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토니아에서(4)
[5]
처음 마주한 타르투의 겨울은 무척 신비로웠다. 탈린에 거주하던 무렵 나는 앞으로 공부하고 살게 될 타르투를 미리 답사할 겸 한번 찾은 적이 있었다. 겨울이란 계절은 나에게 그 자체로 낭만과 순수를 의미하는데, 아마도 어릴 적 보았던 영화 ‘러브스토리’와 ‘닥터지바고’의 영향이 컸던 거 같다. 특히 ‘닥터지바고’는 그 은은하고 장중한 OST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아름답고 순수하지만 해서는 안 될 사랑을 전장 속에서 꽃피웠던 지바고와 라라. 지바고는 시인이자 의사였지만 가정을 가진 유부남이었고, 라라는 저명한 혁명가의 아내이자 종군 간호사였다. 지바고는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 후 가장 먼저 숙청의 대상이 된 부르주아지 가문의 지식인이었고, 라라는 혁명 전 어머니의 정부였던 귀족에게 정조를 빼앗긴 후 무도회장에서 그에게 직접 총상을 입힌, 젊은 혁명가의 연인이었다. 너무도 달랐던 두 사람의 출신 배경과 인생. 하지만 전쟁과 혁명은 그 치열했던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두 사람을 우연히 조우하게 한다. 무도회장에서 우연히 라라를 본 적이 있었던 지바고는 그녀에 대한 호기심을 이미 지니고 있었고, 진심을 다해 부상당한 환자들을 위해 헌신하는 지바고의 모습에 감동을 받은 라라는 진정으로 그를 사모하고 존경하게 된다. 그리고 두 사람은 어느새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 서로에게 젖어들고, 해서는 안 될 선택을 하고 만다. 닥터지바고의 OST는 그런 두 사람의 침묵적 사랑을 혹독한 추위와 눈보라 그리고 전쟁과 혁명의 비극 속에 깊이 스며들게 하면서 비장미를 극대화시킨다.
나는 대학 시절 러시아문학 강독 시간에 지바고의 캐릭터를 잉여인간이라고 폄훼시켜 평가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보면 그것은 참으로 치기어리고 미숙한 생각이었다. 그와 같은 나의 평가에 어리둥절해하고 황당해했던 교수님의 표정이 지금도 눈 앞에 선하다. 얼치기 같은 빈정거림과 냉소로 진실과 열정으로 가득 찼던 운명과 낭만을 평가했던 그 시절 나의 편협함이 부끄럽다. 아마도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무기력하고 우유부단했던 개인 그리고 무책임한 가장처럼 비춰졌던 지바고의 모습 때문에 그런 생각을 했던 거 같은데, 지바고라는 캐릭터는 사실 숭고한 양심을 가지고 민중을 위해 헌신하며, 진정한 사랑을 찾아 거센 역사와 운명의 눈보라를 헤쳐 나갔던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자신의 소울메이트를 만나 아름답고 비극적인 사랑을 비밀스레 꽃 피운 체, 차갑고 거친 눈보라 속에서 절명했던 낭만주의자였다. 참고로 영화의 원작이 된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동명 소설은 1958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고, 영화는 제 3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음악상을 비롯한 5개 부문을 수상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파스테르나크의 유일한 장편인 이 소설은 국내 발표가 허용되지 않아 이탈리아에서 출판됐고, 소련작가동맹 제명 등 소련 내의 반대로 인해 파스테르나크는 결국 노벨상 수상을 거부했다고 한다.
아무튼 타르투를 떠나기 전 나는 버스터미널로 가는 길에서 눈길을 갑자기 사로잡았던 작은 눈보라를 보았다. 눈보라는 나에게서 한참 멀리 떨어진 골목 끝자락에서 발생했고, 뿌옇게 내리던 눈은 강한 바람과 함께 주변의 어둠을 집어 삼키기라도 할 듯이 둥근 원을 그리며 허공에서 휘몰아쳤다. 그 원은 마치 다른 세계로 가는 입구처럼 느껴졌고, 그래서 나는 발걸음을 멈춘 체 아무도 오가는 이 없었던 거리에 서서 그 눈보라를 한동안 넋 놓고 바라봤다. 왜냐하면 그 눈보라가 마치 타르투가 나에게 자신의 오래된 문을 조심스레 열어주며 환영해 주는 일종의 인사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6]
에스토니아 제 2의 도시 타르투는 북방의 아테네란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타르투 대학의 본관이 그리스 신전 모양인 탓도 있겠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올드타운 언덕배기에 자리한 극장 건물 탓도 있는 것 같다. 타르투를 관통하며 흐르는 에마야기 강의 산책로에서 석양을 등지기 시작하는 언덕 위 극장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치 작은 파르테논 같은 착각이 들기 때문이다. 아무튼 타르투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젊은이들의 도시답게, 도시 거주자의 70프로 가량이 직간접적으로 타르투 대학과 관련을 맺고 있고, 시내 곳곳엔 고풍스런 유적들은 물론, 아기자기하고 기발한 건물들과 조형물들이 자리 잡고 있다.
내가 그곳에서 공부했던 당시엔 미국 교육 기관이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 교환학생이나 유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곳으로 선정되기도 했을 정도로, 전 세계 다양한 국가에서 온 젊은 친구들이 낮엔 캠퍼스에서 낭만과 학구열을, 밤엔 각종 클럽과 바에서 청춘의 열정을 불태웠던 그런 곳이었다. 내 전공 학과 동기들만 보더라도 에스토니아 현지인을 비롯해 미국, 캐나다, 네덜란드,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몰도바, 조지아, 터키, 일본 그리고 유일한 한국인이었던 나 등 다양한 국적을 가진 학생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한마디로 타르투는 작지만 생기와 활력이 넘치는 젊음과 낭만의 국제 도시였다. 그런 타르투에서 나는 주중엔 강의실과 도서관을 오가며 공부에만 몰두했고, 주말엔 이따금 에스토니아나 유럽의 다른 도시들을 짧게 여행하며 만학도로서의 유학생활을 이어갔다. 오죽했으면 동기 친구들이 어느 수업을 가든 나를 볼 수 있다는 농담을 할 정도로, 나는 늦은 나이에 공부를 다시 시작했던 만큼 가급적 시간을 단축해 학위를 마치고 싶은 열망이 컸었기에, 많은 수업들을 한 번에 몰아서 들으며 오로지 공부에만 집중했었다.
유럽 생활을 하며 개인적으로 정말 좋았던 점들은 장바구니 물가가 싸다는 점과, 저렴한 비용으로 유럽 내 다양한 나라와 도시들을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솅겐 협정 덕에 유럽 연합 국가의 거주증이 있는 사람들은 자유롭게 유럽의 국경을 왕래할 수가 있고, 라이언 에어나 이지젯 같은 저가 항공을 이용하면 비행기 티켓 값이 무척 싸기 때문이다. 유럽 연합엔 따로 비자 개념이 없기 때문에 장기 체류를 위해선 해당 국가의 거주증을 발급받아야 하는데,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에스토니아 내 러시아 인들의 거주증엔 설령 그들이 에스토니아에서 나고 자랐다 하더라도, 에스토니아 국적 대신 ‘alien(외래인)’이라는 문구가 명시된다는 점이다. 이는 러시아와 에스토니아의 얼어붙은 관계 때문인데, 에스토니아는 독립 후까지 이어졌던 러시아와의 일련의 정치적 충돌과 역사적 기억으로 인해 구소련 국가들은 물론 유럽 연합 내에서도 가장 강하게 탈러시아와 반러시아를 지향하는 국가 중의 하나가 되었다. 이런 성향은 멀리 카프카스(영어명 코카서스) 지역에 위치한 조지아(러시아명 그루지아)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서 심수봉이 리메이크해 유명해진 러시아 민요 ‘백만송이 장미’의 모티브가 된 사랑 이야기의 주인공인 화가 피로스만의 출생지이며, 소련의 철권 통치자 스탈린의 고향이기도 한 조지아는 유럽 연합 가입이 아직 승인되지 않았지만, 독립 후 러시아와 국경을 마주한 오세티야 지역에서 러시아와 치뤘던 전쟁으로 인해 에스토니아처럼 강력한 친 서방 반 러시아 노선을 견지하는 구소련 국가 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에스토니아와 조지아의 관계는 무척 가까운 편이고, 이런 이유로 내 대학원 동기 중에도 조지아 출신 친구들이 여럿 있었다. 한 가지 우연스런 일은 미국 어학연수 시절 나의 첫 외국인 룸메이트도 조지아 출신이었는데, 아무래도 내 운명엔 조지아와 뭔가 알 수 없는 인연의 끈이 있는 것같다는 생각도 든다.
카프카스 지역과 관련해 흥미로운 사실 한 가지는 이곳에 위치한 조지아, 아르메니아 그리고 아제르바이잔의 관계가 굉장히 복잡 미묘하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근본적으로 종교와 관련된 민족 구성에서 기인하는데, 이들 세 나라는 각각 정교회, 카톨릭 그리고 이슬람을 신봉한다. 세 나라는 지리적으로 이웃해 있고 동일한 한 국가에 복속됐던 여러 경험들에도 불구하고 각기 다른 종교를 바탕으로 아주 강력한 자신들만의 민족 정체성을 유지해 왔는데, 여기서 문제가 된 건 바로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의 관계이다. 두 나라는 영토상으로는 아제르바이잔에 속해 있지만 역사적으로는 아르메니아인들이 다수를 점하고 살아온 지역인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을 둘러싸고 이미 소련 시절부터 노골적으로 표면화된 민족 분쟁은 물론 전면전까지 벌여 왔는데, 현재는 공식적으로 휴전 상태이다. 더욱이 아제르바이잔은 튀르크계 민족으로서 같은 이슬람권이자, 이웃한 아르메니아를 중간에 두고 떨어져 있는 터키와 매우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세계 최초로 카톨릭을 국교로 받아들인 아르메니아는 터키의 전신인 오스만 투르크 제국에 의해 대략 100만에서 150만 명으로 추산되는 아르메니아인들이 투르크 민족주의에 저항했다는 이유로 인종 학살을 당한 끔찍한 기억이 있다. 지금의 아르메니아 인구가 대략 3백만 정도이니, 당시 아르메니아인들의 절반을 훌쩍 넘는 인원이 한순간에 유명을 달리했다고 보면 될 것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인해 아르메니아는 그래서 터키와 아제르바이잔 두 나라와 지금까지도 앙숙으로 남아있고, 같은 그리스도 국가인 조지아와만 정상적인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 반면, EU, 터키 등으로 향하는 운송과 물자는 물론, 카스피해의 자원 부국인 아제르바이잔의 원유와 가스가 경유하는 조지아는 독특한 지정학·지경학적인 이유로 아르메니아와는 별개로 종교와 문화가 다른 아제르바이잔과 전략적인 우호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카프카스 지역의 복잡 미묘한 외교적 지형의 균형추 역할을 하고 있다. 나와 타르투 대학원 동기들은 유럽연합-러시아 지역학이라는 커리큘럼 안에서 각자의 관심에 따라 유럽연합이나 러시아 혹은 카프카스나 발트와 같은 유관 지역 등을 공부하며 독자적으로 연구 과정을 설계해나갔는데, 당시 나의 관심지역과 주된 연구 분야는 러시아와 유럽연합이 국경을 맞대고 있는 접경지역과 국경협력 분야였다. 해서 카프카스 지역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은 여전히 많이 부족하지만, 이 세 국가는 앞으로도 개인적으로 더 깊이 탐구하며 알아가고 싶은 곳이기도 하다.
https://youtu.be/niTgbkVCCA8?si=Ipmr-CuCZx84UB2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