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2학년 새 학기. 자리에 앉아 담임선생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새로운 담임선생님은 공부를 중시하는 분으로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는 그룹을 만들어 관리를 하는 것이 편하겠다고 생각해 우리들에게 조를 짜라고 말씀하셨다. 친한 친구들과 떨어져 2학년이 된 나는 조를 짜라는 얘기에 어안이 벙벙했다. 기한은 다음 주까지로 아직 며칠이 남아있어 집에 가기 전 반 친구들을 쫙 스캔했다. 친하지는 않지만 1학년에서 같은 반이었던 몇몇 아이들이 눈에 뜨였고, 대부분 키순서대로 앉아있어 나랑 비슷한 키의 주변 아이들 무리가 있어 어느 정도 안심하고 다음 주 등교했더니 이미 친구들은 무리를 지어 조가 형성되어 있었다. 결국 기한이 다되도록 나는 조를 정하지 못했고 요리조리 머리를 굴려가며 밤새도록 시뮬레이션을 했지만 결국 마지막 날까지 아무에게도 말을 못 걸고 있었다. 그러다 기한이 된 날 아침 한조가 눈에 뜨였고 나는 정말 큰 용기를 내서 다가가 "나도 같은 조 하면 안 될까?"라고 말을 건네었다.
그렇게 우리들의 인연은 몇십 년을 이어오게 되었다. 아직도 친구들은 그날을 이야기하면서 어두운 얼굴로 다가와 말을 걸던 무서운 땅꼬마였던 나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여전히 그날일을 웃으며 얘기한다. 대부분 비슷한 외모나 키에 맞춰 조를 짠 아이들이 많았는데 나는 늦게 조에 들어가는 바람에 170의 장신인 친구들 사이에 유일한 단신으로 참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세월이 흘러 한 친구의 결혼식에 갔을 때 친구 남자친구가 "저 친구는 너희랑 안 놀게 생겼다"라고 말해서 친구들이 웃은 일화가 있다. 정말 나랑은 다른 세계의 아이 같았지만 생각보다 나는 그 조합에 잘 어울리는 성격이었다.
극내향인인 나에게 새 학기 친구를 사귀는 일은 과제와도 같았다. 머릿속이 하얘지고 식은땀이 줄줄 나던 그날.
여자들의 사교성이랑 참으로 놀랍다. 여중여고를 나온 나는 새 학기 반배정을 받자마자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둘둘 짝을 지어 팔짱을 끼고 점심을 먹으러가 거나 화장실을 가는 아이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낯가림이 심한 숫기 없는 나 같은 아이는 꿈도 못 꿀 일이었다. 익숙해지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 편이지만 친해지면 말도 곧잘 했다. 하지만 친해지기까지가 참 어려운 아이였다. 늘 긴장되어 있으니 말을 걸며 다가오는 친구도 나의 무표정한 표정에 오해를 하기 일쑤였다. 그래서인지 학교생활은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늘 긴장의 연속이었고 새 학기 전날이나 그룹과제를 해야 할 때는 잠을 못 잘 정도로 심란했다. 안타깝게도 나는 늘 소수가 가는 학교로 배정이 되었기 때문에 익숙한 친구들과 연을 이어가기도 어려워서 매번 이런 고통을 받아야 했다.
어릴 때는 나의 내향적인 성격이 작고 왜소한 체격 때문에 자신감이 부족해서인가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하지만 지금 보면 자신감 부족이라기보다는 성향자체가 낯가림이 심하고 먼저 살갑게 다가가지 못하는 편이라 그렇다는 것을 알았다. 내향적인 사람이 노력을 해도 외향인이 되기는 어렵다. 여전히 나는 처음 가는 모임은 두렵다. 하지만 요령이 생겨 어느 정도 상황을 지켜보면서 천천히 파악을 해가면서 주변을 살펴가는 여유가 생겼다. 여전히 먼저 말 거는 건 어렵지만 적어도 먼저 다가오는 사람에게 친절한 미소쯤은 보일 줄 안다. 여전히 나를 남들에게 소개하는 것이 어렵지만 이 나이가 되면 밥같이 먹어줄 친구나 화장실 같이 가줄 친구가 없어도 전혀 외롭지 않다.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있는 듯 없는듯한 조용한 삶을 지향하며 나는 오늘도 버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