다고 한다.

게다가 그 나이 먹도록 남의 집살이나 한다며 엄마를 조롱했다고 한다.

오래도록 한마디 상의도 없이 나 몰래 초롱이를 보신탕집에 데려다준 아빠와 엄마가 미웠었다.


요즘 엄마는 매일 전화해서 '가을이는 잘 있니?'라며 가을이의 안부를 묻는다.

그동안 엄마는 반려견을 키우는 것을 반대했다. 분명히 나보다 빨리 죽을 텐데 정 많은 내가 힘들어할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가을이로 인해 무료한 나의 삶이 행복해졌다는 사실에 누구보다 기뻐하고 진심으로 반기는 사람은 엄마였다. 집에서 고양이나 키우는 팔자 좋은 여자로 생각하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매일매일 심심하지 않고 즐거워서 다행이네'라고 말해주는 엄마다.


아마 초롱이가 사라진 날 우는 날 보고 더 가슴이 찢어졌던 건 엄마였을 거다. 많은 시간을 혼자 집에 있어야 하는 나를 위해 엄마가 선물해 준 나의 친구인 초롱이를 데려다주면서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내 집하나도 없어 딸이 좋아하는 강아지 하나 못 키우는 서러움에 아마 잠못드셨을거다.

그래서 겨우 장만한 작은 집을 그렇게 떠나지 못하시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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