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놀이터-ok’er mansion. 240303
오케이어 맨션.
부려진 공간을 보면, 그 공간을 꾸리는 사람의 ‘결’을 느낄 수 있다.
골목의 다가구 건물 2층에 자리 잡은 독립서점 오케이어 맨션에 대한 첫인상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면 정면으로 오픈 주방 겸 카운터가 보이는데, 거기에 시선이 뺏기기도 전에 너무나도 환한 얼굴의 대표님이 먼저 반갑게 맞아주신다.
빌려준 돈을 안 갚는 친구 때문에 10분 전까지만 해도 속앓이를 했던 사람이라면,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가도, 출입문을 열고 그곳에 들어서는 순간 바로 천국을 맛보는 신비로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대환장 파티 중인 속 시끄러운 사람의 마음까지도 봄 눈 녹듯 스르르 풀려버린다는 마성의 ‘안면근육 무장해제’가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이 말이다.
각설하고, 들어서면 왼편으로 탁 트인 책방 전경이 펼쳐지고, 좀 더 왼편으로 돌아 안쪽으로 들어서면 꺾이는 공간이 창가자리까지 연결된다.
1인석의 창가자리 두 군데와 서너 명이 앉을 수 있는 원형 테이블이 두 군데, 그리고 주방 쪽을 바라보며 독립적으로 앉을 수 있는 자리가 또 네 자리 마련되어 있다.
공간 자체가 아주 넓지는 않아서, 시선을 분산시켜 찬찬히 둘러보면 주인장의 가치관을 금방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초록의 화분들, 창턱으로 쪼르륵 배치된 작은 식물들과 테이블 위의 생화 장식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가지런한 메인 서가를 빠르게 둘러보며 사고 싶은 책 한 권을 골랐다.
계산을 하려고 카운터로 가니, 바 테이블 위의 화병에 꽂혀있는 잔꽃가지를 작게 잘라서 구입한 책 위에 살포시 놓아주신다.
이 작은 행동 하나가 계획된 행동이라기보다는 손님을 향한 작은 배려라고 느껴졌다.
출입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마주했던 그 상냥한 미소와 맞닿아 있는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따뜻한 커피와 간식을 주문하고 1인석의 창가 자리에 앉아서 본격적으로 나도 이곳의 분위기를 누려 볼 참이었다. 겉옷을 벗어두고, 챙겨 온 책과 필기구 등을 꺼내 놓고서 두리번거리며 좀 더 공간에 친숙하게 빠져들어갔다.
이곳에 방문하기 전에는 ‘공간’이 궁금해서 사진들을 검색해 보았는데, 막상 자리 잡고 앉아보니 이 공간에 온전히 마음을 쏟았을 ‘사람’이 궁금해졌다.
물론 책을 좋아하는 마음결을 가지신 분이어야만 책방 운영을 하실 거란 전제가 있지만, 최소한 이 공간에 대한 소신을 직접 엿듣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몇 가지 여쭙고 싶은 질문들을 정리해서, 대표님께 양해를 구하고, 짧은 인터뷰 형식의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나 : 제가 실은 사서거든요.
대표님 : 아, 그러세요. (놀라실 때의 표정도 어쩜 그리도 고우신지)
나 : 책에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서 뭔가 스스로에게 의미 있는 일을 찾아서 하고 있는데요, 그중에 하나가 독립서점을 찾아다니면서 개인적인 감상의 글을 쓰고 있어요. 단순히 방문한 곳에 대한 느낌을 쓰기보다는 이왕이면 제대로 알고 진정성 있는 글을 쓰고 싶어서 몇 가지 여쭙고 싶은데요. 오케이어 맨션은 어떤 뜻이 있나요? 오케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뜻할까요?
대표님 : 네, 그것도 맞는데요, 중의적인 의미가 있어요. 하나는 사람들이 이 공간에 와서 위로를 받고 의지를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어요. 제가 타향 사람이거든요. 20대 때 서울에 올라왔을 때 사람도 낯설고, 지역도 생소한데 그때 갔던 식당에서 큰 영감을 얻었어요.
그냥 단순히 밥을 먹는 곳이었는데, 뭔가 제가 위로를 받는 그런 느낌이 있었거든요. 저는 어려서부터 책방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리고 책방을 하게 되면 그때 식당에서 느꼈던 위로의 마음을, 내 공간에 찾아오는 손님들도 느끼셨으면 했죠. 사람들이 가장 위로를 많이 받는 것이 실은 자연이잖아요? 나무, 풀, 꽃. 그래서 화분들도 많고 꽃을 두고 있어요. 책방이라는 공간은 물론 제가 저의 취향껏 꾸미는 공간이지만,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오는 곳이잖아요? 그 사람들이 한 데 어우러지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던 거죠. 오케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꿈꾸는 독립을 돕고 싶었어요.
그리고 또 하나의 의미는, 미국의 매거진 중에 ‘뉴요커‘가 있는데요, 거기에서 다루는 기사를 싣기 전에 최종적으로 검열하고 오케이 사인을 하는 직급이 있어요. 그 직급 자체를 일컫는 말이 오케이어입니다.
나 : 와, 굉장한 의미를 가진 이름이네요. 첫 번째의 의미라면, 대표님께서는 이미 충분히 그것을 이루었다고 생각합니다. 들어섰을 때부터 공간에 대한 힘이 느껴졌거든요. 충분히 힐링이 되고 분위기도 편안해서 너무 좋아요.
대표님 : 아유 그러셨다면 너무 다행이에요.
나 : 책방을 여신 지는 얼마나 되셨나요?
대표님 : 1년 6개월 차 되었어요.
나 : 아, 얼마 안 되신 거네요? 이 책방에서 가장 신경 쓰시는 부분이 어떤 건가요? 예를 들면, 청결 상태라든지, 아니면 커피의 맛이라든지 좀 더 신경이 가는 부분이요.
대표님 : 제가 유독 예민한 사람인지는 모르겠는데요, 저는 물론 청결 상태도 신경이 쓰이지만, 손님들을 유심히 관찰하고 신경 쓰게 되더라고요. 책을 고르는 방식이라든지 혹은 어떤 것을 불편해하지는 않는지, 의자 끌리는 소리까지도 살피게 돼요. 그리고 커피를 마시거나 간식을 드실 때의 반응도 살펴요.
매번 인테리어를 바꾸고 책의 진열을 신경 쓸 때도 손님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살피고 반영하는 거죠.
나 : 맞아요 대표님, 그게 오너의 가장 기본적인 태도가 아닐까 싶어요. 손님들에 대한 배려의 시작이기도 하고요.
여러 손님들을 대하시면서 대표님 스스로도 성장하고 계시다는 걸 느끼시겠어요. 안쪽에 벽면에 보니까 대표님께 하고 싶은 말이나, 이곳에 대한 감상을 적어놓은 메모가 쭉 붙어있더라고요.
대표님 : 맞아요. 저도 처음 대하는 젊은 친구들한테 제가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게 신기했어요. 제가 성장하는 것도 물론 있지만, 저는 제 스스로를 더 잘 알아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주변의 제 친구들에게도 저의 마음들이 잘 닿아가고 있다고 느껴요.
처음 보는 손님들과는 좋은 인연으로 만나게 되고, 그러다가 단골도 되시더라고요. 어떻게 아시고 오시는지 멀리 제주에서도 오세요.
나 : 사실 요즘에는 새로운 친구를 알아가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에요. 저도 이렇게 돌아다니면서 의미 있는 일을 찾으려고 해서 그렇지, 스스럼없이 말을 걸고, 새로운 친구를 사귄다는 게 참 용기가 필요한 일이더라고요. 내가 원하는 곳을 찾아가는 것은 거리 하고는 상관이 없는 것 같아요.
대표님 : 맞아요. 정말 그래요.
나 : 오늘 대표님과 이렇게 얘기 나누면서 느낀 것이, 이런 경험이 참 소중하구나 싶었어요. 다음에 또 오게 될 것 같아요. 오늘 말씀 나눠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대표님 : 아니에요. 제가 더 감사해요. 또 오세요.
정말 그렇다. 요즘 새로운 친구를 사귄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코로나 19를 겪으면서 체득해 버린 비대면의 편리성은 논외로 치더라도,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조차도 갖기가 어렵거니와 설령 그런 기회가 생기더라도 초면의 사람에게 스스럼없이 말을 걸기까지는 큰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소통의 부재, 기회의 부재가 가져오는 관계의 단절은 꽤나 심각해 보인다.
개인적인 관계의 영역을 조금씩 확장해 보면 어떨까?
나의 경우에도, 지금처럼 독립서점을 두루 다니면서 대표님들과 새롭게 인연을 만들어 나가고, 공간에 대한 영감을 얻어서 또 다른 활동을 도모해 볼 수도 있다. 책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모아서 공통의 관심사로 활동을 넓힌다거나, 혹은 독립서점에 관심 있는 사람들끼리 정보 공유를 통해 새로운 공간 창출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겠다.
책방을 다녀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된 이면에는 그런 궁극적인 목표에 대한 실현 의지도 있다.
생각으로만 갖고 있던 계획들을 끄집어내어, 직접적인 활동으로 구체화시키면서, 좀 더 자신감을 갖게 되는 것 같다. 참 다행스러운 것은 이런 일들을 재미있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재미로 달려드는 일에서 파생되는 의외의 결실이 기대되는 것은 섣부른 희망일까?
글쎄올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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