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아닌 여자로 돌아가고픈 어떤 날....
낯선 도시에서 주는 어색함과 신선함 그리고
약간의 긴장됨은 나를 본연의 나로 깨어나게 하는 느낌이었다.
그 느낌을 맛본 지가... 언제였던가!
엄마가 된 후 5번째 맞이하는 올 가을은
그간의 역할을 벗어나 여자인 나로 돌아가 온전히 '나'로 살고 싶어 가을바람난 여자인 양 안달하고
있다.
밴쿠버는 비 와함께 '레인 쿠버'의 시즌이 돌아왔다.
작년 여름 어렵게 장만한 집은 잘 관리되는
초록 가득한 정원이 있고, 그 앞 창틀 외벽에는 빗물받이가 달려있는데, 비가 오는 날이면 빗물받이에
떨어져 통통 튀는 빗소리가 꼭 어릴 적 슬레이트
지붕의 빗소리를 연상시켜 추억에 젖곤 한다.
창문을 열면 비에 젖은 진한 흙내음과
초록의 기운이 들어서고 패티오 처마 밑에는
아롱아롱 빗물들이 매달려있는 모양새가
나를 늘 설레게 한다.
월요일 아침부터 발런티어 교육이 있어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교육을 받고 돌아와 바로 또
아이를 픽업한 후 집에 와 점심을 해 먹이고,
홈스테이 학생을 픽업해 오자마자 시계를 보니
아이가 수영에 갈 시간이었다.
점심은커녕 아침도 굶은 채 벌써 오후 세시가
되었다니.... 엄마의 하루는 참 바쁘다.
이 쌀쌀한 가을날 시작해 두 번째 클래스에
들어가는 아이의 수영장은 한산했다.
클래스는 물에 몸을 맡겨 눕는 법,
잠수하여 버블 만드는 방법을 배우며 금세 30분이
지났고 그새 난 또 아이를 씻겨 집으로 돌아 올
채비를 하였다.
주차장으로 들어가던 길목, 핸들을 꺾는데
내 손목으로 빼꼼히 나온 검정 손목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오늘 입은 나의 가을느낌이 묻어나는 옷과 매치한 시계가
내 맘에 꼭 들어 왠지 가을 여자가 된 기분이었다.
아마 지난주 목요일에 얹힌 음식이 아직까지
내려가질 않았나 보다.
원래도 잘 체하는 나는 일상생활에서 잘 해결되지 않고 나의 의도와 다르게 지체되는 일이 생기면
꼭 체하곤 하는데 약으로는 듣지도 않고,
손을 여러 번 따고 온갖 군데를 다 마사지해줘야
내려가곤 한다.
그런데 주말엔 일을 하느라, 그리고 월요일부턴
교육과 아이들 스케줄에 쫓기어 화요일인 오늘까지도 무언가 먹을 때마다 다시 꽉 막힌 느낌이 들어 아주 죽을 맛이다.
아직 손을 따지도 못했고 명치는 물론 뒷목과 더불어 발바닥까지 딱딱하게 굳은 느낌에 당장 한의원에 가서
침으로 여러 군데를 찔러 속을 뻥 뚫고 싶은 기분이다.
그래서 오늘은 아이 학교와 치과 스케줄을 소화하고 집에 돌아와 곧장 침대에 쓰러졌다.
누워 깜박 잠이 들었는데 그렇게 아이의 남은 오후를 엄마의 쉬는 시간으로 방치한 채 아이를 재우고 나서야 나의 정신과 영혼은 깨어났다.
곰곰이 요즘을 뒤돌아보니 나는 '너무나 여자이고 싶다.' 그냥 여자, 그냥 '나 서희....'
누구의 엄마도 아내도 아닌 오롯이 '나'로 돌아가 비가 와 더욱 운치 있고 잔잔하게 물든 단풍과 낙엽 떨어지는 가을을 만끽하고 싶은데 일상에서는 그 짬이 나지 않으니 그 마음이 내 명치에 턱 걸렸나 보다...
잠들기 전, 아이의 '엄마 사랑해..'라는 말에 대꾸도 않고 첼로 선율에 집중하며 글을 써 내려갔다...
이 시간이 그나마 내가 나로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