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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호 Sep 11. 2020

'놀란'이 '놀란'한 영화, 아쉬운 한 장면 <테넷>

[영화의 단상] 영화 <테넷>(크리스토퍼 놀란, 2020) 리뷰

이 글에는 영화 <테넷> 스포일러가 없습니다.


"놀란이 놀란했다"

‘놀란이 놀란했다’ 단평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신작 <테넷>(2020)에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린다. 이는 감독론의 편의성을 영화 전반에 걸쳐 관류하는 “일어날 일은 일어난 것이다(What’s happened, happened)” 식의 결정론에 빗댄 말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놀란 감독이 만들었으니 놀란다운 것이다!’ 정도로 해제할 수 있다.


지금껏 무수히 쏟아져 나온 모든 감독론과 놀란 감독이 관철해온 영화적 뚝심을 비웃고자 하는 의도는 아니다. 다만, 코로나19 기승 속에 개봉한 그의 신작에 전 세계인의 이목(그중 기대감이 차지하는 비율이 분명 상당할 것이다)이 집중한 것은 자명한 사실이고 기대를 충족한 부분만큼이나 기대에 못 미치는 부분 또한 상당히 존재하는 것이 <테넷>을 둘러싼 평의 공통분모임을 부인할 수 없다. 여기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테넷>의 호평 요소와 혹평 요소 모두 놀란이 이전부터 보여온 장단점에서 기인하기에 ‘놀란이 놀란했다’는 평을 붙일 수 있다는 것이다.


"<테넷>의 호평 요소와 혹평 요소 모두 놀란의 장단점에서 기인한다"


분명 <테넷>은 놀란이 그동안 뽐낸 장점을 고스란히 계승한 작품이다.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역시 지적 유희다. 인버전(Inversion), 열역학 제2법칙, 할아버지의 역설 등 쏟아지는 물리학 관련 이론은 이해는 어려울지언정 영화가 끝난 후 관객의 마음속에 ‘어려운 이야기를 독파했다(이해와는 다르다! 이해와는...)’는 지적 유희를 불어넣는다. <인터스텔라>(2014)에서 중력이니 시간이니 했던 기나긴 스토리를 전부 주파했을 때 바로 그 느낌과 유사하다.


다음은 스펙터클이다. ‘NO CG 철학’이 잉태하고 자본이 배양한 스펙터클은 장엄하기 그지없다. 놀란이 주조한 규모의 미학은 이번에도 스크린 앞 관객에게 설렘을 선사하기에 충분하다. 흡사 사고 후 폐허가 된 체르노빌을 연상시키는 비밀도시 스탈스크-12를 부감 쇼트로 담아내는 연출과 오슬로 프리포트에 접촉 사고를 일으킬 화물수송기를 로우 앵글로 강조하는 장면을 보자면 거대한 크기가 자아내는 기세에 압도되기 마련이다.


이외에도 액션씬 연출 발전, 하이스트 무비의 탁월함, 능란한 플롯 짜기 등의 장점이 <테넷>에 배어있다. 하나하나 다 열거하며 칭찬을 내놓자니 자칫 백화점식 후기가 될까 두려워 늘어놓기는 이쯤에서 마치고자 한다. 그렇다. <테넷>의 아쉬운 점을 서술하고자 하는데 ‘놀란식’ 단점을 이야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그러한 지적은 좋은 정리가 많이 나와 있으니까! 이를테면 편평한 서사와 캐릭터의 부족한 깊이감에 관한 평 말이다. 대신 나는 불필요한 씬 한 가지에 남는 아쉬움을 토로하고 싶다.



아쉬운 지점 한 장면

요트 위 주도자(존 데이비드 워싱턴)와 사토르(케네스 브래나) 간의 거래 성사 이후 벌어지는 씬을 상기해보자. 주도자가 에스토니아 탈린에서 플로토늄-241을 탈취하기 전, 사토르와 캣(엘리자베스 데비키)은 불길한 기운이 짙게 맴도는 창고에 있다. 사토르는 테이블 위 각종 무기를 가리키며 “당신이 명품 옷을 입을 수 있는 이유는 내가 이런 더러운 일을 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토르는 캣에게 이번 작전에 동참할 것을 요구하지만 캣은 이를 거절한다. 이후 캣이 사토르에게 권총을 겨누는데 사토르는 캣의 권총을 쉽게 빼앗고 제압한다. 이 장면은 시간과 시선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다른 씬들보다 돌출되어 있다.


과분한 시간

사토르의 제압 이후 영화는 폭행 씬에 상당 시간을 할애한다. ‘상당 시간’을 조금 더 풀어서 설명하자면 <테넷>이 영화 전반에 걸쳐 사용한 쇼트 사용법에 비해 상대적으로 긴 시간을 할당했음을 뜻한다. <테넷>은 군더더기 쇼트 사용이 없다. 대부분의 쇼트(와 씬)는 제각기 기능을 가진다. 그 기능은 서사 진행, 이론 설명, 스펙터클 부여 등이다.(흔하디 흔한 인물 전사(前事) 소개도 없다) 각각의 쇼트는 많은 시간을 차지하지 않는다. 한 쇼트가 역할을 마무리 지었을 때 영화는 가차 없이 다음 쇼트를 내놓는다. 이렇듯 촘촘한 쇼트 역할 배치는 2시간 30분가량의 영화 러닝타임에 지루함을 걷어낸다. 해당 장면도 마찬가지다. ‘사토르의 난폭함을 표현한다’는 목적으로 설계되었을 이 씬은 영화 내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데 성공한 듯 보인다. 적어도 ‘심박수에 집착한다’는 설정보다 이 장면 하나가 사토르의 악함을 잘 현시하니 말이다.


그러나 이 장면은 합목정성을 띠지만, 정당성은 없다. 그러니까 사토르의 폭력은 사토르의 인물 성향을 표현하는 데 성공했지만, 이 폭력을 다른 장면에 비해 오랫동안 봐야 할 번지레한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조금 다른 사례를 들어보자. 이후경 평론가는 영화비평지 <Filo> 10호에서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쿠엔틴 타란티노, 2019)가 폭력의 정당성을 갖추는 과정을 설명한 바 있다. 해당 글의 논지를 거칠게 요약하자면 폭력을 당하는 대상을 악인으로 설정(a)하고, 그 악인이 (악행 등으로) 폭력을 받을만한 빌미를 먼저 제공(b)했을 때 폭력은 정당화된다. 대상은 악인이고 귀책은 그에게 있으니까. 이후경 평론가는 a와 b를 “정당방위”와 “합리화”를 설계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이를 <테넷>에 대입해보면 식당 주방 액션 씬은 주도자를 위협하는 사토르 부하(a)들이 사토르를 먼저 공격하려 했기에(b)에 정당성이 성립된다. 그렇게 관객에게 “저 폭력은 좋은 폭력이다, 그러니 즐겨도 좋다”라는 심리적 안정을 주는 것이다.


그러나 사토르의  구타 장면은 경우가 다르다. 폭력의 대상은 주인공의 조력자이며   약자의 위치에 처해있고 그녀가  일이라곤 단지 사토르 개인의 심기를 거슬렀을 뿐이다. a b 모두 결여된 폭력 씬을 영화  다른 장면보다 길게 보자니 관객 입장은 어지간히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관객은 <테넷> 스토리의 빠른 질주를 좇다가 하필 윤리적 결함을 머금은 해당 장면의 시간적 특수성으로 마뜩잖은 이물감을 느낀다. 더군다나 해당 씬에서 인물  힘의 균형은 무너져있는 상태다.  장면은 비등한 경합이나 일말의 반격으로 카타르시스가 배가 되는 격투 액션이 아니다. 액션의 스펙터클이 자아내는 긴장이 아닌 일방적 폭력 행사가 생성하는 불쾌함을 감내해야 한다.


불필요한 시점

더불어 시점도 관객의 당혹감을 증폭한다. 사토르가 캣을 폭행할 때 카메라는 캣을 지근거리에서 비춘다. 카메라와 캣의 거리감은 꽤 밀접하다. 그 밀접한 시점은 기실 관찰자의 시선이라기보다 극 중 사토르의 시선에 부합한다. 이를 잠시 오프닝과 비교해보자. <테넷> 오프닝에서 주도자는 러시아 측에 포로로 잡힌다. 철로 사이에서 묶여 심문을 당하는 씬에서 카메라는 두 가지 시선을 제공한다. 주도자와 러시아 요원 대화에서는 쇼트-리버스 쇼트(일반적인 대화 장면에서 사용하는 촬영)를 택한다. 이는 주도자와 러시아 요원의 시선을 빌린 셈이다. 그리고 주도자가 고문을 당할 때 카메라는 몇 발치 거리를 떨어뜨린다. 이야기를 관찰하는 구경꾼의 시점이다. 그리고 카메라와 인물들 사이 기차를 지나가게 해 잔인한 장면은 구태여 보여주지 않는다.


그에 비해 사토르 폭행 씬은 시종일관 사토르의 시점을 제공한다. 사건 전이나 후도 아닌 폭력을 행사하는 와중에 행위자의 관점을 덜컥 받아버렸으니 관객은 무방비 상태로 몹쓸 악역의 플레이를 공유하게 된다. 영화는 이전까지 사토르를 지지할만한 단초를 제공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동의(그리고 공감)하지 않던 인물의 곡사(曲事)를 간접 수행한 관객은 영 불편한 기색을 누르기 어렵다. 그렇다고 불쾌한 시선이 영화 내/외 타진을 위함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 장면은 사토르의 포악함을 설명하는 서사적 기능을 행할 뿐이다. 이 밖의 의미 작용은 찾기 어렵다.


"<테넷>을 단지 감독론으로만 비추어 볼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후 영화는 주도자와 닐(로버트 패틴슨)의 유연한 플로토늄 탈취 작전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뒤이어 <테넷>의 백미 중 하나인 탈린 고속도로 시퀀스가 붙쫓는다. 두 고속도로 시퀀스의 서스펜스로 인해 앞선 사토르 폭행 씬에서 기인한 당혹감은 금세 휘발한다. 어쩌면 관객의 죄책감을 재빨리 덜어낸다는 점에서 다행일 수도 있다. 반대로 영화의 비윤리적 요소를 장르물의 쾌감으로 지워버리니 또 다른 비판 지점이 될 수도 있다. 어느 쪽이건 간에 이 역시 놀란 감독의 기민한 설계라고 생각한다.


모든 창작극을 엄준한 윤리 기준으로 재단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마땅한 해명과 동기를 소거한 윤리적 흠결이 존재한다면 그 지점을 덮어놓고 영화를 거론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테넷>은 하나의 쇼트, 하나의 씬 안에 ‘시간의 충돌’을 시각화했다는 점에서 ‘놀란’스러운 성취를 이룬다. 장르의 재미도 부족함이 없다. 다만 특정 장면에 과분한 시간과 불필요한 시선을 배당했다는 점에서 일면 아쉬움이 남는다. <테넷>을 단지 감독론에 비추어 추앙하거나 비판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P.S. 씨네21은 영국에서 <테넷>의 해당 장면이 한국 개봉 버전보다 짧게 편집되었음을 알렸다. 12A(12세 관람가) 등급을 받기 위함이었다. <테넷>의 한국 관람등급 역시 12세 관람가이다.  '테넷', 영국에선 사토르의 아내 폭행 장면이 9초가량 편집된 버전으로 개봉했다 外(씨네21, 2020.09.04)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출연:존 데이비드 워싱턴 , 로버트 패틴슨 , 케네스 브래너 , 엘리자베스 데비키 등

장르: 액션, SF

쿠키: 쿠키영상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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