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애증관계

엄마와 딸

by Some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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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증(愛憎)
: 사랑과 미움을 아울러 이르는 말.


엄마와 딸은 흔히들 애증의 관계라고 한다. 가장 서로를 생각하면서도 참 이해가 안 되는 상대이다.

19살에 결혼해 7년의 난임을 겪고 첫째 딸을 낳은 엄마는 43살 늦은 나이에 늦둥이 딸을 낳았다.

임신을 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해서 아주 늦게 임신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한 겨울 눈 내리는 날 태어난 나는 엄마와 언니를 울리며 태어났다. 아들이 없던 우리 집에 마지막 희망이었을지 모를 희망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엄마는 아빠한테 화가 나 "갖다 버리 자고"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빠는 태어난 날 위해 문이 닫은 상점가를 돌면서 담요를 급하게 구해오셨다고 한다. 집에 있던 언니는 아들인지 딸인지 궁금해하는 동네사람들의 전화에 서러워 눈물이 났다고 했다. 작은 시골마을을 떠들썩하게 만든 나는 그렇게 깡촌시골에서 태어나 6살까지 자랐다.


바쁜 시골에서 태어나 부모님이 일하는 동안 동네 점빵에서 먼 친척 할아버지, 할머니의 보살핌으로 자란 나는 아주 작지만 건강한 아이였다. 특히 할아버지는 나를 너무 이뻐하셔서 본인 손녀가 오는 날에도 늘 할아버지의 무릎은 내 차지였다. 같은 마을에 사는 진짜 친할머니보다 내가 사랑했던 할아버지 덕분에 나는 늘 공주대접이였다. 다른 집이었다면 천덕꾸러기 늦둥이 딸이었을지 모르지만 자식이 귀한 우리 집에서만큼은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 하지만 내 어린 기억 속 엄마는 기억이 잘 없다. 점빵 할아버지의 손에서 자라 6살이던 해 지금 사는 도시로 오면서 외할머니가 나를 보살피셨다.


도시에 오니 엄마는 돈 벌러 나가느라 바쁘셨고, 늘 지쳐있었고 화가 나있었다. 나의 어린 기억 속엔 등을 돌리고 누워 자는 엄마의 모습이 선명하다. 열심히 빚을 갚고 집도 사기 위해 늦은 나이에 온갖 고생을 다 한 것을 알고 있다. 배운 것도 기술도 없어서 병원 청소일을 하시면서 나를 키운 우리 엄마는 커리어우먼이었다. 잦은 아빠의 가출과 사고에도 엄마는 늘 가정을 지켜왔다. 매일매일이 힘드셨던 엄마는 어린 딸아이의 칭얼거림까지 감당하기엔 힘드셨을 거다. 조금씩 형편이 나아지고 반지하에서 1층, 그러다 작은 맨션을 샀던 날 우리 모두 행복함에 젖어있었다. 벽지를 고르고 새가구도 장만하면서 내 방도 멋지게 꾸며줬다.


어느 날 학원에 갔더니 한 친구가 IMF로 아버지가 실직하셔서 학원비를 못 내서 이제 못 다니게 되었다며 인사를 하고 떠났다. 그날 집에 돌아와 웬일인지 일찍 퇴근한 아빠와 엄마한테 학원에서 있었던 일을 쫑알쫑알 말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두 분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아빠 옆에는 짐가방이 하나 있었는데 이건 뭐냐고 물으니 아빠가 실직을 하셨다고 했다. 나는 왜 하필 그 타이밍에 그런 말을 했을까..

웃픈 현실에 우리 가족 세명은 말이 없어졌다.





70대까지 직장생활을 해온 엄마는 아주 억척스러운 사람이다. 음주가무를 좋아하는 남편을 잘못 만나 고생만 하는 엄마가 안쓰러웠다가도 그 억척스러움에 답답하기도 했다.

'나는 엄마처럼 구질구질하게 안 살 거야'를 외치면서도 나이가 드니 거울 속 모습이 엄마를 닮는다.


물건값을 제 값에 사기 싫어 조금이라도 깎아야 되는 창피한 엄마

택시비가 아까워 매번 버스를 타고 다니는 안쓰러운 엄마

같이 음식을 먹다가 꼭 마지막 몇 점이 남으면 안 먹겠다고 수저를 놓아버리는 답답한 엄마

수화기 너머 잠긴 목소리 하나로 내 기분을 알아차리를 무서운 우리 엄마


너무 미웠고 또 너무 사랑한 우리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