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 홍콩섬에서 장국영 찾기 - 노스포인트
사람들이 기억하는 홍콩영화의 80% 이상을 만들었다고 할 만큼, 홍콩영화에서 빼놓고 말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 그는 바로 홍콩영화의 대가 왕가위감독이다.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던 그가 개봉 당시 혹평을 받았던 영화가 있는데 바로 한국 사람들에게는 장국영의 맘보 춤이 등장하는 것으로 유명한 '아비정전'이다.
위 사진은 아비정전이 한국에서 개봉했을 당시 포스터이다. 사실 포스터만 보면 왕가위 감독의 데뷔작이기도 한, 사람들의 피를 끓게 했던 열혈남아와 같은 홍콩 누아르 액션 영화라고 오해하기 쉽지만 액션이라고 해봐야 영화 후반 부에 칼이 등장하는 짧은 부분이 전부였으니…
한국에서 아비정전이 개봉할 당시, 중앙극장을 찾았던 한 관객이 액션 장면이 등장하지 않는다며 유리창을 깨버렸던 일화는 영화 팬들 사이에서 꽤나 유명하다. 물론 한국뿐만 아니라 홍콩, 전 세계의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지만.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영화는 재평가되었고, 왕가위 감독의 최고의 영화라고 칭해지기도 했으니 시간이 걸리더라도 명작은 결국 명작의 타이틀을 얻게 되는 것 같다.
영화에 대한 평가와 이야기는 이 정도로 마치고, 나를 비롯한 장국영 팬들이 장국영이 연기한 영화 캐릭터 중 실제 장국영과 가장 비슷한 영화라고 말하는 영화인 이 영화의 흔적을 찾기 위해 노스포인트로 향했다.
퀸즈카페는 아비정전에서 장국영이 맡았던 아비라는 주인공이 아지트로 사용하던 공간이다. 새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던 장면도 이곳에서 촬영되었고, 필리핀에 있는 친엄마를 찾겠다며 이야기를 하는 장면 역시 퀸즈 카페에서 촬영되었다.
사실 영화의 실제 촬영지가 되었던 퀸즈 가게는 2008년 전에 문을 닫아 그 모습은 남아있지않다. 더하여 그 후 퀸즈카페 자체가 경영 난으로 인해 문을 닫게 되었으나, 홍콩 영화 팬들의 성원으로 홍콩의 몇 개의 가게들이 다시 생겼다고 한다.
그리고 현재 남아있는 퀸즈카페 중 영화의 모습과 가장 비슷하게 남아있는 퀸즈카페는 노스포인트에 위치하여 있다. 그 매장엔 곳곳에 장국영을 비롯한 영화의 사진들과 아비정전의 팬이면 알 수 있는 빨간 공중전화박스까지 비치되어 있는 게 포인트다.
홍콩을 대표하는 교통수단인 트램을 타고 빠르게 이동하여 퀸즈카페 노스포인트 점가 있는 N.S.K. Centre라는 쇼핑몰로 향했다. 퀸즈카페가 쇼핑몰 안에 위치하여 있다고 하길래 쉽게 찾지 못할까 조금 걱정했는데,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 입구에서 들어가니 바로 정면에 위치하여 있어 찾는 게 크게 어렵지는 않았다.
사진을 다시 보니 QUEEN'S CAFE라는 로고를 처음 마주했을 때, 뛰었던 심장의 박동이 아직까지 느껴지는 것 같다.
들어가자마자 마주한 공중전화박스. 한국에서는 초등학교 이후로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공중전화기가 나를 이렇게 설레게 할 수 있다니.
이른 저녁시간에 들어가니 가게의 손님들은 많이 없었는데, 식당의 지배인? 이신 분께 홍콩영화를 매우 좋아하며, 장국영의 팬이다라고 말씀드리니 매장 곳곳을 소개해주시며, 매장 이곳저곳을 데리고 다니셨다
안으로 들어오니 퀸즈카페의 로고가 박힌 벽면에 영화의 포스터와 관련 사진들이 많이 붙어있었는데, 이곳에서도 사진을 찍어주시겠다며 사진이 잘 나오는 명당자리에 나를 앉힌 후, 카메라 셔터를 연속적으로 눌러주셨다.
이 사진들 덕분에 아비의 명대사처럼 이곳에서의 '영원한 1분'이 나에게도 계속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사한 직원 분들 덕분에 의미 있는 사진들도 많이 남겼겠다. 이제는 아비정전의 주인공이 되어 허기진 배를 채울 차례다. 아비정전의 공중전화박스가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보다 이번에도 직원 분께 추천 메뉴를 부탁했다.
사실 이곳은 런치 메뉴가 비교적 저렴하기에 이왕 방문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점심에 방문하여 식사를 하거나 애프터눈티를 먹으며 홍콩영화 분위기는 즐기되, 지갑도 지키는 선택을 하시기를 추천하다.
영화 아비정전에서 주인공들이 그들의 아지트였던 퀸즈카페에서 크게 식사는 하지 않았기에, 시그니처 메뉴가 있지는 않았다.
그럼 무엇을 먹을까 고민을 하다 스테이크를 먹자라는 생각이 들었고, 직원 분께 말씀드리니 '그럼 세트메뉴를 먹어보는 게 어떻냐'라고 추천해 주셨다. 그 선택을 믿고 미디움레어 스테이크 코스와 나의 영원한 드링크 똥랭차도 함께 주문했다.
메뉴를 기다리며 아비정전의 명장면들을 떠올리고 있을 때, 나의 목을 축여줄 똥랭차가 먼저 나왔다. 그동안 방문했었던 그 어느 곳의 똥랭차보다 정갈했는데(사실 이건 나의 착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먹다 보니 달달한 맛이 나지 않아 시럽을 요청하여 왕창 부어먹었다.
사실 코스요리는 일반 레스토랑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식전빵과 수프로 가볍게 속을 데워준 뒤 샐러드로 입가심을 해주고 메인 요리인 스테이크가 나오는 형식이었다. 크게 기억에 남는 메뉴는 없지만 굳이 골라보자면, 음 아마 스테이크를 뽑고 싶다.
맛 때문에 뽑은 것은 아니고, 메뉴를 처음 받았을 때 '오잉 도대체 어디에 나의 스테이크가 있는가?!?' 하며 요리조리 둘러봤던 기억이 나기 때문이다. 왼쪽 상당에 빵처럼 생긴 동그란 모양을 자르니 스테이크가 한가득 들어있었는데, 다음번에 식사를 하게 된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일반 스테이크를 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하지만 이것도 경험이고 추억이니 좋은 장면으로 나에게 기록될 것이다.
식사를 하며, 경영난으로 망한 식당까지 살려내었던 수많은 팬들의 화력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특별한 메뉴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영화의 한 촬영지 였을 뿐인데 그들은 무엇을 위해 퀸즈카페를 원했던 것일까?
그리고 동시에 나와 같이 그때의 홍콩영화, 홍콩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에 왜인지 모를 소속감이 생기기도 했다. 얼굴도, 나이도 모르는 그들이지만 언젠가 이곳에 다시 방문했을 때, 과거의 나처럼 가게의 이곳저곳을 흥미롭게 바라보며 사진을 찍는 사람을 만난다면 미소를 지으며 가벼운 인사를 먼저 건넬 것이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한 번 직원 분께 가벼운 감사인사를 전한 뒤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는 희미해지다 못해 사라져 가는 홍콩에서 장국영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곳인 퀸즈카페. 난 오늘 꿈에서 퀸즈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혹은 장만옥에게 플러팅을 하는 장국영을 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