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성이라는 이름의 판단 포기
이 보고서는
AI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다루지 않습니다.
이미 조직 내부에서
무언가가 사라지고 있다는 징후를
기록합니다.
우리는 요즘 이렇게 말합니다.
“요즘 일 빨라졌죠.”
“산출물 양이 다르네요.”
“생산성이 확실히 올랐어요.”
틀린 말은 아닙니다.
다만
끝까지 맞는 말도 아닙니다.
문서는 더 빨리 만들어지고,
슬라이드는 더 깔끔해졌으며,
이메일은 더 그럴듯해졌습니다.
보고서는
일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어딘가 비어 있습니다.
논지는 있지만
근거가 흐릿하고,
문장은 매끄럽지만
결론은 모호합니다.
누군가 쓴 것 같지만
아무도 끝까지 생각하지 않은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Harvard Business Review는
이 현상에 이름을 붙였습니다.
Workslop.
일처럼 보이지만
사고의 밀도가 빠진 결과물.
이 결과물은
대개 이렇게 만들어집니다.
AI가 초안을 만들고,
사람이 빠르게 리뷰합니다.
수정은 최소화되고,
질문은 생략되며,
검토는 형식으로 남습니다.
“대충 맞는 것 같아요.”
“크게 문제는 없어 보이네요.”
“일단 쓰죠.”
이 문장들이 등장하는 순간,
조직은 이미
판단을 외주 준 상태입니다.
AI가 판단을 대신한 것이 아닙니다.
판단을 하지 않기로 암묵적 합의를 한 것입니다.
판단이 사라지면
비용도 함께 사라질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비용은
다른 곳으로 이동합니다.
작성자는 시간을 아끼고,
수신자는 해석을 떠안습니다.
회의실에서는
“무슨 말인지 아시죠?”라는 질문이 늘어나고,
현장에서는
“이게 정확히 뭘 하라는 거죠?”라는 문의가 쌓입니다.
이 비용은
어느 보고서에도 잡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존재합니다.
우리는 이 비용을
인지적 청구서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누군가가
생각하지 않은 대가를,
다른 누군가가
생각으로 대신 지불하는 구조.
이 인지적 청구서는
조직 내부에서만 돌지 않습니다.
고객에게,
파트너에게,
시장으로 이동합니다.
설명이 길어지고,
오해가 늘어나며,
“원래 이런 브랜드였나?”라는 질문이 생깁니다.
불만은 폭발하지 않습니다.
조용히 사라집니다.
신뢰는
갑자기 무너지지 않습니다.
이해되지 않는 순간부터
서서히 얇아집니다.
이 단계에 이르면
조직의 언어가 달라집니다.
“AI가 이렇게 정리했어요.”
“모델이 그렇게 추천합니다.”
“일단 결과는 좋습니다.”
주어가
사람에서 시스템으로 이동합니다.
이 말들은
편리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책임이 사라지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판단은
여전히 필요합니다.
다만
아무도 그 자리에
서고 싶어 하지 않을 뿐입니다.
이 상태는
실패의 결과가 아닙니다.
오히려
성공의 부산물입니다.
속도가 효과를 냈고,
지표가 개선되었으며,
조직은 안도합니다.
그래서 이 상태는
더 오래 유지됩니다.
그리고
더 깊게 쌓입니다.
사고는
대개 이 다음에 발생합니다.
이 보고서는
해법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 한 가지는 기록합니다.
생각을 생략한 생산성은
언젠가 가장 비싼 사고로 결제된다.
그 결제일은
예고되지 않습니다.
읽는 내내 불편했다면,
정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