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토니아에서(5)
[7]
정말 천생연분인 사람이 있어서 그 사람하고만 연애를 하고 그 사람과 결혼해 가정을 꾸려 행복하게 백년해로 한다면 그건 참 복 받은 일일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런 행운아가 얼마나 있을까? 어떻게 한 사람만 보고 여자를 알고 남자를 알며, 사람을 알 수 있을까? 물론 평생을 두고 한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 그 자체로도 의미가 클 수도 있다. 누군가를 완벽하게 알고 그 사람과 평생의 연분을 맺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도 아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맞는 짝을 찾기 위해서는 되도록 많은 사람을 만나봐야 할 수도 있다. 친구도 많이 사귀어 보고, 연애도 많이 해보고, 가능하다면 동거도 해 보는 것이 바람직할 수도 있다. 꼭 결혼을 목적으로 두는 것 보단 자신의 진정한 반쪽, 영혼의 동반자인 소울메이트를 찾는 것에 의의를 두고 말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유교적이고 보수적인 가치관이 여전한 사회에서 그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딸을 가진 아빠들은 더욱 경계하는 마음이 클 것이다. 아들을 가진 엄마 입장에서도 그 마음은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아빠들은 남자라는 짐승을, 엄마들은 여자라는 동물을 너무도 잘 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짐승이고 동물이기 이전에 인간이다. 인격과 자유의지를 지닌 인간. 자신의 삶과 사랑과 일과 정체성을 스스로 선택할 권리와 그 선택에 대해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자격을 갖추어야하는 인간 말이다.
만 18세 정도의 나이가 되면 사실상 대부분 사람들의 인격과 가치관은 거의 형성이 된다고 본다. 세상 경험이 일천해 미숙함은 있겠지만, 그건 살면서 겪고 부딪히고 배우며 깨달아야 할 필수 과정이다. 그 안에서 상처도 받고 배신도 당하며 슬픈 일 또한 겪겠지만 그게 다 인생이고 사람 사는 일이다. 이젠 그들에게 민주 사회 성인의 징표인 선거권도 주어지지 않는가? 그 나이가 되면 아이가 아니라 그냥 어른이라 보고 어른으로 대접해 주는 게 옳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질 수 있도록 각자의 선택에 맡기고 지지해주는 게 좋다. 이 세상 그 누구도 자신의 소중한 자식이 마마보이나 파파보이가 되기를 원하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만약 그런 생각을 가진 부모라면 그들은 자식을 독립적 인격체가 아니라 자신의 소유물 혹은 비뚤어진 집착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나 다름 없다.
우리는 종종 집착이나 간섭을 사랑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그 사람을 위해 얼마의 돈과 시간과 힘을 쏟았는지는 인간의 자유의지와 개성에 대한 존중 앞에선 더 이상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일례로 나의 아버지는 당신의 꿈을 내가 그리고 당신의 자식들이 대신 이뤄주길 바랬다. 당신의 외모와 목소리를 닮은 장남과 다른 자식들이 당신의 분신이라 여긴 것이다. 하지만 세상 어느 누구도 다른 누구의 분신이 될 수는 없다. 다른 누군가의 소유물은 더욱 아니다. 집착과 강요를 사랑과 희생이라는 말과 혼동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는 나의 아버지가 당신이 되지 못한 것이 되길 자식에게 바라기보다, 진정으로 가치 있는 삶을 직접 우리들에게 보여 주길 바랬다. 그것이 지극히 작고 평범한 삶일지라도 말이다. 그래서 항상 무엇이 되라고만 하지 어떻게 주체적으로 살아야 하는 지를 직접 보여주지 않는 부모가 답답하게 느껴졌다. 무엇이 되기 이전에 중요한 건 먼저 솔직해지는 것,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것 그리고 자신이 바라는 행복을 찾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을 속이거나 남을 밟고 올라서 얻게 되는 권세나 명예 같은 껍데기에 집착하고, 탐욕에 눈이 멀어 자신을 기만하고 세속적 이익만을 좇는 것은 올바른 삶이 아니다. 사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들이 거창한 무엇이 되기보다는 그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랠 것이다. 어찌 보면 아주 단순한 진실일 수도 있는데 고된 일상과 소통의 부족이 그 단순한 사실을 깨닫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을 에둘러 오게 하는 것 같다. 고단한 삶을 살기만 했던 젊은 날의 내 부모와 어린 나 역시 그랬다. 그래서 나는 한때, 나를 생각도 감정도 없는 사람 취급하는 부모가 원망스러웠다. 나를 통제하고 조종하려는 게 싫었다. 그런데 그건 부모 탓이 아니다. 권위주의 문화 탓이다. 권위주의 문화는 늘 국가의 은혜, 신의 은혜, 부모의 은혜 등 힘과 권위를 가진 것들에 무조건적으로 굴복할 것을 강요한다. 하지만 그 은혜라는 포장과 미명하에 자신들이 가한 수많은 강제와 폭력에 대해선 늘 무관심하고 그로 인한 사람들의 상처와 희생 역시 외면하고 무시한다. 세상으로부터 받은 상처가 커질수록 나의 내면에선 그래서 나만의 신앙을 찾고 싶은 욕구가 점점 더 크게 자리 잡기 시작했다. 속물적이고 위선적인 종교를 믿진 않았지만, 숭고한 신앙의 빛으로 더럽혀진 마음을 정화하고, 따뜻한 사랑의 힘으로 고통 받는 영혼을 치유하고 싶었다. 그것이 만약 구원이라면 난 어쩌면 구원을 바라고 있었는지 모른다. 종교와 마찬가지로 신을 맹신하진 않았지만, 나의 아픔과 슬픔을 어루만져줄 대상을 구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8]
에스토니아 그리고 발트 유럽에 거주하던 시절 나는 크라쥬칼라스를 방문한 적이 있다. 1831년부터 1863년에 걸친 러시아 제국 시절 독립전쟁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리투아니아인들이 소련의 지배하에 있던 1944년부터 1990년에 이르기까지 자발적으로 세워둔 수 만여개의 십자가들이 모여 거대한 언덕을 이룬 ‘십자가 언덕’, 이곳을 현지어로는 ‘크라쥬칼라스’라 부른다. 이곳은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에서 샤울라이까지 버스로 3시간,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에서는 버스로 1시간 정도를 이동한 후, 다시 도만타이행 지선 버스를 타고 20여분 정도를 더 가면 닿을 수 있는 곳이었다. 지금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꽤 유명한 성지가 된 걸로 알고 있는데, 내가 처음 방문했던 2천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크라쥬칼라스는 인적이 무척 드문데다가 5만 여개가 넘는 오래된 십자가들로 인해 을씨년스럽기까지 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곳이었다.
크라쥬칼라스를 방문하게 된 계기는 우연히 이탈리아 친구의 페이스북에 업로드된 십자가언덕 사진을 보고 너무 강렬한 인상을 받아서였다. 평소 종교를 혐오하다시피 했지만 카톨릭 성당이나 이슬람 사원, 중세의 교회 건물들을 구경하기 좋아하는 나는 알 수 없는 충동에 이끌려 십자가언덕을 직접 사진에 담고자 에스토니아 탈린에서 크라쥬칼라스가 위치한 리투아니아 샤울라이까지 버스로 반나절에 달하는 거리를 달려갔다.긴 버스 여행 끝에 샤울라이에 도착한 나는 간단히 시내 구경을 한 후 우선 첫날을 비어있는 대학 기숙사에서 숙박했다. 리투아니아어는 인도어와 유사한 특성이 있고, 특히 흰 피부와 금발을 가진 유럽계 혈통의 주민들과 달리 검은 머리에 거무잡잡한 피부를 지닌 주민들도 많은데, 이는 인도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리투아니아 땅에 정착해 산데서 기인한 부분도 있다. 흔히 집시 계열로 알려진 이들은 본래 인도의 하층계급에 속하는 떠돌이 방랑자들로서 리투아니아는 물론 헝가리, 폴란드, 루마니아 등 중남부 유럽까지 폭넓게 진출해 현지인들과 뒤섞인 결과 유럽적이면서도 아시아적인 묘한 정체성을 형성해 내기에 이르렀다. 유럽에 거주하고 여행하는 동안 난 이런 계열의 친구들과 종종 교류하기도 했는데, 그들로부터 정통 유럽인 같지 않은 외모로 인해 학창 시절 종종 집시라고 놀림을 받았다는 푸념을 들은 적도 있다. 사실 내가 보기엔 모두가 다 이국적이고 같은 유럽인 같지만, 또 그네들 눈엔 또 다른 정체성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낀 나는 다양한 인종과 종교가 뒤섞여 공통의 역사를 일구어온 유럽의 진정한 정체성은 무엇인가에 대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이 질문은 유럽과는 또 다른 유럽 연합의 출현으로 인해 아직까지도 풀리지 않은 의문이기도 하지만, 단순히 그리스도교 신앙 여부를 기준으로 유럽과 비유럽을 나누는 것은 여전히 한계가 있어 보이는 건 분명한 사실인 것 같다.
아무튼 나는 샤울라이에서 이틀째 되는 날 고대하던 크라쥬클라스를 찾았다. 실제 눈으로 목격한 십자가언덕은 경건함을 넘어 실로 기괴하고 그로테스크한 감정까지 자아낼 정도로 규모도 크고 무척 독특했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이국의 외진 곳에 수 만여개의 오래된 십자가들과 홀로 있자니 조금은 무서운 느낌까지도 들었다. 한 시간에 한 대 정도만 오가는 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나는 십자가언덕을 거닐며 구경한 후 고대했던 사진들을 직접 남기기 위해 아이팟을 꺼내 들었다. 그런데 사진을 찍으려는 중요한 순간에 아이팟 초기 화면이 갑자기 커져서 슬라이드를 옆으로 밀어 열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전엔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경험한 적도 없었던 일이었다. 어떤 기계적 오류였는지 지금도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잠금조차도 해제할 수 없었던 나는 결국 사진 찍기를 포기하고 십자가언덕을 눈으로 직접 본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그렇게 낙담한 기분으로 버스를 기다리며 ‘신은 과연 존재하는 것인가?’ 고민하고 사진 찍기를 체념하고 있던 사이, 버스가 도착하기까지 약 10여분을 남겨뒀을 무렵 아이팟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거짓말처럼 정상으로 돌아왔다. 덕분에 나는 부랴부랴 고대했던 크라쥬칼라스의 사진들을 직접 남길 수 있었고, 늦지 않게 정류장에 도착해 샤울라이로 가는 버스를 잡아 탈 수 있었다. 그 이후로 아이팟은 같은 오류를 보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 날의 사건이 일종의 계시였다는 생각을 한다. 신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계시 말이다. 신이 나에게 자신이 곁에 있음을 알리기 위해 신호를 보낸 것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신을 믿는다. 종교를 믿지 않고 특정한 종교를 가지고 있진 않지만, 내 마음 속엔 나만의 신앙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 신앙은 나로 하여금 우주와 자연에 대한 신비감과 경외감을 갖게 하고, 다양한 삶과 감정들을 겸허함과 경건함을 가지고 대하게 한다. 그것은 어떠한 경전이나 교리도 필요로 하지 않는 초월적 존재에 대한 순수한 믿음이고, 어떠한 스승이나 제도도 존재할 이유가 없는 구원에 대한 주체적 희구이다.
https://youtu.be/uhLLvkX_P0k?si=AqpwcixoveZ-ww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