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엄마의 대화방식

엄마와 딸

by SomeDay

우리 집은 늘 고요하고 적막한 산속의 집과 같았다. 단출한 세 식구가 사는 집은 대화가 많지 않았다. 말수가 적은 아빠와 조용조용한 편인 엄마였다. 하지만 유일하게 소리가 난 곳은 TV나 라디오였다. 적막감을 깨는 요란한 아빠취향의 트로트가 귀에 맴돌았다. 엄마는 창피한 게 많은 사람이었다. 늦둥이 딸을 창피해했던 엄마는 밖에 나가면 엄마라고 크게 부르면 화를 냈다. 그리고 딸이 입을 크게 벌려 목젖이 보이게 활짝 웃는 게 못마땅한 사람이었다. 말소리도 크면 안돼서 우리 집에서 싸우는 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가는 게 너무나 창피한 사람이었다. 가끔 엄마하고 싸울 때면 엄마는 늘 '남들 보기 창피해. 알았으니까 그만해'라는 말로 더 이상 말을 못 하게 입을 다물게 했다. 나의 고민이 뭔지, 불만이 뭔지는 안중에도 없었다.

불만이 생겨 하소연이라도 하려고 하면 듣고 싶지 않다는 듯 다른 주제로 돌려버리곤 했다. 가족의 문제, 자매의 문제에 대해서도 엄마는 같은 방식이었다. 안 좋은 말은 듣고 싶지 않아. 내가 듣고 싶은 말만 해라는 엄마의 방식은 소통이 불가능했고, 결국 점점 대화가 줄어들었다.


엄마와의 대화는 8~90%가 내가 모르는 누군가의 이야기이다. 엄마가 아는 누구는 어떻고 엄마가 아는 누구는 어떻다더라였다. 문제가 많아 보이는 남의 집안 이야기를 시시콜콜하게 늘어놔서 나와 언니는 늘 '왜 모르는 사람들 얘기만 하는 거야'라며 핀잔을 줬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제는 사위들도 장모님의 뜬금없는 이야기에 대꾸를 하지 않을 정도이다. 궁금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풀어내는 엄마의 입은 늘 바빴다.

그 외 나머지 대화주제는 본인이 아픈 곳이다. 어디가 아파서 어떤 병원을 다녀왔다는 하소연이다.

그리고 아주 조금은 가족들의 안부이다. 하지만 이것도 아주 극소량이고 그마저도 나쁜 소식은 듣기 싫어한다. '요즘 언니네는 이런 것 때문에 힘든 것 같더라''라는 이야기나 '나 요즘 오빠 때문에 힘들어'라고 하는 말이 나오면 바로 듣기 싫은 듯 다른 이야기 주제로 넘어가거나 '다 그러고 살아'로 더 힘든 이야기를 꺼내지도 못하게 만들어버린다.


우리 자매는 궁금했다. '엄마는 왜 저렇게 일방적인 대화만을 할까?' 그 답을 이모가 들려줬다.

40년대에 경찰이었던 외할아버지는 부잣집 도련님이었는데 상주하는 머슴이 있을 만큼 땅부자였다고 한다.

그 집에서 첫째 딸로 태어난 엄마는 7~8년 만에 얻은 귀한 딸이어서 아들이 귀하던 시대에도 엄청난 이쁨을 받고 자랐다고 한다. 물론 바로 뒤에 태어난 외삼촌으로 엄마의 사랑을 빼앗기긴 했지만 집이 몰락하기 전까지는 큰딸로서 누린 것들이 많았다고 한다. 엄마가 시집가던 해에 태어난 작은 이모는 부귀영화를 누렸다는 외갓집을 구경도 하지 못하고 쫄딱 망한 상태에서 태어나 고생만 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같은 집 사람이라고 생각이 안들만큼 엄마와 외삼촌, 이모 두 명은 성격이 극명히 다르다.


이만큼 자라온 환경은 성격 형성에 큰 영향을 준다. 외부적인 환경요소도 조금은 있겠지만, 우리 집만 봐도 환경이 성격을 지배한다. 자식이 귀한 집에서 태어난 우리들은 나이차이가 있다 보니 개인주의가 강하다. 외동처럼 자란 상황이어서 둘 다 형제가 있는 집의 자매처럼 넉살이 좋거나 하지는 못한다. 또한 함께 공유한다는 것도 모르는 편이다. 나는 대학교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이런 부분이 참 스트레스였다. 생필품부터 옷까지 빌려 입는 친구들이 너무 싫었다. 돌이켜보면 엄마와의 대화처럼 나도 친구에게 내 이야기만 하는 경향이 있었다. 내 위주의 대화로 친구를 피곤하게 만든 적이 분명 있었다. 경청이라는 미덕을 모르고 자란 나는 관심 없는 주제에 경청을 잘하지 못하는 편이다.


경상도 여자인 나는 말투가 매우 강한 편이다. 그러나 내 절친은 같은 지역에 살아도 아주 부드러운 말투를 사용한다. 친구는 엄마의 영향이라고 했다. 대화가 적었던 나는 대화하는 방식을 잘 모른다. 내향적인 성향의 문제도 있겠지만 사람들을 만나면 어떤 질문을 하고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지 몰라 사회초년생 때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우리 부모님은 딸들에게 경상도에서 많이 하는 '까시나' 한 번을 하지 않는 분이셨는데 어릴 적 적은 대화와 일방적인 대화만을 배워왔기에 사회에 나가서 조금씩 배워나가고 있다.


안과 밖에서 완벽히 다른 사람은 없다. 편하다고 편한 대화만을 했다가는 결국 그런 말투나 대화방식이 고착되어 실수를 하게 된다. 나이가 들수록 경청하는 자세를 배우고 상처 주지 않는 대화를 하려고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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