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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일 몽상가 Feb 27. 2021

엄마의 가을....

엄마가 아닌 여자로 돌아가고픈 어떤 날....




어디인지 모를 호텔 창문에서 찍은 사진......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픈 요즘이다.


낯선 도시에서 주는 어색함과 신선함 그리고

약간의 긴장됨은 나를 본연의 나로 깨어나게 하는 느낌이었다.

그 느낌을 맛본 지가... 언제였던가!

 엄마가 된 후 5번째 맞이하는 올 가을은

그간의 역할을 벗어나 여자인 나로 돌아가 온전히 '나'로 살고 싶어 가을바람난 여자인 양 안달하고

있다.

밴쿠버는 비 와함께 '레인 쿠버'의 시즌이 돌아왔다.

작년 여름 어렵게 장만한 집은 잘 관리되는

초록 가득한 정원이 있고, 그 앞 창틀 외벽에는 빗물받이가 달려있는데, 비가 오는 날이면 빗물받이에

떨어져 통통 튀는 빗소리가 꼭 어릴 적 슬레이트

지붕의 빗소리를 연상시켜 추억에 젖곤 한다.

창문을 열면 비에 젖은 진한 흙내음과

초록의 기운이 들어서고 패티오 처마 밑에는

아롱아롱 빗물들이 매달려있는 모양새가

나를 늘 설레게 한다.





그 정원에서 우리 모자를 구경하러 온 앞집 고양이.


유리가 깨져 그간 차지 못했던 시계를 차고 겨울 니트와 검정 코트를 꺼내 입은날...



왠지 여자가 된 기분이었다.


 월요일 아침부터 발런티어 교육이 있어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교육을 받고 돌아와 바로 또

아이를 픽업한 후 집에 와 점심을 해 먹이고,

홈스테이 학생을 픽업해 오자마자 시계를 보니

아이가 수영에 갈 시간이었다.

점심은커녕 아침도 굶은 채 벌써 오후 세시가

되었다니.... 엄마의 하루는 참 바쁘다.

이 쌀쌀한 가을날 시작해 두 번째 클래스에

들어가는 아이의 수영장은 한산했다.

클래스는 물에 몸을 맡겨 눕는 법,

잠수하여 버블 만드는 방법을 배우며 금세 30분이

 지났고 그새 난 또 아이를 씻겨 집으로 돌아 올

채비를 하였다.

 주차장으로 들어가던 길목, 핸들을 꺾는데

내 손목으로 빼꼼히 나온 검정 손목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오늘 입은 나의 가을느낌이 묻어나는 옷과 매치한 시계가

내 맘에 꼭 들어 왠지 가을 여자가 된 기분이었다.



작년 아이를 데이케어에 보내고 스산한 기운이 묻어난 아침에 찍은 사진.


체기가 가시질 않는다..


 아마 지난주 목요일에 얹힌 음식이 아직까지

내려가질 않았나 보다.

원래도 잘 체하는 나는 일상생활에서 잘 해결되지 않고 나의 의도와 다르게 지체되는 일이 생기면

꼭 체하곤 하는데 약으로는 듣지도 않고,

손을 여러 번 따고 온갖 군데를 다 마사지해줘야

내려가곤 한다.

그런데 주말엔 일을 하느라, 그리고 월요일부턴

교육과 아이들 스케줄에 쫓기어 화요일인 오늘까지도 무언가 먹을 때마다 다시 꽉 막힌 느낌이 들어 아주 죽을 맛이다.

아직 손을 따지도 못했고 명치는 물론 뒷목과 더불어 발바닥까지 딱딱하게 굳은 느낌에 당장 한의원에 가서

침으로 여러 군데를 찔러 속을 뻥 뚫고 싶은 기분이다.


 그래서 오늘은 아이 학교와 치과 스케줄을 소화하고 집에 돌아와 곧장 침대에 쓰러졌다.

누워 깜박 잠이 들었는데 그렇게 아이의 남은 오후를 엄마의 쉬는 시간으로 방치한 채 아이를 재우고 나서야 나의 정신과 영혼은 깨어났다.


 곰곰이 요즘을 뒤돌아보니 나는  '너무나 여자이고 싶다.' 그냥 여자, 그냥 '나 서희....'

누구의 엄마도 아내도 아닌 오롯이 '나'로 돌아가 비가 와 더욱 운치 있고 잔잔하게 물든 단풍과 낙엽 떨어지는 가을을 만끽하고 싶은데 일상에서는 그 짬이 나지 않으니 그 마음이 내 명치에 턱 걸렸나 보다...

 잠들기 전, 아이의 '엄마 사랑해..'라는 말에 대꾸도 않고 첼로 선율에 집중하며 글을 써 내려갔다...

이 시간이 그나마 내가 나로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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