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경로당에 출근도장을 찍는 엄마는 나보다 더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친구들과 모여 오전 운동 후 집에서 점심을 먹고 오후가 되면 경로당으로 간다. 아파트 앞 바로 경로당은 엄마의 놀이터다. 나이도 제 각각인 할머니들이 모여있는 이곳에서 저녁을 먹고 저녁 드라마가 시작될 때쯤 집으로 귀가한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혼자 사는 엄마는 몇 년째 이 루틴대로 살고 있다. 하루라도 빠지면 왜 안 오느냐고 전화가 오기 때문에 혼자 사셔도 걱정이 덜 된다. 80을 앞둔 엄마는 여전히 경로당 막내다. 막내인 엄마는 밥 짓기를 담당하고 있어 저녁시간이 되면 꼭 필요한 사람이다. 내가 엄마를 모시고 종종 바람을 쐬러 가는 날이면 밥은 누가 하냐며 전화가 오기 때문에 이제는 나도 눈치가 보일 지경이다.
엄마의 친구들은 대부분은 자식들이 50세 이상이다. 나이가 어리고 자식이 없는 백수인 나는 자유로워서 엄마와 보내는 시간이 많은 편이다. 어느 날 엄마랑 여느 때처럼 점심을 먹고 바람을 쐬고 돌아와 집에 있는데 엄마 친구분이 찾아오셨다. 엄마는 딸이랑 소고기를 사 먹고 왔다며 자랑을 늘어놓으셨다. 과하다 싶었는데 엄마 친구분이 "아이가 없으니까 자유롭지. 우리 애들은 자식이 있어서 힘들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머리가 띵해졌다. 나의 문제는 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매일 가는 경로당에서 서로의 집안 얘기를 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엄마는 나한테도 잘하지 않는 나의 아이 문제를 얘기했을 거다. 엄마의 자랑질에 화가 났던 친구분은 우리의 가장 약한 부분에 상처를 내셨다. 돌아오는 길 운전을 하면서 한없이 눈물이 났다. 친구들 사이에서 나의 치부가 엄마의 치부가 되었구나 싶어 죄송했다.
예전에 시아버지가 친구분들을 만나면 손자, 손녀 얘기를 다 하는데 본인만 못한다며 참석하기 싫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다. 그리고 친척 장례식에 갔을 때 시어머니 옆에서 손주자랑을 해대던 아줌마도 있었다. 사실 시부모님의 말씀에는 그렇게 마음이 와닿지 않았는데 엄마가 당하는 걸 눈앞에서 보니 화가 너무 났다. 돌아와 남편에게 얘기를 하고 시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이 이제야 든다며 미안함을 전했다.
"우리도 80세가 돼서도 이런 소리를 주변에서 계속 듣고 살아야겠네"라고 했더니 "그렇겠지"라고 남편이 대답했다. 씁쓸한 하루였다.
편가르기, 자식자랑, 손주자랑, 돈자랑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공평하게 일을 해야 하는 곳에서 누군가는 손까딱 하기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고기라도 굽는 날에는 똑같이 개수를 세서 나눌 만큼 치열하고 단돈 천 원이라도 사비로 내서 맛있는 걸 사 먹으려고 하면 그 천원도 아까워하는 사람이 많다며 엄마가 얘기해 줬다. 20대때 고민하던 인간관계의 고민은 80, 90에도 이어진다.
안 보이는 경쟁을 하고 있는 우리 엄마였다. 8명이던 멤버도 올해는 두 분이 돌아가셔서 6명으로 인원이 줄었다고 한다. 침울한 분위기라며 엄마는 또 우울모드이다. 일만 해온 엄마는 취미 생활이 없다. 게다가 재작년에 한 무릎 수술이 잘못돼서 지팡이를 짚는 신세라 가까운 뒷산도 공원도 마음대로 가지 못한다. 늘 가던 곳을 10배는 느리게 걷게 돼서 요즘은 우울감이 커졌다. 친정으로 가다 보면 엄마 친구들이 쪼르륵 벤치에 앉아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다들 지팡이 하나씩 들고서 말이다.
나는 오늘도 무릎 병 X이 되었다며 살고 싶지 않다고 우울해하는 엄마를 애써 위로한다.
"엄마 그래도 아직 유모차는 안 끌잖아. 저 할머니 봐 유모차 끌고도 잘만 다니시네. 엄마 정도면 양호하지 뭐 "
엄마는 오늘도 경로당에 간다. 친구들과 반복되는 하루를 또 보내겠지.
부디 오늘 하루도 편안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