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엘프의 땅

에스토니아에서(3)

by 레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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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토니아에선 5년마다 한번씩 ‘라울루피두(Laulupidu)’라는 대규모 합창제가 열린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노래(Laulu) 잔치(pidu)’라는 뜻인데, 수만의 참가자와 그 곱절이 넘는 관람객이 이 국가적인 행사를 함께 치룬다. 에스토니아 사람들은 워낙 노래를 좋아해서 몇 사람만 모이면 바로 합창단을 결성하고 노래판을 벌린다는 농담이 있는데, 이와 같은 그들 특유의 민족성은 에스토니아 독립에 있어서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일명 ‘노래 혁명(Singing revolution)’이라고 불리는 것이 바로 그것인데, 발단은 이렇다.

소련 시절 에스토니아의 한 지방에서 지역 환경을 파괴하려는 정부의 시도에 대해 에스토니아 민중과 소련 정권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을 무렵, 알로 마티센(Alo Mattiisen)이라는 에스토니아 음악가가 다섯 곡의 노래를 1988년 5월 타르투 민속음악제에서 발표했다. 그리고 애국심을 고양시키는 이 노래들을 음악제 참가자들이 축제가 끝난 후에도 멈추지 않고 계속 따라 부르기 시작하면서, 알로 마티센의 노래들은 에스토니아 전역은 물론 이웃 발트국인 라트비아와 리투아니아까지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이후 에스토니아에서부터 들불처럼 번지기 시작한 자유를 위한 열망과 노래를 통한 저항운동은 발트 전역에서 멈추지 않고 계속 울려 퍼졌고, 이듬해인 1989년 8월 23일, 탈린에서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를 거쳐 리투아니아의 수도인 빌뉴스에 이르는 600㎞의 길에, 약 200만 명에 달하는 세 나라의 국민들이 거대한 인간띠를 형성하고 각각의 국가를 부르며 독립의 열망을 표현하기에 이르렀다. 이 거대한 인간띠 잇기 운동과 노래를 통한 저항은 1991년까지 무려 4년 간 지속되었는데, 이 운동에 힘입어 에스토니아 의회는 소련 정부에 정식으로 독립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소련군은 탱크를 몰고 들어와 이들의 독립을 저지하려 했고, 이에 에스토니아인들이 인간방패를 형성하며 탱크와 소련군에 맞서 이를 저지함으로써 1991년 8월 20일 마침내 에스토니아는 소련으로부터의 독립을 공식 선포하게 된다. 단 한 방울의 피도 흘리지 않고 오로지 노래의 힘으로 수년간 끈질긴 투쟁을 벌인 끝에 에스토니아인들은 자신들의 역사상 단 한 번도 제대로 누려 본 적이 없었던 독립을 마침내 쟁취한 것이다. 이 놀랍고 아름다운 사건을 인류 역사는 ‘노래혁명’이라 칭하며 기억하고 있다.

흥미로운 건, 보통 혁명이라고 하면 피와 총탄 그리고 폭력이 난자한 유혈 사태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대표적으로 프랑스혁명이 그랬고, 러시아혁명이 그랬다. 역사상 일었던 혁명의 장면들 속엔 늘 비명과 절규와 끔찍한 피비린내 그리고 처절한 응징이 있었다. 그런데 이들의 혁명은 순수하고도 완전하게 비폭력적이었다. 난 개인적으로 우리 역사에서 단 한 차례도 성공한 혁명이 없었다는 사실을 유감으로 여긴다. ‘아니 4·19혁명도 있고, 촛불혁명도 있는데 그게 무슨 말이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내 판단으론 그와 같은 우리의 경험들을 진정한 혁명이라 칭하기엔 조금 무리가 있다고 본다. 단지 정권이 바뀌고 위정자들이 바뀐 것일 뿐, ‘앙시앙레짐(ancien régime)’, 이른바 구체제가 완전히 전복된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우리 민중들의 혁명적이었던 투쟁과 위대한 민주 운동의 역사를 폄훼하려는 건 절대 아니다. 다만 결과적으로 정권이 바뀐 이후에도 구체제의 유산과 기득권층이 여전히 잔존한 체 새로운 정권과 뒤섞였고, 이후 혁명의 이상을 실현하는데 있어서도 신정권이 제대로 된 결과를 보인 적이 없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나아가 혁명의 주체인 서민들이 소외되고 결과적으론 위정자들의 분열과 부패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이들을 진정한 의미의 혁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나의 정체성을 규정할 때, ‘낭만적 혁명가’라는 말을 자주 쓰곤 한다. 아마도 그게 내가 무의식중에 지향해왔던 삶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모한 모험에 운명을 걸며 혁명과 사랑의 불구덩이로 뛰어들 만큼 나는 과단성 있고 용기 있는 사람이 아니다. 좋게 말하면 지혜로운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생각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늘 ‘아름다운 혁명’을 꿈꾸고 있다. 언젠간 반드시 나의 인생과 썩어 빠진 세상을 폭력 없이 송두리째 전복시키고 싶은 그런 열망이 나에겐 있다.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사랑을 위해 말이다.

‘사랑의 정치적 이름은 혁명’ 이라는 말이 있다. 어떤 의미에서 나에게 혁명은 그래서 사랑과 동의어다. 세상을 뒤바꾸는 게 혁명이라면 그건 세상에 대한 사랑이 전제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만약 사랑이 전제되지 않는 전복이라면 그건 정변이나 쿠데타에 불과하다. 그래서 사랑과 혁명엔 철학과 성찰이 필요하다. 혹시 집착과 욕심으로 사랑을 가장하고 있지는 않은가? 개인적인 야욕으로 인해 혁명의 정당성과 대의명분을 가공해서 민중을 선전 선동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지만 난 아직 혁명의 명분과 진정한 사랑의 대상을 찾지 못했다. 가슴 속 허기와 영혼의 굶주림은 여전한데, 어디에서도 나의 이상은 실현되지 않았다. 그저 다가가면 멀어지는 수평선처럼, 손으로 잡으려 하면 눈 앞에서 바로 사라져 버리는 구름처럼 말이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동토와 광야를 떠돌며 고단한 몸과 영혼을 이끌고 편력을 계속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언젠간 이룰 생의 전복과 영원한 사랑을 위해서 말이다.

아무튼 나를 고독한 방랑자로 만드는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동경 그리고 진정으로 충만한 행복의 결여는 나로 하여금 더 많은 세상과 사람들을 보고 경험하며 진실을 깨닫게 만드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에스토니아인들과 발트인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이루어냈던 노래혁명. 그리고 그들이 서로의 손을 붙들어 잡고 목 놓아 불렀던 자유와 독립에 대한 찬가와 열망. 이만큼 낭만적인 혁명이 또 어디 있으랴? 그들은 자신들의 동포는 물론 적이었던 소련군 어느 누구에게도 피 한 방울 흘리게 하지 않고 조국에 대한 그들의 사랑을 세상에 분출했고, 그들이 꿈꾸었던 독립을 보란 듯이 성공시켰다. 나는 나의 꿈의 일면을 북반구의 끝, 발트의 소국에서 우연히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여전히 목이 마르다. 나를 둘러싼 세상은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았고, 핍진한 나의 삶 역시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아직도 외롭게 운명을 개척하며 고독의 한가운데서 낭만적 혁명을 꿈꾸고 있다.

참고로 정치판에서 흔히 말하는 좌·우 개념은 프랑스 삼부회에서 왕당파가 왕 오른쪽에 위치하면서 기득권을 지닌 귀족이 우파라는 인식이, 이후 프랑스혁명을 급진적으로 이끈 자코뱅당이 국민공회에서 왼쪽 자리를 차지하고 앉으면서 보수에 반하는 좌파라는 인식이 자연스레 형성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https://youtu.be/uhLLvkX_P0k?si=jX2r4y27lx1sWbm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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