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터슨(2016)

A-ha! 시와 일상의 감탄, 신과 인생의 감사.

by ENEAS
본 글은 패터슨(2016)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음.
시놉시스
미국 뉴저지 주의 소도시 ‘패터슨’에 사는, 이름도 ‘패터슨’인 버스운전사가 있다.
매일 비슷한 일상을 보내는 패터슨은
시리얼로 아침을 먹고
아내가 정성껏 싸준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고
버스운전 일을 마치면 아내와 저녁식사 후
반려견과 산책 겸해서 동네 바에 들러
맥주 한 잔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리고 틈틈이 일상의 기록들을 비밀 노트에 시로 써내려 간다.
반복되는 일상
paterson-2016-4rrlri.jpg 사랑하는 아내와 시작하는 하루하루

짐 자무시(James R. "Jim" Jarmusch) 감독의 영화 패터슨(2016)은 뉴저지주 패터슨 시에 사는 버스 운전사 패터슨이라는 남자를 따라간다.

그의 일과는 매일 같은 궤도를 맴도는 반복의 연속이다. 영화의 구조는 이를 강조하듯 월요일부터 다음 월요일까지, 8일간의 일상을 덤덤하게 보여준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런 변화도 없는 8일이지만, 패터슨은 그 속에서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것들을 발견하며 시적 영감을 얻는다.

이 글은 단순한 영화 해석이 아닌. 필자가 패터슨의 태도를 훔쳐 현실 속에서 그 삶을 살아보고, 그 경험을 통해 비로소 영화가 말하는 바를 깨달아 글로 써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버스 운전사
MV5BNGEwOTNjOTQtOWNiZi00MmYwLWJiZWItN2I2ZWJlOTgzNjY2XkEyXkFqcGc@._V1_.jpg 현재에 집중하는 패터슨

그의 직업은 버스 운전사이다. 버스는 반복되는 우리의 일상, 그리고 영화의 구조와 놀랍도록 닮아 있다. 버스는 같은 노선을, 같은 시간에 맞춰 순환하기 때문에 변하지 않은, 반복되는 우리의 일상과 닮아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매일 버스를 타는 승객들의 새로운 얼굴, 그들이 나누는 사소한 대화, 창밖으로 스치는 날씨와 빛의 각도는 매 순간 변한다.

시의 구절이 변하지 않고 반복되는 형식을 이어가지만, 그 안의 내용 하나하나가 바뀌면서 새로운 하모니와 리듬을 이루는 것처럼, 패터슨의 일상 역시 구조는 변하지 않더라도 그 내용은 끊임없이 새로운 변화를 선사한다.

시인의 시작은 이를 인정하는 데에서 시작한다. 어제와 같은 오늘은 없고 어제의 나는 이 세상에 없다. 오직 현재만이 존재한다. 그는 현재를 소중히 하고 몰입한다.

일상의 시인들
MV5BMzQ0NjVjYzEtMzA4My00MDFmLWE0NzctNjg2YmEyNmQxYTNmXkEyXkFqcGc@._V1_.jpg 글을 쓰는 아마추어 소녀

패터슨의 태도는 '현재에 몰입하여 반복되는 구조 속의 변화를 감지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는 버스 운전이라는 현실에 뿌리내린 채, 매일 아침 출근 전 작은 노트에 시를 쓴다. 그의 시는 특별한 사건이 아닌, ‘오하이오 블루 팁 성냥갑’이나 ‘사랑하는 여인의 잠든 얼굴’과 같은 일상의 사물들에서 시작된다.

MV5BNzEzNTQ3MDA3NV5BMl5BanBnXkFtZTgwNDk2Mzc5OTE@._V1_FMjpg_UX1000_.jpg 세탁소의 아마추어 래퍼

패터슨은 항상 걸어서 출퇴근하며 주위를 둘러본다. 필자 역시 패터슨의 '걷는 시선'을 따라 일상의 시인이 되어봤을 때, 매일 익숙하게 걷던 길조차 '인식하지 않고' 지나쳤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뭇잎 사이를 관통하는 햇살,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어두운 저녁의 미묘한 하늘색. 당연하다고 판단하여 소중함을 잃었던 일상이었다. 이처럼 일상 속 경이로움을 발견하는 패터슨의 시선은 단순한 취미를 넘어, 존재의 방식 그 자체가 된다.

생각의 오솔길

필자가 영화를 주제로 한 글을 쓰는 이유는 오솔길들을 여행하기 위함이다. 패터슨이 영화에서 산책을 하듯, 필자도 영화, 글, 이야기 속을 산책한다.

영화를 처음 보면 모든 것이 새롭기에 주요한 줄거리를 따라가기 바쁘다. 하지만 이를 반복하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주인공의 손짓, 세밀한 표정, 의상, 건축 배경 등 한 장면에도 무한한 것들이 포함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이를 여행의 비유로 들면, 유명한 랜드마크를 중심으로 여행하는 것과 오솔길들을 지나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처음에는 랜드마크들이 눈에 들어오지만, 이후에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 세월의 흔적에 따라 변한 간판, 그곳에서 태어나 자라는 아이들이 눈에 들어온다.

전공을 공부할 때도 같다. 처음에는 중요한 공식이 눈에 들어오고 문제풀이 방식이 들어오지만, 이후에는 그래프의 축, 공식을 유도하게 된 이유, 공식 유도 중에 나타나는 새로운 원리 등의 오솔길을 여행한다.

글쓰기는 이런 오솔길들을 여행하기 가장 좋은 방식이라 생각한다. 상기하고 생각하고, 다시 느끼고, 놓친 것들을 붙잡으며 기쁨을 느낀다. 오솔길을 걷는 기쁨은 필자에게 축복이다.

시인은 자격이 아닌 존재
MV5BYWM4YmJhNDQtZGZhNS00MjIzLWI3NGUtMzdkM2NiZTQwMDE4XkEyXkFqcGc@._V1_.jpg 소녀와의 만남

패터슨은 출퇴근길에 글을 쓰는 소녀, 세탁소에서 랩을 뱉는 래퍼 등 많은 사람을 만난다. 필자가 '생각의 오솔길'을 바라보며 글을 쓰듯, 패터슨은 시로, 소녀는 글로, 래퍼는 랩으로 일상의 시인이 된다. 이들의 공통점은 현재에 몰입하는 태도에 있다.

우리는 우리의 일상을 넘어 주위 사람들을 안다고 단정하고 매듭짓지만, 패터슨은 처음 만난 낯선 이들부터 매일 보는 아내까지, 누구도 규정하거나 판단하지 않는다. 그는 그들의 존재 방식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발견되는 경이로움을 자신의 언어로 표현할 뿐이다.

그는 자신의 시를 출판하려 노력하지도 않고, 주변에 자랑하지도 않는다. 패터슨에게 시는 ‘무엇을 하는 행위’가 아니라 ‘어떻게 존재하는가’에 가깝다. 그는 시인이라는 자격이나 타이틀이 필요하지 않다. 그저 삶을 관찰하고, 그 관찰을 언어로 포착하는 행위 자체가 패터슨이라는 존재의 방식이다.

아마추어(amateur)
paterson-2016-uFVClh.jpg 아마추어 로라

아마추어의 사전적 의미는 프로의 반의어로 직업이 아니라 취미로 무언가를 하는 사람을 뜻한다. 그리고 우리는 일상에서 이와 같은 의미로 아마추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지극히 일상적인 단어인 '아마추어'에도 변화를 줄 수 있다. 아마추어의 어원은 라틴어로, 'amator(사랑하는 사람)'에서 프랑스어 'amateur'로 이어졌다. 원래 의미는 ‘애호가’, 즉 업이 아니라 좋아서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을 뜻한다. 이 내용은 일상의 반복적인 것을 새롭게 한다는 점에서 앞선 패터슨의 태도에 대한 좋은 예제라고 할 수 있다.

paterson-2016-wl2cca.jpg 기타를 치는 로라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러한 소소한 변화에 '감탄'하는 태도이다. 아무리 일상적인 부분에서 새로운 면을 발견한다고 해도, 감탄하지 않고 그 새로움을 기뻐하지 않으면 시인의 태도와는 멀어지게 되어 있다. 새로운 면을 발견한다고 해서 본래의 것들이 무가치하다거나,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단지 새로운 면이 생기는 것이고 다채로워지는 것이다.

paterson-2016-sCIbvM.jpg 기쁜 로라와, 그를 바라보는 패터슨

그런 면에서 패터슨과 로라는 아마추어다. 그들은 그들의 것들을 사랑하기도, 취미로 행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마추어의 새로운 의미로 생긴 다채로움 없이 그들을 바라보면 프로의 반의어인 아마추어로서, 아마추어 시인과 취미가 많은 아내로만 보이지 않을까?

패터슨과 로라는 일상을 사랑한다는 것과 새로움을 발견한다는 점에서 다르면서도 같다. 로라는 새로운 것을 외부에서 직접 배우는 반면 패터슨은 이미 가진 그의 일상에 흩뿌려진 것을 새롭게 만든다. 둘의 공통점은 그들은 새로움에 감탄하고 기뻐한다는 점이자 본래에 있던 것들을 존중한다는 것이다.

일상이 시로 변한다
Screenshot2020-06-15at09.49.42_1024x1024.png?v=1692003741 OHIO BLUE TIPS

글쓰기는 영화, 책, 일상에서 얻은 관념들을 종합하고, 뒤섞고, 이론을 세우고, 직접 살아보며 수정하는 지난한 과정이 필요하다. 필자의 글쓰기가 그러하듯, 패터슨의 창작 역시 일상이라는 시간 속에 관념이 녹아들어 다채로움을 획득한다.

그의 시는 단순한 영감의 발현이 아니라, 일상이라는 '시간'이 부여한 섬세한 결과물이다. 로라가 이야기해 준 쌍둥이 꿈에 대해 듣고, 그는 버스 노선을 돌며 실제로 쌍둥이들을 만나고 인식하는 과정을 거친다. 오하이오 블루 팁 성냥갑이라는 사물이 시의 주제가 되기 위해서는, 그가 그 성냥을 바라보고 만지는 일상, 그리고 버스 운전을 하는 동안 그 이미지에 몰입하는 일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시와 관념은 이처럼 일상 속에 흩뿌려진 요소들을 끈기 있게 끌어모아 완성되는 것이다.

paterson-2016-GIzJsc.jpg 아직도 반복되는 일상으로 보이는가?

이러한 일상의 변환은 이동진 평론가의 코멘트에서도 잘 드러난다. 패터슨이 시를 쓰는 순간, 즉 '일상이 시가 되는' 순간은 영화의 첫 번째 맥주 부감(俯瞰) 장면으로 포착된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발견된 찰나의 순간이 압축되어 언어로 승화되는 지점, 바로 일상이 시가 되는 순간이다.

시가 완성되면 그 시는 다시 패터슨의 일상으로 돌아와 스며든다. 화요일의 끝과 수요일의 끝은 매우 흡사하다. 맥주잔을 바라보며 감사함을 느끼고 하루를 마감하는 화요일처럼, 수요일도 바에서의 기억을 완성하고 똑같은 행동으로 마무리한다. 그러나 두 일상 사이에는 시간과 삶, 시가 존재한다.

시가 일상이 된다
maxresdefault.jpg 자꾸만 만나는 쌍둥이들

두 번째 부감 장면은 시를 쓴 다음 그 행위를 반복하는 모습이다. 이는 '시가 일상이 되는' 행위이다. 시를 통해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변화했기 때문에, 같은 일상을 살아가더라도 그 경험의 질이 완전히 달라진다. 시를 통해 다채로움을 얻은 이후의 패터슨의 맥주 경험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다채로워질 것이다.


마찬가지로 필자 역시 패터슨의 삶의 태도에 따라 살아보며 글을 수정하고 깨달음을 얻었다.

약 5개월간의 시간과 경험이 담긴 이 글을 쓰고 난 후, 필자는 같은 일상을 살아가지만 그 일상은 이제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채로움을 머금게 된다. 일상을 인지하고자 하는 작은 시작에서 감탄하는 태도, 그리고 그 너머의 태도로 글과 삶이 함께 발전하는 것이다.

아하!(Ah-ha!)
paterson-2016-Jhi31d.jpg 아하!(Ah-ha!)

영화를 하나의 대사로 표현하자면 단연 아하!(Ah-ha!) 일 것이다. 일상의 변화를 경험한 시인들이 흔히 겪는 이 순간은, 오랫동안 눈에 띄지 않던 사물이나 현상이 갑자기 새로운 의미와 빛을 띠고 다가오는 지점이다.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패터슨이 쓰던 시를 반려견 마빈이 산산이 조각내었을 때, 패터슨은 깊은 좌절을 경험한다. 영화에서 마빈은 시에 빠져있는 즉, 몽상에 빠져있는 패터슨을 현실로 돌아오게 만든다. 마빈을 산책시키고 돌보는 것은 몽상의 패터슨을 몽상에 세계에 머물지 않고 현실로 돌아오게 만드는 책임으로 작용한다.


이후 마빈의 행위로 복잡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 패터슨에게 한 일본인 시인이 다가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 일본인 시인은 아하!(Ah-ha!)라는 감탄사를 사용한다. 패터슨이 몽상을 멈추고 현실로 돌아오는 것처럼 우리도 살아가며 항상 감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일본인 시인은 아하!(Ah-ha!)라는 감탄을 의도적으로 하는 느낌을 준다. 이것이 영화가 우리에게 하는 말이지 않을까 싶다. 감탄은 몽상 속에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시를 쓰는 중에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좌절하고, 힘들 때에도, 우리는 아하!(Ah-ha!)를 외칠 수 있다. 고난의 중간에 서있음에도 우리 주위에는 얼마나 많은 기적들이 있고 아름다움이 있는가?

감탄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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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하고 있던 패터슨에게 아하!(Ah-ha!)라는 의도적 감탄은 큰 위로가 된다. 그리고 일본인 시인은 빈 노트를 주며 "때론 빈 페이지가 가장 많은 가능성을 선사합니다"는 말을 하고 떠난다. 떠나는 와중에 다시 뒤돌아 아하!(Ah-ha!)를 외치는 것은 또 다른 시와 같다.

영화는 이렇게 마무리된다. 일상의 시인이 되고, 시가 일상이 되는 경험과 변화를 감지하고, 감탄하며 기뻐하는 삶. 패터슨을 보기 전에는 단순하고 반복되는 삶을 지루하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영화의 끝으로 가면 그의 삶이 얼마나 다채로운지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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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필자는 충분해 보이는 영화의 메시지로 끝내지 않고 더 나아가고자 한다.

감탄을 넘어 감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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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패터슨이라는 영화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를 중심으로 일상 속 감탄의 태도를 이야기해 보았다.

여기서 더 나아가자면 우리는 감탄하는 삶을 넘어 감사하는 삶으로 나아가야 한다.

감탄에는 대상이 없다. 무엇에 놀라고 감탄할 수는 있지만, 이 영광을 돌릴 대상은 없는 것이다. 하지만 감사는 다르다. 감사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대상이 있어야 한다. 사랑은 혼자 못하듯이 감사도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혼자 사랑하고 있고, 혼자 감사하고 있다면 그것은 반쪽짜리일 것이다. 감사에는 대상이 있어야 한다. 패터슨이 성냥갑 하나에서 우주적인 질서를 발견할 때, 그 감탄은 이 모든 것의 근원, 즉 '존재의 선물'에 대한 깊은 '감사'로 변모해야 한다. 필자의 감사는 그리스도로 나아간다.

유카리스티아[εὐχαριστία, Eucharistia]

"감사"라는 뜻을 가진 유카리스티아(Eucharistia)는 헬라(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단어로 '좋은' 또는 '잘'을 뜻하는 접두사 '유(eu)'와 '은혜'를 뜻하는 '카리스(charis)'가 결합된 단어다.

이처럼 감사는 단순히 '감사하는 마음'의 뜻만 가진 것이 아니다. 그 속에는 은혜라는 단어가 숨어있다.

그렇다면 은혜는 무슨 뜻일까? 사전적 의미로는 사람의 노력으로 받는 것이 아닌, 하나님이 주기로 원했기 때문에 주어지는 선물을 의미한다. 사람이 전혀 받을만한 공로를 하지 않았음에도 자발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
에베소서 2:8 KRV

그렇다면 패터슨의 태도와 그리스도의 은혜는 무슨 상관이 있을까?

현존(pres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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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터슨은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의 이러한 태도는, 그가 추구하는 '현존감' 혹은 '명상(meditation)'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함일 것이다. 진정한 현존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감각을 통해 몸과 세상이 연결되어 있어야 하지만, 스마트폰은 이 연결을 끊어버린다.

필자도 강아지와 산책을 자주 나간다. 이때 스마트폰은 사진을 찍어야 할 때가 아니면 사용하지 않는다. 스마트폰은 우리를 몸에서 떠나게 만든다. 화면은 시각을, 이어폰은 청각을 차단하고, 그 과정에서 후각과 촉각마저 무뎌진다.

예를 들어 비가 오고, 그 비에 집중하며 걸으면 비의 냄새, 바닥에 떨어지는 빗소리, 비가 만들어내는 습도와 온도 등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이때 우리는 깊은 명상 상태에 들어가게 되며, 그 순간 '내가 존재한다'는 명확한 현존감이자 존재감을 느낀다. 패터슨은 자신의 시적 영감과 현존감을 지키기 위해 이 '몸을 잃지 않는' 태도를 선택한 것이 아닐까?

임재(presence)

앞선 장에서 논한 '현존(Presence)'이라는 개념을 기독교적 관점에서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동일한 'Presence'이지만 기독교에서는 이를 '임재(Immanence)'라고 부른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의 '임마누엘'에서 비롯된 개념이다.

결국 존재하는 모든 순간은 주(主)와 함께하는 것이며, 우리가 진정한 현존감을 느끼는 바로 그 찰나의 순간은 주를 '보는' 순간이자 그 아름다움을 보게 되는 순간이 '주의 영광'을 보는 순간이 된다. 이것이 바로 은혜(Grace)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는 것, 이 자체가 은혜이며, 삶을 향한 절대적인 긍정이자 존재의 이유가 된다.

패터슨의 태도로 세상을 바라볼 때 우리는 사소한 것에서 감탄하고, 더 나아가 감사에 이르게 된다. 그 감사의 마음속에서 우리는 '은혜'를 발견하고, 은혜를 통해 궁극적으로 주의 영광을 보게 된다. 낙엽 하나, 햇빛에 둘러싸인 나무, 흐르는 비, 바쁘게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 이 모든 일상 속에서 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다.

내 눈 주의 영광을 보네 [아들의 영광]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3:16-17 KRV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하나님을 보시게 되며 듣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는 앞서 말한 모든 것을 함축하는 구절이다. 우리의 가장 큰 은혜는 주의 영광을 보는 것, 주가 우리를 자녀 삼아 주신 것에 있다.

그 영광을 아버지께 돌리는 아들의 모습을 우리는 따라야 한다. 그리스도는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저희는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지금 저희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께로서 온 것인 줄 알았나이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삽고 저희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았삽나이다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저희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저희 안에 있고 나도 저희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요한복음 17:5-7,21-26 KRV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찬송한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돼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

에베소서 1:2-10 KRV
결론

반복되는 삶의 패터슨을 통해 은혜받은 우리와 아들의 영광을 아는 우리까지 오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필자도 맥주사이에 시를 끼워둔 패터슨과 같이 삶 곳곳에서 주를 발견하고 그의 무한한 사랑, 은혜를 발견할 것이다. 그리고 이는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그리곤 이렇게 고백할 것이다.

"내 눈 주의 영광을 보네."


참고: 리히트책방, 성경,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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