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종교에 관심 갖는 이유 그리고 정의로운 소외란

by 레테

나는 우리 다음 세상을 살 세대들이 보다 더 정의롭고, 풍요롭고, 평화로운 세상에서 살 수 있길 강력히 희망한다. 그런데 정치를 통해 세상만사가 결정되고, 종교가 우리 의식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점에서 인간과 세계의 어제는 물론 오늘까지도 이 둘은 세상을 움직이는 핵심축이 되어 왔다. 하지만 우리의 내일을 생각하면 ‘과연 지금까지의 정치와 종교를 그대로 방관하고 방치하는 것이 옳은가?’하는 의문이 든다. 어쩌면 언젠가 깜짝 선물처럼 찾아올 지도 모를 나의 가족과 아이(들) 그리고 미래의 주인이 될 세상의 모든 아이들, 다름 아닌 바로 나와 우리의 아이들이 살아갈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지금 당장 현실 정치와 종교에 당면하고 내재한 문제점들이 무엇인지 냉철하게 점검해야 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정치와 종교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근본적인 차원에서부터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칸트의 ‘과감히 생각하라.’라는 말처럼 개인의 각성과 사회의 변혁을 이끄는 것은 계몽주의의 주된 특징이고, ‘진정한 철학자는 어떠한 사상 집단에도 소속하지 않는다.’라는 비트겐슈타인의 말처럼, 특정 교리나 사상에 대한 지나친 믿음과 집착은 때때로 ‘이성적 사고의 비이성적 결과’를 초래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를 테면, 아랫사람에 대한 예의는 무시하는 경향이 있으면서 윗사람에 대한 예의만 강조하는 권위적인 사회나 조직에서는 윗사람의 잘못에 대해 지적하고 조금이라도 따지려 들면 아무리 아랫사람이 옳아도 결국엔 버릇없다는 말을 듣거나 문제아라는 낙인이 찍혀 불이익을 당하기 십상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특수한 전통이나 가치가 특정 집단이나 사회 안에선 보편적 이성과 상식보다 우선시되기도 하고, 특정 문화나 집단의 가치 기준에 따라 때로는 보편적으로 합리적인 것이 비합리적인 것으로, 보편적으로 상식적이고 도덕적인 것이 몰상식하고 윤리 규범에 어긋나는 것으로 판단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이성적 사고는 의도치 못한 논리적 결과, 즉 서로 다른 가치관의 차이로 인한 윗사람과 아래 사람의 감정적 반목이나 대립을 야기하고, 보편 이성에 바탕해 잘못된 것을 개선하려던 선의의 시도는 오히려 ‘악습의 재강화’ 혹은 ‘악의 평범화’라는 퇴행적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낡은 이념과 교조주의에 기반을 둔 체, 독선적 반목에만 매몰된 정파와 종파로 각각 나뉜 현재의 정치와 종교를 보면, 이 같은 현상을 쉽사리 목격하는 것은 필연적인 결과이고, 보편 이성이나 상식에 반하는 부조리한 사례들은 그들의 생활과 관례 속에서 수도 없이 빈번하게 반복된다. 이는 물론 계몽적 사고의 결여와 특정 도그마에 매몰된 교조주의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바보는 자신이 바보인 줄 모르고, 악인은 본인 스스로 죄의식을 느끼지 못한다는 점이다. 바로 무지 때문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선 설령 특정 교육 기관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필요한 정보와 지식을 어렵지 않게 습득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무지한 이유, 특히 지도층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무지몽매에 빠져 더욱 독선적인 꼰대가 되는 이유는, 그들의 아집과 교만이 진정한 깨침을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종 무지에서 기인하는 미필적 고의로 인해 선량한 사람이나 사회가 억울한 피해를 입는 경우들이 현실 세계에서는 다반사로 발생하기도 한다. 그런데 정작 가해자 본인은 다름 아닌 바로 그 자신의 무지로 인해 그런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설령 인식했다손 치더라도 오히려 다른 희생양을 내세우며 책임을 면피하려 든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따라서 무지는 죄다. 무지한 이성과 영혼은 상식을 기만하고 양심을 배반케 하는 죄악이다. 이런 이유로 무지라는 죄악으로부터 교만하고 가식적인 인간들을 해방시키는 것은 공존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인 우리의 필연적인 의무이자 책임이다. 그리고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케 할 제도적 장치가 바로 정치와 종교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정치와 종교는 어느새 가장 무지하고, 가장 잔인하고, 가장 위선적이고, 가장 이기적이고, 가장 교만한 기관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일반 대중들이, 먼저 각성한 깨어있는 시민들이 사회적 권력 앞에 움츠러들지 말고 주체적으로 나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다양한 사회 문제, 특히 정치와 종교에 대해 우리들 각자가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끊임없는 감시와 견제의 눈길을 보내고, 집단 지혜와 연대의 힘을 모아야 한다. 또한, 비록 무지로 인해 잘못을 범하고 죄를 지었을지라도, 그런 사람들을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말고 자비와 측은지심으로 포용해서 무지한 자들을 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것은 조금이라도 먼저 깨친 사람의 의무이며, 그것이야 말로 우리가 추구하는 선한 공동체주의와 정의 관념의 본질이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공공선을 실현하기 위해 올바른 정치와 종교는 더더욱 절실해진다.

그렇다면 정의로운 소외란 무엇인가?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가? 우리는 살면서 개인과 집단, 즉 약자인 개인과 강자인 권력의 대립을 자주 목격한다. 이 경우 십중팔구 승리는 집단과 권력의 몫이다. 그들은 대체로 소속 집단의 이익, 권력자의 체면, 기득권 수호 등이 보편적 정의나 상식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안정적인 생활과 재산을 뒷받침해주는 세속적 이익과 힘을 지키고 싶어한다. 도덕적으로 옳지 않더라도 우리에게 이익이 된다면 때론 누군가를 희생시켜도 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런 집단이기주의가 일반화되면 힘없는 개인은 그가 아무리 정의롭고 선량할지라도 결국엔 희생양이 되고, 패자가 되고, 배신자가 되어 손가락질 당하고 만다. 자신이 속한 조직의 비리를 까발린 내부고발자, 소속 집단의 불의에 반대 목소리를 내며 불이익을 감수하는 정치인·언론인·공무원·교육자·근로자들, 부조리한 규범이나 부패한 다수로부터 스스로를 격리시켜 자발적 왕따가 된 보통의 사람들 그리고 염치를 알고 상식을 지키며 하루하루를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아가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어느새 주류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게 된 세상 구석구석의 평범한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사람들 모두가 다름 아닌 정의로운 소외이다. 즉, 정의로운 소외는 인기나 권세보다 정의와 양심을 중히 여기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출세나 처세보다 상식과 염치를 중히 여기는 사람들이다. 야만적이지 않고, 이기적이지 않으며, 탐욕스럽지 않다. 세속적인 성공이나 부를 추구할지라도, 그에 앞서 묵묵히 자신의 본분을 다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사회적 소명을 더욱 가치 있게 여기고, 이를 위해 자신의 성공이나 부를 내려 놓을 줄도 아는 사람들이다. 자신의 치부나 잘못을 덮기 위해 다른 사람을 희생양 삼지도 않고,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다른 사람을 이용하거나 착취하지도 않는다. 그럴싸한 대의나 명분을 내세워 개인을 희생시키거나 공공의 안전에 위해를 가하지도 않는다. 불의한 권력이나 이익집단 그리고 율법에만 치중하는 바리새들과는 대척점에 있는 양심과 상식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회적 존재들 혹은 약자들, 이런 그들을 가리켜 나는 ‘정의로운 소외’라 부른다. 그리고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좋은 세상이 되려면 정의로운 소외가 없어져야 한다. 정의로운 다수가 되어야 한다.

정의로운 소외가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우리는 부단한 독서와 탐구, 대화와 토론, 사색과 산책 등을 통해 먼저 참회하고 반성해서 지혜의 눈을 가리는 교만과 무지로부터 빠져나와야 한다. 권위적인 문화와 교조적 엄숙주의를 가정·사회 전반에서 타파해야 한다. 창조성을 억누르고 활력을 떨어뜨리는 관료주의를 개선해야 한다. 이기심과 허영심을 경계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동시에 남을 배려하는 연습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나와 다른 타자를 배척하고 위협을 가하는 언사와 행동을 삼가야 한다. 그리고 나아가 출발 자체가 다르고 게임룰이 불공정한 사회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열심히 일하고 정직하게 사는 사람들이 노력하고 능력을 발휘한 만큼 공정하게 보상받고 인정받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있는 자들 배만 불려 주는 그들만의 잔치를 이제는 끝내야 한다. 지속적으로 확대되는 불평등의 악순환을 막아야 한다. 병든 사회를 체질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나의 어머님 말씀따마, “복 짓는 데는 게으르면서 복 받는 데만 부지런 떨려 하지 말아.”야 한다. 이를 위해선 평범한 시민이자 보통사람인 나와 우리가 먼저 각성하고 변해서 정치와 종교의 썩어 문드러진 부분들을 과감히 도려내고, 모두 앞에 나서 올바른 방향으로 깨치고 나아가야 한다. 권력을 쥔 자들이 정권이나 권위가 아닌 민중과 대중을 위해 봉사케 하고, 기득권층이나 엘리트층의 이익에 앞서 보통 사람들과 소외 계층의 이익과 사회의 공익을 위해 일할 수 있도록 계도하고 이끌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 다음 세상을 살아갈 아이들에게 보다 더 정의롭고, 보다 더 풍요롭고, 보다 더 평화로운 세상을 물려줄 수 있는 첩경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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