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장. 다시 모스크바로

알다가도 모를 나라 러시아(2)

by 레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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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춤 ‘카드릴’은 러시아 동사 ‘카드리찌’에서 유래된 명칭으로, 성인 남녀가 구혼을 목적으로 집단으로 서로를 마주보며 유혹하듯 추는 춤이다. 19세기 무렵 프랑스에서 시작해 전 유럽으로 유행한 무곡 ‘카드릴’과 프랑스어 동사 ‘카드리유’에서 영향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이 집단 무곡에 참여한 여성이 만약 러시아의 전통 묶음머리인 ‘코사’가 보이게 하고 있으면 처녀, 그렇지 않고 두건으로 감싸 머리가 안보이게 하고 있으면 결혼한 것으로 미루어 짐작하면 된다.

한편, 러시아인들의 기질 중 매우 특징적인 건 직설적이고, 자부심이 강하며, 고집이 세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생각이 틀리거나 실수를 해도 어지간해서는 사과하려 하지 않고, 자신의 말이나 행동을 정당화할 논리를 찾는데 더 집중한다. 그리고 그들의 사고는 매우 집요하고, 감정은 철저히 자기 중심적이다. 그래서 오만하고 이기적이라는 지적을 자주 받는다.

어떻게 보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러시아인의 기질에 대해 다소 부정적인 입장을 지닌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리고 일부 사례를 가지고 전체를 일반화하는 오류에 빠져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직설적이다라는 말은 다른 말로 하면 그만큼 솔직하다는 것이다. 러시아인들의 입장에서 봤을 때 한국인들의 내숭이나 소위 겸양 같은 건 위선에 불과하다. 자신의 말이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끝까지 고집을 피우는 것 역시 전쟁과 압제가 지속돼 온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체득한 고육지책의 생존 방편이다. 그리고 러시아인들은 남보다는 자신들의 감정을 중시하기 때문에, 때론 배려가 부족하고 이기적으로 비출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비단 러시아인만의 특징은 아닐 것이다. 개인차나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들의 감정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강하고, 기질이나 성격은 개인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문화 유산이 풍부하고, 예술을 사랑해서 그림 그리는 재주나 악기 연주하는 재주를 기본적으로 하나씩 지니고 있는 러시아인들은 얼핏 세속적이지 않을 거라는 오해를 하기 쉬운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러시아인들은 서구인들 못지 않게 세속적이고 속물적이다. 공산주의 사회여서 덜 할 거라고 착각하기 쉬운데, 때로는 자본주의 사회보다 더 계산적이고 이해타산을 따진다. 러시아인들에게 있어서도 돈, 자동차, 집 등은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며, 월급이 적어도 분위기 좋은 카페나 레스토랑 혹은 호텔이나 여행 등을 위해 돈을 지불하는 것을 아끼지 않는다.

식료품이나 공산품 역시 선진국에 비해 품질은 많이 떨어지지만 가격이 싸지는 않다. 예를 들면 마트 같은 곳에서 파는 물건의 경우 용기 안에 빈 공간이 많아서 제품 겉면에 표기된 용량에 비해 실제 그 안에 담긴 용량이 적은 경우가 비일비재하고, 레스토랑에서도 가격은 비싸지만 실제 서비스되는 음식의 양은 매우 적거나 재료가 빈약한 경우가 잦다. 교활한 상술로 소비자를 현혹해 소비자로 하여금 필요 이상의 돈을 지불하게 만드는 광고나 홍보 수법 역시 매우 발달돼 있다. 의료나 교육 서비스가 기본적으로 무상이지만, 질적으로 매우 떨어지고 대기 시간이 무척 길기 때문에 양질의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고액의 뒷돈을 지불해야만 한다. 거기다 사회 전반에 걸쳐 부정 부패가 만연해 있어서, 이런 점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보면 공산주의 사회가 오히려 자본주의 사회보다 더 속물적이고 상업적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한마디로 그들이 말하는 보편 복지는 빛 좋은 개살구인 셈이다.

러시아인들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산책을 매우 즐겨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걷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많이 걸을 수 있기 때문에 러시아인들과 어울리는 것이 무척 즐겁다. 한국에선 조금만 걸어도 금방 지쳐서 대부분 자가용이나 대중 교통을 이용해 이동하는 것을 선호하지만, 러시아에선 한 시간 이상 걷는 것이 기본이다. 많이 걸으면 피곤하긴 해도 머리도 맑아지고 몸도 건강해지는 것 같아 나는 러시아에 살 때면 억지로라도 시간을 내서 아름다운 시내 중심가나 공원 등을 틈틈이 산책했다. 한국에 있을 땐 홀로 혹은 지인들과 자주 산을 찾는데, 등산은 나에게 있어 운동이자 여행이며, 친목 도모의 장이자 명상의 시간이기도 하다.

러시아 육지 면적은 전 세계 육지 면적의 10분의 1 이상, 유럽 전체 면적의 4배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크다. 세계 최대 담수호인 바이칼 호수의 길이만 놓고 봐도 한반도 길이와 맞먹으니 두말 하면 잔소리겠다. 땅 덩어리가 워낙 크다 보니 장거리 이동 수단도 다양한데, 대표적인 교통 수단이 철도이다. 러시아에서는 기차로 6-7시간 거리는 가까운 편에 속한다.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는 일반 열차로 12시간 남짓, 고속열차인 사프산을 타면 4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그래서 러시아에서는 기차를 타고 꼬박 24시간 혹은 2-3일 넘게 이동하는 게 대수롭지 않은 일이고, 그러다 보니 당연히 침대칸이 잘 구비되어 있다.

열차는 왠지 모를 낭만과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특히 러시아 열차가 그렇다. 러시아 열차를 타고 장거리 이동을 하다 보면 같은 객차 안에서 하루 이상을 같이 보내는 다양한 여행객들과 마주하게 된다. 워낙 긴 시간을 좁은 공간에서 함께 부대끼고 날밤을 지세다 보니 자연스레 이야기도 섞게 되고, 가져 온 음식이나 기념품을 나누기도 한다.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풍경들을 구경하는 것은 덤이다. 러시아는 땅 덩어리가 넓은 만큼 풍광도 다양하다. 러시아에서는 특히 한국의 도시락 컵라면이 인기가 많은데 열차 안에 구비된 온수로 이 컵라면을 데워 먹는 것은 꼭 거쳐야할 필수 과정이다.

기차 뿐 아니라 지하철 역시 잘 발달돼 있다. 발달이라는 표현이 적합한 건지 모르겠는데, 특히 모스크바 지하철은 배차 간격이 매우 짧고 역간 이동 시간도 굉장히 빠르다. 서울 면적의 6배가 넘고 러시아 전체 인구의 9프로 이상이 거주하는 모스크바의 경우 보통 역에서 역까지 이동시간은 1분 내외이고, 배차 간격도 30초에서 1분 남짓이다. 공식적인 인구가 전체 인구의 9프로 정도일 뿐 무수한 불법 이민자들을 합산하면 실거주 인구는 이를 훨씬 초과한다. 그래서 출퇴근 시간 모스크바 지하철 역은 말 그대로 발 디딜 틈 없이 인산인해를 이룬다.

러시아 지하철 역은 전쟁 시 방공호로 쓰일 목적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지하 깊숙이 위치해 있고, 긴 거리를 내려가야 하기 때문에 당연히 에스컬레이터 속도도 굉장히 빨라 처음에는 현기증이 느껴질 정도다. 특이한 점은 지하철 역 내부가 마치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연상시킬 정도로 아름답다는 점이다. 러시아 기차 역들 역시 외관이 굉장히 웅장하고 화려한데, 지하철 역의 경우는 내부가 매우 아기자기하고 다채롭다. 오래 전 지어진 양식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 좀 낡은 느낌도 있지만, 오히려 이것이 고즈넉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지하철 역 악사들의 악기 연주를 들으며 역 안을 걸으면 마치 옛날 영화 속을 걷고 있는 등장 인물이 된 듯한 착각도 든다.

러시아에서 특징적인 또 다른 특징은 생일이 굉장히 중요하고 의미 깊은 개인 이벤트인데, 우리나라에서와는 달리 생일을 미리 축하하는 것이 금기시되어 있다. 이유는 미리 앞서 생일을 축하하는 것이 생일까지 살지 말고 일찍 죽으라는 의도로 읽히기 때문이다. 달력 역시 일요일이 가장 앞 자리에 위치한 우리나라와 달리 러시아 달력은 월요일이 맨 앞자리에 있다. 이 때문에 나는 처음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당시 요일을 착각해서 하루 늦게 역에 도착해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가는 야간 열차를 놓친 적도 있다.

러시아 여성들에게 있어 세계 여성의 날은 자신의 생일과 더불어 가장 큰 기념일 가운데 하나이다. 이 날은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커다란 꽃다발과 선물들을 전달하는데, 꽃에 대한 이들의 사랑은 특히 유별나서 러시아에 24시간 편의점은 없어도 24시간 꽃집은 있을 정도다. 러시아는 면적이 크고 넓은 만큼 꿀, 녹용, 차가 버섯 등 특산품은 물론 베리류와 유제품의 종류가 매우 다양하고 가격도 싸다. 우유나 치즈, 요구르트가 전부인 우리나라와는 달리 러시아에는 우리나라에선 맛 볼 수 없는 특이한 형태와 맛의 유제품들이 많다. 러시아 학제 역시 우리나라와 달라 유초중학교 9년이고, 이후 고등학교 과정이 2년으로 총 11학년제다. 입학 시기도 6-7세로 빨라 통상 18살이 되면 성인으로 인정되고 대학에 입학한다. 당연히 다른 서구 국가처럼 가을 학기제이고, 대학의 경우 학부는 영국처럼 3년이지만, 학사와 석사 통합 과정으로 5년제인 경우가 많다. 대학 외에 전문학교도 다양하게 발달돼 있어, 고등학교 재학 중이나 혹은 졸업 후에 2년제 전문학교로 진학해 직업 연수를 받기도 한다. 아무래도 공공 의료 서비스 질이 떨어지고 평균 수명이 60여세 정도로 매우 짧다 보니 성인 연령 진입 시기나 경제 활동 및 사회 진출 시기 역시 우리나라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매우 빠르다. 사회주의 국가이다 보니 노동을 중요하게 여기는 인식이 강해 직업에 대한 차별도 없고, 의사나 교수 급여나 처우가 일반 노동자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오히려 학교 교사 같은 경우는 박봉에 일이 많아 기피 직업으로 인식되기도 하고, 이 때문에 개인 과외와 같은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충당하는 교사나 교수가 대다수다. 최근 들어서는 IT직종이 인기 직종으로 급부상하고 있고, 고급 인력의 유입과 정부의 집중 지원으로 인해 러시아의 IT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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