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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실 Feb 12. 2022

엄마로 다시 태어나게 해 줘서 고마워

엄마를 위한 그림책 '엄마도감'

엄마가 안 보일 때는 
잠시 모른 척해 보세요.
조금만 기다리면 큰 소리로
이름을 부르며 나타날 테니까요. 


아기의 시선으로 보는 엄마는 어떤 모습일까요? 피곤해서 퀭한 얼굴, 침대가 되었다가 비행기로 변하는 신기한 몸, 육아로 인해 점점 두꺼워지는 손가락과 팔 근육 등 아기는 엄마의 모습을 관찰하고 기록합니다. 아기의 시점에서 연구한 엄마의 먹이 활동, 수면 활동, 배변 활동, 숨바꼭질 등을 통해  엄마의 삶을 되짚어 봅니다.


 21개월 된 둘째 아이가 바나나 껍질을 벗기려고 한다. 조그만 두 손가락에 껍질 끄트머리가 잡힐락 말락 하다가,  껍질을 아래로 쑤욱 내리는 데 성공한다. 네 번에 걸쳐 바나나 껍질을 모두 벗겼다. 이게 뭐라고 스릴 비슷한 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아이가 바나나를 쥐고 입을 오물거린다. 바나나를 까서 먹는 장면일 뿐인데, 눈을 뗄 수 없다. 재미있기까지 하다. 아이는 특별할 것 없는 장면도 특별하게 만든다.

 

 나는 한 손으로 턱을 괴고 배시시 웃으며 아이를 쳐다보았다. 아이가 눈으로 장난을 걸어온다. 눈을 찡긋하다가 다시 반달 모양으로 바꾼다. 그러더니 한 손을 턱에 갖다 댄다. 아이코 내 심장아! 누군가 나를 따라 하는 모습이 이렇게 심장을 부를 정도로  설렐 일인가! 아이가 휴지 한 장을 뽑아 쥐더니 다시 턱을 괸다. 아이 손에 묻은 바나나를 닦아주기 위해 휴지를 쥐고 있는 내 모습을 거울로 보는 것 같다. 웃음이 터졌다. 아이와 함께 하는 하루는 멜로, 코미디, 미스터리 등 많은 장르가 섞여 있다.



 때마침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가사가 귀에 들어왔다. 처음 듣는 곡이었다. 찾아보니, 지창욱의 ‘네가 좋은 백 한 가지 이유’라는 노래였다. 


 어떤 욕심도 없다 지금이 좋다 너와 있는 시간이 

 그저 지금처럼 널 안고 딱 오늘처럼만 너를 보고 

 이렇게 매일을 너와 함께하고 싶어

 바라보면 꼭 안고 내 하루를 들려주고 싶은 사람

 자꾸 보면 더 볼수록 마음이 가고 예뻐

 바라보면 자꾸 네게 입술을 대게 만드는 그런 사람


 '바라보면 자꾸 네게 입술을 대게 만드는 그런 사람', 내 아이였다. 만약 뽀뽀한 흔적이 얼굴에 남는다면 남편과 나의 뽀뽀 자국으로 아이의 얼굴이 가득 채워질 거다. 다른 사람들은 이 노래를 듣고 연인을 떠올릴 테지만, 나는 눈앞에 있는 아이와 뮤직비디오를 찍고 있다. 엄마가 되고 나서는 사랑 노래를 들으며 아이를 떠올린다.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멋진 주인공을 봐도, ‘저 오빠 멋있다!’가 아닌 ‘내 아들이 저렇게 크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오빠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없는 내 나이가 서글플 때도 있지만, 아이들이 얼마나 멋지게 자랄지 상상하면 즐겁다.



 “나 화장실 좀!”

 남편과 내가 주고받는 이 말속에는 숨은 의미가 있다. ‘나 좀 쉬었다 올게’라는 뜻이다. 아이들과 부대끼다 보면 혼자만의 시간이 절실할 때가 있다. 그럴 때 가장 적당한 곳이 화장실이다. 볼일을 보거나 씻어야 한다는 명분이 확실하면서, 혼자만의 자유시간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종종 이 소박한 일탈마저도 허락되지 않는다. 아이들은 화장실로 숨은 엄마를 기가 막히게 잘 찾아내기 때문이다. 


 “나도 엄마랑 같이 씻을래요!” 

 오늘 아침 첫째 아이가 화장실로 쫓아오며 말했다. ‘그러자!’라고 웃으며 답하는 동시에 잔뜩 찌푸린 마음이 소리쳤다. ‘실패다!' 다행히 아이는 겉과 속이 다른 엄마를 눈치채지 못한다. 오늘은 숨바꼭질을 시작하자마자 술래에게 들켜버렸다. 내일은 따뜻하게 입고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 와야겠다. 주머니에 휴대폰을 챙기고, 아주 느린 걸음으로 다녀와야지.



 아 맞다! 내일 아침 일찍 부모님이 오신다고 했다. 며칠 후 2월 15일은 정월 대보름이자 남편의 생일이다. 부모님은 나물과 백숙을 싸들고, 사위의 생일을 미리 축하해 주러 오신단다. 내일은 몰래 숨을 필요가 없다. '엄마 좀 잘게'라고 선언한 후 안방으로 들어가면, 뒷일은 부모님이 알아서 해결해 주실 거다.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다. 일찍 잠들기 아까운 밤이다.


나는 아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는 아이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다.

아이는 지금의 나,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한다.
나는 지금의 아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한다.

나는 아이가 그토록 원하는 단 한 사람이다.
아이는 내가 그토록 원하는 단 한 사람이다.

-오연경, '아이가 원하는 것을 모른 채 부모는 하고 싶은 말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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