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를 막론하고 현실 정치의 근본 문제는 정치인들의 머리 속엔 오직 정권만 있고, 그들 가슴 속엔 진정한 애민정신이 없다는 것이다. 특히 대한민국의 제도권 정치인들의 관심은 오로지 정권과 정파적 이익일 뿐, 국민을 위한 민생 정치에는 무관심하다. 그래서 그들의 정치 활동은 사실상 정권 창출과 정권 유지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고, 그 어디에도 국민은 없다. 그들에게 있어 국민은 사실상 정치의 목적이 아닌 정권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한민국 국회와 정치인들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불신과 혐오는 이미 극에 달하다 못해 자포자기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이미 우리는 한국의 정치인들이나 사회 지도층이 진정으로 국민과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공복들이 아니라, 권력 투쟁과 이권 다툼에만 매몰되어 낡아 빠진 이념 정치와 이슈 놀이에 치중하고 있는 ‘폼잡이’, ‘척쟁이’들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무엇보다 정치 개혁이 시급하다. 국민이 세금만 내고 권력을 위해 일방적으로 희생을 강요당하는 종복이 아닌 국가의 진정한 주인이고 권력의 주체임을 분명히 체감할 수 있게 하는 실질적이고 포괄적인 개혁 말이다.
의병과 승병, 독립 운동, 국채 보상 운동, 민주화 항쟁, IMF 금 모으기 운동, 촛불 집회, 태안 앞바다 기름띠 제거 등의 역사적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대한민국의 국민들과 민초들은 국가적 위기가 닥치면 자발적인 헌신과 환난상휼(患難相恤) 정신으로 국난을 극복해 왔다. 정작 그러한 위기를 자초한 소위 지도층이나 책임자들이 책임을 면피하고 도망치기 바쁠 때에도 말이다. 이와 같은 역사적 교훈을 바탕으로 우리는 소위 엘리트 세력에 의해 좌우되는 작금의 정치 시스템을 개혁해서 궁극적으로 일반 국민들과 시민들에게 모든 정치적 권한을 이양하는 대중 통치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직접 민주주의가 바로 그것이다. 지금은 인터넷의 발달과 시민들의 지적 수준 향상 덕에 직접 민주주의가 더 이상 불가능한 이야기도 아닌 시대가 되었다. 기실 현재의 대의 민주주의 체제가 가지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하라고 뽑아 놓은 정치인들과 공직자들이 국민이 아닌 자기 자신과 정파 그리고 유관 이익집단들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두고 정치쇼와 탁상 행정을 일삼는다는데 있다. 따라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바로 대한민국 정치 후진성 해결의 열쇠가 된다고 볼 수 있다.
나는 근본적으로 현 위정자들의 권력투쟁에 고착된 사고방식 자체를 뿌리부터 개선시켜야 한다고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지식인들, 특히 정치에 관심 없는 청장년층이 더욱 적극적으로 현실 정치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직접 참여하며, 이들이 가진 집단 지혜의 힘과 에너지를 전반적인 국정 운영에 걸쳐서 전방위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그람시가 ‘자본주의 프로젝트에 맞서 새 시대를 가져올 사람은 조직적인 지식인들’이라고 이야기한 바 있듯이, 율법과 이론 논쟁에만 매몰된 바리새들에 맞서 경제와 사회의 복지와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건 바로 조직화 된 집단 지혜, 모리스 버만이 말한 ‘유목적 정신 체계를 갖춘 수도사적 지식인’들과 깨어있는 시민 세력인 우리들 자신이다. 조직화된 집단 지혜를 통해 우리는 칼 보그스가 지적한 바와 같이 ‘관습적 이데올로기의 환상을 타파하고 불의한 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도입해서 그 대안을 널리 퍼뜨리고 미래에 대한 전망을 제시’해야 한다. 아이슬러와 보울딩은 ‘필요한 것은 위대한 지도자들이 아니라 비정부 기구들이며, 평화, 환경, 영성(靈性), 여성 운동 등은 함께 힘을 합하여 성별 관계, 군사-사업체, 사회적 불의를 서서히 바꾸어 전지구적 시민 문화를 창조하고자 한다.’라고 자신들의 신념을 설파한 바 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우리들 각자의 마음속에 기생하는 탐욕과 야욕을 먼저 버려야 한다. 그것이 바로 사회 정의와 공공선을 실현하기 위한 진짜 정치, 복된 정치의 첫 걸음이기 때문이다. 이미 역사가 증명했듯 ‘자본가들이 부자가 된 것은 노동자들이 가난해졌기 때문’이라는 마르크스의 주장은 틀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들은 노동자가 부유해질수록 더 부유해진다. 자본가들이 상대적으로 노동자들이 얻는 부보다 훨씬 높은 비율의 부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자본가들이 노동자들보다 더 능력 있고, 더 많이 기여했고, 더 열심히 일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 반대의 경우도 역시 마찬가지다. 전체적인 부의 총량이 늘었기 때문에 자본가와 노동자 둘 다 부유해지는 것일 뿐이지, 어떤 면에서 보면 제대로 된 기업가 정신이나 공동체 정신이 없는 자본가 집단에 의한 부의 불균형한 분배와 불균등한 사회 구조 및 계급 구조는 더욱 고착화되고 심해지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대한민국이 과당 경쟁이나 갑질이 만연하는 현행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점을 개혁하고, 경제 정의 실천 및 질적 성장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분명한 사실은 자본가가 없어도 조직은 굴러갈 수 있지만, 노동자가 없이 조직은 절대 굴러 갈수 없다. 마찬가지로 정치인이 없어도 국가는 굴러갈 수 있지만, 국민이 없이 국가는 존속 자체가 안 된다. 공리주의에 따르면, 사회적 공리를 실현하기 위해 법은 개인의 행위를 규율하고 조정해야 한다. 그리고 사회적 공리의 실현을 위해서는 위정자의 부정한 이익을 배제해야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민주주의적 의회제도와 감사 체계가 요구된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아이러니하게도 국민이 직접 권력을 위임한 국회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가 가장 낮다. 이는 대한민국 국회가 그 동안 국가와 국민의 이익이 아닌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정파 혹은 유착 관계를 맺은 집단들의 사리사욕을 위해 일해 왔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권의 자정을 기대하기 어려운 현실에선 우리 스스로가 그들의 의도를 경계해야 한다.’라는 전상진의 말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가슴에 와 닿는다.
나는 이 글을 통해 우리 정치와 사회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함께 고민하고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하지만 이는 어느 한 개인이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교만한 기득권 세력이나 엘리트 집단 그리고 모범적인 외양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개혁과 성찰을 거부하는 암종인 바리새들은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양산하는 실질적 온상이자 방해자들이다. 그래서 이들을 설득하고 감화시키기 위해서는 깨어있는 시민들 그리고 희망 없어 보이는 현실에 어쩔 수 없이 침묵하거나 자발적 왕따가 되어 버린 정의롭지만 소외된 국민들의 연대와 협력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힘 없는 그들의 목소리가 담대하게 연대해서, 가면을 쓰고 세상을 현혹하며 국민 위에 군림하고 있는 가증스러운 자들의 꽉 막힌 고막을 뚫고, 얼어버린 가슴을 울리며, 잠들어 버린 양심을 깨울 수 있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