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하고 풍요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

by 레테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자. 황사와 미세먼지로 푸르렀던 하늘이 어느새 누래지진 않았는가? 고개를 돌려 바다와 강을 보자. 지구 온난화와 가뭄 등으로 인해 맑고 넘쳤던 물이 마르고 까매지진 않았는가? 우리가 딛고 선 땅을 보자. 매연과 먼지로 숨이 막히고 소음과 고성으로 머리가 지끈거리진 않는가? 그리고 나를, 우리를 한번 돌아 보자. 탐욕과 오만으로 마음 비만, 양심 실종이 되어 버리진 않았는가? 개인·가족·집단·국가이기주의라는 암세포가 감정과 사고에 다 전이돼 영혼까지 까매지진 않았는가? 자, 우리가 소위 대한민국이라고 부르는 이 나라는 지금 우울증·자살률·부패 지수· 기댈 곳 없는 사회 지수·근로 및 학습 시간의 양 등이 OECD 최상위권이고, 사회의 질·삶의 질 및 만족도·행복 지수·청년 고용률·시간당 근로 및 학습의 질·언론 자유 지수 등은 최하위권이다. 게다가 저성장·고물가·저출산·고령화의 사각 파도에 휩쓸려 경기 침체는 장기화 되어가고 있고 고령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특히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청소년 및 청년 그리고 노인 우울증과 자살률, 저출산과 고령화는 정말 심각한 문제이다. 앞으로 이 나라를 이끌어가야 할 미래세대가 지금은 불행하고, 앞으로는 갈수록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아이들이 없는 나라, 청소년과 청년이 없는 나라. 과연 그런 나라의 미래는 어떨까?

경제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현재 한국 사회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인 저출산·고령화의 가장 큰 위협은 바로 이 문제가 노동력과 저축률 그리고 생산성의 감소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저출산·고령화가 심화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고용 불안이다. 설령 취직이 되더라고 비정규직 일자리만 전전하고 돈이 없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연애도 못하고 결혼도 못하고 애도 못 낳아서, 이른바 이 세 가지를 다 포기한 삼포 세대가 되어가고 그로 인해 대한민국 사회는 계속 늙어만 가는 것이다. 앞서 말한 삼포세대를 비롯해서, 성장해서도 독립하지 못하는 청장년층인 캥거루족, 이십대 태반이 백수라는 이태백, 물가는 계속 오르는 데 월 급여가 88만원에 불과한 88만원 세대, 집 한 채가 없어 대출을 끼고 살아야 하는 하우스 푸어, 38세가 되면 고용불안을 느낀다는 삼팔선, 45세가 되면 정년퇴직이라는 사오정, 50~60세가 되어서도 회사를 다니면 도둑놈이라는 오륙도, 마누라도 포기한 불쌍한 백수인 마포불백, 육십 대가 넘어서도 손주를 돌봐야 하는 육손이 등 현재 우리나라의 사회 현실을 나타내는 이 수많은 신조어들을 보면서 누가 과연 ‘헬조선’이라는 자조 섞인 별명으로 불리는 이 나라를 진정한 대한민국이라고 떳떳하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겠는가?

나는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정말 뻔뻔하고 기만적인 사람일 것이다. 그래서 이런 개한민국·소한민국을 진짜 대한민국으로 만들려면 우리가, 평범한 시민인 우리가 힘을 합치고 연대해야 한다. 정치는 다른 누구의 일이 아닌 바로 나의 일이고 우리의 일이다. 내가 먼저 변해서 정치와 종교와 사회문제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목소리를 내며 상식이 통하고 양심이 인정받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행동해야 한다. ‘나만 명예롭고 편하면 된다.’라는 생각. ‘내 가족과 내 새끼들만 행복하고 잘 돌보면 된다.’라는 생각. 내 조직과 집단의 안위만 우선시하는 생각. 그런 생각이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는 없겠으나, 만약 그런 생각에만 매몰되고 그런 삶을 우선시하고 있다면 지금 당장 그런 안이하고 이기적인 생각을 접어야 한다. 우리의 아이들, 우리의 다음 세상을 살아갈 미래 세대를 위해 봉사하고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회와 세상을 물려주는 것, 그것이 바로 하루라도 먼저 태어난 자, 소위 어른이란 자들의 의무와 책임이기 때문이다. 무지한 자는 죄인이며,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공범이다. 무지를 깨치는 길은 끝없는 참회와 반성에서 비롯된다. 자신을 한없이 돌아보는 사람은 배움에 인색하지 않고, 책과 세상과 자연 앞에서 겸손하다. 머리로 생각하고 가슴으로 느끼기만 할 뿐 몸으로 행동하고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 사회에 위해를 가하는 모든 부조리와 불의에 대한 암묵적인 동조자이다. 따라서 우리는 무지를 깨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함께 움직이고 연대해서 잘못된 정치와 종교 그리고 사회를 바로 잡아야 한다. 그래서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이 깨어있는 시민들과 정의로운 소외의 연대 그리고 국민·시민 소통 포럼이다.

잠깐만 화제를 돌려보자. 흔히 397 세대라고 하면, 30대이고, 90년대 학번이며, 1970년 이후에 출생한 세대를 지칭한다. 역사학자 오르테가의 역사 인식의 기본적 메타포인 ‘역사의 강’은 ‘특정 역사 경험을 공유하는 세대가 이어지면서 형성된다.’고 하는데, 이와 같은 세대 인식을 빌려온다면, 한 세대는 15년을 기준으로 특정한 역사 경험을 공유한다. 이 397 세대를 현시점에서 나이대로 환산해 보면 30 대 중반에서 50대 초반에 걸친 연령대이다. 50대 초반에 걸쳐 있는 집단은 제2차 베이비부머 혹은 잊혀진 세대라고도 불리며, 예전의 386 혹은 제 1차 베이비부머와 일정 부분 겹친다. 하지만 세대 간엔 일정한 역사적 경험과 문화를 공유하고 있는 점이 집단이 있기 때문에 무 자르듯 세대를 획일적으로 구분하는 건 또 무리가 있다. 그래서 나는 편의상 397 세대를 35에서 55세까지로 정의하고자 한다. 바로 이들은 10대와 20대 시절 엑스 세대라 불렸고, 30대와 40대 그리고 50대가 된 지금은 잊혀진 세대·낀 세대·삼포 세대·하우스 푸어·나홀로족·캥거루족·연어족 등등의 다양한 이름들로 불리고 있는 세대 집단이다. 그리고 지속적인 경기 침체와 저출산·고령화, 저성장·고물가의 추세 속에서 낮아지는 실질 임금과 집 장만 및 아이들 교육비에 대한 부담 그리고 불확실한 노후에 대한 근심 등으로 등골이 휘는, 말 그대로 ‘등골 브레이커’로서 우리나라의 경제를 짊어지고 나아가고 있는 중추 세대이기도 하다. 이들은 어려운 생활환경에서 급작스런 산업화와 민주화 등을 동시에 경험했고, 출세나 성공 지향형 인간상이 각광을 받으며 고도 성장기를 구가한 시대를 살아 온 윗세대(산업 세대인 60대 이상과 민주화 세대인 50대 중후반)는 물론, 집단의 이념보다는 개인의 가치와 삶의 질이 더 중요해지고 결혼과 취업이 어려워진 불황기를 사는 현재의 아랫세대(88만원 세대인 20대와 삼포 세대인 30대)와 일정 부분 쌍방향으로 ‘특정한 역사 경험과 문화’를 공유하고 있는 중간 세대이기도 하다. 그런데 문제는 향후 대한민국은 저출산과 고령화 그리고 경기 침체로 인해 양질의노동력과 일자리가 부족해지고, 해외로 빠져나가는 고급 인력들이 증가하는 현실에 직면하게 될 거라는 점이다. 거기다 부동산 대출과 사교육비 부담 등에 더해 노인연금 등 각종 복지 기금 등의 증가는 필연적으로 30~40대가 태반인 이들 397 세대로 하여금 막중한 세 부담까지 떠안게 한다.

내부적으로도 이렇게 골치 아프고 고달픈데 시선을 조금만 밖으로 돌려 보면 바깥 현실은 더욱 녹록치 않다. 도무지 답이 없어 보이는 북한은 둘째 치고서라도 갈수록 우경화 되어가는 가까운 일본과 노골적으로 중화사상과 일대일로를 강요하는 중국 그리고 보호무역주의와 재정 떠넘기기 등으로 자국 이익만 추구하는 미국만 봐도 그렇다. 특히 중국은 3차 대전의 불씨가 될 수도 있는 차이나치들이 극성이다. 이들은 광신적 정치종교 집단인 중국 공산당과 그들의 교리인 중화사상을 통해 집요하고 악랄하게 세뇌되어 극단적 민족주의인 '차이나치즘'에 경도된 중국인들을 일컫는다. 이에 더해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4개 열강의 지도자들은 기본적인 자질과 인격마저 결여되어 있어, 대전쟁과 신냉전에 대한 우려와 이로 인할 한반도의 피해에 대한 걱정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지금의 대한민국 397 세대는 국내외적으로 분명 힘든 현실에 직면해 있다. 그리고 이들 세대들은 믿고 의지하거나 존경할 만한 지혜와 경륜을 갖춘 어른이나 지도자가 없다는 시대적 불행에 좌절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분명하고 냉철하게 인식해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 이는 바로 지금까지 5060으로 대표되는 구세대가 어렵고 가난했던 시절 우리가 먹고 살 수 있는 ‘밥’과 ‘밥그릇’을 만드느라 바빠서 소홀할 수 밖에 없었던 ‘영적 지혜와 경륜’을 이제는 중간세대인 자신들이 직접 나서서 개발해야 한다라는 공동체적 의무와 사회적 책임에 대한 자각과 실천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정치와 종교 그리고 사회다방면에 대한 관심과 적극적인 참여이다. 바로 이들 세대가 특히 더 나서서 깨어있는 시민들과 정의로운 소외의 연대 그리고 소통 포럼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이들에겐 노인세대가 가지고 있지 않은 신기술과 신지식이 있고, 어린세대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경험과 사회적 권한이 있기 때문이다. 명심하라, 397세대여! 그리고 주도적으로 나서서 행동하고, 세상을 변화시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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