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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낮의 바다 Mar 24. 2021

영어를 잘한다는 건 뭘까

한국어를 잘한다는 것도 결국에는 말을 잘한다는 것이잖아요

영어를 잘한다는 건 뭘까. 영어 말하기 대회를 휩쓸던 초등학생 시절에는 영어를 잘하게 되면 SF적으로 다른 사람의 말이 자동으로 번역되어서 머리 위에 뿅 하고 말풍선으로 등장하는 줄 알았다. 그보다 조금 더 컸을 때는 더 많이 공부하면 미드에 나오는 하이틴 주인공들처럼 재잘재잘 거리낌 없이 편하게 떠들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마법같이 어느 한순간에 네이티브 스피커처럼 말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결국은 조금씩 어제보다 새로운 표현을 편하게 쓰는 나를 발견할 뿐이었다.


영어도 언어인지라, 영어를 배운다고 해서 내가 전혀 다른 사람처럼 말할 수는 없다. 평소에 치지 않던 결의 유머를 영어로는 칠 수 있을 리가 없고, 평소에 하지 않던 생각을 영어로 자연스럽게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제2 외국어로 영어를 배우면서 잘한다는 기준을 나름대로 정립해 봤다.


첫 번째는 바로 '돌려 얘기하는 것'이다. 영어는 사실 돌려 말하기의 예술 같다. 직설적으로 얘기할수록 무례하고, 배움이 짧고, 말을 잘 못하는 사람으로 비칠 가능성이 높다. 적어도 한 겹은 돌려서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이 내가 좋아하는 영어의 격식이고, 네이티브 스피커처럼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이라고 보이기 쉬운 스킬인 것이다. 예전에 영어 수업을 들을 때 상대방이랑 프리토킹을 하면서 'Since you are already tired, ~'라는 표현을 사용했었는데, 선생이 내게로 다가와 바로 'You must be tired'로 고쳐 주었던 적이 있다. 이미 그 사람이 힘들었던 것을 들어서 알고 있는 나는 선생에게 이미 알고 있던 정보라서,라고 변명했으나, 선생은 네가 당사자가 아닌데 그 사람의 기분을 어찌 알겠냐며 짐작하는 표현을 써야 한다고 고쳐주었다.


지금의 나는 이렇게 영어를 배울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상대방의 의중을 지레짐작하는 문화에서 자라왔고, 사회적인 위계질서가 정해져 있는 유교사회의 인간관계에서 소위 '아랫사람'의 의중은 자연스럽게 무시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I want to' 대신 'I would like to'를, 'Can you do that' 대신 'Would it be possible to'를, 결국 최선을 다해서 길게, 돌려 얘기할수록 영어 문화권에서는 상대방을 배려하는 품위 있는 사람으로 비치고, 영어를 섬세하게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하나의 증표가 된다 (맥락 없이 돌려 돌려 얘기하라는 얘기 아님 주의).


두 번째는 영어라는 언어를 '최선을 다해 섬세하게 접근하는 것'이다. 한국어를 사용할 때에도 문맥에 맞는 적확한 단어를 찾아서 정확하게 쓰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영어에도 같은 노력을 기울여야 조금 더 언어를 모국어처럼 자연스럽고 사용할 수 있는 단어의 폭이 넓게 말할 수 있다. 내가 네이티브 스피커처럼 말한다는 칭찬을 들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가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직장을 잃은 상황에서 한국인들에게 훨씬 더 익숙한 'fired' 대신 'they have to let go'를 사용했을 때였다 (Fired는 누군가의 귀책사유가 있을 때, 해고되는 경우에 사용하는 단어이고 개인의 잘못이 아닌 외부 문제일 때는 let go나 laid off를 사용한다). 같은 뜻을 지닌 여러 단어들도 적확하게 사용되는 제 자리가 있고, 문장에서 그 위치를 열심히 찾아주려는 노력을 할수록 영어능력은 점점 레벨 업 될 것이다.


추가로, 한국에서는 주로 뉴스에 나올 것 같은 동사들 위주로 단어를 외우게 하고, 분명히 이는 한국인의 뛰어난 영어 독해 영역에서 빛을 발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에 비해 많이들 어려워하는 회화 영역에서는 이 부분이 독이 되는데, 이러한 단어들은 실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사용되는 빈도가 낮기 때문이다! Return 대신 Get back to me를, receive 대신 pass over을 쓰는 등 자연스러운 영어 회화에 사용되는 표현들은 주로 구 동사가 많은데, 매우 안타깝게도 한국 중고등대학교에서는 구 동사를 기반으로 영어를 가르치지는 않는다. 영어교육에 포커스를 맞추는 부문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고, 각기 장단점이 있겠지만 영어 공부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실제로 독해와 청취에서는 매우 뛰어나지만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회화가 약한 이유를 생각해보면 구 동사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 영어교육도 한몫 톡톡히 한 것 같다.


사실 머리로는 알지만 영어가 가장 빨리 느는 방법은 생각을 하면서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직설적이지는 않은지, 상대방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하고, 이 단어가 가장 정확하게 사용될 수 있는지 말하기 전에 문장을 한 번 더 생각하면 조금 더 정확한 문장이 나올 수밖에 없다. 참고로 이 방법은 소위 '입이 트인', 즉 영어를 본인이 대화할 수 있는 언어로 자각한 이후의, 영어로 대화를 이어가기 시작한 중고급 이상 분부터 추천드린다. 영어라는 언어를 더 정확하게, 하지만 섬세하게 다루는 노력은 국어를 아끼는 마음과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언어는 타인과 소통할 수 있는 도구이고, 내가 어떻게 머릿속으로, 입안에서 굴려서 발화하느냐에 따라 끼치는 영향이 아주 크다. 결국에는 언어가 가지고 있는 힘을 무겁게 생각할수록 영어도 더 잘하기 쉬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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