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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초 Mar 03. 2024

독립서점 탐방기 #1

책놀이터-Index. 240302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자 지리학자였던 김정호는, 이전까지 연구되어 왔던 조선의 지리정보를 집대성하여 그 유명한 [대동여지도]를 만들었다고 한다.

1861년의 일에 영감을 얻어, 160여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나도 ‘서울의 독립서점 지도’ 하나쯤 만들어 볼까 하는 터무니없는 생각을 좀 했더랬다.

거창하게 지도라고 말은 했지만, 실은 책과 서점에 관심이 있다 보니 동네마다 특색 있는 책방을 두루 다니면서 나름대로 개인 취미 활동도 해보고, ‘읽는 문화’ 이전의 ‘읽는 재미’를 이어가고 싶은 개인적인 욕심이 있었다. 거기에 더해서, 단순히 서점을 찾아다니기만 하는 것보다는, 다녀가는 곳에 대한 기록을 나만의 방식으로 도식화해 보면 어떨까 하는 데에 생각이 미쳤던 것이다.

실천하지 않는 생각은 죽은 생각이라기에, 머릿속의 상상으로만 그칠 것이 아니라, 우선은 당장에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가기부터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산책과 사색이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움직이는 게 선행되어야 하는데, 자신은 ‘양말을 신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는 어느 작가의 말이 떠올랐다.


그리하여 연휴의 한가운데에 있는 3월 2일, 오늘 그 대망의 첫 발을 내딛게 된 것이다.

처음 시작을 어디서부터 해야 좋을까를 고민하는 것도 잠시! 그냥 가까운 곳에서부터 시작하자는 마음에 몇 군데를 둘러보다 정한 곳이 바로 건대입구역 인근의 독립서점 ‘Index’였다.

2층에서 내려다 본 책방 전경

작은 동네 책방이 주는 분위기는 대형 서점에 비해 밀도가 높고,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친구 같이 스스럼없다. 책 한 권 한 권에 눈길을 줄 수 있을 만큼 적당한 크기의 공간도 좋고, 마치 숨겨놓은 나만의 놀이터 같은 내적 친밀감도 있다.

너무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실내 조도와 차분하게 흐르는 음악과, 동선이 겹치지 않아서 방해가 되지 않게 비껴갈 수 있는 사람들과의 적당한 거리감마저도 맞춤하다.


이곳은 책방의 이름 그대로, 일목요연하게 index가 잘 정리되어 있다. 영어 알파벳으로 주제를 구분해 놓아서 원하는 책과 관심주제에 직관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도와준다. 책 내용을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간단한 해설과 감상을 정갈한 손글씨로 정리한 메모를 책 표지에 끼워둔 것도 무척 인상적이었다.


여기에서 구입한 책은, 창가 쪽에 마련된 테이블 공간과 2층의 자리에 앉아서 맘껏 읽을 수도 있고, 간단한 음료와 커피 또는 차를 주문해서 마실 수도 있다.

나도 오래도록 둘러보고 고른 책 한 권과, 인덱스 블랜드로 주문한 커피 한 잔을 들고 2층의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적당한 산미와 갓 볶은 듯 신선한 풍미를 주는 아메리카노 한 잔에 마음까지 간질거렸다. 어쩜, 지금의 이 모든 순간이 참 좋구나!



2층에서는 책방의 전경을 한눈에 감상할 수도 있다. 층고가 높아서 개방감을 주고 내려다보는 시선이라 오묘한 안정감과 색다른 재미를 준다.

부지런히 코너의 서가를 정리하는 책방의 매니저님, 그리고 맛있는 커피를 손수 내려주셨던 직원분과, 사부작사부작 서가를 오가며 읽을거리를 탐미하는 손님들까지 누구 하나 도드라지지 않고, 책방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독립서점을 탐방하는 것은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그래도 유의미한 시간을 만들기 위해 나름대로 원칙을 세운 게 있다.

1. 방문한 책방에서는 꼭 책 한 권을 산다.

2. 근사한 공간을 이끌어가시는 책방지기님께 내 책 한 권을 선물로 드린다.

3. 오늘의 책방에서 느꼈던 개인적인 소견과 그곳만의 특징을, 기억하기 쉽게 잘 정리해서 글로 남긴다.


앞으로 계속 이 일을 해나가면서 좀 더 괜찮은 원칙들이 덧붙여지겠지만, 최소한 이 세 가지만큼은 꼭 지키려고 한다.

오늘의 시작점이, 나 자신을 한 단계 더 성장시켜 주는 마중물이 될 거라는 확신이 있다.

자기 자신을 믿고 응원하는 일이 거창한 것은 아니지만, 어떤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의미를 갖고 소신 있게 밀고 나가게 해주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은 사실이다.


오늘 많은 일을 하지는 않았어도, 뭔가 대단한 숙제를 끝낸 기분도 들었다.

오고 싶었던 책방에 걸음 한 스스로도 대견했다. 내가 세운 원칙을 잘 지켜냈다는 사실이, 이후로도 즐겁게 이 일을 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주었다.


큰 틀을 짜지 않으면서, 몇 가지의 계획들만으로 1년을 때우면서도 거기에 만족했던 나 스스로가 좀 성의 없었다는 자각이 들었다.

삶에 큰 동요가 있어야만 열심히 살았다는 만족감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의식의 생산성이 없으면서 너무 소모적으로만 안이하게 지냈다는 자기 성찰의 시간들이 있었다. 그렇게 반성의 의미로 시작된 나의 책방 탐험기는, 앞으로 계속되면서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을 것이고, 그 안에서 재미있는 루틴을 만들기도 할 것이며, 또 아끼는 누군가에게 마구마구 퍼트리는 만행(?)도 저지를 것이다.

뭐든 좋다.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자꾸자꾸 끌어들이게 될지라도 더 깨어 있고, 더 발전하고, 더 생산적인 시간들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책방 구입 : 어른의 어휘력 l 유선경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오늘 골라 온 책을 읽었다. 단순히 눈으로만 읽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서부터 뭔가가 차오르는 팽창감까지 느껴졌다.

몸과 맘이 이리 따습고 넉넉하다니!

책이 주는 풍요와, 그 풍요가 주는 몰입감이 더없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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