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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태영 Jan 04. 2024

소년과 바다

 모론다바 해변에 한 소년이 보입니다. 소년은 뒤집어진 카누에 기대어 바다를 바라보는 중입니다. 다른 아이들은 신나게 물놀이를 하고 있지만, 소년은 파도가 바닷물을 몰고 와도 발만 내어줄 뿐 바다로 달려들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수영을 못하는 걸까요?

물이 무서워서 그런 걸까요?

조금 더 유심히 그 모습을 지켜봅니다.


소년이 기대고 서 있는 카누 밑에 누군가가 벗어 둔 옷가지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다른 사람들이 혹시나 옷을 훔쳐 가지 않을까 소년은 주변을 예의 주시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다 주변에 다른 사람이 없는 틈을 타서 발만 파도에 살짝 담그고 돌아옵니다. 행여나 소년이 조금이라도 파도를 따라 바다 들어가려고 하면 누나로 보이는 아이가 손가락질을 하며 소리를 지릅니다. 그러면 소년은 고개를 숙인 채 옷이 있는 카누로 돌아와 가만히 바다를 바라봅니다. 바다를 눈앞에 두고 가만히 서 있어야 하는 소년의 뒷모습에서 지루함과 놀고 싶은 마음, 누나에 대한 무서움이 교차하는 게 느껴집니다.


발만 물에 담그며 왔다 갔다 하기를 몇 차례. 그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아니면 아무도 옷을 훔쳐가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는지 소년의 누나는 마침내 바다에 들어와도 좋다는 수신호를 보냅니다. 누나의 허락이 떨어지자 소년은 잽싸게 옷을 벗어서 카누 밑에 포개어 놓습니다. 두근거리는 소년의 심장소리가 저한테까지 들리는 것 같습니다. 소년은 빨간 팬티 한 장만 걸치고 파도 앞에서 호흡을 가다듬습니다. 두 팔을 크게 벌리며 심호흡을 하다가 다시 한번 파도가 소년의 발을 감싸는 순간, 소년은 씨익 미소를 지으며 바다로 달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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