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신화의 땅

카프카스에서(3)

by 레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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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마음을 발가벗기고 새 옷을 입히는 과정인데, 어쩌면 나는 본능적으로 새하얀 눈을 사랑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얀 눈이 마치 오염되고 더럽혀진 영혼을 정화시켜줄 거라고 믿기라도 하는 건지. 잔뜩이나 추위를 싫어했던 나는 이상하리만치 눈이 많이 내리고 매섭게 추운 지역과 유독 인연이 많았다. 북유럽과 가까운 에스토니아와 러시아에서 7년 넘게 체류했으니 말이다. 아무튼 내가 지금 돈 한 푼 되지도 않고 있는 글을 쓰는 이유는 글을 씀으로써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 나의 속마음을 투시하며 정화하는 계기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글은 내 영혼의 기록이다. 그래서 내가 쓴 글을 공론화하는 것은 나의 감춰진 치부를 드러내는 일면이 있지만, 나는 이런 작업을 통해 영혼을 청소하고 가다듬는 정화의 기쁨을 느끼기도 한다. 여행을 통해 세상을 새롭게 보기를 경험한다면, 글을 통해 내 영혼을 새롭게 입히기를 체험하는 셈이다. 그리고 영원한 순수를 갈망하는 철부지 같은 나에게 하얀 눈은 경건한 희열과 신선한 영감을 불어 넣어준다.

이베리아는 스페인과 포르투갈 남부를 지칭하기도 하지만, 고대 코카서스의 남부 지방 즉,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과 접경하고 있는 조지아 동남부 일대를 지칭하기도 한다. 그리고 여기엔 만년설로 뒤덮여 머리가 흰 고산들과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도 위치해 있다. 도심 한 가운데에서 만년설을 보노라면 마치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 한 착각이 드는데, 이런 이유로 나는 알마티나 비슈케크 시내에서 보았던 눈 덮인 천산의 풍경을 여전히 잊지 못한다. 산과 눈을 좋아하는 나에게 그래서 카프카스나 중앙아시아 지역은 너무나도 매력적인 땅이다.

그런데 나고르노-카라바흐는 쉽사리 찾기 어려운 곳이다. 분쟁 지역이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아름다운 지역은 왜 이리도 분쟁이 잦은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오만과 탐욕은 끝이 없어서 아름다움과 평화에 대한 평범한 이들의 갈망을 무참히도 짓밟아 놓는다. 역사에 처음 등장할 당시 이 지역은 기원 전 고대 아르메니아 왕국의 영토였다. 하지만 이후 사산조 페르시아, 셀주크 투르크, 몽골 제국 등의 지배를 거치며 아르메니아계 원주민과 투르크계 정착민이 공존하는 지역이 되었다. 그리고 이후 아제르바이잔계 카라바흐 칸국과 아르메니아계 멜리크국들이 대립을 이어가면서 러시아 제국의 남하로 이어졌고, 1813년 러시아-페르시아 전쟁 이후 체결된 굴리스탄 조약으로 인해 나고르노-카라바흐는 러시아 제국에 편입됐다.

나고르노 카라바흐 지역 중에서도 특히 오늘날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이 영토 분쟁을 벌이는 카라바흐 서부의 산악지대는 아르메니아계 원주민이 절대 다수를 점하고 있는데, 1988년부터 1994년까지 이어졌던 전쟁에서 아르메니아계의 주도로 나고르노-카라바흐는 독립을 선언했고, 이 지역 인구의 20%를 차지했던 아제르바이잔계가 보이콧한 가운데 99.98%의 찬성률로 독립이 결정됐다. 하지만 문제는 실효적으로 나고르노-카라바흐는 아제르바이잔으로부터 독립했지만, 국제법상 현상 유지 원칙에 따라 아제르바이잔 영내로 여전히 인정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후 2020년 재차 발발한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에 아제르바이잔과 우호 관계에 있는 튀르키예, 아르메니아와 우호 관계에 있는 이란 같은 이웃 맹주들은 물론, 프랑스, 러시아, 미국 같은 열강들이 관여함으로써 이 지역은 말 그대로 ‘패권 다툼(Great game)’의 한 가운데에 놓여지고 말았다. 현재는 러시아의 중재 아래 맺어진 종전 협정 이후 나고르노-카라바흐 남부는 아제르바이잔의 통제 아래 있고, 기존에 주둔했던 아르메니아군은 이 지역에서 완전히 추방되어 영내 아르메니아의 영향력은 이미 소실된 상태이다.

우리에겐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막상 아르메니아나 아제르바이잔을 방문해 이들 국가 국민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갈등의 골은 남북한 관계보다도 깊다. 2022년 가을 내가 아제르바이잔을 방문했을 당시 바쿠 시내 주택이나 건물 베란다에 나란히 걸려 있었던 국기들은 이와 같은 분쟁 상황을 반영하고 있으며, 아르메니아인들 역시 카라바흐 이야기만 나오면 목에 핏대를 세우고 열변을 토하며 아제르바이잔에 대한 반감을 표했었다. 심지어 이들 국가에 방문하는 외국인 여권에 상대국을 방문했던 이력이 기록되어 있으면, 국경 검문에서 의심의 눈초리를 받으며 여러가지 질문을 받고 입국이 지연되기도 한다. 그래서 아제르바이잔에서 아르메니아 혹은 그 반대 방향의 직접 이동은 금지되어 있어, 이들 국가를 방문하기 위해서는 양국과 접경하고 있는 조지아를 우회해야 하는 불편함도 따른다.

아르메니아는 아제르바이잔 뿐만 아니라 같은 투르크계 국가인 튀르키예와도 불편한 관계에 있다. 그 이유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현재 튀르키예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오스만 제국 내에서 자행된 아르메니아 대학살 사건 때문인데, 통계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추산되는 희생자 수는 대략 50만에서 120만 명 정도이다. 현재 아르메니아 인구가 300만이 체 안 되니, 최소 1/6에서 최대 1/3 이상의 아르메니아인이 당시 대학살로 인해 희생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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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는 옛 로마를 닮은 듯 한 건물들이 많고, 같은 이슬람권이면서도 거리가 가깝고 물가가 싸서 아랍 관광객들이 특히 많이 찾는다. 하지만 아제르바이잔 친구의 농담처럼 여자들이 예뻐서 아랍 관광객들의 발길이 많이 닿는 면도 있다. 이 얘긴 한국 관광객들이 상대적으로 가깝고 물가가 싼 중국이나 동남아를 자주 찾는 것과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하면 되는데, 현지 친구의 전언에 의하면 그들의 오만함 때문에 아제르바이잔 사람들은 아랍 사람들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개인적인 소견으로 이것은 중국이나 동남아 등지에서 한국인에 대해 일부 반감을 갖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 한국에서 미국 등 영어권 국가 출신에 대해 가졌던 반감도 아마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잘사는 나라에서 못사는 나라로 흘러드는 부의 차이가 만드는 반감들. 그리고 여기에서 파생되는 성산업, 미혼모 그리고 사생아들과 관련된 문제. 이는 유럽을 포함한 다른 대륙에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유럽은 이슬람권 출신 난민들에 더해 최근엔 우크라이나 난민들까지 가세해 양극화와 인종 간 갈등의 골이 더 깊어지고 있다. 유럽 어느 국가를 가든 이들 난민들을 포함한 불법 이민자들이 거리에서 구걸을 하거나 노숙자가 되어 어두운 밤거리를 배회하는 장면을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다. 특히 현지에서 민폐만 끼치고 비호감으로 낙인찍혀 가는 중국, 인도, 파키스탄, 튀르키예, 이스라엘 그리고 이슬람 출신 관광객들은 그들의 독특한 문화 탓인지 아니면 잘못된 교육 탓인지 아주 자주 안하무인이고 무질서하며 몰상식하게 비춰지기도 한다. 그리고 해외에 거주하는 이들 중 상당수는 불법 체류자이기도 하고, 폭력 사기 소매치기 등 다양한 범죄의 온상이 되고 있어서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나 역시도 키예프, 아테네, 프라하 등에서 이들 국가나 문화권 출신으로 추정되는 사람들로부터 소매치기를 당한 경험이 있는데, 이슬람 출신 불법 체류자가 많은 남유럽에서 이런 문제는 특히 심하다. 코로나 사태 이후 특히 미국의 흑인들은 아시아인들을(사실상 중국인으로 오해한데서 비롯된 것이다) 대상으로 폭력과 인종 차별을 가하며 과거 자신들이 당한 차별에 대해 비뚤어진 분노를 표출하고 있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극우주의를 혐오하지만 이민에 반대하는 일부 보수적인 현지인들의 심정도 어떤 면에서는 이해가 되기도 한다.

특히 이번 전쟁을 계기로 러시아라는 나라 뿐 아니라 러시아인들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오만함에 대한 혐오도 커지고 있다는 것을 나는 다양한 인접 국가들을 여행하며 직접 체험했다. 러시아와 갈등 관계에 있는 아브하지야 출신 조지아 친구는 현재 유엔 산하기관에서 난민과 해외 이주민들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그 친구의 열변에 의하면 전쟁을 피해 인근 러시아권 국가들로 이주했지만 여전히 강대국이라는 환상을 가지고 있는 러시아 출신 도피자들이 환영받을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에 불과하다고 한다. 소련 몰락 후 힘든 상황을 직접 경험했고, 반정부 시위 참가 시 10년 이상 투옥될 것을 두려워해 러시아인들이 반전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 역시 모두 비겁한 핑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사실 러시아는 광대한 영토와 독특한 체제 특성상 장미혁명을 경험한 조지아와는 처한 현실이 다르다. 하지만 전쟁 이후 거리에 넘쳐나게 된 거지들과 관광객들 그리고 이들 러시아인들과 우크라이나인들로 인해 폭등한 물가와 월세는 평균 급여가 40 여만 원에 불과한 이들 코카서스 국가의 일반 시민들의 삶을 더욱 각박하게 만들고 있다.

잠깐 화제를 돌리자면 바쿠 시내에는 유독 고양이들이 많고, 트빌리시 시내에는 개들이 많은데, 예레반에선 길고양이나 개들이 별로 눈에 띄지 않았던 것도 재미있는 특징 중의 하나였다. 나는 유독 조지아를 포함한 카프카스 출신 친구들과 인연이 많았다. 그래서 다음 책을 쓰게 된다면 카프카스 지역을 중심으로 해서 튀르키예, 이란, 우즈베키스탄, 인도 등에 이르는 옛 페르시아권을 다루는 책을 쓰고 싶다. 그리고 까닭 없이 연결되고 끌리게 되는 이들 권역에서 내 DNA의 역사적 본향을 찾고 싶다.


https://youtu.be/PNydTqPeN6M?si=uMspSK31IODZYLU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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