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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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평균 수명은 66세이고 평균 연령은 37세다. 교육, 의료 등이 무료라고는 하지만 공공 교육이나 의료 서비스 질은 매우 떨어져서 우리나라처럼 사비를 들여 비싼 학원에서 수강하거나 과외를 받는 학생들도 많고, 질 좋은 의료 서비스를 빨리 받기 위해 뒷돈을 주고 하염없이 긴 진료 순서를 앞당기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특히 이번 전쟁으로 인해 가뜩이나 부족했던 청장년 남성 인구가 적어져서 가까운 장래에 인구 붕괴로 인한 국가 소멸까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국가 재정 역시 전쟁 비용 충당 등으로 누수가 많이 발생하고 있어, 지난 번 연금 개혁 당시 겪었던 후폭풍에 다시 한 번 직면할 가능성도 크다. 가뜩이나 수령시기가 평균 수명 대비 65세로 매우 늦은데다 그 금액마저 적어, 만약에 전후 러시아에서 소요 사태가 발생한다면 연금과 관련된 이슈가 가장 큰 불쏘시개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건 그렇고 가끔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책이나 티비, 인터넷 같은 미디어로도 충분한 정보를 습득할 수 있는데 왜 나는 비싼 돈을 들여 굳이 몸을 혹사해 가면서까지 힘든 유랑을 하는 걸까? 내가 다니는 여행은 관광이나 휴가와 달리 현지에서의 일과 생활, 공부 등이 결부되어 있는 일종의 체류 성격이 짙은데, 이런 경험을 통해 과연 나는 투자한 시간이나 금액 대비 얼마만큼의 수확을 거뒀는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이렇게 나의 기행(紀行)에 대한 확신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수확물이 없는 이런 유랑을 계속하는 이유는 이것도 일종의 미래에 대한 투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현지에서의 직접적인 체험과 생활을 통해 책이나 여타 다른 미디어를 통해 얻을 수 없는 생생한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기도 하지만, 더 멀리 봤을 때를 대비해 이곳에서 지금 준비할 수 있는 미래의 일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더 크다. 이건 글을 쓰는 작가나 저널리스트로서의 고민이라기보다, 국제 지역 전문가 혹은 사업가로서의 고민이라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책상머리에 앉아서는 절대 알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체험, 미래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얻기 위해 일종의 투자 개념으로 당장 소득 없는 이런 여행, 아니 편력을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편력을 통해 국내외에서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그 인연이 오래 지속되는 경우는 드물지만, 그래도 일반인은 절대 할 수 없는 다양한 체험들을 하는데, 이것이 나만의 자산이라면 자산일 수도 있겠다. 문제는 이런 특이하고 독특한 경험들을 어떻게 잘 활용하는가인데, 문제는 늘 사람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인복이 참 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기보다는 누군가를 위해, 혹은 그들이 속한 조직이나 집단을 위해 큰 댓가 없이 일해줄 때가 많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나의 봉사를 거의 무상으로 받아도 될 만한 자격이나 인격을 갖춘 것도 아니다. 그냥 베풀기 좋아하고, 뭔가를 이루기 위해서 계산 없이 헌신하는 나의 성격 탓이 크다. 이런 경향은 개인적인 생활이나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그래서 난 늘 받기 보다 주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그리고 그런 것들에 대해 사람들이 크게 고마워하거나 나중에 보답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던 거 같다. 은혜를 일종의 권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뻔뻔함과 몰염치 탓이 크다. 사실 지금처럼 경쟁이 치열하고 먹고 살기 빡빡한 세상엔 계산적이며 처세에만 치중하는 야박하고 약삭빠른 사람들이 많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이런 세태 속에서 낭만을 찾고 이상을 꿈꾸는 것은 철 모르는 아이의 순진한 몽상에 불과할 수도 있다. 사실 인간이 얼마나 무서운 동물인가? 개인적으로는 귀신보다 더 무서운 게 인간이다. 그리고 인정하기 싫고 너무나도 안타깝지만, 인생을 살다보면 가족도, 친구도, 동료도 믿지 못할 세상이 되어 가고 있는 현실을 목도할 때가 많다. 이건 잘못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잘못이 바로 잡히거나, 이와 같은 우려가 사그러들지는 않는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그렇지 않은 반대의 사례도 많은데 내가 너무 개인적인 경험이나 생각에만 치우쳐 부정적이고 편향된 이야기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도 싶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령 대다수까지는 아닐 지라도, 이 같은 부조리와 불행이 만연해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성선설, 성악설과 같은 해묵은 논쟁이 지금도 유효한 걸 볼 때, 이건 어찌 보면 지금에만 국한된 사실은 아닐 것이다.
그럼 도대체 해결책은 없는 것인가? 좀 더 믿을 수 있고, 덜 무섭고, 야박하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은 세상을 만들 수는 없을까? 하루가 멀다 하고 수도 없이 쏟아지는 뉴스들이나 주변의 만연한 적폐와 부조리들을 목도하다 보면 그건 정말 요원하다는 느낌이 든다. 속된 말로 정말 종말을 맞고 하늘의 심판을 받아야만 이 어리석고 탐욕에 가득 찬 인간들이 진심으로 반성하고, 잘못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인가? 그럼 이미 늦는다. 그 전에 회개하고 참회해야 더 큰 비극을 피할 수 있다. 물론 이건 성경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세상은 그런 예상과는 달리 더 큰 디스토피아를 향해 변해가고, 인류는 그 속에서 적응할 방법을 찾아내며 생존을 지속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 사람들!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도 사람들이고, 살기 위해 마주하고 부대껴야 할 대상도 사람들인데, 이 사람들이 언제나 문제다.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거리에서나, 심지어 혼자일 때 조차 사람은 있어도 문제, 없어도 문제다. 참 커다랗고 답이 없는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어떻게 하면 좋은 사람들이 많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내가 좋은 사람이 된다고 해서 세상이 다 그렇게 되는 것도 아니고, 좋은 사람이 되면 바보가 되고 마는 현실도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좋은 사람들이 적은 것도 아닐 텐데..사람들은 늘 힘들다. 이런 세상을 바꾸고, 개선시켜나가야 할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사람들은 바로 정치인들이다. 하지만 현실은 정치가는 없고 정치꾼들만 득세하고 있다. 정권 재창출을 위해 우크라이나 전쟁을 묵인하고 사실상 부추긴 바이든이나, 순전히 개인적인 권력욕과 충동적이고 분노에 찬 감정으로 인해 전쟁을 일으킨 푸틴, 소영웅주의 어릿광대 놀음에 빠져 외교나 협상을 통해 피할 수도 있었던 전쟁을 직접 초래한 젤렌스키 같은 참으로 부족하고 한심한 이들이 모두 일국의 정치를 책임지고 있는 지도자들이다. 시진핑, 루카센코, 에르도안, 하메네이, 김정은 등과 같은 다른 나라의 독재자들이나 대통령들을 봐도 보통의 사람들과 비교해 조금도 나을 게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모두 자신들 나라와 국민의 운명을 책임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우리나라라고 해서 나을 게 있어 보이는가? 그저 헛웃음만 나올 뿐이다. 생각조차 하기 싫은 게 우리나라 정치판이다. 정치만 놓고 보면 정말 대한민국이 아니라 개한민국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의회나 정부엔 꾼들만 넘쳐나고, 그들의 안중엔 국민은 없고 자신들 정파의 이익과 개인적인 야욕으로만 머리 속이 가득 차 있다. 한마디로 정치가 개판이다. 해외 생활을 하다보면 소위 ‘한류’ 덕을 보고 뿌듯함을 느낄 때가 많다. 국위를 선양하는 문화 예술인들, 스포츠 스타들 그리고 일류 기업들 덕에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이들의 노고를 단박에 깎아 먹어버리는 자들이 바로 정치꾼들 그리고 일부 이단 종교인들이다. 한국의 정치인들은 정말이지 하루가 멀다 하고 수치스럽고 한심한 뉴스들로 한국에 대한 이미지를 깍아 먹고 있고, 이단 종교인들은 해외에 나와서까지 현지인이나 동포들을 대상으로 각종 사기나 문제가 되는 사건들을 일으킨다. 자칭 지도층이라고 자부하는 자들이 사실 지도받아야 하는 대상인 현실이 정말 아이러니하고 자조스러울 뿐이다. 그리고 사실 더 안타까운 건 선거라는 민주적인 제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우린 항상 잘못된 지도자들을 뽑고, 그들에게 우리의 삶과 살림살이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력과 권한을 이행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비단 정치판 뿐만 아니라 종교, 학교, 회사 등 모든 집단이나 조직에서 그런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게 가장 큰 이유라면 이유일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인간들은 자신들이 합리적인 결정을 내린다는 착각에 빠져 비이성적인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개인적인 소견이다. 그리고 현실에선 정의보다 이익이 늘 우선이 된다. 그러다 보니 부조리가 개선되지 않고 부패와 적폐가 반복되는 악순환이 지속되며, 이 과정에서 선의의 피해자들이 양산되는 비극이 계속되는 것이다. 정치가 이런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정치꾼들이야 말로 이런 문제를 일으키고 심화시키는 사실상의 책임 당사자라는 현실이 개탄스러울 뿐이다. 그리고 그런 사실을 수수 방관하고 심지어 진실을 외면한 체 부조리와 적폐의 배를 함께 타는 사람들, 바로 우리들 자신에 대한 안타까움과 원망도 크다.
그렇다. 바로 우리가 원인이고, 우리가 답이다. 문제를 일으키고 방관한 우리가 각성하고, 직접 나서서 잘못된 점들을 바로 잡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내가 이 편력의 끝에 있을 혁명의 시간을 기다리는 이유이다. 그리고 난 오늘보다 더 나을 내일을 기대하며 편력하고 글을 쓴다.
https://youtu.be/yE1FgMNfUY0?si=GHb-2uXYzeGh3aS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