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다가도 모를 나라 러시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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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모스크바에 있다. 그리고 오늘 호텔 티비를 통해 우크라이나 동부 4개주에 대한 러시아로의 공식 병합 연설을 하는 푸틴을 보면서 나는 ‘어쩌면 인간이 저렇게까지 파렴치하고 위선적이며 자기 기만적이 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노망난 노인네의 옹고집 수준의 연설 내용은 둘째 치고, 만약 악마의 화신이 존재한다면 저 뻔뻔한 인간이 아닐까 하는 혐오감까지 들 정도였다. 진심으로 멍청한 바보 트럼프를 훨씬 능가하는 무논리, 몰상식 수준의 이번 연설은 역사상 최악의 연설로 기록될 것이며, 히틀러의 그것에 버금가는 대국민 사기 선동 선전 쇼에 다름이 아니었다.
그리고 최근 러시아 지인들을 만날 때마다 내전과 국가 해체에 대한 우려가 무척 잦아졌다는 느낌을 받는다. 나는 현실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이유로 그 의견에 적극 동의하는 바는 아니지만, 어쩌면 불가능한 시나리오가 아닐 수도 있다. 다만 중국을 고려하면, 소련에 이은 러시아 해체가 과연 인류를 위한 바람직한 역사적 경로인가하는 의구심이 든다. 순서로 치면 중국이 먼저 해체되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이다. 러시아는 중국과 같은 전체주의 사회이긴 하지만, 철저한 세뇌로 인해 집단 망상과 광기에 사로잡힌 중국 인민들과는 달리, 러시아 민중은 수 차례에 걸친 혁명의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민주적이고 분별력 있는 의식과 태도 또한 지니고 있다. 러시아는 언제든 잘못된 길을 걷는 권력을 권좌에서 내려오게 하고 개혁할 수 있는 자정 능력을 지니고 있지만, 중국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만약 러시아가 해체되면 극동이나 중앙아시아 일대의 많은 러시아 지역이 중국의 경제적, 정치적 영향권 안에 들어갈 가능성이 커진다. 그렇게 되면 세계에서 가장 비정상적이고 위험한 체제를 가지고 있는 중국의 힘은 지금보다 훨씬 더 커질 것이고, 이는 민주 진영에 거대한 위협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래서 당장의 러시아 해체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러시아 국민들도 90년대 국가 해체의 악몽을 다시 경험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바이든 행정부가 어떤 계략을 가지고 러시아 해체를 획책하려 할지 알 수는 없지만, 만약 그와 같은 전략 전술을 지향하고 있다면, 이는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것과 같은 끔찍한 후과를 인류에 초래하게 될 것이다.
러시아엔 정계에 진출한 스포츠 스타들이 유독 많은데 이는 곧, 곰과 같은 힘의 정치를 상징한다. 정치인으로서의 경륜이나 철학, 전문성보다 힘 있는 이미지와 명성, 인맥 등에 기대는 러시아의 후진적인 정치 현실을 잘 반영하는 사례라고 보면 된다. 러시아 국민 대다수가 믿는 러시아정교회 역시 부패해서 권력의 시녀 역할에만 치중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위기에 빠진 러시아를 구할 위대한 지도자를 찾을 수 있을까? 나는 이 질문을 러시아 친구들에게 던져 보았지만 대답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었다. 나 역시도 그렇게 생각한다. 서방의 입장에선 푸틴의 무자비한 탄압으로 인해 엄청한 고초를 겪으며 반푸틴의 상징처럼 돼 수감되어 있는 알렉세이 나발니가 훌륭한 대안일 수도 있겠지만, 나발니는 극우민족주의자, 인종차별주의자 이미지가 강해 러시아 국민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지 않다. 오히려 나발니가 러시아의 지도자가 되면 분리주의 운동과 러시아 인종을 중심으로 한 극우화가 더 큰 문제로 대두돼, 나치에 대한 히스테리와 패망의 트라우마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러시아인들의 불안감을 더 가중시키게 될 것이다. (나발니는 이후 수감 중인 상태에서 건강 악화로 인해 사망했다)
이와 같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가장 큰 위로가 되어주고 희망을 제시해 줄 수 있는 건 바로 문화 예술 분야의 독립적인 창작 활동일 것이다. 유사 이래로 예술은 사회가 혼란스럽고 민심이 흉흉할 때마다 시대를 반영해 앞으로 나아갈 길을 제시하고, 얼어붙은 민중의 가슴을 어루만져준 위대한 작품들을 배출해 왔다. 특히 러시아엔 영원한 고전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문화 예술 자산이 순수 예술인 문학에서 종합 예술인 영화에 이르기까지 그 어느 나라보다 풍부하다.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푸시킨, 예세닌과 같은 대문호는 물론, 앞서도 언급한 샤갈, 칸딘스키, 말레비치 같은 미술가와 차이코프스키, 라흐마니노프 같은 음악가 그리고 에이젠슈타인, 스타니슬랍스키 같은 연출가를 비롯한 배우, 가수. 무용수 등 세계 문화 예술을 대표하는 위대한 창작인들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지금은 이들의 공식적인 창작활동이 금지되거나 막혀 있는 상태다. 풍자나 해학, 예술적인 상징이나 표현 등으로 이들이 대중에게 반전 메시지를 전하는 것을 두려워 한 푸틴 정권이 극장을 폐쇄시켰거나 공연을 금지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과 같은 전시 상황에서 수 많은 러시아의 예술인들은 강제로 일자리를 잃거나 퇴출돼서 해외로 혹은 다른 산업 분야로 도망치듯 탈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희망을 러시아에서 찾을 수 있을까?
https://youtu.be/IJrDHD-6nN0?si=wFuqp9rCdeGz4O3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