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엄마의 선택

엄마와 딸

by SomeDay
나는 알지도 못한 채 태어나 날 만났고 내가 짓지도 않은 이 이름으로 불렸네
걷고 말하고 배우고 난 후로 난 좀 변했고 나대로 가고 멈추고 풀었네
이소라 - TRACK 9中


명절 가족 모임을 하면 꼭 끝은 싸움이 난다는 말이 있다. 우리 집도 어김없이 그런 악몽의 날이 왔다.


"솔직히 나는 네가 좋지도 싫지도 않아. 아니 미안하지만 아무 감정도 없어."

"내가 네가 태어난 날 졸업식도 못 가고 냇가에서 빨래 빠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원망 서린 말들이 쏟아졌다.


내가 태어난 날은 눈이 많이 오는 한겨울이었다.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닌 내가 왜 이런 원망을 들어야 하는지 어리둥절했다. 남편과 나, 형부는 언니를 향해 그만하라며 다독였고 "내가 잘못했네. 한겨울에 태어난 내가 잘못했어."라며 나는 억지 사과를 했다.


타지에서 학교를 다니고 직장을 다닌 언니와 함께 살날이 많지 않았지만 반대로 나는 언니가 해준 것들을 기억한다. 나이가 많은 부모님을 대신해 놀이동산에 데려간 적도 있고, 경양식 집에서 함박스테이크도 사줬다. 언니네 집에 놀러 가면 냉동 피자를 꼭 사서 데워주기도 했고, 영화관에 함께 가서 영화도 봤다. 그리 많은 추억은 아니었지만 어린 나에게는 첫 경험이었고, 특별한 추억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언니는 날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술이 취해 빈말이 아니다. 여러 번 이런 이야기를 해왔다. 그럼 나는 당신에게 도대체 뭘까? 방해꾼?


우리는 태어나면서 내가 이 집에서 어떤 포지션을 가져야 하는지 눈치를 챈다. 삭막한 가정에서 나는 열심히 엄마 비위를 맞추는 늦둥이 딸이었다. 반대로 언니는 콧대가 높은 사람이었다. 맞아도 절대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아서 더 맞았다고 한다. 우리는 다들 자기 포지션에 따라 행동했을 것이다. '나는 이래도 돼'와 '나는 이러면 큰일 난다'라는 것을 아주 어렸을 때부터 습득하지 않았을까.

부모도 자란다. 나이가 들면서 생각이 바뀌고 자식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진다. 단호했던 젊은 시절과 달리 유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50대 부모가 된 그녀는 여전히 부모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 원망은 아주 작은 갓난아이로 향했다. 나의 사랑을 빼앗아간 그 어린아이는 여전히 다.


언니와 나와의 관계에서 엄마는 늘 선택하지 못하고 '둘 다 잘못했네'라며 화해를 종용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그런데 너도 언니한테 대드는 거 아니야'라고 하는 엄마의 말에 왈칵 눈물이 났다. 나는 다시 전화를 걸어 '엄마 지금 내가 잘못했다고 했어? 내가 도대체 뭘 잘못했는데? 태어난 게 잘못이야? 뭐가 잘못이야?' 엄마는 누구 편을 들 수 없어서 그렇게 만한 거라고 네가 참는 거 다 안다는 말로 날 위로했다. 아마 빈말일지도 모를 그 말에 나는 다시 마음을 누그려트렸다.


언니는 절대 잘못을 인정할 사람이 아니었다. 부모님을 대하는 일에서도 늘 "너는 사랑을 더 받았으니까 네가 하는 게 맞지"라며 효도를 회피하는 사람이 장례식장에서는 "내가 장녀니까"라며 나서서 자신의 주장을 펼치던 사람이었다. 남의 잘못은 잘도 지적하면서 자신의 잘못은 하나도 인정하지 않는 언니의 전화를 나는 바보같이 그 후 몇 주나 기다렸다. 하지만 사과 전화도 문자도 없이 엄마가 언니에게 건 전화에 언니는 '자주 전화하지 말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인연을 끊자는 거냐는 엄마의 물음에 대답 없이 전화는 끊겼다고 했다. 우리의 나이차이만큼 좁힐 수 없는 거리감으로 우리는 아마 이렇게 영영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될지도 모른다.


세상에 태어나 가장 큰 경쟁자는 바로 형제, 자매이다. 이렇게 나이가 들어서도 우리는 여전히 엄마의 선택을 기다린다. 날 더 이뻐해 달라고..

오늘도 엄마는 아무도 선택하지 못한 채 그 선택을 미루고 미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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