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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낮의 바다 Aug 05. 2020

영어를 배우는 기쁨과 슬픔 2

사실은 한국어를 배우는 기쁨과 슬픔

영어를 배우는 또 다른 기쁨은 바로 말의 중요성을 깨우쳐 준다는 일이다. 한국어에서는 말을 직설적으로 할수록 쿨하고 똑 부러진다는 인상을 준다. '할 말은 하는' 이미지가 직장생활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보라. 한국사회에서 단문으로 이루어진 '사이다' 대사와 서사가 얼마나 많이 팔리는 지도.


하지만 고급 영어일수록, 영어를 배울수록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돌려 말하기가 얼마나 고급 스킬이고 공감능력이 필요한 기술인지 배우게 된다. 'You have my word (내가 약속할게)', 직역하면 '너는 내 말을 가졌어'라는 표현은 마음을 다해서 약조를 건네는 문장이다. 'But you've told me! (네가 그랬잖아)'는 로맨스에서건 수사물에서건 말의 중요성을 무겁게 보여준다. 미국은 위증죄가 있는 나라이고, '거짓말쟁이'가 아주 큰 욕인 사회이다. 결국 어떤 방식이든 간에 언어로 유지되는 사회에서, 나는 뱉은 말이 타인에게 가닿는 중요성을 아는 사회가 문명이고, 결국 인간 존엄의 기반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어를 배우는 일은 슬플 때가 많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비판하는 일은 결코 가볍지 않은 일이다. 또한 평생을 한국에서 살아온 내가 처음 만난 사람과 관계를 맺는 방식이 한국어보다 영어를 매개로 했을 때 때로는 훨씬 편하다는 것도 해방감과 동시에 약간의 슬픔을 불러일으킨다. 영어를 공부하면서 이렇게 '내 언어'에 대한 낙담과 체념이 커져가는 일은 분명히 슬픈 일이다.


내가 아무리 영어를 '내 언어'로 만들고 싶어도, 슬프게도 나는 한국어를 20년 이상 거의 단독으로 써온 한국어 원어민이다. 한국어는 이 언어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답고 슬픈 시와 소설이 있고, 문장이 있다. 동사보다 형용사가 발달한 이 언어는 내가 자주 생각하는 이야기를 풀어낼 때 가장 먼저 부르는 언어이다. 또한 몇십 개의 신조어가 만들어지고, 언어의 기능뿐 아니라 그 형태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변모하며 역동적으로 바뀌고 있는 언어이기도 하다. 내 모국어는 이 나라를 떠나면 전 세계 어느 곳에서도 통용되지 않는 폐쇄적인 언어이다. 이 폭이 좁은 사회 속에서 내가 선망하는 정제되고 단정한 언어생활은 어떻게 지켜질 것인가. 좋든 싫든 언어를 끌어안고 다듬어 가면서 살아야 하는 나에게, 영어를 배우는 일은 역설적으로 한국어의 기쁨과 슬픔을 깨닫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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