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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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인들의 고양이 사랑은 실로 대단하다. 국민 대다수가 속칭 냥이 엄마, 냥이 아빠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특히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고양이가 도시의 상징과도 같다. 그것은 역사적인 사건과 관련이 깊은데, 2차 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페테르부르크를 포위한 상태에서 기아와 전염병 등으로 사람들을 고사시키기 위해 쥐를 대량으로 살포했을 때 이들로부터 사람들과 도시를 구한 것이 바로 다름 아닌 고양이들이었기 때문이다.
러시아에서는 ‘대조국전쟁’이라고 칭하는 나치 독일과의 독소전쟁 당시 소련에선 공식 집계로만 2천 만 명이 넘는 희생자가 발생했고, 2차대전 최대 피해국이 되었다. 지금도 러시아 주요 도시엔 2차 대전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한 ‘베츠느이 아곤(Вечный огонь)’, 일명 ‘꺼지지 않는 불’이 있을 정도로 거세었던 나치 독일의 공격을 막아내고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것에 대한 러시아인의 자부심과 나치에 대한 반감은 유래가 깊고 대단하다.
첫 번째 조국 전쟁은 제국주의 프랑스의 유럽 정복 전쟁으로 이 전쟁에서의 패배로 기세등등했던 정복자 나폴레옹은 몰락하고 만다. 그리고 두 번째 조국전쟁이 바로 그 유명한 독소전쟁이다. 이 전쟁의 백미는 200만 명이 넘는 소련 측 희생자를 발생시킨 스탈린그라드 전투다. 지금은 볼고그라드라고 불리는 러시아 남부 도시에서 소련군은 장장 6개월에 걸친 나치 독일과의 혈투 끝에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끌고 자신들의 영토를 수호하는 데 성공했다.
러시아어로 ‘나치(наць)’는 국가, 국민을 의미하는데, 이는 ‘state’나 ‘people’과는 달리 ‘nation’처럼 인종적, 민족적 의미를 동시에 내포한다. 그래서 나치즘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내셔널리즘, 즉 국가민족주의와 궤를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는데, 현재의 사례에서 이와 관련된 가장 대표적인 예가 일명 중국의 중화민족주의, 즉 ‘차이나치즘’이다. 러시아 애국주의의 경우는 러시아 민족 외에 옛 소련 제반 민족과 국가들을 모두 아우르는 초국가주의(Supranationalism)이란 점에서 통합적 성격의 나치즘이나 차이나치즘과는 차이가 있으며, 이는 오히려 ‘하나 안에서의 다양성’ 혹은 ‘다양한 하나’를 추구하는 유럽연합의 융합적 이상에 가깝다.
그리고 많은 이들의 오해와는 달리 러시아 내에서는 인종이나 민족에 대한 차별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정통 국가 설립 이후부터 유럽과 아시아를 아우르는 광대한 영토에서 다양한 민족과 인종이 오랫동안 어우러져 살아왔기 때문에 이들은 한 국가의 구성원이라는 공통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고, 지금도 역시 서로 다른 피부색, 언어, 문화 등에 대한 반감이나 거부감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다. 국가 정책 역시 노골적으로 타민족을 억압하고 차별하며 그들의 문화와 역사를 왜곡하는 중국과는 달리 인종이나 민족에 대한 차별을 공식적으로 금하고 터부시한다.
오히려 인종 차별은 미국에서 훨씬 심하고, 이에 대한 정부의 대책이나 대처 역시 매우 후진적이다. 개인적으로도 난 유럽과 러시아에서 이미 10년 넘게 거주 해왔지만 이곳에서 단 한 번도 인종 차별이나 폭력을 당해 본적이 없다(유럽 러시아 지역에서의 유일한 인종 차별 경험은 아이러니하게도 우크라이나에서였다. 그곳에서 한 달 남짓 거주하는 동안 난 돈바스 지역의 철없는 10대들로부터 온라인상에서 한 번의 인종차별을 당했고, 키예프 시내에서 한 번의 사기를 당했다).
하지만 1990년대 말 미국에서 거주하던 1년 남짓 기간 동안 난 한 번의 노골적인 인종 차별과 속칭 한 번의 ‘아리랑치기’를 당했다. 그리고 코로나 이후 현재 미국에서의 인종 차별은 내가 미국에 거주했던 시절보다 몇 십 배는 더 심하다. 보통 90년대 상트페테르부르크 등에서 창궐했던 스킨헤드들, 즉 네오나치를 떠올리며 러시아가 인종 차별이 심한 나라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많은데, 이들은 사실 지금의 우크라이나의 아조브민병대의 전신에 가깝다. 당시 푸틴의 러시아 정부는 인종 차별을 철저하게 금하는 정부 정책에 반하는 이들, 일명 네오나치를 강력하게 규제했고, 이후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으로 이주한 이들은 친서방 노선을 추구하며 러시아와 대립하는 우크라이나 정부의 묵인과 지원 하에 우크라이나 내에서 반러시아 활동의 주도 세력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크림전쟁 이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갈등은 훨씬 더 고조됐고, 현지 인구의 90프로 이상이 러시아인인 돈바스 지역에서의 이들 아조브 민병대의 영향력 역시 이에 비례해 더욱 강력해졌다. 푸틴이 자신의 전쟁 명분을 우크라이나 내 나치 척결과 러시아인 구제라고 주장하는 이유도 바로 이와 같은 역사적 배경에서 기인하다. 사실 돈바스를 포함한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은 전통적으로 러시아에 가깝고, 지역 거주민 역시 대다수가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러시아인이다. 반면 우크라이나 서부는 리투아니아-폴란드 제국과 역사를 공유하며 러시아보다는 유럽 쪽에 가까우며 언어 역시 러시아어가 아닌 우크라이나어를 사용한다. 통상적으로 수도 키이우를 남북으로 가로 지르는 드네프르강을 중심으로 동쪽은 러시아계, 서쪽은 우크라이나계로 분류되며, 이들의 반목과 충돌의 역사는 이미 매우 유래가 깊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제도권 기성 정치에 대한 우크라이나 시민들의 깊은 혐오와 지금의 젤린스키를 있게 한 유로마이단혁명과 이에 이은 내전 및 친러 계열인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 탄핵 사건이다.
이 복잡한 역사를 간략히 요약하자면, 2004년 우크라이나 대선 당시 동부와 남부를 장악한 집권 여당 후보 빅토르 야누코비치 측의 투표 집계 과정에서의 위반 사실이 발견됐고, 이에 대한 시민들과 반 야누코비치 세력의 강력한 저항의 결과 오렌지혁명이 일어났다. 이후 재 실시된 결선 투표를 통해 서부와 중부 지역을 기반으로 하며 서방의 지지를 받고 있었던 야당 후보 빅토르 유센코가 최종 승리함으로써 우크라이나에는 친서방 정권이 들어서게 된다. 그리고 2013년 11월 친러시아 계열인 빅토르 야누코비치의 재집권 당시 우크라이나와 유럽 연합과의 통합을 지지하는 대중들에 의해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는데, 이들 시위대들은 야누코비치 정권의 광범위한 인권 억압 및 권력 남용, 정부 부패 등에 대해 항의하며 해를 넘겨 이듬해인 2014년까지 지속적인 저항 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이것이 바로 유로 마이단 혁명이다. 이후 유럽 성향의 서부 지역과 러시아 성향의 동부 지역 간 내전이 발발했고, 야권 주도의 의회에서 친러 계열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공식 탄핵된다. 그리고 실시된 선거에서 국민들의 기성 정치에 대한 깊은 혐오로 인해 코미디언 출신의 방송인인 정치 초병 젤린스키가 포로센코 등 유력 후보들을 제치고 대통령에 당선되는 결과에 이르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지금 돈바스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 그리고 바로 전에 있었던 크림 전쟁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쟁은 우크라이나 영토 안에 내재한 우크라이나-러시아 간의 뿌리 깊은 반목의 역사에서 기인한다. 그리고 이 반목은 사실상 친유럽 진영과 친러시아 진영의 대립이라고 봐도 무방하며, 이 같은 대립은 폴란드-리투아니아 제국에 속해 유럽의 역사를 공유했던 서부와 러시아 제국에 속해 러시아 역사를 공유했던 동부의 문화적, 인종적 차이에서 유래한 것이다. 특히 이번 전쟁의 표면적인 이유와 관련해 한 가지 복잡하고 아이러니한 부분은 나치에 부역했던 일부 우크라이나 인사들과 친 나치 세력의 존재를 부정하는 우크라이나의 공식 입장과는 달리, 우크라이나 내에서 발생했던 나치 독일의 광범위한 인종 학살과 이에 협력했던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집단 출신 나치 부역자들과 관련된 역사는 진실이고, 동시에 돈바스 지역의 현재 일부 러시아 반군이 지닌 친 나치 경력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점이다.
우크라이나 측과 관련된 대표적인 사례는 ‘바비야르 학살 사건’이고, 이에 대한 책임이 있는 인사가 바로 앞서 러시아 영화 ‘브랏’에 관한 소개글에서 잠깐 언급한 바 있던 스테판반데라이다. 독소 전쟁 당시 키예프를 포위하고 있었던 독일 나치는 키예프 인근 바비야르 골짜기에서 1941년 9월 29일부터 1943년 9월 29일까지 2년에 걸쳐 3만명 이상의 유대인은 물론 우크라이나인, 러시아인, 집시, 타타르족 등을 체계적으로 살해했다. 이 과정에서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계열의 스테판 반데라와 그를 따르는 정치 세력이 반유대주의에 동조해 나치와 협력했고 바비야르 학살에서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다. 반데라는 이후에도 나치 독일과 다시 손을 잡고 1945년 우크라이나 민족위원회를 설립한 후 이 위원회의 지휘를 받는 우크라이나 군대도 창설하지만, 나치 독일이 2차 대전에서 패배하자 해외로 망명했다.
우크라이나 서부에서는 반데라에 대한 호의적인 평가도 많은데, 이는 이 지역이 전후 소련에서 가장 심하게 숙청 당한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2010년 친 서방파인 우크라이나 대통령 빅토르 유셴코는 스테판 반데라에게 우크라이나 영웅 칭호를 수여했는데, 유셴코는 이를 계기로 지지율이 크게 하락해 다음 선거에서 친러 성향의 야누코비치에게 대권을 이양하게 된다. 이후 야누코비치는 반데라 및 민족주의자들에 내린 영웅 칭호를 폐기하려는 시도를 했지만, 도네츠크 지방 행정법원의 불법 판결로 인해 좌절됐고, 유로 마이단 혁명 4년 후에 들어선 젤렌스키 정권에 의해 반데라에게 영웅 칭호를 주는 것이 공식 거부됐다.
러시아 측과 관련해서는 그 경중이 비교적 작긴 하지만, 2014년 우크라이나 유로 마가단 혁명과 내전 당시 돈바스 분리주의 운동을 돕기 위해 러시아 정부는 '러시아 민족 전선'이라는 네오나치 그룹을 도네츠크에 파견한 바 있다. 그리고 돈바스 인민군의 대표인 파벨 구바레프는 전쟁 전 네오나치 단체인 ‘러시아 국가 단결당’에 가담한 바도 있다. 소련 몰락 후 경제가 황폐화하고 무정부 상태의 강도 살인 사건 등이 빈번해지자 러시아에서는 주류를 이루던 슬라브계 백인들이 희망을 잃고 절망에 빠진 나머지 일부 하류층이 네오 나치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이들은 스킨헤드라 불리며, 유색인종 뿐 아니라 원래부터 러시아에서 농담으로 흑인이라 부르던 카프카스 민족은 물론, 다른 외국의 백인 인종들에게까지 폭력을 휘둘러 악명 높은 러시아 네오 나치에 대한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푸틴 집권 후 강력한 통제와 탄압으로 인종 차별이 거의 잦아들긴 했지만, 이들 대부분은 앞서 상술한 바와 같이 우크라이나 측의 아조브 민병대나 러시아측 일부 반군에 합류해 지금의 전쟁의 주축 세력으로 활동 중이다.
아울러 우크라이나와 돈바스를 둘러싼 복잡한 지역 정세는 물론 2차 대전 당시 학살된 유대인에 대한 정의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유대인을 대상으로 대량 학살을 일으킨 전범 히틀러도 유대인 출신이라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히틀러가 속한 유대인과 히틀러가 살해한 유대인은 범주가 좀 다르다. 우크라이나와 폴란드, 헝가리 등을 포함한 중서부 및 남동부 유럽 일대에는 과거 카자리아(현재 카자흐스탄을 포함한 중앙아시아 일대)에서 이주해온 유대인들의 후손이 폭넓게 거주했다. 이들은 본래부터 유대인이 아니고 경제적인 이유로 유대교로 개종한 카프카스와 중앙아시아 일대에서 번성했던 고대 국가 카자리아 출신의 유대인들이다. 히틀러의 유대인 혐오는 바로 이들 유대인 집단에 대한 혐오이며, 바로 이들 유대인들과 이들의 후손들이 2차 대전 당시 독일 나치에 의해 자행된 대규모 인종 학살의 희생양이 된 것이다.
https://youtu.be/mkmH9wziEbg?si=teMWm1q9bspJUB4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