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 번영의 몰락을 불러온 관세와 군사 경쟁
한자동맹과 같은 지역간 협력 네트웍 안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중심축은 바로 편력 상인인 한자, 다시 말하면, ‘유목 정신’을 지닌 개인이나 조직들이었다. 한자 동맹의 편력 상인인 ‘한자’ 그리고 실크로드를 따라 전 세계를 종으로 횡으로 횡단하며 청동기, 철기 문명을 전파하고 민족 간 융합을 이끌어 냈던 기마 유목 부족들! 그들로 하여금 지리나 기후 조건, 전쟁이나 재난과 같은 여러 외적 변수들을 극복하고 끊임없는 교류와 교역을 추동하게 했던 힘은 바로 다름 아닌 유목 정신이었다.
유목민들은 교류하고 교역하는 과정을 통해 존재하며 네트웍을 이루는 연결 고리들을 중시하는데, 징기스칸이 파발이나 봉화 등의 통신 시스템을 발달시키고, 광대한 세계를 지배했던 정복자답지 않게 자신의 묘지조차 남기지 않았던 것은 ‘연결’과 ‘과정’을 중시하는 유목 정신을 단적으로 상징한 예다.
한자동맹에 대해 좀 더 부연하자면, 발트해 연안 지역은 13세기부터 17세기에 이르기까지 4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발트해와 북해 지역에 위치한 교역 도시들 간 경제 무역 공동체인 한자 동맹의 중심 지역이었고, 특히 독일의 뤼벡크(Lübeck)는 지리적 입지를 바탕으로 스칸디나비아 및 키예프러시아와 직접 교역하면서 발트해 교역 루트의 기존 강자였던 스칸디나비아와의 직접 경쟁 체제를 수립하기도 했다. 하지만 비스비(Visby)조약으로 인해, 스칸디나비아와의 경쟁 체제는 끝이 났고, 뤼벡크의 편력 상인들은 러시아의 내륙 항구 도시인 노보고로드까지 진출해서, 공식 사무소인 콘토어를 세울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독일 식민주의자들은 이미 12·13 세기에 엘빙(Elbing/Elbląg), 토른(Thorn/ Toruń), 탈린(Reval/Tallinn), 리가(Riga) 그리고 타르투(Dorpat/Tartu) 같은 발트해 동부 연안 지역 도시들에 정착해 상인 길드를 형성했는데, 이들 도시들은 모두 한자 동맹의 주요 거점 도시들로 성장했다. 또한 뤼벡크의 군사적 정복 활동, 그리스도주의화(Christianization), 식민주의화(colonization) 등을 통해서 13세기 동안에 남 발트해 지역에도 한자 동맹의 교역 사무소들이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한자 동맹은 분명 독일 주도로 구축되었지만, 독일과 독일 연안 지역뿐 아니라 200 여 개가 넘는 북해와 발트해 연안 도시들이 모두 동등한 자격으로 한자 네트웍에 참여할 수 있었다. 이 도시들은 서쪽으로는 벨기에의 디난트(Dinant), 북쪽으로는 노르웨이의 오슬로, 동쪽으로는 지금은 에스토니아에 속해 있지만 당시 러시아령이었던 나르바(Narva)에 이르기까지 폭 넓게 퍼져 있었고, 한자 동맹 안엔 어떠한 형태의 공식 헌장이나 중앙 정부도 존재하지 않았다. 1373년 들어 자유 제국 도시였던 뤼벡크는 한자 동맹 내 청원이나 회의를 위한 중심 도시로 공식 지정됐고, 초창기 한자 동맹의 운영 방침은 주로 멤버 도시들이 교역 활동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했던 정박, 저장, 거주 등의 법적 권리들을 통합 보장하며 통화를 안정시키고 지불 수단 개발을 촉진시키는 데 주된 목적을 두었었다. 하지만, 상업적 이익의 추구는 결국 정치화되기 시작했고, 한자 동맹 내 도시들은 상업적 보이콧을 통해 정치적 적대 도시들과의 교역을 거부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결국 도시들 간 부과세 인상과 해군력 증강 경쟁으로까지 이어졌으며, 영국, 프러시아, 모스크바공국 같은 근대 국가들의 출현과 더불어 더욱 악화된 군사적 긴장 상태로 인해 한자 동맹은 끝내 몰락의 길을 걷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자 동맹의 유산은 그 후로도 계속 명맥이 이어져, 한자 동맹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공통의 가치와 우수성에 기반한, 모방할 수 없고 국제화된 문명의 일원이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래서 독일의 함부르크, 폴란드의 그단스크(Danzig/Gdansk), 라트비아의 리가 등의 도시들은 공통의 정치적 결집을 보이진 않았지만 강력한 유대감을 이후로도 꾸준히 유지했다. 더욱이 한자 동맹은 이질적 구성원들의 공통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멤버 상인들에게 시민권을 주기도 했고, 교역 증진과 귀족 지배자들로부터 최소한의 독립 등을 보장해 주기 위한 노력을 전개해 나가기도 했다. 그래서 특히 독일 역사에서 한자 동맹의 전통은 프러시아니즘, 국가주의, 제국주의 등과는 현저한 대조를 이루는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그리고 유럽의 역사에서 한자 동맹은 굳건한 지역 자치 협력과 상호 번영에 기반한 미래를 추구하는 모든 이들에게 역사적 횃불의 기치를 들어 보였던 전통으로 조명 받고 있다. 심지어 2004년 동유럽 국가들의 유럽 연합 정식 가입 이후에는 발트 한자 동맹의 부활을 주장한 전문가들이 등장했고, 이 사실은 지역 통합과 새로운 지역 건설에 있어서 한자 동맹의 가치와 전통이 여전히 중요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례로 평가 받고 있다. 이러한 구상은 현재에도 동서 유럽 사이에 서로 상호 결합된 문화적, 상업적, 사회적, 정치적 연결체였던 한자 동맹의 전통에 대한 발트해 국가들의 명백한 관심 표명으로 이어져 발트해지역구축 프로젝트(the Baltic Sea Region, BSR), 발트도시 연맹(UnionoftheBalticCities, NEW BRIDGES project), 도시동맹한자(City League The HANSE, new Hanse) 등의 다양한 지역-도시 협력 프로젝트가 여전히 전개돼 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