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딸
우리 엄마가 남들과 좀 다른 엄마라고 생각이 든 것은 내가 결혼을 한 이후이다.
어릴 때는 친구들과 가족에 대한 깊은 이야기보다는 연애나 시시콜콜한 이야기였던 것 같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삶이 바뀌면서 각자의 엄마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특히 결혼 후 언니와의 대화의 주제는 엄마가 대부분이었다. '도대체 이해가 안 돼. 왜 저러는 거야' '너무 피곤한 사람이야'라며 누구보다 공감대를 형성했다.
오래 일을 해서인지 엄마는 세상물정을 잘 아는 사람이다. 80세 할머니치고는 요즘 금리가 어떻게 되는지 나보다 더 잘 안다. 아빠가 아프실 때 딸들이 집에서 쉬면서 아버지를 돌보는 걸 권했지만 결국 엄마는 출근을 택했다. 하지만 엄마는 매일 퇴근 후 버스를 타고 아버지를 보러 요양병원에 들러 얼굴을 보고 집으로 갔다. 우리 집은 언덕베기에 있는 집이라 젊은 사람도 더운 여름은 정말 올라가기 싫은데 엄마는 아빠가 일반 병원에 있을 때도 요양병원으로 옮기신 후에도 계속하셨다. 참 정성이었다.
옆에서 돌보는 것만이 애정이라고 생각했던 나와 언니는 엄마가 돈만 좋아하는 이기적인 엄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는 자식들에게 조금의 손도 벌리기 싫어 지금까지 아버지의 병원비를 한 번도 딸들에게 지원받지 않으셨다. 큰 수술비부터 병원비는 물론이고 지금까지 엄마의 병원비도 모두 엄마가 스스로 책임지신다. 그리고 자식들을 만나는 날이면 멋지게 '내가 살게'를 외치신다. 조카들에게도 아낌없이 용돈을 주신다. 사위의 생일이면 용돈을 보내거나 맛있는 소고기를 사주기도 한다. 덕분에 나는 어깨가 으쓱해진다.
결혼초 엄마가 오랫동안 내 보험을 내주고 계셨는데 옮기면서 보험설계를 다시 하려고 엄마랑 갔을 때 있었던 일이다. 보험금 수령자를 남편으로 지정하려고 하니 엄마가 결혼한 지 얼마 안 됐는데 엄마 이름으로 하면 안 되냐고 했다. 누구보다 남편을 마음에 들어 했던 건 엄마였다.
보험 설계자분이 어머니가 연세가 많아서 나중에 바꾸려고 하면 오히려 힘들어진다고 극구 말리셨다.
엄마는 '그래도...'라며 아쉬워했다.
난임으로 오랫동안 힘들어했기 때문에 이혼얘기가 오갔다며 나중에 엄마한테 말하니 엄마가 하는 말은 의외였다. '절대 네가 먼저 이혼하자는 말은 해서는 안돼.' '싸우더라도 책잡히는 일은 하지 마라'였다.
내 이혼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건 엄마였나... 보통 친정엄마라면 참아라.. 할 텐데 의외의 대답이었다.
요즘도 남편과 싸우고 엄마한테 남편 흉을 보면 그래도 그런 사람 없다. 사람이 다 장단점이 있는 거다. 장점만 있는 사람은 없다라며 남편 편을 든다. 하지만 극적인 어느 순간에는 역시나 엄마는 엄마다.
늘 나의 입장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신다. 남편과 셋이 밥을 먹은 날 장난을 치는 남편을 한 대 툭 때렸더니
남편이 엄마한테 고자질을 하면서 '장모님 저 맞는 거 보셨죠? 증인이세요!'라니까 엄마는 '나는 아무것도 못 봤다'며 남편을 황당케했다.
나는 늘 말한다. 살아보니 엄마 말이 다 맞기는 해.
세상에서 나를 가장 먼저 생각해 주는 건 엄마가 밖에 없던데. 자기는 두 번째야라며 나는 남편이 들으면 속상할 말을 한다. 하지만 그 말만은 틀림이 없다. 내가 아프면 나보다 더 아파하는 사람. 나의 이득이 최우선인 사람. 그건 누구도 아닌 엄마다. 여전히 우리 엄마는 잔소리 쟁이다. 40이 다 되어가는 나의 씀씀이를 걱정해 저축을 강조하시고, 아이 없는 날 위해 늙으면 자식보다 돈이 최고다라고 하시는 신식엄마다. 우리 아파트 동호수도 잘 기억하는 똑똑한 우리 엄마는 여전히 나의 든든한 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