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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이제이 Nov 09. 2024

구석구석 한양나들이

<몽촌토성 발굴 조사 현장에 가다>

일자 : 2024년 11월 8일(금)

시간 : 오전 9시 30분~11시 30분(2시간)

집결 : 올림픽공원 내 서울역사편찬원 앞

답사코스 : 몽촌토성 동문지 목책 앞 - 몽촌토성 북문지 발굴현장 - 성곽 위발굴현장 - 동문지 목책 앞

올림픽 공원

올림픽공원의 아침은 여유롭다. 조깅하는 사람도 보이고, 선선한 가을바람도 불고, 답사하기 딱 좋은 금요일이다.

멀리 보이는 L타워

오후의 올림픽 공원에서 느낄 수 없는 한가함에 유유자적 서울역사편찬원으로 향했다.

서울역사편찬원 앞

역시나 부지런한 어르신들이 대부분이었고, 1인당 수신기 하나씩 지급받았다.

오전 9시 30분, 한성백제박물관 학예사님이 오셔서 답사가 시작되었다.

서울역사편찬원 앞 몽촌토성과 목책

출발지는 바로 몽촌토성 앞 목책에서 시작했다.

몽촌토성은 남한산에서 뻗어 내려온 낮은 구릉의 끝자락에 축조된 백제시대 토성으로, 목책의 목적은 방어시설이다.

먼저, 몽촌토성 북서벽의 목책은 발굴조사 결과 목책이 아니라 판축법으로 성벽을 쌓기 위해 쓰인 구조물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그래서 북서벽의 목책은 해체되었는데, 이곳 동문 쪽 목책 역시 그럴 가능성이 높아서 발굴조사를 해야 한다고 한다. 성벽 아래 목책은 몽촌토성이 처음이고, 보통 목책은 성벽 위에 설치되므로 아닐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고 하셨다.

몽촌토성 고대지

고대지는 성토를 높인 곳으로 성벽이 꺾이는 구간에 만든다고 한다. 자연능선이 아닌 직접 쌓아서 올린 성벽인 것이다. 몽촌토성에는 총 3개의 성문이 있는데, 북문, 남문, 동문이다. 성 밖에는 성내천이 몽촌토성의 동쪽과 북쪽을 감싸고 흐르면서 자연 해자의 기능을 했다고 한다. 성벽은 나무틀 안에 흙을 붓고 다져 올리는 판축으로 축조했으며, 현재 남쪽과 북쪽, 동쪽에 각각 성문자리가 남아있다.

(*판축법은 한성백제박물관에 실물크기 모형을 잘 만들어 놓았다.)

<북문지 발굴현장 앞>

현재는 산책길로 잘 포장이 되어있지만, 삼국시대 도로가 발견되었고, 길게 이어진 길은 풍납토성과 연결되어있다고 한다. 또한 고구려는 흙으로 도로를 만들었지만, 백제는 인위적으로 포장한 도로 즉 구획식 포장도로라고 한다. 북문지 일원에 대한 발굴조사에서 격자모양으로 구획한 삼국시대 대형 포장도로, 물을 모으고 저장하는 목곽집수지, 건물지 등 중요한 시설들이 확인되었다. 

이제, 직접 발굴 현장으로 들어가 보자.

<집자리 발굴 현장>

집자리에서 발견된 기와 혹은 그릇 조각들을 시대별로 분류해 놓았다. 중요한 유물은 국가유산청에서 가져가지만 자잘한 유물들은 이렇게 모아놓고, 직접 손으로 만져 볼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유물을 직접 만져보는 건 색다른 경험이었다.

그중에도 유약을 바른 토기가 발견되기도 하는데, 그런 토기는 중국 토기라고 한다. 또 한성백제 유물 가운데는 사비시대 백제의 토기도 발굴되었는데, 나제동맹으로 고구려를 몰아내고 이곳에서 대규모 축하 행사를 했을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고 했다.

발굴 현장으로 직접 내려가는 것은 일반 관람객은 할 수 없지만, 우리는 특별관람객이라 발굴 현장으로 직접 내려가 볼 수 있다. 이 답사의 목적이기도 하다.

발굴 현장은 언듯 보면 집을 짓고 있나 싶지만, 조심스럽게 진흙을 퍼서 자루에 담고 계셨다. 이렇게 조금씩 자루에 담으면 그 자루에 담긴 흙을 채에 걸러 유물을 찾는다고 한다. 이때 발견된 유물들은 동물뼈가 많고 그중에 말머리뼈도 발굴되었다고 한다. 또 '궁'자가 찍힌 항아리, 얼굴모양을 새긴 토기 뚜껑 등 백제 한성도읍기 유물이 다수 출토 되었고, 중국, 왜(일본), 가야 등 주변 나라들과의 교류를 보여주는 유물도 출토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고구려가 백제 수도 한성을 함락시킨 뒤 일정 시기 동안 몽촌토성에 주둔하였음을 나타내는 고구려 유구와 유물, 백제 성왕이 한강 유역을 탈환했을 때 백제군이 몽촌토성에 다시 들어왔음을 보여주는 유물도 출토되었다고 한다.

내가 밟고 있는 이 땅이 고구려시대 땅이라는 것이 신기했다.

고구려층에서는 고구려 목간도 발견되었고, 목재 쟁기도 완전체로 발굴되었다고 한다. 보통은 손잡이 부분만 발견된다. 발견된 위치는 벽 쪽이었는데, 사용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의례, 제사 등 행사를 했던 것으로 추측된다고 했다. (중요 시설을 묻고 그 위에 다른 시설을 지을 때 중요한 물건을 같이 매장하는 것)

그리고 백제가 만들어 놓은 도로와 집수지를 고구려가 집수지로 사용한 후 그 위를 덮어서 광장으로 사용한 흔적도 발견되었다고 한다.

발굴현장에서 나와 성벽 발굴 현장으로 이동했다.

여기도 마찬가지로 일반 관람객은 출입할 수없고, 또 언덕이라서 조심조심 담당 학예사님을 따라 들어갔다.

성벽 발굴 과정에서 발견된 여러 단층들을 흰색으로 칠해 놓은 것이다. 

판축기법의 흔적으로 수평은 흙을 수직은 나무판을 댄 흔적이고, 동그란 부분은 나무를 박은 흔적이라고 한다.

아직도 발굴은 진행 중이다.

조심조심 발굴 현장에서 나와 처음 보았던 목책(아닐 수도 있는)의 뒷모습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멀리 서울역사편찬원 건물이 보였다. 이제, 마지막 코스인 동문지에 도착하면 답사는 마무리가 된다.

유적과 유물은 우리가 살아보지 않았던 그 시대로 가는 중요한 단서이다. 이런 단서가 많이 발굴되고 복원되면 좋겠지만, 현실은 도시화가 되고 도로가 생기면서 찾는 것은 더 어려워졌고, 그래서 이런 장소들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이번 답사는 이렇게 발굴되도록 노력한 전문가들의 노고에 감사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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