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러코스터 인생
참 많은 입원과 시술, 수술을 했지만 지나고 나면 디테일하게 기억이 없는 건 전신마취 후유증과 충격으로 인한 단기 기억상실이다. 힘든 일을 겪은 해는 이상하리만큼 기억이 날아가 있다.
지금까지 여러 번의 시술과 수술을 견뎠지만 항상 처음은 떨리고 두렵기 마련이다. 난소암 수술을 하던 날은 처음 전신마취와 복강경 수술을 하는 것이라 인터넷을 뒤져보며 입원 준비를 마쳤다. 내시경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 관장을 한다는 것이 가장 떨렸는데 여러 사람이 쓰는 병실이라서 입원 전날부터 밥을 거의 먹지 않았다. 사실 입맛도 없었기 때문에 수월했다. 내 인생 첫 관장은 병실 안에 화장실이 있었지만, 병실 밖 화장실을 찾느라 고생했던 기억이다. 자칫 큰 실수를 할뻔했던 강렬한 기억이다.
두 번째 입원이라 그런지 떨리는 마음은 같았지만 처음보다는 어렵지 않았다. 1인실 입원을 했기 때문에 뭐든 편했다. 단체 병실을 쓸 때는 커튼을 치고 눈물을 훔치느라 힘들었지만, 1인실은 적막하기 짝이 없었다.
보호자가 함께 숙박을 할 수 없어서 첫날은 혼자 잠을 잤는데 딱딱한 침대가 불편해 결국 소파에 누워 잠을 청했다. 누가 깨우지 않아도 새벽부터 잠이 깨서 수술 준비를 마치고 나니 남편이 도착했다.
첫 복강경 수술 때는 수술실 앞에서 눈물바람을 했지만, 이번에는 더 큰 수술이었지만 오히려 담담하게 수술실로 들어갔다. 그 후에는 언제나 그렇듯 숫자 3도 못 세고 기억이 없어졌다.
이번에는 수술을 하면서 맹장도 함께 떼어내서 방귀가 빨리 안 나오면 퇴원이 미뤄질 수 있다고 해서 고양이들을 보기 위해 미친 듯이 걷기 운동을 했다. 지난 수술은 퇴원일이 금방 오더니 1인실에서 혼자 있는 시간은 더디고 지겹기만 했다. 오로지 간호사님과의 소통뿐이었다. 피주머니를 차고 있었는데 피가 너무 빨리 많이 차고 배에 멍이 크게 들어 문제가 생길 뻔했지만, 빠르게 대처해 주셔서 다행히 큰 고비가 없이 지나갔다.
첫 수술은 긴장되고 슬펐지만, 두 번째 수술은 의외로 담담했다.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을 때는 머리가 멍하더니 막상 내가 자궁이 없다는 게 실감 나지 않을 만큼 현실감각이 없었다. 이번에는 무통주사가 제대로 들지 않는 바람에 속이 울렁거리고 안 좋아서 잠을 푹 자지 못해 빨리 집에 가고 싶어졌다.
고양이들의 감시를 받으며 살다 보니 1인실에 혼자 있는 시간이 꽤 좋았지만, 막상 큰 방에 혼자 덩그러니 있으니까 잠이 오질 않아 좁은 소파에 몸을 뉘이고 잠을 청했다. 하루하루가 지겨웠다.
뭐든 처음이 어렵지 두 번은 쉽다고 했던가 수술을 하면 할수록 긴장감은 덜해졌지만, 대신 단점은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 마냥 집에 와서도 기억이 반은 날아간 것 같았다. 출산 후 기억력이 감퇴된다고 하는데 나는 연단 수술로 기억력이 감퇴된듯하다. 시간이 약이라고 했듯이 차츰 몸이 나아지고 이제는 수술을 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수술자국도 연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무리하면 배가 뭉치거나 아픈 느낌이 들어서 "아 나 수술했지"라며 각성을 하게 된다.
눈앞이 깜깜하더니 이제는 살만해지니 나는 그래도 운이 좋은 사람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올초 남편 친척이 위암 말기를 알게 돼서 병원에 입원했는데 결국 3개월을 버티지 못하셨다. 암이라는 말 한마디에도 심장이 떨어졌는데 다행히도 관리를 하고 있던 나는 초기여서 수술만으로 회복이 가능했다. 요즘은 젊은 분들도 암이 잘 걸리기 때문에 내 주변에도 항암을 하며 버티는 분들이 정말 많다. 누군가는 살고 싶어 그 힘든 항암을 하며 버티는데 수술로 목숨을 건사한 나는 매우 러키 한 삶이다.
평생을 부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살던 나였지만, 일련의 사건사고를 겪으며 이제는 긍정적인 마인드가 되었다. 암에 걸리지 않는 것이 더 러키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살아 있지 않은가.
이건 아마 다시 한번 열심히 살라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만일 지금 어둠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속에도 분명 빛은 있을 겁니다. 아직 발견하지 못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