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스에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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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빌리시 올드타운 언덕 위 몌톄키 성당에선 결혼식이 한창이었다. 언덕 아래론 밀크 초콜렛을 풀어 놓은 것 같은 쿠라강이 시내를 관통해 굽이굽이 흐르고 있었고, 성당 뒤쪽으론 유서 깊은 페르시아식 성곽인 나리칼라 요새와 거대한 조지아 어머니상이 자리 잡고 있었다. 조지아 어머니상 양 손엔 칼과 와인잔이 들려있는데, 트빌리시 골목길을 걷다보면 가정집 담벼락에서도 포도 넝쿨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을 정도로 와인은 조지아를 대표하는 음료이다. 조지아의 가정집은 저마다 특색적인 와인을 가지고 있고, 와인과 음식을 빼 놓고는 조지아를 논 할 수 없을 정도로 산 좋고 날 좋은 조지아엔 먹거리가 무척 풍부하다.
남부 러시아나 유라시아 초원 지역을 다니다 보면 거대한 어머니상을 종종 보곤 하는데,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광활한 대지는 곧 여성을 상징하고, 고난과 역경의 역사를 견뎌 온 약소 민족들의 정신적 지주는 곧 세상에서 가장 강한 이름, 바로 ‘어머니’였기 때문이리라. 조지아인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손님들에게 무척 관대하고 정이 많다. 조지아 음식 중에서 특히 대표적이고 우리에게도 친숙해 보이는 음식이 힌칼리인데, 모양과 맛이 만두와 매우 흡사하다. 그래서 유치하나마 힌칼리를 소재로 한 자작시를 지어 봤다.
힌칼리의 추억
처음엔 그냥 평범한 만두인 줄 알았네
여염집 여인네 족두리 같은 손잡이를
잡고 들어 자세히 돌려보니
왠걸
촉촉하고 뽀얀 만두피가
발그레 상기된 처녀 얼굴 같았네
따뜻하고 뭉실뭉실한 만두피가
봄비를 갈망하는 꽃망울처럼
금방이라도 터질 듯 했네
두근두근 뛰는 가슴 억누르며
입맞춤하듯 그녀를 살짝 깨어 물었네
아! 달콤하고 짭쪼름한 육즙의 향이여.
살짝 열린 여인의 입술 사이로 흘러내린 액체는
목 마른 혀를 감싸고 돌아
입 안 가득 뜨거운 사랑을 채웠네
시작하는 연인들의 첫키스처럼
처음엔 두근두근 떨며 달콤하게
다음엔 조바심 내며 열정적으로
그녀의 피부를 핥고
체액을 마시고
속살을 깨어 물었네
아! 쫄깃하고 풍만한 살점
그리고 느끼함을 잡아주는 야채의 교향곡
사랑에 빠진 연인들의
달콤짭쪼름하고
끈적한 밀어
소곡소곡
입 안 가득 채워졌던 절정의 행복이
비 내린 그 날
우리 둘과 함께 했네
개인적인 소견으론 중국의 만두가 조지아의 힌칼리로부터 유래된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나는 현재의 튀르키예, 이란을 중심으로 한 페르시아 문화권 지역의 기마 유목 민족들에 의해 상당수의 고대 신앙과 문화 등이 극동으로 전해졌다고 믿는데, 만두도 그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물론 모든 게 다 자기네 것이라고 우기는 중국이 들으면 기분 좋을 리 없을 추측이긴 하지만, 어차피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고 그 기록마저도 조작과 가공에 익숙한 중국이니, 그네들 문헌 보다는 현재 남아있는 유라시아 지역의 문헌 및 풍습, 전통, 언어 등을 기준으로 역사적 기원을 추적하는 것이 진실에 이르는 더 정확한 방법일 것이다.
아무튼 난 그녀와 함께 힌칼리를 비롯한 다양한 조지아 음식들을 맛보았다. 이미 조지아의 문화와 음식 등에 대해 상세히 알고 있었던 그녀 덕분에 낯선 음식들 중 ‘무엇을 골라야 하지?’ 하는 수고로움을 덜 수 있었고, 음식을 먹으며 역사를 토론하던 중 한국의 고대 국가들, 이를테면 고조선, 부여, 고구려 등을 중국 역사의 일부로 잘못 알고 있던 그녀에게 동북공정의 흉악한 음모와 오도된 역사적 진실을 알리느라 잠깐 흥분하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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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은 그 나라의 개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문화적 산물 중의 하나라고 나는 생각한다. 같은 유교 및 한자 문화권인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의 전통적인 건축 스타일이 같은 듯 다른 것처럼 말이다. 카프카즈의 토속적인 스타일과 서구의 비잔틴 양식 등이 혼재된 조지아의 전통 건축 스타일은 다른 유럽-아시아 지역의 건축 양식과는 확연이 구분이 될 정도로 개성이 매우 강하다. 색으로 표현하자면 조지아 건축은 단연 흙색이다. 그래서 일견 단순하고 촌스러워 보이기도 하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뽀족하게 하늘로 솟아있는 지붕과 비슷한 구조물이 겹겹이 중첩된 건축 양식은 단순함 속에서도 입체적이며 통일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성당 건축물들을 중심으로 보면, 조지아 전통 건축물들은 외형상 하늘로 비상하는 로켓 같아 보이기도 하는데, 이는 신성한 하늘과 최대한 가까워지려했던 고산족 사람들의 염원과 신앙이 반영된 결과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흙색은 ‘황금’을 상징하는 신성성과 대지를 상징하는 평범성을 동시에 보여준다. 끝은 좁고 뾰족하지만 하단이 넓고 단단한 것 역시 영원과 비상을 꿈꾸는 동시에 현세에 충실하고자 했던 조지아인들의 무의식이 투영된 결과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는 코카서스 지역 내에서도 같은 그리스도교 문명권인 아르메니아의 건축 양식과는 공통되지만, 이슬람 문화권인 아제르바이잔의 건축 양식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특징이기도 하다. 내가 새로운 장소에 갈 때면 가장 먼저 찾는 곳이 전통시장이고, 가장 눈 여겨 보는 것이 바로 전통 건축물들인데, 그런 의미에서 일반적인 동서양 건축물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의 고지대 건축물들이 오랜 역사의 숨결로 생동하고 있는 트빌리시는 나에겐 무척이나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도시가 아닐 수 없었다.
https://youtu.be/FHQWSpULnLM?si=0W37juIocJ7Oynk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