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혁명의 땅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2)

by 레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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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우 전쟁으로 인해 급박하게 변해가는 세계 정세를 보며 개인적으로 드는 생각 한 가지는 과연 모스크바가 계속해서 러시아의 수도 역할을 수행하게 될까하는 의문이다. 모스크바는 유럽과 근동의 중간 지점에 있어 지리적 입지가 매우 좋기 때문에 유럽과 아시아의 중간 기착지 역할을 한다. 하지만 러시아가 유럽이 아닌 중국이나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밀접한 유착관계를 형성하고 지정학적, 지경학적 무게 중심을 아시아에 두게 되면 모스크바의 수도로서의 기능에 대해 의문이 생길 수도 있다. 나토의 위협으로부터 보다 더 안전한 위치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중국이나 카자흐스탄, 몽골 등에 가까운 시베리아 지역의 예카테린부르크나 크라스노야르스크 같은 곳으로 천도하는 것이 보다 나은 선택일 수도 있다. 이는 러시아가 향후 어떤 비전과 로드맵을 가지고 자국의 미래를 디자인하느냐에 달려 있는 선택이겠지만, 이미 극동 개발을 통해 유럽 일변도의 경제 교역 구조에서 탈피해 새로운 국가 발전의 비전을 천명한 전례도 있는 만큼 수도를 아시아와 가까운 지역으로 옮긴다는 생각은 불가능한 가정도 아닐 것이다. 다만 개인적으로 우려 되는 점은 서방과의 관계가 냉각되고 친중 노선이 고착화될 경우 러시아 경제가 중국에 예속되고, 특히 중국과의 국경 지역을 중심으로 러시아 영토가 중국인들과 중국 경제에 의해 잠식되지 않을까 하는 부분이다. 기본적으로 모든 권위주의 체제, 전체주의 체제 국가들이 글로벌 사회의 안정과 발전을 방해하는 잠재적인 위협이긴 하지만, 이미 상당한 수준의 경제 성장을 일구어 내고 거대한 내수 시장과 인구를 지닌 중국이야말로 체제와 문화가 바뀌지 않는 이상 러시아보다 더 이웃 국가는 물론 세계를 더 큰 위협에 빠트릴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정부나 국민 역시 이를 모르지는 않겠지만, 국제 정세의 거대한 변화 속에서 중국과의 파트너쉽 강화는 러시아에 있어 이미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다. 이는 많은 러시아 현지의 지인들과의 대화를 통해서도 개인적으로 확인한 바 있는데, 생각보다 빨리 러시아인들의 중국에 대한 태도는 더 호의적인 방향으로 바뀌고 있거나 최소한 호의적인 쪽으로 애써 정당화하는 경향을 띠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러시아 민중과 문화, 중국의 자연, 중동의 이국적인 분위기를 사랑하지만 이들의 문화가 권위주의와 전체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오히려 이를 더욱 강화해 나가는 현상을 목도하는 것은 그래서 너무나 안타깝다. 권력과 부를 지닌 이들에겐 이득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정작 이로 인해 고통 받는 것은 평범한 민중과 국민들이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궁핍이나 편리의 결여보다 더 힘든 것은 불확실한 미래와 희망 없는 현실에 대한 우울감과 좌절감일 것이다. 그리고 그 보다 더 무서운 것은 자유의지와 주체의식을 상실한 체 권력과 권위에 의해 조종되는 기계적 인간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역사는 늘 인권을 존중하고 개성과 자유의 가치를 신봉하는 세력들에 의해 진보의 길을 걸어 왔다.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근본정신이며, 다원주의와 행복한 삶의 핵심 요소이다. 국민이 불행하고 권력층만 행복한 나라는 오래 지속될 수 없다. 민중이 희망을 품을 수 있고 현실에 좌절하지 않을 때 진정으로 행복한 사회, 진정으로 행복한 국가가 만들어 질 수 있다. 이런 점에 비추어 지금의 러시아는 너무도 반대되는 우경화의 길을 걷고 있는 거 같아 개인적인 걱정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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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3차례에 걸친 허리 수술과 파킨슨 병으로 인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정상이 아닌 노모의 상태를 목도하며 건강과 죽음 그리고 진정한 행복은 무엇인가에 대해 깊이 고민해왔다. 이 곳 뻬쩨르에서 인생 2 막을 열수 있길 희망하며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지만, 어떻게 돈을 벌어 무엇을 하며 먹고 살 것인가, 당장 오늘과 내일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다 보면 답답할 때가 많다.

‘떠돌이별에서 그림으로 세상의 빛’이 된 화가 마르크 샤갈. 러시아는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푸시킨 같은 대문호들 외에도 샤갈이나 칸딘스키, 말레비치처럼 우리가 이름만 들으면 알 법한 유명 화가들과 차이코프스키, 라흐마니노프 같은 세계적인 음악가들도 많이 배출한 전통적인 문화 강국이다. 그래도 나름 작가랍시고 종종 펜대를 굴리고 있긴 하지만, 돈 한 푼 되지 않는 글만 가지고는 살 길이 막막하기에 영어나 한국어 강의를 통해 용돈을 보충하고 있지만, 나이가 들수록 커지는 예상치 못한 소비와 세금 등을 충당하다 보면 결혼이나 자식을 갖는 것은 어불성설 꿈도 꾸지 못하게 된다. 그나마 월세를 받는 게 있어서 생활이 빠듯하진 않지만 그래도 본업으로 돈을 벌고 싶은데 그게 참 쉽지 않다. 노모의 치료비와 간병비, 나의 노후 자금 그리고 당장의 생활비를 생각하면 본업인 글쓰기를 통해 어느 정도 수입을 거뒀으면 하는데 전혀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답답하기만 하다. 그래서 이런 저런 이유로 가끔 우울감이 사무치게 밀려오는 때가 있다. 그럴때면 무기력이 사지를 마비시키고 혈관을 백해무익한 알콜로 채우고픈 욕망이 고개를 든다. 초점 없는 눈동자는 자꾸 먼 곳을 응시하게 되고 해서는 안 될 생각까지 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우울감의 원천은 어디인가? 외로움인가? 권태인가? 아니면 단순히 날씨 탓인가? 아니면 믿을 사람 하나 없이 사기꾼만 넘쳐 나는 세상 탓일까? 확실한 건 나는 아닌 것 같다. 나의 노력과 진심을 배반하고 좌절시키는 사회와 사람들 탓이 크다.

이렇게 우울하고 무기력해질 때면 앞을 보고 있어도 보지 않는다. 시야는 뿌옇고 초점은 갈 데를 잃는다. 뭔가를 하고픈 의욕도 생기지 않는다. 지금도 나는 거의 억지로 힘을 짜내며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리고 페테르부르크의 거리엔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우산을 들고 밖으로 나가고 싶다. 혼자이면 어떤가? 어쩌면 그것도 낭만이면 낭만이고 운치라면 운치이리라. 조금 외롭기는 하겠지만 하루 이틀 겪는 감정도 아니다. 따뜻한 커피가 바닥을 보이면 나는 밖으로 나가 비 오는 저 거리를 걸으리라. 아무런 동행도 없이 홀로 아름다운 넵스키 대로와 도심을 구불구불 가로지르는 수로들을 따라 걸으며 이 아름다운 도시에서 태어난 한 미친 노인네가 일으킨 전쟁 때문에 우크라이나의 평범한 양민들이 고통을 받고, 젊고 양식 있는 러시아인들이 어쩔 수 없이 사랑하는 조국을 떠나고,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미친 인플레로 고통 받는 현실을 개탄하리라.

에따 로씨야!(эта россия!, 이게 러시아야!). 러시아 친구들과 대화하다보면 종종 듣게 되는 말이다. 보통 품질이 떨어지는 상품들이나 공공질서를 지키지 않는 사람들을 볼 때 블랙 유머처럼 하는 말인데, 요즘은 부당한 권력을 보고도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는 세태를 풍자하는 의미로도 쓰인다. 이 말엔 사실 러시아 민중의 뿌리 깊은 좌절과 냉소가 함의되어 있다. 피의 혁명을 통해 전제 군주를 축출하고 이상 사회라고 여겼던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했지만, 오랜 시간 철권 통치와 특유의 국가주의에 길들여진 러시아 사람들은 자신들의 살림살이가 특별히 나빠지지 않는 한 부패한 권력의 비민주적인 행태에 대해 적극적인 저항을 표출하지 않고 진실을 애써 외면하려 한다. 이는 그들이 양식이 없어서가 아니라 지금의 삶이 그래도 크게 나쁘지 않기에 굳이 위험을 무릎 쓰고 급진적인 변화를 추구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참으로 계산적이고 세속적이다라고 볼 수도 있지만, 사실만 놓고 보면 이는 비단 러시아만의 특징은 아닐 것이다. 경제와 돈을 우선하는 세태는 국가와 사회를 막론하고 전 세계적인 특성이고, 자신들의 이익 앞에선 정의와 진실을 외면하고 짓밟는 행태가 모든 국가와 사회에서 공공연하게 보여지고 있는 걸 우린 절대 부인할 수 없다. 특히 러시아는 워낙 광대한 영토를 관리해야 하고, 사실상 흑인을 제외하면 지구상의 모든 인종이 유라시아 지역에 걸친 광활한 영토 안에서 부대끼며 살아 온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강제적인 통제와 통치가 국가 존속을 위해 필요악인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역사적으로 자신들을 야만적이고 미개한 종족으로 취급했던 서구 세력을 유럽-아시아에 걸친 모든 국경에서 직접 마주하고 있는 탓에, 이들의 위협으로부터 자신들의 국가와 영토를 보전할 수 있는 강력한 리더십과 굳건한 정부에 대한 요구는 늘 존재해 왔고, 이는 자국의 존속과 발전을 위한 필수 조건이나 다름이 없다는 것이 러시아인들의 암묵적인 인식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지금 그들이 푸틴을 싫어하지만 그에게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다수 러시아인들은 오히려 푸틴의 갑작스런 유고시 닥칠 내부적 혼란과 내전 사태를 걱정하고 있으며, 이런 최악의 상황보다는 오히려 불만스럽더라도 현상 유지가 낫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러시아 국민이 민주주의 발전에 반대한다거나 자유와 인권의 가치를 도외시한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러시아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은 여느 서구 사회나 한국의 젊은이 못지 않게 자유분방하고 개성이 강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주관이 확고할 뿐만 아니라 굉장히 독립적이고 진취적이라는 게 이들을 실제 접해왔던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러시아인들은 다양한 취미 및 여가 활동을 통해 자아 실현에 매진함은 물론 일상적으로도 유행에 민감할 뿐 아니라 자신의 개성과 매력을 표출하는데 있어서도 거침이 없다. 정신적인 가치는 물론 돈, 성공, 인기 등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가치 추구에도 굉장히 적극적이다. 다만 이것이 개인주의적인 성향의 강화로 이어지는 것이 한계라면 한계일 것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러시아의 독특한 상황과 체제적 특성으로 인해 러시아인들이 특정 사회 문제나 부패에 대해 집단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거나 이에 맞서 결사하는 데 있어서는 비교적 소극적인 게 사실이다. 워낙 오랜 시간 동안 행해져 왔던 강력한 언론 통제와 강제적인 구금으로 인해 온라인 오프라인 시위가 모두 어려운 탓도 있지만, '에따 로씨야!'라는 말처럼 당면하지도 않고 확신할 수도 없는 변화를 위해 굳이 위험을 무릅쓰느니 차라리 개인적인 행복 추구에 매진하거나 더 살기 좋고 자유로운 나라로 떠나는 게 낫다는 허무적이고 냉소적인 인식이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혁명과 낭만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체제하면서 난 이런 현실을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가슴으론 공감하진 못해도 머리로는 그들의 처지를 이해한다. 이 거대한 나라 러시아는 과연 어디로 갈 것인가? 자신들의 나라 지도가 유럽에 대변을 지리고 시베리아에 퍽큐를 날리며 극동으로 머리를 들이밀고 내달리는 말과 같다는 그들만의 농담처럼, ‘유럽으로의 창’을 꿈꾸었던 표트르 대제의 러시아는 이제 그 창문을 닫고, 자의든 타의든 정반대 방향의 극동을 향해 창을 열며 새로운 제국의 부활을 꿈꾸고 있는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푸틴은 2가지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첫째는 중국에 자국 경제가 종속되는 경제 식민지화에 대한 우려이다. 만약 지금과 같은 서방의 재제가 계속된다면, 반도체, 자동차, 스마트폰, 컴퓨터, 2차 전지 등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러시아는 불가피하게 중국과의 밀착을 더 강화할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렇다면 중국에 비해 첨단 산업 분야의 기술력이 현저히 뒤처지고 인구가 극도로 적은 러시아는 중국의 강력한 정치경제적 영향 하에서 중국의 눈치만 보게 되는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석유 가스 등의 풍부한 천연 자원을 레버리지 삼을 수 있겠지만, 모든 부분들이 친환경으로 전환되는 대세 속에서 과연 이와 같은 전략이 얼마나 오래 먹힐 수 있겠는가? 두 번째는 앞서도 언급한 수도 이전에 관한 문제이다. 표트르 대제는 강력한 서구화와 근대화의 기치 하에 유럽을 모방한 계획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건설하고 이곳으로 수도를 옮겼다. 수도 이름마저 러시아어가 아닌 스웨덴어(상트)와 독일어(페테르부르크)가 결합된 외래어로 정한 것만 봐도, 유럽화에 대한 그의 의지가 얼마나 강했는지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유럽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러시아 지역은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국경이 모두 닫힌 상태이며, 유럽에서 러시아와 접경하고 있는 발트 3국은 물론 중립을 표방했던 핀란드, 스웨덴마저 나토 가입을 추진하며 러시아에 대해 적대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는 러시아 입장에선 자신들의 가장 큰 시장이었던 유럽과의 단절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동시에 더욱 가까워진 전선으로부터 수도를 보호하고 유럽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러시아 발전을 위한 국제 협력의 활로를 모색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바로 이런 이유로 수도 이전의 문제가 대두될 수도 있다는 것이 나의 개인적인 견해이다. 꼭 가까운 미래가 아니더라도, 현재와 같은 상태가 지속되고 서방과의 단절이 고착화된다면, 러시아는 흑해 연안이나 중앙아시아와 가까운 시베리아 그리고 중국 몽골 등이 가까운 극동 지역 등에서 국제 지역 협력을 강화해 나가야 할 필요가 더욱 커진다. 이 경우 서방으로부터는 멀지만 러시아에 호의적인 중국 인도 터키는 물론, 중앙아시아 국가들과도 가까운 시베리아 지역에 위치한 도시가 수도로서 지리적인 이점을 가지게 된다. 더욱이 재제가 계속돼 해외 시장이 줄면 당연히 내수를 키워야 하는데, 시베리아는 러시아의 중앙에 위치하며 자국에 호의적인 국가들과 가까이 위치하고 동서남북의 교통로가 교차하는 지역이기 때문에 그 중요성이 더욱 커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겨울이 길어 땅이 다 얼어 버리는 극한의 추운 날씨가 장애라면 장애일 수 있겠지만, 이마저도 지구 온난화로 인해 상황이 많이 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뭐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에 불과하지만, 푸틴 역시 이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까? 난수도 이전 가능성을 현지의 러시아 친구에게 넌지시 물어 본적이 있었는데, 그녀의 대답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https://youtu.be/RAnsD7RSbIQ?si=l8z0iu6mEZP7YCo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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