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
32년 만이다. 잔잔한 수면을 뚫고 나왔다. 달은 차고 기울었고 사위는 고요하다. 어깨를 찰싹찰싹 때리고 돼 돌아가는 파도 거품은 맥주 거품 마냥 달고 발가락에 닿는 모래알은 밀가루 같이 곱다.
한가롭게 헤엄쳐 나가면 해가 뜰 때쯤이면 섬으로 도착할 수 있을 거 같다.
하지만 이런 유의 이야기가 늘 그렇게 흘러가듯이, 곧 폭우가 내리기 시작했고, 소용돌이와 함께 폭풍이 불어 몸은 자꾸 섬에서 멀어지기만 한다.
새끼발톱에서 피가 난다. 저 검은색 비닐 봉지만 아니었어도 이렇게 나자빠지진 않았을 테다. 해만 뜨면 내, 기필코 저것부터 해치우리라, 이를 갈며 다시 누웠다.
서른둘이 되자마자 열세 시간을 날아서 도로 한복판에 밤새 전차가 돌아다니는 낯선 곳에 도착했다. 이곳 사람들은 이른 아침부터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고 노른자가 용암처럼 흘러내리는 에그 베네딕트를 먹었고, 해가 지면 노을을 뒤로하고 빌딩 숲을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그들은 미국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누런 종이봉투 안에 길고 딱딱한 빵 한 줄과 사과 한 아름을 담고 흰 달을 머리에 동동 띄우고 거리를 채웠다. 그들의 관절에서 나오는 모든 동작이 하나하나 우아했다.
반면 내가 여기 와서 한 일이라곤 어설프게 현지인 흉내를 내며 커피를 홀짝거리고 부동산에 전화를 돌리고 노른자를 질질 흘려가며 이력서를 쓴 게 전분데 일주일 만에 잔고가 한 자리 줄었다. 어제까진 병에 붙은 오렌지 모양 스티커의 잎사귀 부분까지 찰랑찰랑 차있던 주스가 오늘 아침엔 바닥을 보였다. 벌써 두 알 밖에 안 남은 계란은 아까부터 목에 갑갑하게 걸려있다.
이곳에 온 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건 이방인의 피로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저 검은색 봉지에 담긴 빨래 거리뿐이다.
일주일째 입은 내복과 청바지에 코를 갖다 대며 아무렇게나 배낭에 쑤셔 넣고 일주일 치 속옷과 양말은 검은색 봉지에 넣고 전차에 올랐다.
방금 탄 노인이 왜 이놈의 스트리트카에선 늘 쾨쾨한 지린내가 나는지 모르겠다며 불평한다. 봉지를 더 세게 조여 맨다. 알을 품은 닭처럼 배낭을 꼭 안았다.
봉지 속 냄새에 신경 쓰느라 결국 빨래방을 지나쳤다. 영하 이십 도의 공기를 헤치며 지나온 길을 되돌아가는 게, 손가락이 살얼음 바람에 점점 곱아지는 게, 세탁기도 없는 숙소에 하루에 70불씩 꼬박꼬박 갖다 바쳐야 하는 게, 전부 다 자꾸 억울하기만 하다.
빨래방 안에는 열 대의 세탁기와 건조기와 굉음을 내며 돌아가고 있다.
낡은 건물 특유의 쾨쾨한 냄새와 골이 띵하게 진한 세제 냄새가 공기 속을 떠돌아다닌다.
세제 거품이 폭풍같이 몰아치는 세탁기 속을 들여다보면서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과 같은 빨래통을 쓰며 속옷을 빨아야 하는 게 현지인의 삶일 수 있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적어도 노천에서 커피를 마시고 담요를 어깨에 두르고 우아하게 노른자를 톡 치는 건 나의 몫이 아니었다.
어린 모자가 건조기에서 빨래를 꺼낸다. 여자 옆에 있는 트롤리 안엔 빨래 거리가 한가득이다.
볼이 발갛게 튼 소년은 피자 조각을 먹다 말고 손가락을 쪽쪽 빨다가 제 것으로 보이는 윗도리를 개는가 싶더니 곧 싫증을 내고 다시 피자 한 조각을 집어 들고 다른 손으로 잘 개둔 옷들을 툭툭 건드려본다.
아까부터 아이의 행동을 못마땅하게 쳐다보던 젊고 지친 엄마는 굽은 등을 펴고 소년의 손에서 피자를 거칠게 빼앗는다.
민망함까지 녹아든 적막한 빨래방의 공기가 더 살벌하다.
엄마에게서 쫓겨난 소년이 나의 움직임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좇는다. 눈길을 무시하고 검정 봉지에서 한 덩어리의 빨래를 꺼내 세탁기 속에 던졌다. 이 나라의 나이보다 더 많은 거 같은 건조기들 중 그나마 멀쩡해 보이는 것을 고심 끝에 고르고 먼지 거름망부터 꺼냈다. 탁탁! 쓰레기통에 신경질적으로 먼지를 털어내고 다시 끼워 넣으려는데 당연히 바로 잘 될 리가 없다. 되는 일 정말 더럽게 없네, 신경질이 난다.
마지막 피자 한 조각을 먹으며 내 옆을 빙빙 돌던 소년이 내 손에서 거름망을 가져가 단번에 해결해주고 맑게 웃는다. 아이의 웃음이 겨울 햇살 같다. 아이는 햇볕 조각조각을 바닥에 떨구면서 다시 빨래방 구석구석을 뛰어다닌다.
반대편에서 아까부터 책을 읽고 있던 청년의 세탁기가 다 돌아간 거 같다. 남자는 세탁물을 꺼내 아무렇게나 건조기 속에 던져 넣는다. 그 순간 내가 본 것들을 의심한다. 청바지 다음으로 남자가 꺼낸 건 운동화, 정말 운동화였다.
그렇다. 내 빨래는, 내 속옷은, 공중 화장실과 지하철 등 온갖 곳을 다 밟고 다녔을 저런 신발이 수 백 켤레 돌아간 , 어디서 따라 들어왔을지 모르는 흙과 이 근방의 집집마다 뭉쳐 다니며 몸을 불린 먼지들과 저 통속에서 다정하게 나뒹굴다가 내게로 오게 되는 것이다.
두 차례의 빨래를 끝낸 모자가 빨래방을 나간다. 소년의 엄마는 착착 갠 옷들로 가득 찬 가방을 잠시 내려놓고 아이의 외투 지퍼를 목까지 올려주고 투박하고 젊은 손으로 아이의 볼을 감싼 뒤 두 뺨에 번갈아가며 뽀뽀를 한다. 옆으로 키가 작은 할머니가 주황색 튤립 한 다발을 안고 나이 든 골든 리트리버와 천천히 지나간다. 잘 익은 겨울 햇살이 사람들을 거리로 불러냈다. 길 건너 만둣집에선 수증기가 뭉게구름처럼 떠다니고 헌책방집 앞엔 바이닐을 고르는 사람들로 바글바글하다.
폭풍 속에서 이리저리 몸을 꺾여가며 깔끔하게 씻고 나온 빨래들이 뜨끈뜨끈하다. 그 개운한 촉감이 좋아서 자꾸 볼에 갖다 대본다. 아직 열기가 남아있는 보송보송하고 깨끗한 일곱 장의 팬티를 하나하나 접다 보니 저 빨래 통과 건조기 안에 그전에 뭐가 있었는지는 별로 중요한 게 아닌 게 되었다. 겨울 볕의 효과였나, 거리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의 귀여운 뒷모습 덕이었을까.
첫 번째 폭풍이 막 지나갔다. 이제 나는 문 밖으로 나갈 용기가 생긴다. 두 번째 폭풍까지 7일의 시간을 벌었고, 나는 이제 다음 폭풍은 조금 더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을 얻었다. 그들과 살을 맞대고 어깨를 부딪혀가며 살다가 다시 눅눅하고 꿉꿉한 빨래를 이고 지고 이 언덕으로 돌아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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