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너무 많은 어른들을 위한 심리학 / 김혜남(4)

by Jenn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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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은 항상 평온해야 정상이며, 평온하지 않으면 비정상이라는 착각에서 이제 그만 빠져나와 어떤 감정이든 온몸으로 느껴 보라. 모든 감정은 옳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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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살아 보니 나쁜 일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크고 작은 장애물을 어떻게든 넘으려 애쓰며 나는 좀 더 단단해졌고 편안해졌다. 그래서 더 이상 세상을 원망하지 않는다. 나를 자책하지도 않는다. 그저 파킨슨병과 더불어 오늘 하루 지금 이 순간을 성실하게 살아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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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는 완벽을 추구하는 것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부적응적 완벽주의자들이 갑옷을 과감히 벗어던질 용기를 낼 수 있다면, 그들도 충분히 삶의 기쁨을 누릴 수 있고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사랑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갑옷을 벗어던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인정받고 사랑받기 위해 쉼 없이 달려왔을 뿐인데 주위에 사람들이 더 모이기는커녕 왜 하나둘씩 자신의 곁을 떠나는지 이해할 수 없고, 갑옷을 벗어던졌다가 ‘인생의 실패자’로 낙인찍힐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만 한다. 스스로를 닦달하며 몰아세우는 사람은 늘 뭔가에 쫓기듯 일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지치고 피곤해서 실수를 할 확률이 높아지고 그토록 바라는 완벽으로부터 더 멀어지게 된다. 그리고 언제나 팽팽히 날이 서 있는 사람을 반길 이는 아무도 없다.


그러니 이제 그만 무거운 갑옷을 벗어던져라. 갑옷을 벗고 몸이 가벼워지면 한결 자유롭게 어디로든 갈 수 있고, 그러면 분명 당신은 지금보다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하버드대 심리학과 교수인 탈 벤 샤하르는 《완벽주의자를 위한 행복 수업》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성공한 이들의 열정과 끝없는 노력에 감명을 받고 좀 더 부지런하지 못했거나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며 자신을 채찍질한다. 그러나 이때 빠질 수밖에 없는 함정은 완벽한 삶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으며, 완벽주의자들에게 만족스러운 성과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큰 업적을 이루거나 부를 쌓았다고 해도 그다음 목표를 향해 끝없이 달리는 완벽주의자에게 행복한 삶은 결코 닿을 수 없는 신기루와 같다. 그러니 완벽주의자가 아닌 최적주의자가 되라. 이때의 최적이란 최선을 다하지 않음을 뜻하지 않는다. 가능한 범위 안에서 최선의 삶을 다하는 ‘긍정적 완벽주의’다. ‘완벽한 성공’이나 ‘완벽한 삶’이란 존재하지 않음을 받아들이고, 삶이란 일직선으로 이어진 고속 도로가 아닌 구불구불하게 이어지는 길이라는 것을 안다면 우리는 목표 지향적인 삶을 살면서 훨씬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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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더 이상 약점이 드러날까 봐 불안해하지 마라. 그리고 자신의 실수나 부족함에도 조금만 더 관대해져라. 때로 남들이 실망한 듯 보이면 러셀처럼 속으로 외쳐 보라. ‘그게 뭐 어때서?’ 나에 대한 남들의 기억은 금방 잊힐 테고, 부족한 부분은 노력해서 보완하면 된다. 만약 보완이 잘 안되면 그 약점에 대해선 신경을 꺼 버리고 대신 강점에 집중해서 그것을 키움으로써 자신감을 다져 나가라. 그것이 바로 약점을 이기는 최선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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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러한 휴식 없는 활동은 언젠가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피로해진 몸과 마음은 한계에 부딪히고, 좌절에 직면하게 되면 곧장 깊은 우울증으로 곤두박질친다.


서윤 씨처럼 활력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보통 사람보다 좌절을 더 못 견디는데, 그것은 자신을 과대 포장해서 다른 사람들의 눈에 강하고 완벽하게 보이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실수에 대해 커다란 두려움을 갖고 있다. 만약 실수를 하면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못났다고 생각하게 될 테고, 실망한 그들이 모두 떠나가 버리면 자신은 홀로 남게 될 것이라는 무의식적인 두려움이다. 그러다 보니 항상 긴장하고 빈틈을 보이지 않으려 한다.


그러므로 항상 열정적이고 활력이 넘치는 사람들, 그들은 알고 보면 마음껏 울지도 못하고, 약하고 상처받은 자신을 부인하고 감추기에 급급해하는 사람들일 수도 있다.


물론 열정적인 사람들이 모두 문제를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다. 큰 갈등 없이 생산적이고, 창조적이며, 활력적인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으니까. 하지만 가끔 공허하고 지치고 슬프다는 느낌이 들면 그 감정을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라. 내가 누구이고, 지금 어떤 상태에 있는지,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를 알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울고 있다면, 남들에게 밝고 명랑한 모습만 보이려고 무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은 다른 사람들이 아닌, 당신 자신을 돌볼 시간이다.


# 즉 일에 대한 비판은 상대방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과 아무 관련이 없다.


# 그렇다고 모든 비판을 다 받아들이라는 뜻은 아니다. 당신에 대한 비판 중에는 약이 되는 비판도 있지만 당신을 조롱하고 깎아내리기 위한 비판도 있게 마련이다. 어떤 이유에서건 이런 비판은 당신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 목적이다. 하지만 아무리 날카로운 비판의 화살이라도 당신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럴 때는 “네, 알겠습니다” 하면서 적당히 넘겨 버리는 것도 방법이다.


만약 당신이 이성을 잃고 흥분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결국 그 비판이 맞다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 되고 만다. 상대방이 원한 것은 바로 그렇게 당신이 무너지는 것이니 아무리 부당한 비판을 받아도 절대 흥분해서는 안 된다. 그럴 때는 데일 카네기의 말을 떠올려 보면 어떨까.


“부당한 비판은 칭찬의 다른 모습이다. 그것은 누군가 당신을 부러워하며 질투한다는 뜻이다. 죽은 개를 걷어차는 사람은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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