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이야기하겠다. 직접민주주의다. 우리는 당장 국회를 해산하고, 현재의 정당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 대신 집단지혜와 선의지를 바탕으로 한 시민정치와 생활민주주의가 협치의 중심이 되도록 새로운 판을 짜야 한다. 기존의 권위주의적이고 전통적인 리더십이 지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을 무시하는 기만적 대의명분이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는 류의 주장은 현실적으로 기득권자나 권력층이 자신들의 실책이나 부정행위를 정당화하기 좋은 이데올로기로서만 기능한다. 철학과 사유가 없는 리더십, 가식과 억지만 있는 러더십엔 아무런 희망이 없다. 더욱이 척만 하고 폼만 부리는 현재의 지도층이란 사람들은 축적된 부나 업적이 리더인 자신들의 노력과 능력에 의한 것이라는 착각 속에 빠져 산다.
일제 강점기에 전개된 대표적인 문맹 퇴치 운동이자 계몽 운동 중에 브나로드 운동이란 게 있었다. 이 운동은 ‘이상 사회를 건설하려면 민중을 먼저 깨우쳐야 한다.‘라는 러시아 지식인들의 사상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브(в)' 와 '나로드(народ)' 는 각각 '~안으로' 와 '민중' 을 의미한다. 하지만 오늘날 대한민국의 민중들은 전세계적으로 가장 뛰어난 지식과 능력을 지녔다고 평가 받을 만큼 높은 교육 수준과 고도의 기술 그리고 놀라운 재능과 뜨거운 열정을 지니고 있다. 어쩌면 엘리트 혹은 지도층이라 칭하는 집단보다 일반 시민들의 지적·영적 수준이 훨씬 더 높을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민중을 계몽하기 위한 운동이 아닌, 제대로 된 지도층을 양성하고 바람직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운동을 벌여야 한다. 지금은 시민과 집단 지혜가 보다 적극적이고 주도적으로 나서 새로운 계몽 운동을 일으켜야 할 전환적 시점이다. '민중 속으로(브나로드, в народ)'가 아닌 '민중과 함께(스나로돔, с народом)' 혹은 '민중으로부터(스나로다, с народa)’가 전개되어야 한다.
싸움을 일삼는 정당 대표 100명을 뽑아, 그들의 두뇌를 반으로 가른 다음, 다른 정당 대표들의 두뇌 반쪽과 합쳐 놓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서로를 잘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하면 세상을 다스리고 감독하기 위해서 태어난 줄 아는 정치인들의 머리에서 국민들이 무척이나 바라는 조화로운 사고와 중용이 생겨나게 될 것이다.
걸리버 여행기 ‘하늘을 나는 섬의 나라’에 나오는 말이다. 언제쯤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본분이 그리고 국민들이 그들에게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권위적 통치가 아니라 국민을 섬기며 공정하고 조화로운 중용의 리더십을 발휘하는 애민정치라는, 아주 오래되고 단순한 진리를 마음으로 깨닫게 될까? 안타깝게도 현실의 위정자들은 역사의 교훈을 떠받들고 국민들의 바램에 공명하며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지혜로운 현실 경륜이자 정치의 본질임을 전혀 모르거나, 설령 알았다 하더라도 권력과 이문에 취해 늘 정 반대로 행동한다. 봉건주의와 권위주의가 지배했던 시절엔 위정자들의 기만과 선전이 대중들에게 먹혔을지 몰라도, 지금의 현명한 대중들은 예전과 달리 정치권의 속보이는 정치 문법과 공학, 언론과 미디어를 통한 교묘한 진실 왜곡 및 여론 조작, 자극적인 정치 선동과 편 가르기 등을 광범위하게 간파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생활 민주주의의 진화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한국 정치의 한계이자 문제는 정책과 정국의 변화를 유도해 낼만한 집단화되고 상시화된 정치 세력으로서의 대중적 결집이 여전히 미약하다는 데 있다. 오히려 반대되는 소수의 극단 세력이 제도권과 결탁해 호가호위하고 있을 뿐이다. 안타깝게도 먹고 살기 바빠서, 합리적이고 상식적이라고 하더라도 행동 면에서는 속칭 ‘태도 보수’라서 일반 대중은 제도권 정치의 전면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올바른 정치가 이루어지려면 정치인들 스스로가 자정하고 자숙해서 정의롭고 이성적인 정치 행위를 하는 데 솔선수범해야 하는데, 선언뿐이고 ‘쇼’ 뿐인 작금의 정치판에선 그건 실현 가능성이 전혀 없는 꿈일 뿐이다.
“당신 꿈엔 내가 없는 거지? 내 꿈엔 당신이 있는데..”-영화 ‘구르믈 벗어난 달’ 중에서
우리 정치판의 현실은 그래서 늘 비상식적이고 비정상적이다. 위정자들과 관료들은 정치가 아닌 정권 그리고 개인의 야욕만 추구한다. 십분 양보해서 한국 현실 정치 문제의 핵심은 정치인들 스스로가 문제를 안다 하더라도, 이들은 늘 이권과 야욕에 눈이 멀어 정치를 개선하려는 의지가 없이 극단 세력과 결탁해 ‘협력’이 아닌 ‘협잡’만 일삼는다는 것이다. 민의를 반영하고 국민을 위해 봉사해야 할 국회와 정당이 제대로 된 대의 민주주의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에 그리고 관료주의와 보신주의에 빠진 공직자들의 실무 능력 부재와 도덕적 해이에 근본 원인이 있다.
잠깐 화제를 돌려서 ‘습도’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보겠다. 겨울철 실내에서 적당한 습도를 유지하는 것은 피부 미용과 건강을 위해 필수적이다. 습도가 부족해지면 피부가 건조해지고 다양한 피부 및 호흡기 질환을 야기할 뿐 아니라, 체내 수분량이 줄어 혈액 순환 악화와 혈액량 감소 및 전해질 이상 등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습도가 높아지면 곰팡이나 집 먼지 진드기 같은 세균의 활동이 활발해진다. 내가 갑자기 습도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정치적 습도’를 균형 있게 잘 조절하고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정치적 습도란 투명성과 공정한 인사를 의미한다. 정치적 투명성과 공정하고 적절한 인사는 오염 물질과 먼지 등을 걸러내는 기관지 속 ‘섬모’처럼 정치가 부정부패나 무능으로 병들지 않도록 예방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것이 실현되고 효과적으로 기능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정치의 수분량(투명성과 인재)이 적절하게 잘 유지·공급되어서 혈액 순환(소통과 협력)을 원활하게 해주어야 한다. 정치적 습도가 높아지면 당연히 정치적 정전기(마찰이나 불통)도 또한 줄어든다. 따라서 제대로 된 정치 인사를 펼치기 위해서는 정치적 습도를 합리적이고 균형 있게 조절 및 유지할 수 있는 경륜과 노하우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기실 대한민국 정치 현실에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되는 정부 정책의 비일관성, 파벌주의 및 관치주의가 정치와 경제 발전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따라서 정책 단절을 초래하는 대통령 단임제를 폐지하고, 청와대와 정치 기관은 지배·통치 집단이 아닌 철저하게 중간자적인 입장에서 다양한 이해관계에 얽힌 이익 단체들을 관리하고 중재하는 역할로 변화해야 한다. 또한, 대통령과 총리의 주된 역할을 각각 국방·안보·외교와 내치로 이원화함으로써 국정 운영의 집중도와 효율을 높여야 한다. 대통령 선거 때부터 아예 국무총리 후보를 함께 내세우는 한국식 런닝 메이트 제도 도입도 검토해 볼 만하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청장년층의 투표 참여가 저조하고 노년층 선거 참여가 두드러진 선거 현실에서 노인의 1표는 청년의 1표 보다 훨씬 더 큰 영향력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청년층의 자발적인 정치 참여가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겠지만, 그것이 여의치 않다면 투표 행위를 강제하는 법을 입법해야 한다.
제대로 된 정책 선거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국회의원 선출 시스템의 개선도 무엇보다 시급하다. 정당제도에 기반한 현행 대의민주주의 시스템은 여러 모로 비효율적이고 국민들의 세금 부담과 정치적 피로도만 가중시킨다. 이미 지방 자치가 실현되고 있는 시점에서 불필요하게 많은 수의 지역구 의원을 뽑는 것은 세금 낭비일 뿐이고, 국민 의사와 상관없이 중앙당의 자의적 권한으로 의원직을 위임하는 비례 대표 의원은 사실상 자기 패거리들을 위한 자리 나눠주기에 불과할 뿐 존재 이유의 타당성이 없다. 예전엔 일부 문자를 알고 정보를 독점한 양반들과 집권층만이 엘리트였지만, 지금은 오히려 일반 시민들이 소위 지도층이라는 인사들보다 훨씬 더 엘리트인 시대가 되었다. 그리고 인터넷과 정보 통신 기술의 발달로 직접 민주주의가 더 이상 불가능한 현실도 아니다. 나아가 자치 도시들이 발전하면 강력한 네트웍 구조 안에서 지역과 도시들에 파격적인 정치·경제적 자치권과 자율권을 부여해서 직접 민주주의 시스템 운용의 효율성을 기할 수도 있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우선 일반 국민들과 시민 단체의 적극적 정치 참여를 제도적으로 독려하고 보장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기존의 지방 의회와 국회를 대치할 ‘시민회의’와 ‘국민회의’이다.
우리는 시민회의와 국민회의를 대중의 소통, 집단 지혜를 통한 정책 창출과 정권 감시의 풀(pool)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 시민회의와 국민회의는 사실상 정권이나 이익 집단의 대변자가 되어 버린 현재의 의회와 정당을 대신해서 행정·사법부와 더불어 힘의 균형을 맞추어 갈 수 있는 새로운 대의(代議) 체제이자, 이익 집단의 나팔수 혹은 가짜 뉴스의 양산자로 전락한 ‘기레기’ 언론 매체들을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는 대안 언론 기관이다. 정치 선진화와 개혁을 위해선 지금이라도 당장 국회를 해산하고 정당 제도를 폐지한 후, 개방적이고 다원화된 국민회의와 시민회의를 신설해야 한다. 국민회의에서는 뛰어난 전문성을 지닌 직능별, 연령을 대표하는 연령별, 계층과 분야를 대표하는 각종별 국민의원들이 실무적으로 법을 제정하고 정책을 제안한다. 나아가 이들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하며 각종 이익단체들의 상충하는 이해관계를 협의와 협상을 통해 조정한다. 지역 사정을 잘 아는 시·도·구 등의 시민·도민·구민 의원 등 실질적 지역 대표들은 시민의회의 구성원으로서 해당 지역사회에서 시민을 위해 봉사하고 상충하는 이해관계를 조정·조율한다. 이들은 현행 체제에서처럼 소속 정당의 눈치를 보지 않고 오로지 시민의 눈치만 보며 소신껏 의정 활동을 펼치게 된다. 물론 여기서 그친다면 여전히 대의정치의 틀에 갇힌 꼴이고 직접민주주의라 부를 수도 없다. 하지만 국민회의와 시민회의는 열린 정치와 참여 정치의 장이자 본격적으로 정치권력의 대중화와 아래로부터의 정치를 실현하는 민의기관이다. 이른바 시민이 정치의 진정한 주체가 되는 시티즌크라시(citizencracy)의 시작이며, 평범한 국민과 시민의 주도로 정치 선진화를 도모하는 진정한 정치 협의체이다.
그 이유를 설명하자면 우선 이렇다. 첫째, 국민의원과 시민의원은 기존 국회나 지자체 의원들에 비해 수는 많으나 권한은 적고 진입장벽도 낮다. 이들이 정치를 하는 목적은 권력의 획득이 아니라 국민에 대한 봉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 국민이 의원이 될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따라서 둘째, 의정활동의 기회를 직능별·연령별·계층분야별·지역별 전문가들에게 폭넓게 제공함으로써 비대하고 권력화된 현행 대의정치의 문제점을 보완하고 누구나 평등하고, 누구에게나 기회가 열려있는 직접민주주의적 성격을 강화한다. 여기서 나아가 셋째, 인터넷을 통한 네티즌크라시(netizencracy)를 통해 현행 체제가 갖는 대의적 한계를 보완해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한다. 의원으로서 국민회의나 시민회의에 참여하지 못하는 일반 시민들은 온라인 국민회의와 시민회의에서 자유롭게 정책과 법안을 제안하고 토론하며, 자신들이 직접 뽑은 의원들과 외부 자문단이 검증하고 선별한 정책들에 대해 투표권을 행사한다. 그리고 이렇게 선정된 제안에 대해선 일반인들도 실제 정책 집행의 실무자나 자문역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와 물적 보상 등을 제공한다. 지금 정가에서는 ‘국민입법발의권’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인 걸로 아는데, 국민의 입법 발의에 대한 정당한 보상 없이 단순히 입법의 권리만 부여한다면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본분을 방기하고 국민의 소중한 노동력만 이용하는 것이라는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기회 제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당한 보상이고, 정책은 반드시 효율과 안전의 바퀴로 국민을 향해 굴러가야 한다.
역사는 일종의 진화적 현상으로, 이제는 더 이상 위로부터의 변화를 기대할 수 없으며, 위로부터의 변화는 결국 있는 자들의 배만 불려 주는 그들만의 리그가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똑똑히 목도해 왔다. 따라서 시민회의와 국민회의는 깨어 있는 시민 의식과 집단 지혜를 바탕으로 상향식 정책 결정의 최전선에서 가장 진화한 형태의 민주주의를 실질적으로 구현하는 첨병이 될 것이다. 물론 그 전에 전제가 되어야 할 것은 국민투표를 통한 전 국민적인 합의와 개헌, 시민들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 그리고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기득권 포기와 전면적인 인식의 대전환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두 말할 나위 없이 일반 시민들, 특히 정치에 무관심하고 비정한 권위에 의해 불의하게 소외되어 왔던 계층 집단의 새로운 변화에 대한 강력한 의지와 과감한 정치적 실천이다.
헤밍웨이가 말했다. ‘누구를 위해 종을 울리는지 묻지 마라. 그 종은 바로 당신. 바로 우리 모두를 위해 울리고 있다.’라고. 그렇다! 세상을 위해 종은 울리고 있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못한 현실이라면, 그리고 정치가 그 발목을 잡고 있는 주범이라면, 우리가, 평범한 아들·딸이고, 어머니이자 아버지이며, 형제·자매이자 보통의 이웃인 바로 우리 일반 시민들이 직접 나서서 바꾸면 된다. 시민회의와 국민회의는 그 위대한 변화를 위한 민의의 장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는 엘리트들이나 기득권 세력이 아닌 ‘대중들의, 대중들에 의한, 대중들을 위한’ 협의적 생활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를 구현하기 위한 첫걸음을 뗄 것이다.
요약하자면, 내가 제안하는 새로운 정치는 소통형·협의형·실무형·전문가형 정치시스템을 바탕으로 다원화되고 입체적인 개방형·권력 분산형 정치네트웍을 구축해서 시민과 국민 모두가 현실 리더가 되어 지역과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책임형 리더십을 구현하는 것이다. 하이에크의 용어를 빌리자면 교환과 전문화가 만들어내는 창발적 질서인 ‘카탈락시’를 시민과 국민의 적극적인 참여를 바탕으로 해서, 효능 없고 위선적이며 썩어 빠질 데로 썩어 빠진 현실 정치에 구현하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